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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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이가 들면서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저 단순한 세월의 흐름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와 혜안을 가지고 있기에, 젊은이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잘 그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거나, 힘없고 나약한 그들의 모습을 흉보곤 한다. 우리가 곧잘 잊는 것은 또 있다. 우리도 머지않아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내가 태어난 70년대는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라는 캠페인이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잘 키운 딸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는 캠페인으로 한 가족 한 자녀 출산을 장려했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저출산 장려로 인한 출산률이 저조해지면서, 다시 다자녀 출산을 독려하고 있다. 출산률은 점점 낮아지고, 평균 수명은 높아지면서 사회는 커다란 문제를 안게 되었다. 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인구조절구역>>은 노인의 증가로 경제적 위기로 몰린 일본을 배경으로하여 현 사회가 안고 있는 노인문제를 풍자한 소설이다. 츠츠이 야스다카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머지 않은 미래, 노인의 급증으로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일본은,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노인 상호처형제도, 즉 ’실버 배틀’을 통해서 폭발적으로 증대한 노인 인구를 조절하고자 한다. 

"이 제도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바야흐로 폭발적으로 증대한 노인 인구를 조절하고, 젊은이 하나가 평균적으로 노인 일곱 명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경감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파산 직전의 국민연금제도를 유지시켜, 동시에 저출산 추세를 상대적으로 해소시키는 제도입니다." 

"나는 젊은 사람한테 신세 같은 거 안 지고 있어!"
"재산이 있다고."

"바로 그거죠! 그 재산을 노인이 계속 갖고 있는 것도 젊은 애들을 고생시키는 원인인 거예요. 말하자면 이 제도의 근본 사상은 노인이 노인인 것 그 자체가 죄라는 겁니다." (본문 36,37p)

한달 동안 시행되는 실버 배틀에서는 70세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죽고 죽이는 상황 속에서 최후의 남은 1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은 한 사람은 이후의 배틀을 면제받을 것이며, 배틀을 실시하고 있는 다른 지구의 배틀에 참가할 수 있는 멋진(?) 특전까지 주어지게 된다. 남자 22명, 여자 37명 총 59명을 대상으로 한 이 지구의 실버 배틀로 인해, 권총 가격은 폭등했고, 함께 바둑을 두며 지냈던 친구마저 죽여야만 한다.

"살해되기 싫어. 살해되기 싫어."
"살해되기 싫으면 죽여야지요. 죽이라고요. 아, 물론 자살이 허용되니까, 자살이라는 수단도 잊지 마시기를." (본문 39p)

77살의 구이치로는 한 동네에 사는 바둑 친구인 주조를 살해하고, 그의 며느리에게 "수고하셨어요."라는 인사를 받는다. 웃어야 하는건지, 울어야하는건지 모를 정도의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잔혹한 학살이 묘사되면서 실버 배틀에 대한 끔찍함을 보여준다. ’사람 살려!’ 하는 비명과 ’죽여주겠다’는 욕설이 잇달아 들리고, 죽음을 피하기 위한 그들만의 전쟁은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며 부부가 서로를 죽여야하는 안타까운 장면도 연출되었으며, 맨홀로 도망치며 노인 차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도 보여준다.

"왜 이런 제도가 생겼는지 당신, 아직 모르는 거예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서가 아닌가요? 내 말 잘 들으세요.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어서 나는 그 사람한테도 말하곤 하는데, 당신네처럼 곱게 늙은 할머니가 있는 집은 극소수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고집불통에, 방비, 히스테리, 병시증, 노망 때문에 몹시 난감해하고 있다고요. 우리 집도 그렇다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현재 어머니를 노인복지시설에 입주시킨 상황입니다만 우릴 어지나 괴롭히는지요.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보내라는 겁니다. (중략) 대두수의 가정에서는 이처럼 노인들 때문에 자신들의 생활이 파괴되고 있어요. 당신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나요?" (본문 220,221p)

오랜 세월동안 삶을 살아오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터득하게 된 노인들의 생활방식과 과학의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젊은이와의 생활 방식은 현저하게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다보면 서로 부딪히는 일은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여 고부갈등과 가족간의 불화가 야기되기도 한다. 그 뿐인가.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하는 경우 자식들에게는 경제적, 심리적인 부담감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하여, 노인 상호처형제도인 ’실버 배틀’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실버 배틀로 죽음이 현실이 될 악몽 속에서 불안과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면서, 팽팽한 긴장감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노인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1년 전 즈음 <잉여인간>이라는 소설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젊음을 되찾을 수 있게 되고 불로장생하게 되자, 인구의 증가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면서, 출산을 법적으로 제한하게 되었다. 혹여 출산되는 아이가 있다면 ’잉여인간’으로 취급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끔찍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내용이었다. 반대로 <<인구조절구역>>은 노인을 ’잉여인간’으로 취급하여 실버 배틀로 서로를 죽임으로써 노인 급증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정부의 부조리한 정책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고령화 시대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문제로 대두되지만, 현 사회에서는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심각해진 고령화 문제로 가상이 현실화되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때문에 이 책을 그저 상상력이 뛰어난 저자의 스릴넘치는 블랙 코미디 소설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면,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결국 노인인 것이 죄가 되는 세상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으리라. 

노인들끼리 실버 배틀을 벌여 결국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지만, 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너무도 크다. ’노인’에 대한 문제를 유머와 스릴로 풍자한 블랙 코미디 소설인 <<인구조절구역>>은 웃기에는 너무 슬픈 현실을 담아내고 있으며, 이 작가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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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from Somewhere of Alice 2011-05-12 22:33 
    오래 전, 일본 영화 '배틀 로얄'을 본 기억이 있다. 친구였던소년, 소녀들이 한 섬 안에 갇혀 서로를 죽이고 죽인 후, 단 한 사람만 살아남을 "특권"이 주어지는 영화. 주인공들은 아름답고, 예쁘고 멋지지만, 그들을 한 섬안에 가둬놓는 이유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어른들이, 기성세대가 청소년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개선의 이유가 없어보인다는 이유로 그들을 서로를 죽이는 싸움에 몰아넣는다. 우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 인간의 연민조차 사치인 싸움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