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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의 나비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박완서의 문학상 수상작
박완서 지음 / 푸르메 / 2006년 6월
평점 :
어렵게만 느껴졌던 저자 박완서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담아낸 <<나 어릴 적에>>라는 동화를 통해서였다. 사람의 선입견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라,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속에서 무언가 굉장한 가르침을 받아야 할 거 같은 느낌과 어렵고 지루할 거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니 말이다. 혹은 제목에서 오는 의미심장함이 수상작에 대한 선입견에 크게 한 몫 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책을 통해서 받은 친근함때문인지 선뜻 책을 집어든 것은 나 스스로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줄곧 느낀 것은 책꽂이에 오래 꽂아두었다면 많은 후회를 했을거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딸, 아내, 엄마, 며느리, 시누이, 올케 등등 많은 직함을 얻게 된다. 그 직함은 굴레이고, 아픔이고, 화(火)가 되기에 가히 좋은 직함은 몇 가지 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벗어버리고 싶어도 벗어버릴 수 없는 현실로 여자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얻게 마련이다.
<<환각의 나비>>는 여자라면 한번 쯤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도 이 책이 공감을 주고, 이해를 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점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어쩌면 이 책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 세대를 보고 자란 그들이에게 이 책은 부모들이 겪어야 했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결혼 13년차이고, 수많은 직함을 달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되고, 슬픔이 되었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은 <꿈꾸는 인큐베이터>였다. 며느리는 꼭 아들을 낳아야만 제 몫을 다한 것처럼 인식되고 있고, 비단 시부모님의 강요가 아니라 하더라도, 며느리 본인 스스로도 옥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며느리’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나 스스로도 그 중의 한 사람이였기 때문에, ’아들’을 낳아야만 할 것같은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조카 유치원에서 만난 딸만 둘을 둔 남자를 알게 되면서, 아들을 가진 자신의 유세(?)를 맘껏 뽐낸다. 아들이 없어서 서운해야 한다는 것을 그 남자에게 강요하듯 몰아세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애처로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랬다. 아들을 낳아야 하는 며느리, 아들을 원하는 시댁, 아들을 낳기 위해 소파수술을 감행해야 했던 그녀의 상처들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자신이 가졌던 아픔과 상처를 타인도 똑같이 상처 받고 있어야 위안이 되는 그녀의 애절한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사실, 둘째를 계획할 때 아들 낳는 비법에 따라 한달을 식이요법을 감행했었다. 주인공처럼 소파 수술을 해가면서까지 아들을 원한 것은 아니였지만, 시댁의 은근한 바램과 나 역시도 아들을 낳아야만 며느리로서의 도리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이 요법 탓이였는지 둘째는 아들이였고, 시부모님의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에 마음 한켠이 허했던 것은 어쩌면 주인공이 시댁 식구들에게 가졌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씁쓸함, 허탈함 그 속에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한 우월감 등 복잡한 심경이 드러난 그녀의 마음을 나는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며느리라는 같은 직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성폭행으로 임신을 하게 되고 소파 수술을 했던 주인공은 변두리의 어수룩한 주택가에 산부인과 병원을 개업했다. 소파수술 전문가가 된 그녀는 사흘후면 병원문을 닫는다. 의사가 되고 첫 손님은 출산을 돕는 일이였지만, 그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고, 그녀는 병원문을 닫기전에 아기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갖는다.
자신의 손에 의해서 죽어간 수많은 태아들에 대한 죄책감이 그녀에게 소원을 갖게 한 셈이다. 성폭행, 그로인한 소파 수술은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상처를 냈고, 그로인해 그녀는 산부인과의사라는 길을 걷게 되었다. 아기는 여자의 일생에서 떼놓을 수 없는 부분인가보다. 비록 소파수술 전문의로서는 인정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여자로서의 인생 그리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내건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그녀는 무엇인가? 죽은 아기를 품에 안고 흐느껴 우는 그녀의 상처는 무엇으로 달랠 수 있으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참 독특한 전개이다. 전화를 바꿔받으니 상대방은 형님이다. 이야기는,
전화 바꿨습니다. 어쩐 일이세요? 형님이 전화를 다 주시고.....(본문 190p)
로 시작하여 전화로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구수함이 묻어나는 대화체 문장 속에서 여자의 일생을 전부 엿 본 것은 같은 느낌을 준다.
작가 박완서가 아닌, 여자 박완서가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 여자들이 받아야했던 상처와 설움을 대신 토해내면서 저자는 여자의 아픔을 통해서 세상을 비판한다. 여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저자는 세상을 향해서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여자들은 수다를 통해서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려한다. 자기네끼리의 수다는 한순간의 아픔을 달랠 수 있지만, 상처의 근본적인 것을 고쳐나갈 수는 없다. 저자는 여자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수다가 아닌, 세상을 향해서 여자들의 변호하고 있는 듯 하다. 여자들의 지휘가 조금씩 향상되고 있는 것은 저자처럼 세상을 향해서 소리치고 있는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여자 자신 스스로가 자신에게 옥죄이고 있는 굴레를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오래된 관습으로 인해 여자 스스로가 옥죄고 있는 숱한 굴레를 벗어버리는 것이 바로 ’여자이기에’ 당해야 하고, ’여자이기에’ 받아야 하는 상처를 치유하는 일일 것이다.
여자라면 한번 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5편의 단편 속 어딘가에 자신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치유이든, 공감이든간에 여자인 나 스스로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분명 소중한 시간이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