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엄마’라는 단어는 내게는 눈물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지 8년이 되었는데 나에게는 여전히 엄마의 빈자리는 크게만 느껴진다. 엄마를 찾아 납골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하는 엄마에게 말이 ’엄마 또 올게’이다. 그래서인지 제목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을 각오하고나서야 책을 읽어내려갔다. 살아계실 때 좀더 자주 찾아뵙고, 고마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전했으면 좋으련만...이 아쉬움이 끝내 나를 힘들게 한다. 조만간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무정한 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뵈러 다녀와야겠다. 그러고보니 기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평생 무학으로 살아왔던 홍영녀 어머니는 칠십이 가까운 나이가 되서야 손자들 학교 다닐 때 어깨너머로 글을 깨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자무식이었다는 할머니는 손자 인성이한테 숫자 쓰는 걸 배우고 밤늦도록 공책에 1,2,3...100까지 숫자를 쓰고, 자신의 힘으로 딸네 집에 전화를 하던 날 가슴이 두근두근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말벗 없는 할머니에게 종이에 생각을 옮기는 일이 너무 좋다하시며 자식을 낳으면 굶더라도 공부만을 꼭 시킬 일이라 하시는 어머니께서 일기를 쓰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얼마나 행복해하셨는지 짐작이 간다. 이 책은 그렇게 글을 깨우치시고 쓰기 시작한 1985년부터 1995년까지의 어머니 일기와 2004년부터 지금까지 맏딸인 황안나 씨가 엄마와의 추억과 엄마를 향한 마음을 담은 글을 반복적인 구조로 수록하고 있다.
어미가 미련해서 죽은 자식을 가슴에 50년 동안 가슴에 묻은 어머니는 죽은 무남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애절한 시로 표현하고 있다. 무학이며 칠십이 가까워서야 글을 쓰게 된 할머니의 글 솜씨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표현이 감탄을 자아낸다. 열아홉 살 되던 해 결혼을 하고, 서른여섯 살 된 시아버님, 서른아홉 살 된 시어머님, 스물한 살 된 아버님의 첩, 열세 살 된 시누이, 아홉 살 된 시동생과 살면서 무섭고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했던 힘들었던 어머니는 밤마다 친정 생각, 외할머니 생각하며 눈물로 베개를 적셔야했다고 한다. 힘들었던 그 생활에 결혼 한 지 7년 만에 태어난 아이 경화에게 마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시집살이는 친정 어머니를 더욱 그립게 하였다.
그녀의 일기에는 나이가 들면서 더해지는 외로움과 가슴에 묻은 자식과 먼저 떠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져 있으며, 육남매에 대한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은 더욱 여려지고, 노기도 많아지며 외로움도 깊어진다. 그런 변덕스러운 자신의 마음을 탓하기도 하며, 자식들에게 대한 서운함을 적어내려가면서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던 듯 싶다.
내 인생은 참 허망하다.
책을 써도 몇 권이 될 시집살이 살았는데,
나는 자식살이를 한다.
이 나이에도 병든 몸을 꾸무럭대야 밥을 먹는다.
내가 해 먹는 밥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도 마주하는 이 없는 밥상이 슬프다. (본문 39p)
내 친정 엄마는 10여 년을 병치레를 하셨다. 환갑도 되지 않은 나이에 결국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프신 동안 참 많이도 외로워하셨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살았고, 친정과 불과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살고 있던 내가 매일 찾아갔음에도 늘 가슴이 허전하다 하셨다. 어쩌다 약속이 있어 친정에 가지 못하는 날라도 생기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거셨는데, 철없는 딸은 그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얼마나 허망하고 서운하셨을까?
딸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했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로 애써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일기는 나를 더욱 질책하는 듯 했다. 왜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으로 힘겹게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겼다.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자식 걱정을 하며 적어내려간 글을 보며, 나는 우리네 엄마들의 마음을 발견한다. 어떤 책에도 삶의 정답을 일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연륜만은 다르다. 살아오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그들의 지혜는 그 어떤 책보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주의할 것은 성공했을 때다. 그럴 때일수록 어려웠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앞에 닥칠지도 모를 고난을 생각해서 더욱 몸조심하고 뽑내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란 60,70이 잠깐이다. 젊어서 시간을 쪼개 금족같이 아껴 써라. 시간을 중히 여기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고 나면 늙어서 후회한다. 칠십 고개 넘어 허망해하지 말고 젊어서 노력해라. 후회하지 마라.
지금까지 한 이 늙은 어미의 말을 허투루 듣지 말고 양쪽 귀로 잘 들어라. (본문 169p)
자식들 걱정에 아프지 않은 척하며 집안 청소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찌 이리 슬프고 미안한지 모르겠다. 병상으로 괴로워 철부지 같아지는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 염려하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도 진솔하게 적혀있어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식들 걱정에 아픈 내색하지 않고 혼자 고통을 느꼈을 어머니의 마음이 우리네 엄마의 마음과 같으리라.
진통이 올 때마다 까무러칠 것 같다. 누우면 통증이 더하다.
그리하여 밤이면 수십 번씩 앉았다 누웠다 한다. 한참 쩔쩔매다 시계를 보면 겨우 10분이 지났다.
그렇게 몹시 아프다. (본문 223p)
"너희들한테 너무 미안해. 느들 고생이 너무 많아. 빨리 죽어지지는 않고 어쩌면 좋으냐?" (본문 257p)
그저 눈물을 흘리며 책장을 넘길 뿐이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 모질게 굴었던 내 모습 때문에 한참이나 울어야했다. ’엄마’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빽이요, 힘이요, 행복이다. 늘 내편이 되어주는 엄마. 그리고 그 마음을 몰라주는 무정한 딸.
딸 황안나씨의 마지막 글귀는 꼭 내 마음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후회스러운 마음에 힘들었던 마음은 내내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어 ’엄마’를 주제로 한 이야기, 드라마, 영화만 보면 이내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 나는 왜 그렇게 딸 노릇에 서툴렀을까! 생각해보면 아주 쉽고 아주 작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 전화라도 자주 해드렸더라면, 엄마 곁에서 하룻밤만 더 묵었더라면, 엄마와 자주 시장을 보러 갔더라면, 연세는 드셨어도 곱게 꾸미시라고 분첩하나 사드렸더라면....그랬다면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때늦은 후회로 가슴을 친다. (본문 271p)
살아계실 때 잘 해드려라..라는 말을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야 이해가 됐다. 엄마의 힘들었던 마음은 어머니 홍영녀님의 일기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돌아가신 해가 거듭될수록 ’엄마’라는 이름은 더욱 애절해진다. <엄마, 나 또 올게>는 나와 같은 이에게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슬퍼질 책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늘 자식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엄마, ’엄마 또 올게’라는 말에 그리움으로 자식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엄마. 아프고 힘든 몸을 감추며 오로지 자식 걱정인 우리네 엄마의 모습에 눈시울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