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슬픔 - 엉뚱발랄 과부 소피의 팍팍한 세상 건너기
롤리 윈스턴 지음, 송정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슬픔’과 ’좋음’이 함께 공존한다는 자체가 참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슬픔은 좌절, 아픔, 불행 등 부정적인 단어와 어울리는 것이지, 좋음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슬픈 일이 있을 때 혼자 삭히는 편인데, 이런 경우 슬픔은 꽤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사실과 슬픔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슬픔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울어도 보고, 아파도 하며 슬픔을 느끼며 슬픔과 대면했을 때 비로소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 있으므로 이를 ’좋은 슬픔’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친정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나는 소피와 같은 슬픔을 겪은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든든한 남편과 아이들이 있었기에 슬픔을 극복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헌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남편이 없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것조차도 암담하고 슬픈 일이 36살 소피에게 일어났다. 고르가테크 제약 회사의 홍보 담당자인 소피는 결혼 3년 만에 암의 하나인 호지킨병(악성 림프종)으로 남편 에단을 잃게 되었다. 
오랜 시간 혼자였다가 겨우 얻은 사랑이었고, 3년간 살면서 남편이라는 호칭에 겨우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결혼했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는데, 소피는 에단을 잃게 된 것이다. 슬픔을 치유하는 모임에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오히려 죽은 에단과의 추억을 떠올려야하는 일이 소피에게는 더 힘든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써 이겨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사실을 맨 처음으로 떠올리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겠죠." (본문 17p)

그러나 소피에게는 그런 아침이 찾아오리라고는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다. 에단의 어머니 마리온은 에단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에단의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려하며 힘들어하는 소피를 다잡아주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이미 당신의 커다란 습관은 깨졌으니까요." (본문 86p)

에단이 떠난 침대는 캘리포니아 킹 사이즈에서 항공모함 사이즈가 되어버렸고, 회사에서는 쉬기를 권유했으며, 소피는 슬픔으로 인한 우울감과 정말감까지 갖게 되었다. 이혼 후 아이를 키우며 혼자 살고 있는 친구 루스의 권유로 소피는 에단과 살던 집을 처분하고 시골 오레곤 주의 애쉬랜드로 이사를 하게 된다.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일을 시작하고, ’큰 형과 큰언니’ 모임에서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열세 살의 크리스털을 알게 되면서, 소피는 슬픔에서 벗어나 에단 없이 혼자 살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배우 드루와의 만남과 베이커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소피는 비로소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사람마다 슬픔을 극복해가는 방법은 다르다. 에단의 어머니 마리온은 에담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에단을 쉽게 정리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치매에 걸리고 말았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크리스털은 아버지의 부재와 엄마의 무관심을 자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었다.

슬픔이 마침내 그녀를 찾아내서 모든 것을 부정하도록, 심지어 부정하는 것도 부정하도록 만든 것만 같았다. (본문 329p)

정신과 의사를 찾아도, 슬픔을 치유하는 모임을 나간다고 해도, 프랠린 앤드 크림 아이스크림을 해치워도 위로를 받지 못했던 소피는, 슬픔을 억누른 채 자해를 통해서 스스로를 확인해나가는 크리스털을 위로하면서 스스로가 위로받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일정 기간 슬픔을 겪고 나면 그 슬픔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만지고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 즉 슬픔의 대상과 대면하는 일은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일정 기간 슬픔을 겪고 나면 그 슬픔도 끝나게 된다는 말은 그릇된 통념일 뿐입니다."
"우리는 일 년이 지난 뒤에도 슬픔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이 지나도 슬픔을 끝내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미쳐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기도 합니다." (본문 331p)

<<좋은 슬픔>>은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소피가 슬퍼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슬픔은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슬픈 일로 인해서 삶은 변화를 가져온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꿈꿀 때 비로소 슬픔은 ’좋은 슬픔’이 된다. 소피는 슬픔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마리온과는 다르게 슬픔을 겪게 된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PART 1,2,3에는 슬픔을 부정하고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타협한 뒤에 비로소 슬픔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 담겨져 있는데, 소피를 통해 신랄하게 보여준다. 굉장히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소피의 엉뚱한 상상이나 소피가 처한 상황 속에 유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소피를 더욱 불안하게 보여주는 듯 하여 슬픔 감정이 극대화 되는 듯 보인다.
540페이지가 넘는 상당히 두꺼운 책이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누구나 겪게 되는 ’슬픔’이 결코 삶의 절망이 아니라, 변화된 삶 속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힘을 주고 있기에 전반적인 내용이 어둡지 않았다. 책을 읽는 동안 친정 엄마를 잃었던 슬픔을 다시 꺼내들었다. 시간이 지나도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희미해질 뿐이며, 그 슬픔을 통해서 상대방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소피는 슬픔은 싸워서 이겨야하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과 억지로 잊으려고 하는 것이 슬픔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일러주고, 슬픔으로 인해 변화된 삶이 결코 절망적인 삶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서 새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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