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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다.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되게 되는데, 첫 인연은 바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아빠와 엄마였다. 그 후 형제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면서 관계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지면서 삶은 더 즐거워지고, 더 행복해지고 더 살만해진다. 인연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건조하고 무의미했을까? 사회는 혼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기에 ’인연’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숨통일지도 모른다.
불과 몇 년전만해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소설(특히 로맨스 소설)이었는데, 나이가 한살 두살 들어가면서 에세이라는 장르가 더 끌리고 좋아진다. 소설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주를 이루지만, 에세이는 작가의 진심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나와 닮은 모습에 공감을 느끼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작가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소설 최인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최인호를 만나게 되면서 이는 비록 옷깃이 스치지 않았지만 소중한 또 하나의 인연이 맺어진 것은 아닌가 싶다.
에세이는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맺게되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닌, 작가를 만나게 되는 에세이는 비록 작가가 나를 알지 못할지라도, 나는 작가의 마음을 엿보면서 그를 알게 되고, 그와 공감하고 그에게 배우고 그를 통해 생각함으로써 나와 소통할 수 있는 또하나의 인연이 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에세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아닐까.
작가 최인호는 자신을 인연에 대해서 서툴게 배우고 서툴게 익숙해지는 사람이라 말한다. 사람과의 인연, 풍경과의 인연, 사물이나 시간과의 인연과 마주하고 상대하는 일은 서툴고 어리숙했던 그는 헤어지거나 이별하기를 싫어하는 성격탓에 오래된 옷, 오래된 물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데, 내 손때가 묻은 물건이 집안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리는 것에 대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것이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늙어가면 추억의 속도도 부푼다는 말처럼 손때 묻은 그 물건에 담겨진 추억과의 헤어짐에 익숙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모과 나무에 대한 인연, 배우 안성기와 배창호 감독과의 인연, 자신이 쓴 글을 소중히 여기던 독자와의 인연, 버려진 화분과의 인연 그리고 돌아가신 황순원 작가와의 인연 등 많은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사람과 자연 그리고 물건과의 인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서 그 인연에게서 느꼈던 또 하나의 행복, 즐거움과 새로움을 추억하고 있다. 저자가 그러하듯, 개개인에 있어 가장 큰 인연은 바로 부모님, 배우자 그리고 자식일게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과 누나 그리고 아내와의 추억을 함께 들여다보며, 나는 문득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내 가족과의 소중한 인연에 대해 무심하지 않았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지금까지 나와 함께했던 수많은 인연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나를 현재에 있기에 수많은 인연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소중함에 잠시 내 삶을 되돌아 잊었던 인연을 기억을 더듬어 되짚어 본다.
우리는 흔히 ’빽’이라고 말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인연을 원하곤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든든한 ’빽’을 통해서 성패의 좌우가 결정되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을까?......라는 자조적인 푸념에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인연에 대한 소중함은 간과하고 있다는 내포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이미 우리 인생의 인연들을 숱하게 만나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 사람이 우리 생에 정말 중요한 인연이란 걸 모르고 지나쳐왔을 뿐." 이라고.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라 따로 없다. 우리가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모든 인연은 그 무게와 질감, 부피와 색채가 변할 것이다. 운명이 그러하듯 인연 또한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본문 52p)
저자는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용기라고 말한다. 나는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혹 누군가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연을 기다리며 나와의 인연은 아주 작은 인연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소중한 인연이 되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그 누군가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사랑할 때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완두콩 꽃과 딸기 꽃은 수수해서 눈에 띄지는 않으나 때가 지나 꽃의 영광이 시들고 나면 우리에게 그 열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 열매를 맺는 꽃들은 그 어떤 꽃이든 겸손하고 수수하다. 아아, 저 완두콩을 닮을 수만 있다면. 내가, 네가, 우리 집 가족들이, 내 이웃들이, 모든 사람들이 장미를 닮으려 하지 아니하고 하찮은 완두콩 꽃을 닮을 수 있다면. (본문 312p)
좋은 인연이란 바로 완두콩 꽃과 같은 것은 아닐지 싶다. 내가 원하는 화려한 ’빽’을 지닌 인연이 아니였을지라도, 내가 만난 인연들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내 삶을 지탱해주었고, 나도 모르게 내 인생에 전환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 인연들은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았으나, 완두콩과 딸기처럼 내 삶을 이끌어주었던 소중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화려한 장미는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완두콩 콩처럼 그들의 삶에 좋은 추억을 줄 수 있는 인연이 되고자 한다. 저자 최인호는 <<인연>>을 통해서 다른 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용기를 내게 주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이란 말인가.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
지금 까닭 없이 울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웃고 있다.
지금 까닭 없이 웃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걷고 있다.
지금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향해 오고 있다.
지금 세상의 어디에선가 누군가 주고 있다.
지금 까닭 없이 죽고 있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본문 324p)
우리는 홀로 살아가고 있지만 정녕 혼자가 아니라고 릴케는 ’엄숙한 시간’이란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있다. 이 책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이 시를 통해서 나는 나를 위해서 울고 웃어줄 내 소중한 인연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나도 기꺼이 그들을 위해서 울고 웃어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용기를 배웠노라고....말하고 싶다.
(사진출처: ’최인호의 인연’ 본문과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