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내 몸속에서 자라는 작은 생명체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엄마는 없었을 것이다. 부디 건강하게 태어나길 바라고 바라며 보내는 열달의 간절함은 ’엄마’라는 이름이 아니고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리라.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모성애’라는 특별한 감정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기른다. 가부장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아빠들은 육아에서 한발 떨어져 그저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사랑의 표현을 대신하곤 한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고 이제는 모성애보다 더 강한 ’부성애’가 아이들을 자라게 한다.

얼마 전 타 출판사의 <<나는 가능성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함께하며 아들이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였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게 되면, 대부분의 부모가 이혼하는 경우를 언론매체를 통해서 나는 보아왔다.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는 감성적인 면에서 강한 모성애와 달리, 이성적인 면에 강한 면을 보이는 부성애는 아이를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보여졌었다. 그것이 내가 가진 부성애에 대한 착각이였을 것이다. 
<<나는 가능성이다>>를 통해서 부성애의 또다른 면을 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를 통해서 부성애가 가지고 있는 강하면서도 애틋함을 느꼈다. 

저자 마리우스 세라는 유명한 작가이고 동시에 언론인, 변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들 유이스의 행동을 ’기지개를 켜다’라고 묘사하던 저자는 그것이 생후 5주가 된 아이가 보이는 간질 발작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유이스의 정확한 진단명을 알게 된 건 3살 하고도 육 개월째로, 리포푸신증이라는 퇴행성 질병으로 평균 수명이 열 살이하라고 했으니 유유는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슬픔으로 힘겨운 아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않다. 아들이 정상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슬픔을 넋두리하는 것이 아니라, 유이스(애칭 유유)를 통해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유유가 있어 새로운 하루를 보내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를 담았을 뿐이다.
그 일상 속에서, 유유를 향한 저자의 찐한 부성애는 책 구절구절마다 녹아져 있음을 책의 몇 페이지만 읽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는 조카 오리올은 보면서 느끼는 아빠의 애틋함이 왠지 서글프다. 남들에게는 쉬운 걷기, 뛰어다니기, 춤추기를 할 수 없는 아들을 본다고 상상해보라. 그 절망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유이스가 여느 사람들처럼 할 수 없는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잘 알고 있다. 아니, 오래전부터 잘 안다고 믿었다. 하지만 <불쌍한 내 마음을 더는 아프게 하지 마>라는 곡의 춤 스텝을 결코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저 확ㅇ니하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된다. 얼마나 슬픈지 활짝 뜬 채 깜빡이지도 않는 아들의 눈과 마주치자 그 무정함에 상처를 받아 슬그머니 눈물이 올라온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심호흡 세 번에 뺨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 (본문 58p)

하지만, 저자는 아들 유이를 통해서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버스 탑승 과정에 다른 운전자로 인해 점점 화가나는 그가 <죽어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당당하게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보도 위를 점령하고 있었던 일.
제노바 항구의 해산물 레스토랑 안에서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내색을 보이는 여주인에게 여유롭고도 당당하게 대처하는 아빠의 모습은 늠름하고도 듬직하다.

"이처럼 쉽게 상처받는 아들이 있어 예전같으면 고통스러웠을 수많은 역경 앞에서 나는 상처받지 않는 존재가 된다. 아들이 그처럼 약한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힘을 비축한다. 이런 내 모습은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하다. 아들과 함께 있기에 나는 불사신이 된다." (본문 145p)

우연히 접하게 된 책 ’손 영화’ 시리즈는 연속된 스틸 사진들이 담긴 책으로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면 장면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바로 ’폴리스코프’ 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저자는 ’폴리스코프’를 통해서 유유가 달리는 것을 책으로 실현시킨다. 책 내용 뒷편에 ’달리다’라는 이름으로 담겨진 폴리스코프는 유유의 모습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담아내어, 페이지를 빠른 속도로 넘겨 유유가 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아빠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그래서 앞서 내용보다 사진들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옮긴이의 말에는 2009년 7월에 유유가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는 글이 담겨져 있다. 유유가 있기에 당당했고, 불사신이 되었던 저자의 마음이 어떨지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해보게 하는 책이다. ’삶’이 그저 내게 당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 나는 그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 지금 하루하루가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아 본다.
유유가 있어 행복했던 그들의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랑의 진정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진출처: ’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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