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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에게 물린 날 ㅣ 푸른도서관 47
이장근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6월
평점 :
그동안 어린이와 어른들을 위한 시집을 주로 읽다가 푸른책들에서 출간된 <<그래도 괜찮아>>를 통해 청소년 시집을 처음 접하면서, 시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고, 다독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반색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악어에게 물린 날>>의 출간이 너무도 반갑고 또한 고맙다.
요즘 중학교 1학년인 딸 아이는 연예인에 열광하고, 친구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시크한 듯 툭툭 내뱉는 말투 등으로 ’나는 지금 사춘기입니다’를 마구마구 표현해주고 있다. 엄마의 잔소리에 입을 툭 내밀며 싫은 내색을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나지만 일단은 한번 참아본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잠시나마 사춘기 딸을 이해하기 위해 보기위함이다.
내가 학창시절 원태연의 시가 인기를 끌면서, 사춘기 여학생들은 너도나도 노트에 원태연 작가의 시를 옮겨 적고, 그림을 그리며 자신만의 시집을 만들어가곤 했는데,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풍부하게 해 주기도 했으며 풍부해진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기도 했다.
요즘 청소년들의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시집을 만나기가 참 어렵기에 그래서 더욱 <<그래도 괜찮아>><<악어에게 물린 날>>과 같은 청소년 시집의 출간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postfile/2/2011/05/25/23/jin9802_8079331964.jpg)
저자 이장근은 중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청소년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고 있기에 누구보다 청소년들의 생활 모습과 생각을 잘 알고 있으리라. 청소년들의 고민, 기쁨, 그들의 슬픔 등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데, 살얼음을 끼고 있었던 작가의 마음에 돌을 던져 준 사람이 바로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신만의 매력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이 시가 되었다는 작가는 메말라가는 청소년들에게, 힘겨워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물해주고 싶었던 듯 싶다. 이 시집을 통해서 사춘기 딸의 마음을 엿보며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도 이 시집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요즘 교육현실은 사춘기가 되어 풍부해진 감성이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여, 아이들이 점점 극단적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 시집은 그들의 마음을 다독일 수 있는 작품이 되어줄 듯 싶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어린 왕자」라는 책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얘기가 나온다
겉모습을 중시하는 어른들 눈에는
모자로 보이는
요즘 나는 보아뱀이다
나를 보고 문제 학생이라 한다
내가 삼킨 건 이렇다
가난이 지겹다며 집을 나간 엄마
지방에 내려가 일하시느라
한 달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빠
일주일째 밀린 알바 월급과
자꾸 떨어지는 성적
지지리도 말 안 듣는 남동생
아침에 지각 좀 했다고
수업 시간에 잠 좀 잤다고
바뀐 건 없다, 나는 나다
삼킨 게 소화가 잘 안 될 뿐이다. (본문 48,49p)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때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릴 때와는 다른 어른들의 시선과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힘겹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 아직 그들은 성장하지 못했는데, 어른들은 자꾸 그들에게 어른이 되라고 다그친다. 어른들의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추어 걷는 아이들은 모범생이 되고, 아직 어른이 되어는 과정이 버거운 아이들을 채찍질하고 쫓아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문제아로 취급하는 어른들의 평가가 이들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될까? 이 시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에게 빨리 어른이 되라고 다그쳤던 모진 엄마의 모습을 나는 발견했다. 나는 그것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은 절대 아니며, ’모자’가 ’정답’이라고 외치는 모난 어른이 되었나보다.
팔레트
선생님들 보세요
물감을 짜 놓은 팔레트
그게 우리라고요
머린 긴 색깔
치마 짧은 색깔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색깔
띄엄띄엄 학교에 오는 색깔
(중략)
이렇게 많은 색깔이 있는데
왜 만날 같은 색깔만 쓰시냐고요
우리는 단색 판화가 아니잖아요
피카소 그림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좀 자유로워지자고요 (본문 78,79p)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노래를 잘해서 가수가 되고픈 친구가 있고, 그림을 잘 그려서 화가가 되고 싶은 친구가 있을 것이고, 게임을 잘해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은 친구도 있을 것이며, 짧은 치마 긴 머리로 패션감각을 선보이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전부인냥 말을 한다. 그래야만 인생에서 성공한 것처럼.
그뿐인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만 관심을 갖는 유치한 어른들도 많다. 그들의 다양성,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개개인의 재능과 개성을 인정해줄 수는 없는걸까?
내 마음에도 악어가 문것처럼 이빨이 박힌 기분이 든다. 참 바보같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대와 달리 요즘 사회는 개개인의 재능과 개성을 중요시하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능력이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공부가 전부라는 오래된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자만이 정답이라고 외치는 바보같은 어른인 셈이다. 다행이도 이 시집을 통해 이런 부분들을 깨달아감으로써 나는 내 딸을 이해하는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아름다운 단어와 운율로 기록된 시가 아니라, 일상에서 쓰여지는 단어로 시를 기록했다. 청소년들의 일상의 모습과 고민 등을 일상의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그들과 호흡한다. 이런 묘사들이 청소년들에게 더욱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치장하고 은유적인 표현 등으로 그들의 마음을 에두르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저자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영화에 나오는 키팅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꽝꽝 얼어 버린 마음, 행복보다는 불행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학교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시’라고 생각한 저자는 그렇게 학생들에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악어에 물린 날>>은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박혀버린 악어 이빨 자국을 치유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사진출처: ’악어에게 물린 날’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