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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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현실 속에서 주인공은 늘 예뻐야만 가능하다. 현실은 점점 외모 중심으로 움직여진다. ’예쁘다’는 것...그것은 살아가는데 참 유용하게 작용된다. 그러나 별로 예쁘지 않는 나에게 현실은 가혹(?)하기만 하다. 솔직하자면 예쁜 사람보다 특별한 혜택을 받지는 못 했을 뿐이지, 가혹한 현실에 부딪치지는 않았던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혹하다고 느끼는 것은 자격지심일지도 모른다. 예쁜 친구들을 시샘하는 어리석음이 현실은 가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표지 속 두드러진 여인은 한마디로 ’못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여인들의 들러리로만 살아야 하는 여인의 모습이 두드러진 것은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그녀는 못생긴 여자로 기억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조금 어려운 소설이였다. 제목이나 표지 그리고 블로거들의 서평을 통해서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던 책이였으나, 현실 세계의 어두운 면을 담았기 때문인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공감대를 형성한다. 20살, 사랑을 하고 사회 생활을 하고 삶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아니 세상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 시절의 성장통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요한’이라는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부러 활발한 척 자신을 포장하는 그의 모습은 아프고도 슬프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내면의 유약함을 감추기 위해서 자신을 포장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이다. 내 자신을 포장하고, 아닌 척 감추는 것은 오랜 나의 습성이다. 내가 가진 약한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겠다는 결연함으로 포장된 거짓스러운 내 모습을 나는 요한을 통해서 보고 있었다. 그 캐릭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와 닮아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백화점 주차장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세상을 보게되는 주인공 ’나’와 세상의 가혹함에 주차창의 암연으로 들어온 못생긴 그녀 그리고 그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아픔을 숨기며 살아가는 요한.
그들의 이야기는 세상과 부딪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BEAR와 BEER 그리고 HOF와 HOPE가 뒤섞인 세상에서 희망을 보고, 희망을 차버리며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즐거움과 어두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우스운 이야기에 웃다가, 심각한 상황에 그저 침울해하며 읽었을 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인생’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슴 떨림도 풋풋함도 전혀 없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받아야 할 상처를 서로 어루만지고 있을 뿐이다. 현실에서 만들어 놓은 외모의 잣대로 상처받은 그녀와 그녀를 감싸안은 나와의 사랑이 안타까울 뿐이다.
길을 걷다가 예쁜 사람을 보게 되면,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못생긴 사람을 보게 되면 그녀를 따라 신랄한 비판을 하게 된다. 세상은 그렇다.
외모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못생겼다’라는 이름 대신에 순수한 자신의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그녀와 외모가 아닌 온전한 그녀를 사랑했던 ’나’와의 사랑은 정말이지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어떤 조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사랑은 외모가 아닌 마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보여주었다.

상관이 있든 없든, 또 누가 이익을 보았든....퇴근 무렵의 주차장이나 옥외의 광장...드롯 떼가 지나간 벌판처럼 휑한 느낌의....그래서 홀로 어느 고원에 선 것 같은 기분으로....(중략)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본문 159p)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누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 불을 밝혔을 때의 서로를....또 서로를 밝히는 것이 서로서로임을 모르기 때문이지. 가수니, 배우니 하는 여자들이 아름다운 건 실은 외모 때문이 아니야.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해 주기 때문이지. 너무 많은 전기가 들어오고, 때문에 터무니없이 밝은 빛을 발하게 되는거야.
(본문 185,186p)

그 뜻을 다 이해하기에 나의 지식은 모자라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어렵다...어렵다...하며 읽은 책이였으나, 끝까지 책을 놓치지 못했던 것은 스무살의 내 모습과 맞물려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우리 모두의 스무살의 모습과 닮아있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결말의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프다. 사랑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 아픔은 사랑의 상처로 인한 아픔과 달리 가슴이 저리다는 느낌을 준다. 순탄치 못했던 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젊음이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꿈같은 사랑이란 것도 별다른 게 아니지. 그냥 살아가듯이 그냥 사랑하는 거야. 기적 같은 사랑이란 그런 거라구. 보잘것 없는 인간이 보잘것없는 인간과 더불어.......누구에게 보이지도, 보여줄 일도 없는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가는 거야. 이쁘지도 않은 서로를, 잘난 것도 없는 서로를....평생을 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실릴 일 없는 사랑을.......그런데도 불구하고 해내가는 거지. 왜,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 이 얘기야.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본문 224p)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외모, 권력, 재산 이런 조건 따위 없이 그냥 사랑하는 것....그것은 바로 기적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늘 기적을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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