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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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경숙은 ’어머니’를 ’엄마’라고 고쳐쓴 후에야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머리에 하얀 수건이 벗겨질 날이 없고, 아이들에게 한 수저라도 더 먹이려고 애쓰며, 집안 살림 하나하나 손 때를 묻혀가며 자신의 삶은 버린 채, 가족의 삶을 우선시 하는 그녀들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단어속에 함축되어 진다. 그것은 ’엄마’ 두글자 뿐이다. ’엄마’라는 직함을 가진 나의 이름과 내 엄마였던 ’엄마’의 이름은 왜 이렇게도 다른건지...

’엄마..........’ 가만히 이름을 불러본다. 
엄마를 불러본 지가 언제였던가......? 6년전 중환자실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든 엄마를 미친듯이 부르며, 뻣뻣해져가는 엄마를 일으켜세웠다. 내가 그렇게 부르면 엄마가 다시 눈을 뜰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에 나는 수십번 엄마를 불렀다. 미동도 없는 엄마를...
그리고 6년의 세월동안 나는 엄마의 이름을 ’온전’하게 불러본 기억이 없는 듯 하다.
엄마의 기일, 엄마의 생일 그리고 명절이 되어서야 간혹 불러보는 엄마의 이름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온전하게 불러보지 못한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로 시작되는 글은 ’나’가 아닌 ’너’로 이야기가 이끌어진다. 말하는 주제가 누구인가? 처음엔 그 궁금함으로 이야기를 읽어내려갔다. 아버지와 함께 아이들이 있는 서울에 온 엄마는 서울역에서 아버지를 놓친 후 사라졌다. 엄마를 찾는 광고문을 제작하면서 아이들은 엄마와의 기억을 하나둘 끄집어 내었다. 어린시절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1장은 작가의 직업을 가진 셋째 큰딸의 이야기다. 큰 딸인 ’나’가 아닌 큰 딸인 ’너’가 화자가 되어, 너가 보는 딸과 엄마의 이야기가 전개 되어진다.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본문 26p)

글을 전혀 모르는 엄마는 큰 딸에게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고, 딸은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엄마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꿈꾸던 소녀시절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으므로...
아파도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를 내버려 둔 것이 후회로 밀려왔을 것이다.
큰 딸은 나를 보는 듯 하여 마음이 아프다. 10여년을 병과 싸운 엄마를 나는 온전히 바라보지 않았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나를 위로해주는 말처럼 나는 그말을 철썩같이 믿고, 엄마에게 퉁명스러운 나를 포장하기 급급했으니까.
엄마가 사라진 뒤에 비로서 엄마의 존재를 느끼는 이 ’늦음’이 왜이렇게 가슴을 쓰리게 하는 걸까?

-헛돈 좀 썼단다. 새 뚜껑을 사러 갈 적에는 돈이 아까워 쩔쩔 맸는디도 멈출 수는 없더구나. 독 두껑 깨지는 소리가 내겐 약이었어. 속이 후련허구 답답증도 가시고.

-너도 밥하기 싫음 접시라도 하나 던져서 깨보련? 아구, 저 아까운 거 싶은디도 속이 뻥 뚫리기도 헐 것이다. 하긴 결혼도 안했으면서 밥하기 싫고 말고가 있겠냐마는.
(본문 74~75p)

2장은 ’너가’ 아닌’ 그’로 큰 아들을 통한 엄마의 이야기다. 집안의 장남은 누구에게나 그렇듯, 엄마의 희망이자 든든한 버팀목이였다. 늘 자랑스러운 큰 아들을 위해 장독대에 몰래 숨겨 둔 라면을 몰래 끓여주는 엄마는 ’미안하다, 형철아’라는 말을 그에게 자주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던 아들에게 엄마는 무엇이 그토록 미안했던 것일까?
엄마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곳은 뜻밖에도 자신이 서울에 올라와 머물렀던 곳이였다. 극심한 두통과 아무도 몰래 견디었던 뇌졸증 증상으로 기억이 사라져버리는 엄마는 오래 전 가끔 들렀던 그 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너무 오래 걸어 엄지 쪽 발등이 깊이 패어 뼈가 들여다 보이고 상처가 곪아터지고 또 터져서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인 발에 겨우 파란 슬리퍼에 의지한 엄마는 어떻게 그곳에 갔을까?
슬픔에 목이 메인다. 

3장은 ’당신’이라는화자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어 간다.
늘 남편을 기다리던 엄마는 ’나 왔네.’ 라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인제 오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없는 줄 알면서도 이방 저방의 문을 열어보는 남편은 젊은 시절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아픈 그녀에게 약 한번 사주지 못하고, 생일날 미역국 한번 끓여주지 못했던 자신이 미워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4장은 ’너’의 화자인 둘째딸의 이야기, ’당신’ 이라 부르는 곰소의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시어머니처럼 무서웠던 ’고모’ 이야기다.

잘 있어요....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라요.

’너’’그’’당신’ 모두 엄마의 이야기였다. 슬픔이 복받쳐 오른다. 어딘가에서 자식과 남편의 손이 닿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읽어내려갔다. 
엄마의 얼굴이 겹쳐지는 듯해서, 내게 잘못을 용서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은 나의 엄마와 겹쳐지는 듯해서, 끝내 내 가슴에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남겨둔 엄마와 겹쳐지는 듯해서....그렇게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본문 262p)

엄마가 그랬다. 어려운 살림에 억척같이 살아온 엄마였다. 이제 조금 엄마의 얼굴에서 웃음을 발견할 수 있을 때 허무하게 내 곁을 떠난 엄마는 그동안의 희생에 대한 위로도, 고맙다는 인사도, 사랑한다는 고백도 받지 못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린다.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6년동안 온전하게 부르지 못했던 엄마의 이름을 오늘은 수도 없이 불렀다. 책 속의 엄마가 내 엄마 같아서, 이렇게 나를 지켜보고 있을 엄마가 그리워서,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었을 엄마가 가여워서 부르고 또 불렀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비처럼 내 눈에서 비가 쏟아진다.
그녀처럼 나도 누구를 향한지 모를 소망을 빌어본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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