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과 표지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달달한 느낌을 주는 로맨스를 기대하며 책을 읽기 시작한 후의 그 당황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이 굉장한 오묘함과 난해함을 가진 내용을 가진 책이라 솔직히 중간에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 난관을 극복(?)하고 읽기시작하자,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난해함이 오히려 독특함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기가 어려웠던 것보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굉장히 오묘하고 난해한 일이다. 온전한 사랑이 쉽지 않은만큼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이야기 역시 쉽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사랑이 주는 달콤한 속삭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면서 연애 과정 속의 미묘한 심미를 다분히 철학적으로 담아냈다. 소설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전기문이라 칭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울릴 법한 책이다. 

"너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이기주의자, 자기 귓불보다 멀리 있는 어떤 것에도 공감을 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나는 너무 긴 시간을 낭비했어........" (본문 11,12p)

주인공인 ’나’는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는 여자친구의 비난이 담긴 편지를 받은 후 우연히 서점에서 보게  된 "공감하다"라는 말에 이끌리게 된다. 자신에게 매우 부족하다고 하는 ’공감’이 전기 작가라는 맥락으로 이어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때 드러내는 무관심,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그 해로운 무관심에서 자신이 해야하는 역할’(본문 14p)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사벨이라는 여자에 대한 전기를 쓰기 시작한다. 진지한 전기의 경우에는 저자가 없고, 그냥 주인공이 되는 인물만 있을 뿐이며, 전기 작가가 스스로 개입하여 판단을 하는 경우도 드물고, 판단을 한다 해도 편견에 사로잡힌 감정적인 외침이라기보다는 자로 잰 듯한 성숙한 의견만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전기의 주인공인 이사벨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전기 작가 ’나’는 그렇게 전기의 주인공 이사벨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나’는 이사벨의 어린시절부터 그녀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에 관한 전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관심이 시작되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녀에 관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갈등을 겪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삶과 습관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여기서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 여자친구가 ’나’에게 했던 비난과 ’나’를 이끌리게 했던 "공감하다"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알랭 드 보통은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너를 사랑한다는 건" 바로 ’소통’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정의를 내려주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본문 13p)

사랑은 다분히 이기적인 성향을 포함하고 있다.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우선 순위에 놓고 시작하기 때문에, 전기 작가처럼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포함한 주관적인 생각으로 상대방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는 전기 작가의 입장에서 이사벨을 알아가고 이해하려고 했으나, 사랑을 하게 되면서 전기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객관적인 입장보다는 감정을 내포하게 되었기에 갈등을 겪게 되었던 게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은 ’감정생활’이니만큼 논리적일 수 없기에 사랑은 갈등과 함께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너를 사랑한다는 건>>에서 알랭 드 보통은 연애 과정 속에서 우리가 느끼곤 하는 미묘한 심리를 철학적인 느낌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을 완벽히 알고 싶은 충동’이 ’다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고 싶은 충동’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사벨을 통해서 남녀간의 차이와 타인에 대해 알고자 하였으나, 다른 사람을 완벽히 안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나’가 타인에 대해 완벽히 알고자 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연애는 끝이 나고 만다. 
"공감하다"에서 시작된 ’나’의 사랑은 상대방을 ’앎’과는 다르다는 것,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신뢰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이사벨의 사진이 수록된 것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자전적인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는데, 궁금한 마음에 알아보니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쓰여진 글이라고 한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과 누군가를 사랑하다는 것을 전기 작가라는 시점에서 풀어낸 정말 독특한 사랑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초반부 읽기 힘들었던 책이었던 만큼 이 책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내 독서편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랑과 철학을 오묘하게 (사실 좀 난해하게...) 접목시켜 풀어낸 독특한 구성은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였기에 매혹적이었다고 감히 말해본다. 그동안은 사랑의 기쁨과 아픔이라는 부분에 감정을 실었기에 그동안 사랑에 대한 나의 내면과 타인에 대한 마음을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었는데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랑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겠다. 이 소설은 한 번 읽은 것으로 다 이해했다고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나’가 이사벨을 만나는 과정에서 애정을 느끼게 된 것처럼, 나 역시도 이 소설은 더 읽어봤을 때 온전히 이 책에 대한 느낌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 느낌을 서술하자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사진출처: ’너를 사랑한다는 건’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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