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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산다
김윤덕 지음 / 푸른숲 / 2011년 1월
평점 :
결혼 전에는 이 남자와 살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는 단꿈에 빠져서 결혼을 했건만,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자마자 단꿈은 깨지고, 암담한 현실만 남았다. 결혼 전 나 혼자만의 출근 준비로도 바빴는데, 이제는 아침 식사 준비도 해야하고 출근 준비도 해야하는데다, 하루 종일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하고 돌아오면 저녁 준비도 해야했다. 처음에는 소꼽놀이 하는 것처럼 즐겁기만 하더니, 며칠 지내고보니 금새 힘이 부쳤다. 그뿐인가? 챙겨야할 시댁 행사는 왜이리 자주 돌아오는지....그러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현실’은 더 무겁게 다가왔고, 육아의 스트레스와 엄마가 되어야 하는 부담감 그리고 결코 표나지 않는 집안일 등으로 인해 결혼 생활은 더욱 지쳐갔다. 결혼 생활이 주는 달콤함을 기억하기보다는, 현실에서 주는 고단함에 주목하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생겼다.
결혼 생활이 1년, 2년, 3년.....흐르면서 현실에서 오는 행복함을 느끼는 법도 배우게 되고, 하나둘 보이는 남편의 단점에 눈 감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결혼 생활 14년이 되고나니, 두 아이가 커가면서 이제 결혼 생활의 고단함보다는 결혼 생활의 현실에서 주는 행복을 볼 줄 아는 수행(?)의 길에 접어들었다. ’여자’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아줌마’가 되고보니, 가끔은 애가 되어버리는 남편을 포옹할 줄도 알게 되고,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에 대한 연민으로 그들과 가까이 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아줌마’ 는 정말 예쁘지 않은 단어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단어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산다>>라는 제목을 보며 크게 공감했다. 얼마 전 ’그래그래’’맞아맞아’라는 맞장구를 쳐주기를 기대하며 남편에게 시시콜콜 회사 이야기를 하고 난 후 돌아온 건 남편의 ’분석’이었다. 결국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화성에서 온 남자는 금성에 사는 여자를 이해하는 법을 모른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문제 해결보다는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을 이해 못하는 남자들은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게다. 아줌마들의 수다에 혀를 내두르는 남자들은, 아내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법도 모르고 여자들의 수다를 이해할 줄도 모른다. 남편 상사를 같이 욕해주고, ’당신이 옳아’라고 해주는 아내의 남편 응원가를 남자들은 알고 있느냔 말이다. 직장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그리고 며느리고 살면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여자들의 열정과 억척스러움을 도통 알지 못하는 남자들은, 화장도 하지 않은 채 츄리닝 바지에,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내가 그저 미워보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줌마’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남편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걸까?
마흔 먹은 남편도 가끔은 이불 걷어차고 자는 저 개구쟁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애’라는 걸. 1년에 한 번은 목 놓아 스트레스를 분출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걸 육감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알았어. 잘못했다고. 그러니 이 닦고 잠이나 자." (본문 57p)
이 책은 사랑하고, 그로인해 상처받은 고단한 결혼 생활로 힘들고 외로운 아내들의 이야기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가정이나 회사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남편의 이야기, 그리고 아이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수록하여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맞아맞아’ 하며 공감하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한다.
’이런 방법이 있구나’하는 생각에 솔깃해지기도 하고, 잘못해 왔던 부분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남편과 아이, 시부모님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에 그들 입장을 헤아려 보게도 되었다.
여자들에게는 ’수다’라는 명약이 있다. 힘들고 지치고 화나는 일은 수다를 통해서 풀어내기도 하는데, 그 수다 속에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 남자들이 보기에는 무의미하게 들리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이야기 속에는 살아오면서 알게 된 노하우가 수록된다. 이 책 <<우리는 모두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산다>>는 바로 아줌마들의 명약인 ’수다’와 같은 존재의 책이다.
2007년 3월부터 2년 4개월간 장기 연재되었던 ’줌마병법은 기혼 여성과 남성 독자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칼럼은 바로 이 책의 모태가 되었다. 힘든 현실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줌마’들의 유쾌한 일상은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된다. 함께 웃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이야기들, 힘든 마음을 다독이는 이야기들로 인해 삶의 지혜를 배워나간다. 삶의 고단함은 상대방 때문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공동 책임이 주어진다. 내 삶이 힘든만큼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도 힘들어 한다는 것은 이해하고나니, 또 다른 행복이 보이는 듯 하다. 조금은 So Cool 하게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면, 결혼 생활에서 오는 현실이 주는 암담함보다는 달콤함을 더 기억하게 될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네. 왜 우리는 아이들이 곁에서 함께 웃고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하지 못하는가. (본문 137p)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인 나를 어떻게 추억할까. 적어도 무대뽀 잔소리꾼에 눈만 뜨면 "공부해라", "학원 가라" 소리를 입에 달았던 졸모(拙母)의 모습은 아니어야 할 텐데, 참말 걱정이다. 하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듯, 엄마의 성장판도 노력 여하에 따라 끊임없이 자라고 커나갈 테니 말이다. (본문 154p)
당신의 친정어머니 또한 시어머니입니다. 나의 시어머니 또한 누군가의 친정어머니겠지요. 인생사 역지사지입니다. (본문 190p)
목욕탕 가서 시어머니 등 한번 밀어드리면 그 쭈글쭈글 시든 몸매에서 연민이 왈칵 솟구치리니. 처음 한 번이 힘들다. 자주 부대끼고 옥신각신하고 그리고 화해하면서 진정한 소통은 이뤄진다. (본문 214p)
아이들은 시행 착오를 통해서 성장해나간다. 엄마의 역할, 아내의 역할, 며느리의 역할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시행 착오를 통해서 옳고 그름도 알아가게 되고, 그러면서 성장해나간다. 아이들에 대한 기대감을 조금 낮추고, 양쪽 어깨 위에 놓여진 무거운 책임감으로 짖눌려진 남편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모두 포기한 채 자식을 위해 살아왔던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한다면, 결혼 생활의 고단함은 덜어질 것이다. 웃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릴 뿐만 아니라, 유쾌함 속에서 진정한 삶의 지혜와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책을 읽는내내 즐거웠지만, 부부관계, 자녀관계, 시부모님과의 소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도 되었다. 유쾌한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