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불류 시불류 - 이외수의 비상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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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여자를 모른다><하악하악>에 이어 세 번째로 이외수의 작품과 만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얻은 지혜와 느낀 점을 짧은 글로 풀어낸 작품들 속에서 그의 연륜이 느껴진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어른들의 이야기는 죄다 잔소리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짧은 삶을 살아왔지만 그 시간동안에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고 보니, 그것이 ’잔소리’가 아니라, 삶의 ’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의 잔소리라고 치부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어른들의 잔소리는 그들이 옳은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와 다를 바 없다.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나는 그의 이야기가 잔소리가 아니라, 삶을 살아오면서 알게 된 깨달음이라는 것을 안다.

젊은이의 말이라고 다 큰소리가 아니듯이 노인의 말이라고 다 잔소리가 아니지요. (본문 81p)

세상은 점점 삭막해져간다. 과학의 발달로 생활은 점점 편리해져가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도 역시 풍요로워져야 마땅하거늘, 사람들의 마음은 사랑과 여유 대신에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는 욕심만 커져가고 있어 세상은 무서울 정도로 삭막하고 건조하다.
작가의 말처럼 아파트의 벽 두께는 20센티이고, 옆집과의 물리적 거리는 20센티 밖에 안됨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마음의 거리는 2만 리가 되었다.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친구와 경쟁을 하며 살아가야 하고, 그 친구를 제껴야만 내가 살아남는 세상이 우리 마음 속에 그만큼의 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가는 그런 건조함이 싫어 감성마을에서 ’외롭지 말입니다’라고 외치면서도 그곳을 사랑하는가보다.

예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독자와의 소통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글 속에서 묻어난다. 지금껏 접했던 이외수 작가의 세 작품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그의 주절거림을 닮은 듯한 짧은 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정태련의 삽화가 그러하다.
세상에 대한 쓴소리, 예술이 가지고 있는 가치, 사랑의 거대한 힘이 작가의 짧으면서도 깊이있는 글로 새로 태어났다.

문학은 단순한 소통이나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단순한 소통이나 전달은 모스 부호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모스 부호로는 수백만의 인명을 구제할 수는 있어도 수백만의 영혼은 구제할 수는 없다. (본문 79p)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점점 무섭고도 삭막해지는 것에 대해서 이외수 작가의 쓴소리가 등장한다.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 겉은 사람인체  하며 속은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들, 모든 것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있거늘 자신만은 늘 봄이기를 바라는 헛된 욕망을 가진 사람들, 많은 것을 배우고도 베풀 줄 모르고 많은 것을 배우고도 자신만을 위하려는 사람들. 저자는 그들의 사랑없는 마음,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툭툭 내뱉듯 던져 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아무리 학벌이 좋고 아무리 직급이 높아도 양심을 팽개치고 사리사욕에 눈물어 있다면 짐승보다 무가치한 인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정작 해당되는 장본인들은 젠장할, 예술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 글을 절대로 안 읽는다. (본문 60p)

세상 돌아가는 판세가 내 소설보다 몇 배나 기상천외하구나. (본문 181p)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옛 추억에 젖어들게 된다. 어쩌면 점점 인정, 인간미가 사라지는 요즘 세상에 대한 회한때문에 옛스러움이 더 그리워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들어 옛 친구가 그립고, 옛 가요가 정겹고,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가 반가운 것은 사랑이 메말라가는 나 자신에 대한 회한때문에 어린시절의 순수함과 정겨움이 그리워서 일지도 모르겠다.
저자 역시 그런 의미로 옛 것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책 속에서 그리움이 묻어난다. 저자의 그리움으로 나 역시 잠시 옛것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껴보았다. 
그의 말처럼 과학적인 근거 제시가 중요한 요즘인지라 예술적인 것도 과학적이어야 하는걸까? 쫌 슬퍼진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 일학년 국어책에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나중에 없어졌는데 달은 구체니까 공처럼 둥글다고 해야지 쟁반같이 둥글다고 하면 과학적이지 못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거참, 꼭 과학적이어야 했을까. (본문 207p)

책을 읽으면서 서글픔 반, 통쾌함 반, 공감 반, 즐거움 반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어찌보면 푸념처럼, 혼자 주절거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속에 많은 속뜻이 내포되어 있으며, 그가 일관성 있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 그리고 시간의 주인이 되라는 충고.
책 속의 모든 내용을 다 잊었다해도 결코 잊지 못하는 글귀와 만났다. 세상을 눈부시게 만드는 여덞 음절.

겨우 여덞 음절의 말만으로도 온 세상을 눈부시게 만들 수가 있습니다.
당.신.을.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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