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의 아버지 푸른도서관 43
최유정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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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뭉클하게 하는 진한 감동이 책을 읽은 후에도 짙게 남아있다. 어머니라는 이름과 달리, 아버지는 항상 무뚝뚝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내색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누구보다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끔찍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커가는 과정에서 아버지와의 크고 작은 마칠로 인해 그 사랑을 미처 느끼지 못하지만, 철이 든 후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비로소 깨닫는다. 책을 읽는동안 친정 아버지를 떠올렸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제대로 건네주지 않으셨던 아버지였지만,  나이가 든 후에야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그 진한 사랑을 연수가 깨달아가는 과정이 공감을 일으키면서 내게 벅찬 감동으로 전해졌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맡겨진 연수는 자신을 찾으러 올 아버지를 기다렸지만 끝내 아버지는 오지 않았고, 연수는 고아원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후 자신을 후원해주는 위탁가정에서 3년을 지내게 되었지만, 연수는 행방불명이라는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온전한 입양아가 아닌, 동거인으로서 살아가야만 했다.
연수는 해외 여행에서 온전한 입양아가 아닌 탓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연수 때문에 여행을 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운 동생 수아는 엄마를 재촉하고, 엄마는 수아 채근에 못 이겨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아니요, 동거인이거든요, 법적 대리인은........" (본문 8p)
자신이 있는 앞에서 버젓이 통화를 하는 엄마, 엄마를 채근하는 수아가 연수는 못마땅하다.
순간 너무 비참해진 연수는 자신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아버지, 자신을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 아버지를 찾아 친권포기각서를 받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어린시절 가족이 함께였던 예전 동네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연수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하나둘 끄집어냈다. 엄마가 죽고 나자 아버지가 일하러 가서 돌아오지 않는 무서운 밤을 혼자 견뎌 내야했던 일, 아버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같이 가자고 조르던 일이 떠올랐다.
몇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아버지와 처음으로 여행을 하고, 모처럼 자장면을 사 주었던 그날, ’행복원’이라고 쓰여진 건물 앞에  자신을 버리고 갔던 일까지. 곧 데리러 온다는 아버지는 하루가 열흘이 되고, 열흘이 모여 다시 1년이 되어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연수는 예전 동네에서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김씨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엄마의 병원비로 막대한 빚을 지고 사채없자에게 쫓겨다녀야 했던 아버지의 불우했던 삶을 전해듣는다. 
하지만 연수는 빚이 많다고 해서 자식을 버렸던 아버지를, 사는 게 구덩이고 늪이라고 해서 자식을 버렸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은 연수의 묵혀두었던 감정을 터트렸다.

김씨 아저씨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만난 아줌마는 아버지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전해주었고, 치매로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와 마주하게 된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처음으로 만들어준 장난감 새를 꼬옥 쥐고 있는 아버지, 엄마와 연수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찍었던 가족사진을 애지중지하며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연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연수는 아버지가 자신을 고아원에 맡기고 받아야 할 고통과 번뇌가 얼마나 컸음을 짐작하게 된다.

널 기다리고 있다. 모두가. (본문 175p)

연수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새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4년 전 아빠가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아빠가 연수를 후원하고 함께 살게 된 과정을 듣게되면서 연수는 불편했던 진실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이제 연수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대신, "연수, 내 아들. 우리 아들, 연수 거란 말이야." 하며 장난감을 꼬옥 쥔 아버지의 목소리를 기억하고자 한다. 자신을 돌봐주는 후원자에게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했던 연수는 처음엔 아버지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두려웠다. 혹여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면 가족들이 자신을 밀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은 마음이 연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면서 연수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고,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동거인이 아닌, 아들로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들이 있으며, 비록 자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였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저렇게 마누라, 자식새끼가 있으니 살지. 그게 힘이지, 힘."
사는 힘. 손잡아 줄 사람. 마누라와 자식새끼. 아줌마  혼잣말이 사방 벽에 부딪혔다가 내게 날아왔다.
문득 아버지는 그동안 혼자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내가 혼자였듯 아버지도 혼자였을 테고, 내가 힘들었듯 아버지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을 텐데.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본문 143p)

저자 최유정은 민지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고 했다. 미혼모 쉼터에서 그들을 만나게 되면서, 저자는 민지에게 불편한 진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연수의 친구 명후처럼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제 안의 분노와 부끄러움을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연수는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입양아, 가족, 정체성에 대한 어렵고 무거운 이야기였지만, 저자는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기억조차 잃은 아버지가 어린시절 연수의 모습을 기억하고, 연수에게 만들어주었던 장난감 새와 가족 사진을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연수에 대한 죄책감, 미안함, 사랑이 얼마나 진하고 깊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남루하고 볼품없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연수에게는 오래전 든든했던 아버지의 모습처럼 연수를 지탱하게 해주리라.
책을 읽은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이 따뜻하고 가슴벅찬 감동이 내 가슴에 오랫동안 머물러 주기를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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