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라 쿠트너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분홍색의 예쁜 표지와 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예쁜 연애소설이라 생각하고 책을 읽기시작했다. 수시로 불안 증세와 발작이 일어나고 슬픔에 빠져드는 주인공 카로가 새로운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제목에서 오는 선입견때문인지, 정신과 의사와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일거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내가 원하던 예쁘고 상큼한 사랑 이야기는 책 어느 구석에도 찾을 수가 없다. 
물론 기대했던 이야기는 아니라 살짝 실망한 것도 사실이지만 (원래 편독이 심해서 우울한 이야기, 어려운 이야기는 질색이다), 우리 내면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과 사랑, 절망 등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주인공 카로를 통해서 그 내면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는 점에서 나름 읽을만한 소재였다.

주인공 카로는 이십 대 후반의 여성으로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은 그녀에게 트라우마를 남겼고, 언뜻 보아도 그녀는 사랑받기를 원하는 가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심장이 떨리면서 불안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심호흡 몇번이면 그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반면, 그녀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해 금새 심각한 좌절에 빠지곤 한다.
실직을 하고, 남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그녀의 우울증은 깊은 수렁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 곁에서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친구 넬슨이 있고, 우울증으로 어린시절의 카로를 돌봐주지 못했지만 이제 카로에게 깊은 사랑을 전해주는 엄마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카로 스스로가 그 불안 증세와 좌절에서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친구 필립과 헤어진 뒤 카로는 쿨하지 못한 채 그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새로 만난 다비드를 통해서 필립의 빈자리를 채워나가게 되었다.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카로와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는 다비드를 통해서 카로는 다시금 사랑에 대한 아픔을 느끼게 되지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면서 서서히 자신의 삶을 찾아가던 카로는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고 막스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 할 때, 또다시 불안감이 찾아와 새로운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된다.
그 정신과 의사는 "우울증은 정말 엿 같은 이벤트죠!" 라며 카로를 맞이한다. 카로를 처음 만나고 카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를 진단한 의사는 카로가 그동안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수많은 생각을 정리해 주었다.

"헤르만 양! 모르겠어요? 당신은 매우 지적인 사람이에요. 감성지수도 아주 높고요. 열정이 넘치는데다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직감까지 뛰어나죠. 그런데 그런 능력이 자신에게는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어요. 자신의 감정 문제에 맞닥뜨리기만 하면 당신은 마치 머리에 널빤지라도 두른 사람처럼 우둔하게 헤매고 있어요. 정말 이상한 일이지요. 하지만 이건 아주 명백한 사실입니다. 당신은 다른 건 전부 느낄 수 있는데, 자기 자신만은 느낄 수 없다는 거죠!"  (본문 342p)

이야기 곳곳에 등장하는 카로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통해서 카로가 사랑에 목말라 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카로는 그 상처를 치유받기 보다는, 그 상처를 타인에게 말함으로써 관심을 받고 주목을 받으려고만 했고 결국 상처는 카로 자신의 방패막이 되어 스스로를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이 시작하는 일들에 대한 변화에 불안감을 주고 있다는 것.

".....조각들을 잘못 자르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아귀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은 퍼즐 말이에요! 항상 한 가지 원인을 찾으려다 보면 전 미칠 것만 같아요. 머릿속에서 마치 제대로 줄도 서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러대며 반항하는 유치원생들처럼 온갖 가능성들이 마구 뒤어켜버리거든요!"

"그럼 그걸 중단하십시오."

"뭘요?"

"생각 말입니다." 
(본문 344,345p)

현대인들은 누구나 약간의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끔 까닭없이 우울해지기도 하고, 무기력해지면서 오늘 하루가 정말 엿같은 날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때문에 제대로 우울증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와 같은 것이다.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치료를 하면 금새 나을 수 있지만 방치한다면 큰 병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우울증이 시작될 때 치료를 한다면 삶의 제자리에 올 수 있지만, 사람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자신의 정신적 아픔을 인정하지 못하는 스스로 때문에 방치한다면 무서운 결말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카로는 스스로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기도 하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면서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카로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나 나 자신을 리모델링한다.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똥을 황금으로, 또 멸치를 올리브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난 엄청난 흥분에 휩싸여 페허가 되어버린 내 자아의 집 주변을 빙빙 돌며 비명을 지른다.
하하하하! 너희들은 날 무너뜨리지 못해! 난 나 자신을 다시 완벽하게 재건할 거야!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란 말이야! 
(본문 160p)

우울증에 걸린 여 주인공이 삶의 좌절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지만, 책 전반적인 분위기가 우울하지는 않다. 위트가 넘치는 카로와 그런 카로의 위트를 받아주는 넬슨의 위트가 있고, 주인공 카로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찌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은 진지한 느낌을 주지만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은 로맨스가 있어 이야기가 우울모드가 빠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현대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안한 사회분위기, 좌절과 시행 착오 등으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지 완벽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삐걱거리는 삶을 통해서 용기를 얻고,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로의 시행착오가 자연스럽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의 시행 착오는 좌절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용기와 또다른 시작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균형 잡힌 삶은 가족, 사랑, 집, 직업, 그리고 친구라는 다섯개의 기둥 위에 서있어요. 이 다섯 가지가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보기엔 헤르만 양은 최근에 이중 몇 개가 부러진 것 같아요. 또 그것 때문에 삶의 균형이 무너진 거구요. 이건 누구한테나 힘든 상황이에요." (본문 1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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