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남자 친구 (문고판) 네버엔딩스토리 20
김일옥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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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청바지에 오토바이를 몰고 있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꼬옥 안고있는 뺨이 발그레한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니 괜시리 나도 웃음이 난다. SBS [세상에 이런일이] 프로그램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참 희귀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동화책이 허구일지언정 가짜는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느껴졌다. 2007년 제5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했던 저자는 세상에 흩어진 ’진짜’ 이야기를 모아 허구의 끈으로 묶어 이야기를 썼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9편의 단편을 담은 <<할머니의 남자 친구>>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진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있는 진짜 이야기말이다.

짧은 파마머리, 찢어진 청바지, 너절너절한 반짝이를 한 할머니의 남자친구때문에 영민 엄마는 머리가 아프다. 겉모습만 보고 할아버지를 판단해버리고 주책이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머니가 인라인을 타다가 넘어져 팔에 금이 갔다. 이제서라도 자신의 삶을 찾아보겠다는 할머니 그리고 이웃의 눈이 남부끄러운 엄마와 아빠의 다툼이 잦아졌다. 영민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재미있는 설정을 통해서 ’가족’’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보다 신세대 할아버지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서 유머와 선입견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전달하고 있어 <할아버지의 남자 친구>가 주고 있는 의미가 적지 않다.
자전거 도토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현이와 장호범의 탐정 놀이를 담은 <도토리를 찾아라>와 친구 강이의 아빠가 도둑이라고 오해를 하고 도둑이 잡히자 강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낯선 사람>, 강아지에게 물린 할머니를 통해서 이웃에 대한 사소한 감정으로 인해 점점 삭막해져가는 요즘 사회의 모습을 비판한 <앞집 강아지>, 줄넘기를 넘지 못하던 신이가 줄넘기 100개를 넘겨 줄넘기 인증서 상장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담아낸 <줄넘기>는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로 재미와 감동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은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담은 단편 <욕 좀 보소!>이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무리 곁을 지나다보면 심심치않게 들려오는 것은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어지는 욕이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대화 속에서 욕은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하보면,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불뚝불뚝 욕을 내뱉고, 내 아이에게도 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뱉는 단어 속에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험 감독하러 간 엄마는 아줌마들과 돌아오는 길에 아들 승기를 만났고, 아들을 만난 반가운 마음이 든 엄마는, 아들에게 시험에 대해 물어보고 지나갔다. 그런데 미처 아줌마들이 사라지기도 전에 들리는 아들의 목소리.

"씨발....년들. 남의 점수를 가지고 지들이 왜 지랄이야? 아들한테 물어볼 게 점수밖에 없나, 미친.......년." (본문 71p)

이 일로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잠시 집을 나갔던 승기는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저도 알아요. 욕이 얼마나 나쁜 건지. 나도 정말 욕하는 애들 보면 싫어요. 하지만 다들 욕을 하잖아요. 나만 튈 수는 없어요. 그리고 듣다 보면.........욕이 욕 같지도 않아요. 제 말은 그게, 진짜 욕할 때하고 그냥 친해서 부르는 욕하고 말투가 달라요." 

"그래, 그게 너희들 현실이구나."
(본문 77p)

"어머니도 저기 그러니까 새끼니 계집애니, 싸가지 없다는 말 쓰지 마세요. 들을 때 기분 나빠요."
소 새끼도, 말 새끼도 송아지, 망아지라는 예쁜 이름이 있다. 하다못해 고등어도 고도리라는 이름이 있는데, 우리도 우리의 예쁜 이름으로 불리고 싶었다. 우리 승연이, 우리 승기라고.
(본문 78p)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 처음 읽었을 때의 섬뜩했던 충격은 사라졌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욕이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욕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 무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용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승리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의 모습인 듯 보인다. 아이들의 이런 욕설에 대해 비판하고 있지만, 어른들 조차 그들에게도 본보기가 되어있지 못한 듯 하여 미안한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집 나간 엄마때문에 위축이 되어버린 광우는 나무에 올라가 찌르레기 새끼 두마리를 가져왔다. 집으로 오는 동안 내내 광우를 괴롭히며 쫓아온 엄마 찌르레기 때문에 광우의 이마에는 상처가 났다. 새끼 때문에 광우의 방 유리창으로 날아들다 머리를 박고 죽은 엄마 찌르레기, 광우로 인해서 죽게 된 새끼 찌르레기를 보면서 광우는 속이 상했다.

’다들 잘만 살던데. 다른 새끼 낳아서 잘만 살던데. 왜, 왜?’ (본문 89p)

산에 찌르레기를 묻으면서 광우는 엄마 없는 빈자리를 함께 묻었다. <찌르레기>가 엄마의 부재에 위축되어 있는 광우를 보여주고 있다면 <시소 타기>는 엄마 없는 빈자리를 두 남매가 씩씩하게 견디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의 남자 친구>>는 웃음과 감동 그리고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우리 가족들의 마음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마음까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옹골차게 들어가 있는 이야기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가슴 한켠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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