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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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살, 그들은 연우의 엄마 말처럼 아직 미완성품 기계이다. 오작동을 일으킬지도 모르고, 사고가 생기면 혼자 해결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고 사회적으로는 무능한....청소년기는 그렇게 미완성단계이다.
이 책을 읽고나니 ’소년’이라는 단어가 참 슬프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소년을 위로해달라는 책 제목이 무척이나 어울리게 들리는 것은.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겨울. 세 계절이 다시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여 은행잎이 다시 무성한 초록으로 덮여있다고 해도, 연우가 겪은 일은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 연우는 지금껏 같은 세계에 머물렀었지만, 지난 여름,가을,겨울동안 다른 세계에 머문 느낌이다. 다시 지금까지의 세계로 돌아온다고 해도 연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 것이다. 연우는 이제 막 소년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슬플 때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을게. (본문 19p)

지금 나는 연우 옆에서 함께 슬픔을 견디어주려고 한다. 연우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을, 아니 열 일곱살의 소년들을 위로하려 한다.

여름 방학, 엄마와 연우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고, 연우는 학교를 배정받기 위해 전학추첨관리교에 갔다가 ’독고태수’를 만나게 된다. 태수가 붙혀준 ’심드렁’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연우와 달리 태수는 걸렁껄렁했고, 착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지 세 시간쯤 된 조폭 심부름꾼 같이 보여 연우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태수가 건네 준 MP3에서 처음 듣게 된 G-그리핀의 힙합을 듣는 순간 연우는 가슴이 뛰는 전율을 느꼈고, 곧바로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시작되었다. 
연우는 새로운 방에 걸려진 거울을 바라보다 전에 살던 같은 또래의 남학생이 그려놓은 날개 그림을 발견한다. 애써 지운 흔적을 쫓아 연우는 날개를 그려나간다. 마치 거울 속에 날개를 단 연우가 비추어지면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연우는 이사한 첫날 자신의 방을 쳐다보던 채영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늘 생각이 많은 연우와 달리 쉽게 채영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태수 덕분에 채영와 가까워진다.

연우와 태수, 그리고 채영은 함께 여름,가을을 보낸다. 채영을 통해서 첫사랑의 알싸한 느낌을 갖게 된 연우는 채영에게 자신은 날개를 그려놓았던 방의 전 주인이었던 선배 민기훈의 그림자였다는 생각에 채영에게 조금씩 멀어지려한다.
세 명의 아이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 사고를 만드는 태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늘 혼자이지만 자신의 소신을 표현할 줄 아는 채영 그리고 생각이 많은데다 무슨 일이든 ’별로’’대충’이라는 말로 심드렁하게 표현하는 연우. 그리고 전혀 다른 이들 가족의 모습.
엄마라는 위치때문일까? 이들 가족의 모습에 좀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뒤에서는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 권위적인 아빠로 인해서 뭐든지 아빠 말대로 해야하는 연우네 집과 고급 양식당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안락하고 질서가 잡혀있지만, 정해진 행동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태수네 집 그리고 아빠 엄마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연우네 집.
옷 칼럼리스트인 40대의 엄마는 8살이나 어린 애인과 사귀고 있고, 생활이 불규칙적이다. 술에 취하면 연우를 앉혀놓고 푸념을 하듯 인생과 사랑에 대해 늘어놓는 연우네 엄마. 누가봐도 정상적이지 못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 ’정상’의 구분은 누가 정했을까?
태수도 말했지만, 삐뚤어질 법한 가정환경이지만 연우는 그렇지 않다. 엄마보다는 ’신민아씨’라 부르는 연우는 엄마와 스스럼없는 데다가 엄마 역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난 뒤라 연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엄마와 나 둘 사이에는 필요 없지만 남의 눈에 비쳐질 때를 대비해서 갖춰야만 하는 것들이 따로 있는 건가. 하지만 가족사진만 해도 그렇다. 가족 구성에서부터 어차피 우리는 남들과 같을 수는 없다.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것, 그건 오른쪽이 옳은 쪽이라 생각하는 오른손잡이들의 착오라던데, (본문 306p)

채영에 대한 연우의 마음, 연우에 대한 채영의 마음을 잘 아는 태수는 무면허로 채영을 태우고 여행을 떠난 연우를 찾아가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 태수의 죽음.....세상은 늘 태수를 오해하고 있었다. 껄렁껄렁한 폼새와 미국유학에서 사고를 치고 돌아왔다는 태수의 꼬리표가 태수를 오해하고, 태수의 죽음조차 오해한다. ’요즘 애들이란....’이라는 말로 청소년들의 겉모습을 보고, 그 마음속까지 오해하는 것처럼.

세 계절동안 연우는 첫사랑의 설레임을 알았고, 태수와의 우정을 배웠고, 첫사랑의 아픔도 겪었으며, 우정을 나눈 친구의 죽음을 겪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은행나무는 무성한 푸른 은행잎을 새로이 싹트우게 되었지만, 연우는 전과 같은 봄을 맞이하지는 못했다. MP3를 통해 듣던 G-그리핀의 음악을 연우는 공연장에 와서 듣고 있다. 그런 무수히 많은 감정을 겪고 견디어 내면서 연우는 봄이 온것처럼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생각될 정도로 예전의 내 행동이나 심정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만한 일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무엇이 그렇게 아쉽고 안타까웠는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얼마 안 가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 지금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봄눈에 묻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간이 다가왔지. 눈앞이 흐려질 만큼 한꺼번에 눈이 퍼붓는다. 봄눈이랑 아직 남은 지난겨울의 눈이거나 아니면 너무나 일찍 와버린 아직은 낯선 올 겨울의 눈이군. (본문 482p)

성장이란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각하는 거야. 자신이 위치한 좌표를 읽게 되면 그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지. 성숙이란 일종의 균형 잡기야. (본문 340p)

어른이란 무엇일까? 사회적 기준에 맞는 조건을 하나씩 하나씩 갖춰나가는 게 인생인걸까? 결국 채영의 아버지처럼 마음에 들지도 않고 잘 맞지도 않는, 누군가가 입혀준 옷을 입어야하는 것처럼...?
자신의 좌표를 읽는 것이 성장이라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옷과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과 같은 말일 것이다.
아버지의 요구대로 영재 학원을 다니면서 점차 소외되어버린 채영이 다른 옷을 입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꿈’ 즉, 삶의 지표를 찾아 가는 성장과정이라 할 수 있으리라.

엄마를 향한, 혹은 세상을 향해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많은 생각을 하는 연우의 독백이 책 속에서 줄곧 이어진다. 연우는 평범한 우리네 청소년의 모습을 담고 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것을 잘하는 것도 아닌, 그저 타인에 묻어가며 살아가고픈, 지극히 평범하고 싶은 소년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은, 가족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성취욕구가 강한 맹렬 엄마들로 인해 아들을 약하게 만드는 경향이 생기면서 사커 맘, 헬기 맘이란 말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열 일곱살, 이제는 자신에게 맞는 옷을 스스로 찾아서 입을 때다. 지금 그들에게 가족이란 연우 엄마가 말하는 방목의 기술만이 필요하다.

한 소년을 통해서 열 일곱살의 소년들이 모습을 엿본다. 다양한 감정을 가진 질풍노도의 시기의 그들이 처음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해가는 방법을 연우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는 엄마인 나에게는 책 속에 등장하는 세 가족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서 가족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시스템은 과연 무엇인가....혹은 나는 태수의 엄마처럼 착실한 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 모범생은 아니였을까? 를 심도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모범생들이 좀 그렇거든요. 열심히 하긴 하는데 늘 불안하고, 왜 만족이 안 되는지 자기도 잘 몰라요. 칭찬은 듣지만 재미 하나도 없고요. 그리고, 자기가 옳다고만 생각하니까 남 이해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저희 엄마도 그래요. 반장 스타일은 그게 좀 문제 같아요. 
-그래도 누군가는 재미없는 반장을 해야 하잖아.
-역할이란 게 있으니까. 아무도 그 역할을 안 하면 시스템이 안 굴러가거든.
-하지만 시스템이 틀렸을지도 모르잖아요.
-대부분 틀려 있긴 하지. (본문 416,4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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