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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나무 위의 눈동자 ㅣ 동화 보물창고 36
윌로 데이비스 로버츠 지음, 임문성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나무 사이에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 두려움이 서려있는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동화책임에도 불구하고 표지가 섬뜩한 느낌이 드는 것이 굉장히 신선했는데, 읽는내내 성인 추리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이 녹아져있어 책을 다 읽어서야 비로소 손을 놓을 수 있었을 큼 책 속에 흠뻑 취해있었다. 이 책에 빠질 수 있었던 것은 '추리'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한 소년이 사건을 통해서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과 가족과의 소통에서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과 성장소설의 절묘한 조화가 있었기에 <<체리나무 위의 눈동자>>는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1/08/19/21/jin9802_1864871749.jpg)
체리나무 위는 주인공 롭 말로리의 안식처이다. 그곳에서는 맞은편 집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는데, 특히 온 동네에 말썽을 일으키는 골칫거리이며, 항상 망원경을 목에 걸고있는 '늙은 마녀' 칼로웨이 부인네 집은 나무와 가까워 부인네 카펫이 어둡고 칙칙한 빨간색이라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롭에게는 동네에서 가장 심술궂고 무게가 1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고양이 '애물단지'가 있는데, 애물단지가 칼로웨이 부인네 집에 가는 것을 막는 일은 바로 롭은 담당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고양이를 따라다니며 감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큰누나 달시의 결혼 준비로 롭의 가족들은 모두가 달시의 시중을 들며 비위를 맞추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설상가상 애물단지가 칼로웨이 부인네 집에 들어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엄마는 더욱 바빠졌고, 저녁을 먹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롭은 체리나무에서 체리를 따 먹으며, 이 지긋지긋한 결혼식이 어서 끝나고 가족 모두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체리나무에서 시간을 보내던 롭은 어느 날, 칼로웨이 부인이 창가에 몸을 기대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에 떠밀려 떨어지다 쌍원경 가죽끈이 꼬이면서 부인의 목을 조인 채 나뭇가지에 걸려 죽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롭은 부인을 떠민 남자의 손, 깜짝 놀란 애물단지가 남자의 팔을 할퀴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아무도 롭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 나 할 얘기가 있어요."
"로비야, 제발! 좀 괴롭히지 마라. 난 지금 드레스를 손봐야 한다고." (본문 76p)
"난 지금 엄마를 얘기를 해야 해."
"로비, 엄만 너랑 얘기할 시간이 없어. 어서 가서 데릭이나 도와주렴. 맞다! 너 거실에 있는 거미들 치웠니?" (본문 79p)
롭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을 찾아 자신이 목격한 바를 이야기하지만, 다들 롭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흘려듣고 만다. 결국 롭 자신조차 자신이 본 것에 대한 확신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시시때때로 롭을 위협하는 무서운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면서 다시금 가족들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려 하지만, 번번히 묵살당하고 만다.
"엄마, 이건 정말로 중요한 일이에요. 기껏해야 일 분밖에 안 걸려요."
"엄마한텐 그 일분의 여유도 없단다."
'그 전에 누군가 날 죽이면요? 엄마는 그런 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거예요.'
'문제는요, 나는 이제 엄마랑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본문 115p)
"왜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요? 왜 내 말엔 귀를 닫고 있냐고요!"
"어떻게 해야 내 말을 들을 건가요?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겠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본문 117,118p)
롭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경찰도 롭이 꾸며낸 이야기라 치부하게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아빠를 기다리던 롭은 결국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롭은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위기를 극복해나가며 사건을 해결한다.
책을 읽는내내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야기를 하고 싶은 롭과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엄마의 대화가 바로 그것인데, 그동안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건성으로 '어어어' 대답을 하기도 했고, '나중에 말하자'라는 말로 아이가 내밀고 있는 마음과 손을 놓치곤 했다. 롭이 엄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게 되었던 것처럼, 내 스스로가 아이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싶어 마음이 아팠다.
<<체리나무 위의 눈동자>>는 추리소설이 보여주는 살인 사건을 통한 긴장감으로 시종일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게 해주었고, 위험한 상황을 스스로 극복해가는 롭을 통해서 성장소설이 보여주는 감동 역시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추리소설은 어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하기 쉬운데다, 어린이를 위한 추리소설이라고 하면 추리소설이 갖추어야 할 긴장감 등이 다소 적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건 정말 기우였다. 그 긴장감 속에서 한 소년의 성장과 가족간의 소통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어 이 작품 속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의 마음이 닫히지 않도록 아이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이 책이 준 긴 여운 속에 잠시 빠져보련다.
(사진출처: '체리나무 위의 눈동자'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