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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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자서전 써오기'를 숙제로 받는다면, 나는 우리 가족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 속에 잔잔하게 전류가 흐르고 있다. 예민한 사춘기 딸,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는 괄괄한 엄마인 나로 인해 언제 파파박하고 불꽃이 튈지 아무도 모른다. 고요한 듯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신경전은 마치 폭풍전야같다. 그러나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요즘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해보려하고, 딸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들어보려고 하며, 딸아이도 내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이야기하려 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하는 거야." (본문 197p)라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 모녀는 진화를 꿈꾼다. 

어느 가족이든 사사로운 고민과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불량 가족 레시피>>에 등장하는 가족은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가족보다 그 상태가 더 심각하다.
이야기는 여울이가 도덕 꼴통이 '가족 자서전 써오기' 숙제를 내주면서 시작된다.
고등학교 1학년인 여울이에게 가족은 불을 뿜는 용이나 다름없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따발총 같은 잔소리는 절대 늙지 않는 꼬장꼬장한 슈퍼 할매가 버티고 있으며, 채권추심 하청 사업을 하는 쉰넷의 아빠는 세 명의 여자와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둔 탓에 여울이는 이복형제인 오빠와 언니를 두었는데, 세 명의 엄마는 아이를 낳고 얼마되지 않아 모두 집을 나갔다. 여울이보다 네 살 위인 전문대 다니는 오빠는 다별경화증 때문에 기저귀를 차야하고, 고3 수험생인 언니는 여울이만 보면 거침없이 욕을 쏟아 낸다. 뿐만 아니라, 평생 주식에 목매이는 뇌경색 삼촌은 빚때문에 형식적인 이혼을 하게 되지만, 미국으로 간 아내와 아이들과 연락두절이다. 이 가족에게 '엄마'는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다.
정말 그야말로 이 시대에 확실하게 차별화된 가족구성원이며 불쌍한 영혼의 집합소(본문 10p)다. 여울이는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를 세우며 독립을 꿈꾼다.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를 통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댄서였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 없는 엄마를 상상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보곤 하는데, 암울한 가족 틈바구니에서 코스튬플레이는 여울이의 돌파구다. 코스튬플레이 동호회에서 알게된 세바스찬을 짝사랑하는 여울이는 그렇게 혼자만의 행복을 꿈꾸어본다.
그런 와중에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빠로 인해 그동안 곪아왔던 가족들이 상처가 하나씩 터지기 시작하면서 가족은 해체의 위기를 맞게 된다.
고3 수험생이지만, 아빠의 일을 돕누느라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언니와 아빠의 다툼으로 가출을 감행한 언니를 시작으로, 주식으로 대박의 꿈을 꾸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삼촌과 아빠의 불화로 삼촌 역시 집을 나가고, 병에 대한 불안과 치료비 걱정으로 마음의 상처를 안은 오빠 역시 아빠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가출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이 해체되고, 사랑하는 세바스찬에게 무참히 차인 여울이는 몸져누운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마음 속에 무겁게 짓눌린 앙금을 씻어내면서 가족의 면면을 다시보게 되고, 진짜 용기를 내게 된다. 

재미있는 일들만 생각하고 싶은데 이놈의 집구석은 사람을 깃털처럼 가볍게 놔두질 않는다. 알고 보면 다들 자기 앞에 놓인 일들이 감당이 안 디어 본의 아니게 서로를 괴롭혔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나는 다른 가족의 삶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지금 혼자 남은 이 상황이 마음에 썩 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 깊은 곳에서 느리게 꿈틀대는 알 수 없는 움직임들 때문에 혼란스럽다. (본문 196p) 

여울이네 가족은 만나면 서로 으르렁거리기 바쁘다. 그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문제가 많은 가족처럼 보이지만, 다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양로원에 들어가 남은 여생을 보내는 일이 꿈인 할머니는 며느리가 차려 준 밥상을 받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 아이를 키워야했으니 여울이에게 퍼붓는 악다구니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는 삼촌의 주식에 대한 기대, 고질병 때문에 스무살의 나이에 기저귀를 차야하는 오빠의 상처, 눈앞의일만 생각하고 뒤는 생각 하지 못하는 폭력적이며 권위적인 아빠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아빠의 무거운 어깨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너한테는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우리 생활을 책임지고 싶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본문 187p) 

음성지원이 되는 카랑카랑한 할머니의 억센 사투리는 왠지 모를 정감이 느껴진다. 아픈 아들과 손자, 쪼들리는 생활과 어른 손자들 때문에 삶이 버거운 할머니지만, 상처를 가진 이들 모두를 보듬고 있었다.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억세고 괄괄한 할머니였지만, 그래도 그들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둘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의 그 꼬장꼬장함이 아니였을까 싶다.
이제 여울이는 '완벽한 출가를 위한 지침서'에 맞춰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용기를 가져본다.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가족이지만, 이제야 비로소 가족이 하나로 뭉쳐져야 할 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하는 거야."
그렇다. 이제 우리 가족의 진화가 필요하다. 더없이 위태로운 불량 가족이지만. (본문 197p)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은 욕심이며,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간다(본문 103,104p)라고 생각했던 여울이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사랑이며, 사람은 사랑 때문에 산다는(본문 103p)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듯하다. 이제는 습관처럼 달고 다니던 우울함과 엄마의 빈자리를 잊게 해준 코스튬플레이가 없다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그 마음을 채울 수 있게 된 여울이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17살 여고생 여울이를 통해서 바라보는 가족이 주는 의미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서, 나 역시도 다시금 내일을 위한 진화를 시작해본다. 내게 있어 진화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원천은 바로 '가족'이다. 여울이는 잠시 잊었던 가족의 힘을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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