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디로 갔을까 우리들의 작문교실 13
현길언 지음, 백성민 그림 / 계수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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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년기의 삶과 생각과 기억을 한데 묶어 쓴 작품인 "다들 어디로 갔을까"는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담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얼마나 공감이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소년이 만났던 역경과 슬픔은 우리 아이들이 꼭 알아야 할 역사의 단면이며, 그 역경을 이겨냈던 소년의 성장은 희망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주 출신의 작가 현길언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제주 4ㆍ3 사건, 그리고 6ㆍ25 전쟁까지 우리의 아픈 역사를 3부작 성장 소설(“전쟁놀이”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못자국”)에 담았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는 어린이의 관점으로 이 책을 쓰셨다고 합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전쟁’은 ’놀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나 전쟁은 아픔이고, 슬픔이며, 고통이죠. 저자는 자신이 겪은 소년기의 기억을 통해서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판타지, 모험 등 독자 어린이들이 좋아할 법한 요소는 없지만, 천천히 잔잔하게 흐르는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듯 합니다.
 

유약해 보이는 규명이는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유일한 아이로,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는 소년입니다. 규명이에게는 말과 소, 닭과 누렁이가 유일한 친구입니다. 규명이를 애지중지해주던 증조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모습, 서울로 학교를 다녔던 죽은 형에 대한 이야기에선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규명이는 증조할아버지로부터 삶의 이치를 깨달아갑니다.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가르치고, 가축을 돌보게 하고, 목장을 데리고 다니면서 조금씩 세상에 다가서게 합니다. 그렇게 규명이는 세상 일을 조금씩 알아 갑니다. 그리고 규명이는 가축을 돌보면서 그들과 친구가 됩니다. 날쌘돌이 소, 형님이 타던 말, 닭순이, 누렁이는 규명이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전쟁은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소중한 것을 앗아갑니다. 규명이의 친구들은 하나 둘 사라집니다. 소도둑, 족제비 등으로 친구를 잃은 규명이의 슬픈 모습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모습과 오버랩되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하는 듯 보입니다.

"마루에 네 얼굴이 비치지?"

"네 얼굴 위에 네가 마음에 드는 글귀를 쓰고 있으니, 그 글 내용과 네가 하나 되는 거 아니냐?"

"그래, 네가 지금 네 얼굴 위에 쓴 글귀를 늘 얼굴과 가슴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라. 물로 썼으니 곧 마르겠지만, 네 가슴에 품고 있으면 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네 얼굴에 나타나게 되느니라."

"네 닭이 족제비에게 물려 죽은 대신에 우리 규명의 붓글씨가 나아지고 있으니, 그 닭이 큰일을 했구나."
(본문 73,74p)

슬픔을 넘어 희망을 보여주려는 증조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이야기처럼 마음에 새겨질 듯 합니다. 집을 나간 아버지, 학교 교문에 장총을 들고 지키는 경찰관, 그리고 마을에 들이닥친 토벌대들로 공회당과 주변 집들은 불에 탔다. 어머니와 규명이 단 둘만 남게 되었죠.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멸종이 되었으나 배 안으로 들어온 것들이 살아남아, 그것들이 종자가 되고 번상하여 나중에 온 세상에 모든 새와 짐승과 동물들이 되었다.
"그래. 저것들이 씨종자가 되어서 우리도 예전처럼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본문 160p)

전쟁은 소중한 모든 것들을 앗아갔지만, 희망만은 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전쟁은 어린 규명이에게 가족과 친구들을 앗아갔습니다. 자신을 세상으로 이끌어주던 할아버지,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동물들이 규명이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규명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어느 정도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저 역시도 전쟁을 모르고 자란 세대이니만큼 저자가 겪은 일에 대해 100% 공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제 전쟁이 아닐지언정, 전쟁과 같은 고통스러운 일은 한번 즈음은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유약했던 규명이는 슬픔을 딛고 이제 서울로 중학교를 다녀야할 만큼 자랐습니다. 
고통은 희망보다 작은 이름입니다. 독자 어린이들은 규명이를 통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겠죠?

전체적으로 책은 잔잔합니다. 전쟁을 놀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이 잔잔함이 잘 어필이 될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됩니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슬픔과 슬픔을 이겨낸 희망을 느낄 수 있을지...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듭니다.
수묵화로 그려진 삽화가 슬픔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초등 저학년이라는 독자층의 선택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등 고학년이 되어야 비로소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듯 합니다. 
전반적인 내용이 썩 마음에 듭니다. 전쟁, 슬픔, 삶과 죽음,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는 이 책은 경험에서 우려나오는 진실함이 느껴집니다. 

"한 번 꽃이 피면 매년 꽃씨가 떨어져서 숨어 있다가 봄이 되면 싹이 트게 마련이다." (본문 86p)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꽃은 지지만 새 생명을 싹 틔웁니다. 슬픔 너머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을 규명이는 그렇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다들 어디로 갔을까’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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