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하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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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 연재된 작품이라는 것을 책을 본 후에야 알았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정보 하나없이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책의 표지를 통해서 작품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곤 하는데, 책 표지와는 정말 다른 결론을 내고 있는 반전이 있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최근 자주 읽게되었던 ’기욤 뮈소’의 여러 작품에서 작가는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상처와 대면했을 때 비로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강조하고 있는데 <그녀에 대하여>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 역시 상처 가득한 한 소녀가 치유해 가는 과정을 담아냈지만, 기욤 뮈소와는 사뭇 다른 전개로 아니,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로 치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소설 속에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장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 트라우마는 성격, 사랑, 일 등 많은 면에서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가족을 통해 얻은 트라우마는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되는데,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가족의 사랑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가족과 소통의 물꼬를 틀면서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상처와 대면하고 극복하면서 가족을 하나로 묶게 되는 경우를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종종 접하게 된다.
허나 일생을 좌우하는 큰 트라우마를 남긴 가족이 모두 죽고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하느님, 오늘 밤 잘 곳을 마련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 목숨을 잇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본문 48,49p)

혼자가 된 후로, 잠든기 전 이런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는 유미코는, 아무튼 살아 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살아간다. 이렇게 사는 것이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을 가지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 함께 소꼽놀이를 하던 사촌 쇼이치가 십몇년이 흐른 뒤 이모의 죽음과 유언을 알리려 유미코를 찾아오게 된다. 

"네가 어린 시절의,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쇼이치에게 도움을 받으렴.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친부모가 건 저주를 푸는 것은 쉽지 않단다. (중략)
너의 혼을 네가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 (본문 24,25p)

이모의 알 수 없는 유언이지만, 왠지 흥미로움에 유미코는 쇼이치를 따라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과거로의 동행을 시작한다.
엄마와 이모는 쌍둥이였고, 마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공인된 백마녀가 된 할머니로부터 상처를 받은 두 소녀는 클리닉에서 상당 기간 재활 치료를 받으며 살아왔고, 쌍둥이였지만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힘을 얻는 일에 밖으로 사용했던 엄마와 꾹 억누르면서 안족 세계를 키워 나갔던 이모가 꾸렸던 각각의 가족은 위태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유미코와 모든 것에 확고한 토대가 있는 쇼이치라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두 사람을 만들어내었다.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이었던 유미코는 쇼이치와 과거 사건이 있던 집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비록 큰 상처를 받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하면서 누군가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선명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다가오면서 유미코는 상처만 남았다고 생각한 인생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네가 찾아와 준 데다, 다소나마 마음에 걸렸던 일이 하나씩 풀려 가는 게 난 정말 기뻐.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라서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냥 내버려 두었는데, 사실은 상관없지 않았어.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던 거지."

누군가가 나를 위해 격의 없는 배려로 움직여 주는 것이 이렇게 기쁠 줄은 몰랐다.
(본문 110p)

살아 있다는 거 이런 거 잖아. 이렇게 살아도 충분하잖아. 엄마가 저지른 짓 때문에 훨씬 더 엄청난 일을 이뤄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하면 내내 머리를 조아리고 하루하루를 지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사촌과 여행을 하면서 조금 좋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먹은 것을 내 몸으로 소화하고, 오늘 하루의 시작을 차분하게 이 눈으로 보고, 그러면 족한 거네. 이게 인생의 거의 모든 요소였어. 그렇게 생각했다. (본문 139p)

이야기의 전반은 어린시절 큰 상처를 안고 나약하게 살아가는 유미코가 자신을 도우려했던 이모의 마지막 유언을 따라 자신에게 온 쇼이치를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상처와 대면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생각지 못한 엄청난 반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으며, 주술사와 마녀, 주문 등의 독특한 소재로 상처 치유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반전이라고 생각했던 결말이지만 사실 저자는 이야기 곳곳에 앞으로 다가올 반전에 대해 미리 암시를 주고 있었고, 읽는내내 유미코의 삶에 치중한 나머지 독자들은 암시에 대해 전혀 예상치 못했다. 어쩌면 저자도 그 점을 노리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저자는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내용 전반에 걸쳐 상처 치유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 나는 ’죽음’에 대해서도 함게 생각하게 되는 결말이었다.

이모의 말처럼 죽음이란 이 세상의 이런저런 것들과 헤어지기 서운한 이별인 것이다. 죽음에 이르러 내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축복이라는 점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삶이 진짜 삶은 아닐까. 유미코의 삶, 그리고 상처와 대면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삶과 죽음에 관한 일생의 가장 큰 문제에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행복한 순간들이 있음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그 행복했던 기억들이 우리안의 상처를 다독일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살아가는 동안 잊지 않으리라.

(사진출처: ’그녀에 대하여’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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