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때문에 일기 쓰는 여자 - 내 인생 최악의 날들의 기록
로빈 하딩 지음, 서현정 옮김 / 민음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순간들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문득 오래전 최악의 순간이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젓게 된다. 헌데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은 순간들을 떠올려 일기를 쓰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상처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상처와 대면하는 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일기를 쓰는 동안, 최악의 날들과 마주하면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겠다.

<<남자 때문에 일기쓰는 여자>>는 심리 치료사의 아이디어로 남자 때문에 겪은 인생 최악의 순간들을 고백하는 일기를 써야 하는 서른 한살 케리의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현재의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사이비 연애 상태에 매달리게 만든 과거 남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기록’이라는 꽤 거창한 표현이지만, ’각자의 감정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라는 핑계로 떨어져 있자는 제안을 한 남자친구 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기에 썩 괜찮은 방법인 듯 싶다.
기가 막힐 정도로 잘생겼고, 능력도 있고 섹시하기까지 한 샘에 비해, 케리 자신은 그렇지 않은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든 부정적이고 자기 혐오적인 케리의 감정의 밑바닥을 파헤쳐 보기 위한 심리 치료사의 권유로 케리는 일기를 써내려간다.

페리스 앤드 섀넌 광고 회사에 다니는 케리는 직장에서 얄미운 상사에게 시달리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람둥이 동거남이었던 샘이 잠시 떨어져 있자고 제안한 후에도 샘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 조건을 달지 않은 섹스를 한다는 점이다. 
어느 하나 잘난 것 없는 케리가 잘 생기고 능력있는 샘을 놓치고 싶지 않지 않은 마음이 가장 크지만, 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보면, 케리는 우유부단하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전혀 없어 보인다.
허나, 케리의 굴욕적인 순간들을 적은 일기를 들여다보자니, 샘에 대한 케리의 행동들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남자들에게 상처 입고, 헤어져야 했던 순간들은 여자로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허나 이런 일들이 모두 케리의 잘 못 때문만은 아니였으며, 케리는 남자친구들과 더욱 돈독해지고 싶은 마음에 생겨난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샘과의 이별 후에 케리는 회사 상사인 데이브와 자기 발전을 위해 자원 봉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닉과 인연을 맺게 되는 한편, 샘과의 재회로 그동안의 굴욕적인 연애사에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당연히 나는 우리 사이의 모든 문제가 내 탓이라고만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것이 분명하므로 절대 엄마한테는 이 생각에 대해 묻지 않을 작정이다.) 그래서 ’잘생기고 말도 못 할 정도로 성공한 부동산 개발 업자의 약혼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를 바꾸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하지만 그 결과 나는 자격지심에 질투심만 가득 차 늘 불안에 떠는 여자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배웠다. 남자 때문에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춰야 한다면 그 남자는 자신의 참된 짝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 472p)

케리는 ’최악을 순간을 고백하는 일기’를 써가면서 사랑에 관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 직장 생활, 늘 꼬이기만 하는 남자 친구들과의 문제에서 케리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황을 보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일기를 쓰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은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화나고, 슬펐던 일을 다시금 되돌아보면서 내 행동과 생각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법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일기를 써 보라는 심리치료사의 제안으로 자존감 없었던 케리를 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서른 한살의 케리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일에 대해 전혀 자신감 없던 여성의 모습이었지만, 상처와 대면함으로써 자신의 자존감을 되찾고 당당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생은 자신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최악에서 최고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케리는 보여준다. 칙릿 소설을 통해서 독자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바로 이것이다. 자신만의 자존감과 당당함을 되찾는 것.
케리는 그것을 분명히 보여주었고,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안함으로써 자신만의 매력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케리의 엉뚱함이 묻어나는 에피소드로 쉽게 읽어내려 갈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 속에서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인생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찾게 된 행운이 있었기에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최악의 순간으로도 최고의 순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나는 케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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