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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인생에 청춘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새로운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 슬픔, 이별, 아픔, 절망, 고독 등 지금껏 겪어왔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감정들과 만나게 되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보이게 된다. 모든 감정이 UP되어 버리는 그 시절을 우리는 ’청춘’이라고 부르고, 일생을 살아가는 순간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들이 아닌가 싶다.
내게 청춘이라 불리던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내 삶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내 삶에 있어서 외적으로도 가장 예뻐보이던 시간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들처럼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마주하면서 열정을 불태워보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내 공간 안에서만 찬란했던(?) 청춘이었을 뿐. 오늘 문득 내 청춘이 참 무의미했었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꼭 시대적인 상황과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만이 청춘을 멋드러지게 보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고자 했던 혹은 간절히 원하고자 했던 열정이 없음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했다.
윤교수의 죽음을 전해들은 윤은 서서히 자신의 청춘을 돌이켜본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윤 자신과 단이, 미루와 명서와 함께했던 청춘의 사랑과 고독과 아픔과 슬픔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아픔과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윤은 학교를 휴학했다 다시 복학하면서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을 가진 미루와 명서를 만나게 된다. 계절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봄 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미루와 그런 미루 옆에서 보호자처럼 함께하는 명서 그리고 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좋은 친구가 되어간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윤에게 마음을 둔 단이도 함께였다.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윤이와 미루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 명서와 단이.
세상으로 나아가려했던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강 저편으로 건너가려고 하는 여행자들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지낸 크리스토프는 어느 날 밤 한 아이를 강 저편으로 건네주게 되었다. 강물이 범람하고, 물이 불어남에따라 아이도 무거워지면서 자신이 강물에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강가에 아이를 내려놓으며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너 때문에 내가 죽는 줄 알았다. 너는 이리 작은데 너무 무거워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토프! 그대가 방금 짊어진 건 어린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 그리스도다. 그러니 그대는 저 강물을 건널 때 사실은 이 세상 전체를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각기 크리스토프인 동시에 그의 등에 업힌 아이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험난한 세상에 온갖 고난을 헤쳐나가며 강 저편으로 건나는 와중에 있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종교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야. 우리 모두가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는 여행자일세.
- 강을 가장 잘 건너는 법은 무엇이겠는가?
-서로가 서로에게 크리스토프가 되어주는 것이네. (중략)
때로는 크리스토프였다가 때로는 아이이기도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들이네.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고 소중히 여기게. (본문 61,62,63p)
이들의 청춘을 이끌어주고 있는 윤교수는 학생들에게 크리스토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크리스토프 이야기는 ’청춘’을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의 감정은 세상의 온갖 고난을 짊어지기도 하고, 그 고난을 헤쳐나가기 위해 비극적인 시대 상황에서도 부대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인공이 살아가던 그 시절에는 민주화와 노동 운동에 따른 시위가 난무하던 때이다. 잃어버린 신발과 가방을 찾아 종로를 헤매이기도 하고, 서점에 몰래 숨어있어야 했으며,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죽음을 당해야 했고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에 좌절하고 힘겨워해야 했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바로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 옆에서 슬픔을 느껴야 했던 사람도 있었다.
나의 크리스토프들, 함께해주어 고마웠네. 슬퍼하지 말게. 모든 것엔 끝이 찾아오지. 젊음도 고통도 열정도 공허도 전쟁도 폭력도. 꽃이 피면 지지 않나. 나도 발생했으니 소멸하는 것이네. 하늘을 올려다보게. 거기엔 별이 있어. 별은 우리가 바라볼 때도 잊고 있을 때도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을걸세. 한 사람 한 사람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별빛들이 되게. (본문 354p)
청춘을 가장 빛나게 해주었던 윤교수와 고난을 짊어지고 강물을 건너며 아픔과 절망을 이겨내려는 4명의 주인공은 청춘이라는 이름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읽는내내 가라앉아버리는 마음 때문에 슬펐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었듯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역시 읽는내내 어두움과 깊은 절망과 상처 때문에 마음이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종내는 ’청춘’을 가장 아름답고도 찬란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너무도 절망스러웠던, 너무도 아팠던, 너무도 슬펐던 청춘이 있었기에 서로를 더 사랑할 수 있었던 청춘이기에.
윤은 다음 세대의 청춘들에게 크리스토프를 말한다. 비록 시대적 상황은 틀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은 또다른 절망과 아픔과 슬픔을 느낀다. 그 감정이 바로 나와 타인을 책임질 수 있는 오롯한 어른이 될 수 있는 과도기에 느끼는 최고의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청춘’은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인가 보다.
태어나서 살고 죽는 사이에 가장 찬란한 순간, 인간이거나 미미한 사물이거나 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겐 그런 순간이 있다. 우리가 청춘이라고 부르는 그런 순간이. (본문 347p)
청춘은 ’언젠가는’ 지키고 싶은 약속을 하며 희망을 꿈꾼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몸부림을 한다. 그 몸부림으로도 사회를 바꿀 수 없고, 강을 건너지 못할지라도 그 열정이 있기에 청춘은 아름다운 게다. 미루의 절망 속에서 함께 절망을 느끼고, 읽는 내내 우울해지고 아파했지만 결국 미소를 짓게한다. 결국 어떤 강이든 건너고야만 그들의 현재가 그렇게 청춘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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