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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0
야마다 에이미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무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쥐고 세상에 태어나는 듯 하다. 살아가는 동안 환경이나 능력에 따라 ’무언가’는 달라지지만, 욕망은 더욱 커진다. 욕망이 과욕이 되면서 자신을 학대하는 결과도 나오곤 하지만, 욕망이 있지 아니할 경우 삶에 대한 목표나 애착 또한 없을 것이다.
’학문(學問)’이라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욕망도 배움을 통해서 키우고, 절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을 공부합니다! " 라는 책 표지의 글처럼 욕망과 학문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문 1,2,3,4는 주인공들의 성장 주기에 맞추어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중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으로 나뉘고 있는데, 4명의 주인공들은 각각 다른 욕망을 추구하고 있다. 이야기는 성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 히토미가 지배욕을 가진 신타, 먹는 욕망을 가진 식욕의 무료, 자고 싶은 욕망 수면욕을 가진 치호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기록된다. 덧붙히자면, 무료를 좋아하는 모토코는 지식욕을 상징하는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4부의 시작은 각 인물들의 죽음에 관한 소식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죽음을 대면하면서 바라보게 되는 이들의 욕망은 살아가면서 배우게 되는 욕망에 대한 즐거움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보인다.
부친의 전근으로 미루마시로 이주하게 된 히토미는 집 뒤에 있는 동산을 탐험하다 신타를 만나게 되는데, 신타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끄는 능력이 있었고, 히토미는 신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툭하면 잠을 자는 치호와 먹는 것에 열중하는 무료를 만나면서 이들은 곧 친한 사이가 된다.
"너희 둘은 왜 그렇게 먹는 거나 자는 걸 좋아하니?"
"그냥 먹고 싶어서 먹을 분이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나도 몰라. 그냥 먹을 뿐이지." (본문 27p)
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히토미는 낮은 쇠파이프 울타리에 신타와 걸터 앉게 된 어느 날, 쇠파이프 위를 어기적거려며 신타 옆으로 이동하다 파이프에 문질러진 샅에서 미지근한 물이 스며 나온 것을 처음 느끼며 성적인 욕망을 알게 된다. 하지만 7살인 히토미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 한다. 그저 생전 처음 느낀 이상한 감각이 궁금할 뿐이었고, 그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어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다 배를 바닥에 바짝 밀착시켰을 때 그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하고, 그 후로 하루의 의식처럼 매일 열중할 뿐이었다. 엄마 아빠의 섹스 장면을 목격한 히토미는 부부 생활의 행복이 아니라, 아빠가 엄마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할 만큼 성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어린 아이었을 뿐이었다.
초등 5학년에 처음 성에 대해서 알게 되지만, 히토미는 자신의 행위가 성적인 욕망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알지 못했고, 중학 2학년이 되면서 성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성장 과정을 통해서 히토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적인 욕망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게 되고, 성장해간다.
어린 소녀가 성적인 느낌을 알게 되고, 호기심을 갖게 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은 흔하지 않다. 대부분은 소년을 통해서 보여지는 성적인 호기심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들의 성적인 욕망에 대해 질책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여전히 여성들의 성에 대해서는 곱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정서로 바라볼 때 이 책은 굉장히 획기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너희 네 명은 사이가 좋아서 붙어 다니는 건 아닌 것 같아. 뭐랄까, 강력한 존재에 끌려서 모여든 사람들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보이거든." (본문 150p)
지식욕을 보여주는 모토코는 이들을 보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지배욕, 성욕, 수면욕, 식욕 네 가지의 욕망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네 가지의 욕망을 모두 가지고 있다. 4명의 친구들의 모습은 바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한 모습일 것이다. 이 책은 히토미와 신타가 성욕과 지배욕을 갖게 된 원인과 그 욕망이 성장해가는 과정은 잘 담겨져 있으나, 수면욕과 식욕을 가진 무료와 치호에 대한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은 듯 하여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허나 조금 깊이 생각해본다면, 식욕과 수면욕은 배움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깝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가진 욕망은 배움을 통해서 성장한다. 히토미가 처음 느낀 묘한 느낌이 성적인 욕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배움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꿈’을 꾼다.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은 배움이라는 과정이 있을 때 실현 가능해진다.
저자가 부고를 각 단락의 첫 부분으로 올려 놓은 것은, 죽음은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욕망을 채워가는 과정에는 ’학문’이 필수요소로 작용된다. 이에 배움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복한 과정이 아닐까.
"나는 지금 당장이 중요해. 지금 갖고 싶은 것을 차지하면 돼. 왜냐하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잖아?" (본문 23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