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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읽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자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린 새아버지의 폭력과 어른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도 했다. 돈이 무엇이기에, 돈 때문에 어린 딸을 매음굴에 팔아야만 했단 말인가.
지은이의 말에 의하면, 매년 12,000명에 가까운 네팔 소녀들이 가족에 의해 의도적으로, 혹은 의도하지 않은 채로 인도의 매음굴로 팔려가 성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미국 국무부는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50만 명의 어린이들이 성 노예로 거래된다고 추정했다고 하니, 참 기가 막힌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이 성폭행 사건에 대한 뉴스가 종종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죄를 막아낼 방법은 과연 없단 말인가?
라크슈미가 사는 네팔은 우리나라의 50~60년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딸을 부잣집에 가정부로 보내 돈벌이를 시키고, 가장인 남편에게 복종하며 살아가는 여인네의 모습이 그러하다.
“왜 여자들은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뎌야 하죠?”
“그건 우리의 운명이니까. 그냥 견디는 게 이기는 거야.” (본문 24p)
“노름으로 우리가 가진 걸 다 날리고도 좋은 모자에 새 옷을 입고 다니는 남자라도 있는 게 나아. 집안에 남자가 없는 것 보다는 말이야.” (본문 49p)
노름으로 돈을 날리고, 집안을 돌보지 않는 남편 대신,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라크슈미의 엄마는 남편이 사라지면, 새로운 남편을 맞이한다.
가난하지만, 아마(엄마)의 보살핌 속에서 행복했던 라크슈미는 새아버지로 인해서 삶이 바뀌어버린다.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마가 조금이라도 여자의 운명에 반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라크슈미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마의 낡은 사고방식에 화가 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밖에 살아갈 수 없는 바보 같은 운명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아마와 같은 여자의 일생에 안타까움이 든다.
새아버지는 라크슈미를 도시의 가정부로 보내서 돈을 벌게 하겠다고 했으며, 라크슈미를 가난으로 고생하는 아마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도시로 나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마는 도시가 아닌 먼 인도 땅 매음굴에 팔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을 해야만 했다.
내 침대 옆에는 물 한 동이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씻고
문지르고
씻고
또 문질러도
내 몸에서 남자들을 씻어 낼 수가 없다. (본문 143p)
일만 루피의 빚을 갚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잠깐의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라크슈미는 영원히 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계산을 해 본다.
난 이미 산 채로 묻혔다는 걸 깨닫는다. (본문 164p)
희망이 없는 그곳에서 라크슈미는 하리슈라는 소년을 만나고, 그 소년에게 그 나라의 말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하리슈가 선물한 연필 한 자루에 행복을 느낀다.
이곳에서 나는 맞고,
갇히고,
수백 번 수천 번 유린당했다.
굶주리고,
속임수에 넘어가고,
사기당하고,
치욕을 겪었다.
그런데 노란 연필 한 자루를 준 작은 소년의 소박한 친절 때문에 이렇게 무너지다니, 정말 이상하다. (본문 199p)
“오늘 어때, 라크슈미?” 라고 물으며 늘 이름을 불러주던 하리슈는 떠났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세 살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하리슈가 떠나고, 라크슈미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미국 사람을 쫓아가면 발가벗겨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한다는 소문이 있어 라크슈미는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미국 사람의 말을 믿지 못했다. 며칠 후에 다른 미국 사람이 라크슈미를 찾아와 다른 소녀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쉼터 이야기를 해 주며 라크슈미를 도와주겠다고 한다.
“깨끗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본문 274p)
미국 사람과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너도나도 벽장으로 숨지만 라크슈미는 그들이 자신이 도와 줄 거라 믿는다.
미국인이 나를 부른다.
대답해 보려고 하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욕지거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미국인이 가려고 한다.
내 미국인이 가려고 한다.
그때 내 안의 뭔가가 나를 부수고 연다. 나는 계단을 달려 내려간다. (중략)
내 미국인이 보인다. 다른 남자들도 있다. 인도 사람도 있고 사진에서 본 미국인 여자도 있다. 나는 말한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나는 열네 살입니다.” (본문 287,288p)
이들의 범죄를 막을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고통 받는 그들을 보듬어주고 위로해 줄 수는 있다. 라크슈미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아픔을 겪었지만, 사람에게 그 상처를 치유하고 희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죄인들이 그에 합당한 벌을 받기를 원한다. 새로운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이 또 하나가 있다. 그들을 향한 따뜻한 온정이다. 분노는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위로와 관심이 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라크슈미가 새로운 삶을 찾고, 그녀를 사랑했던 아마를 만나 다시금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또 다른 라크슈미에게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소녀이기에 당해야 했던 그들의 억울한 삶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또 염원한다.
이 책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라크슈미를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의 관심이 분명 모든 라크슈미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진출처: ’나는 라크슈미입니다‘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