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까지 75센티미터
안학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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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책을 읽다가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야했다. 집이었다면 한바탕 눈물을 흘렸으리라.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해도 편독이 심한 탓에 안학수 시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었는데, 가난과 장애를 딛고 일어선 시인의 성장 소설이라는 글귀에 궁금함을 느껴 책을 읽게 되었다. 환경을 탓하며 좌절하는 요즘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에서 오는 감동이 사춘기 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듯 싶었다.
자전적 소설이라는 이야기에 저자의 프로필을 먼저 눈여겨 보았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공사가 되었지만 문학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던 그는 결국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동시집 <박하사탕 한 봉지><낙지네 개흙 잔치><부슬비 내리던 장날>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이야기가 담긴 <<하늘까지 75센티미터>>에서 용서와 감동 그리고 희망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기록되고 있다.

"아저씨, 죽으면 어떻게 되지요?" (본문 10p)

왕따를 당하면서 겉도는 듯한 4학년 건이와 만나게 된 수나는 건이의 물음 속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미처 대답해주지 못했던 건이의 물음 속에서 수나는 어린시절 자신의 봉인된 이야기를 꺼내들면서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한다.

"엄마! 난 안 죽을 텨! 싫어, 엄마!"
"엄마! 등 고쳐 내라구 안 헐껴! 죽구 싶다고 안 할껴!" (본문 15,16p)

수나의 어린시절 기억은, 여섯 살이었던 자신을 업은 엄마가 차가운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엄마에게 울부짖었던 그날로 시작된다. 가난으로 힘들었던 시절, 동갑내기 복성이와 그 집 마당에서 놀던 수나는 복성이 형 두성이가 남겨둔 옥수수를 집어 한입 베어물었고, 그것을 본 두성이 형은 수나에게 발길질을 했고, 토방 아래로 굴러 떨어져 나뒹굴게 된 수나는 그 일로 척추를 다쳐 곱추가 된다.
강물 사건 이후로 어머니는 수나를 제 발로 걷게 만들고, 남들처럼 학교에 보내겠다며 한글과 수학을 가르치곤 했다.

"공두부 안 허구 핵교두 안 댕길겨!"
"이까짓 거 못 이겨 내면 훌륭한 사람은 어찌 되누."
’누가 꼽새를 훌륭허게 쳐 주남? 다 소용웂어!" (본문29,30p)

엄마 아빠의 도움이 아니면 방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어쩌다 마당에 나와 있기라도 하면 동네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 일쑤였기에 수나는 늘 외로웠고, 분노에 차있곤 했다.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죽으면 아프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억울하지도 밉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수나는 죽을 결심을 하고 엄마가 동생 수봉이에게 마시면 죽는 거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선반 위의 기름병을 떠올리고 단숨에 들이켰다. 

수나의 몸에 좋다는 것이면 무엇이든 구해 먹이는 어머니, 늘 수나 편인 어머니. 그런 어머니 몰래 수나는 혼자 죽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어머니가 가엾고 불쌍했다. 후회가 맹렬히 밀려왔다. (본문 55p)

다행이도 수나는 심한 설사만 했을 뿐이었지만, 자신을 장애로 만든 두성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어느 날 엄마 아빠가 일을 하러가고, 동생 수봉이마저 나가고 혼자였던 수나는 갑자기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고, 뭔가 무거운 더 미에 짓눌려 온몸이 조여드는 것 같아 숨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수나는 ’내 다리먼 몸 즘 일으켜 줘! 일으켜! 일으켜!’하며 용을 썼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몇 해 동안이나 누워 지냈던 수나는 그렇게 일어섰고 한 걸음 한 걸음 걷게 되었다.

얼굴을 덮은 땀방울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걸음을 뗐다는 기쁨과 흥분이 벅차올랐다. 수나는 힘든 줄도 모르고 마냥 서 있었다. (본문 107p)

그 뒤 수나는 걷게 되었고, 학교도 가게 되었지만 친구들의 놀림과 또 싸워야했다. 그러나 장안선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나는 책과 가까이 할 수 있게 되었고, 선샌님이 건넨 동시집에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가난과 외로움 그리고 장애는 오랜시간 수나를 괴롭혔지만, 수나는 장애를 가진 병아리 석다리의 죽음으로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된다. 

몸이 우그러진 자신이 그렇게 짓밟혀 죽었다고 생각했다. 수나 스스로를 벗어 버리고 살라고 석다리가 대신 죽은 것 같았다. 수나는 불구의 몸에 매이지 않고 살겠다고 석다리에게, 아니 자신에게 약속하고 다짐했다. (본문 276p)

그러던 수나는 두성이가 자신을 불구로 만든 것에 대한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렸으며 결국 허망하게 죽은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분노를 거두게 된다. 그 후 직업훈련소에서 기술을 배운 수나는 고장 난 시계를 고칠 때는 병들거나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내는 것과 같은 기쁨을 느꼈으며, 금세공을 할 때는 나 자신 역시 별처럼 보석처럼 아름답기 위해 스스로를 녹이고 두드리고 깍고 다듬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 온 날을 떠올리며 수나는 죽음에 대해 물었던 건이를 떠올린다. 

시계도 힘찬 심장처럼 박동이 멈추지 않아야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 금붙이는 불에 달궈지고 모루에 두들겨지고 깎이고 다듬어져야만 제대로 빛이 나고, 어떤 생명체이든 누구든 세상에 태어날 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두드리며 제 빛을 찾아가고 있을 건이에게 이 긴 편지를 보낸다.
(본문 342p)

저자 안학수의 자전적 소설 속에는 분노를 용서로, 죽음을 의미있는 삶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주는 마법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절망하고 분노만 가득찼던 수나가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선물한다. 갑자기 찾아온 장애, 그리고 가난과 외로움으로 힘들었던 그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런 자신의 환경에 굴복하지 않았던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시인 안학수가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요즘 우리 사회는 외모와 가난이 장애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꿈이 있고,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면 환경은 결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장애는 스스로에게 굴복하는 못난 마음일 뿐이다.


<<하늘까지 75센티미터>>는 독자들에게 가난과 장애를 극복하고 빛나는 존재가 되기 노력했던 저자 안학수의 자전적 소설을 통해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덧붙히자면, 저자는 봉인되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자신의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오랜 상처를 글로 풀어냄으로써 과거와 대면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 계기도 되지 않았을까도 생각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둔 진실을 꺼내어 풀어놓음으로써 독자에게 진심으로 다가온 저자의 글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놓은 장애 속에서 허우적대는 많은 이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는 눈물과 감동이 함께 있으며, 또한 내 안의 상처를 되짚어보고 치유할 수 있는 힘도 함께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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