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부터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그 먹먹함은 책 페이지를 덮고서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몇 해전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되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찾았고, 그동안 잊었던 사건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내가 어른이라는 것조차 부끄러웠었던 기억과 사람들에 대한 분노, 그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끓어올랐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잊고 있었다.
좋은 기억이 아니지만, 잊으면 안되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기억 저편에 묻어두곤 한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런 혐오스러운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곧잘 잊는다. 
저자 공지영 역시 우리에게 기억시키고 싶었기에 보여준 듯 하다.  잊지 말아야 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고, 관심 가져줘야 할 그들에게 무관심한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철로는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소년은 뒤돌아보았다. 크게 휘어진 선로를 돌아 기차가 오고 있었다. 소년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힘껏 두 팔을 벌렸다. 얼핏 그의 얼굴에 미소인지 가벼운 찡그림인지가 번졌다. (본문 9p)

사업을 실패하고, 아내의 지인을 통해서 특수학교 교사직을 얻어 무진으로 내려가게 된 강인호는 우리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로 내세워진 듯 보인다.
특수학교인 ’자애학원’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고, 아이들의 죽음과 공포스러운 눈빛을 통해서 사건이 터질 것을 예감한다. 
연두를 통해서 알게된 성폭행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지게 되고, 강인호는 그 중심에 서게 된다. 무진에서 만나게 된 ’무진 인권운동쎈터 상근 간사’인 선배 서유진을 필두로 해서 자애학원의 교장과 생활지도교사 등의 성폭행과 폭력은 만천하게 공개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무진은 학연과 지연 그리고 부와 권력만 있으면 범죄자의 죄가 아닌 것으로 결정지어지는 세상이다. 비단 무진만 그러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게 죄가 되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인 것이다. 누군가 내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어놓은 느낌이다. 
부와 권력이 정의가 되고, 학연과 지연이 법이 되는 세상에서 자애학원의 아이들이 갈 곳은 없는 셈이다.

"너무 코미디 아니니? 우리 여기서 딸 키우고 살아야 하는 거지? 이 발정난 나라에서, 응?" (본문 131p)

- 변호사가 연두를 거짓말쟁이라고 몰아붙였어요. 누가 우리에게 이런 거짓말을 하라고 시켰느냐고 했어요. 선생님, 우리 그냥 기숙사로 가고 싶어요. 우리가 아니라 저 선생님들이 거짓말을 하는데 아무도 막아주지 않잖아요. 여기도 자애학교랑 똑같잖아요. (본문 209)

무진의 안개가 내 눈앞까지 찾아 온 듯 하다. 눈 앞이 흐릇한 것이 눈물인지, 안개인지, 분노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좌절할 수 없는 것은 서유진과 같이 없는 자들의 편에 서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강인호...그래...그도 정의를 위해서, 죄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뛰었고, 그들을 품에 안았다. 
허나, 그 정의의 끝에 강인호는 없었다.

내 비록 깃발을 휘날리는 그런 영웅은 아닌,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이 개들에게 짓밟히는 걸 그냥 바라볼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은 아니야. 무진은 내게 그걸 가르쳐주었어. (본문 282p)

우리는 정의의 편이다. 정의는 인터넷을 통해서 급속도로 확산되어 간다. 개(?)들을 향한 수많은 댓글과 촛불시위는 우리들 가슴속에 정의가 살아숨쉬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 정의는 바람이 불면 꺼질 듯한 미미한 힘이기에, 끝까지 투쟁할 저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는 강인호였고, 강인호는 우리였다. 
세상을 향한 정의의 부르짖음보다는 내 가족을 그리고 자신을 먼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쫓을 수 밖에 없는 위치가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세상은 ’돈’’권력’ 우선시 된다. 가족의 부르짖음이 돈앞에서 굴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에 꽉 막힌 돌덩이가 끝내 주저앉음을 느낀다. 

"가난하다고 그래도 되는 거니? 가난하다고 한 아이는 죽고 한 아이는 저토록 망가졌는데 가난하면, 그래! 제 아이한테 그런 짓 한 놈들한테 돈 받고 합의서를 써주는 거니? 가난하면 부모도 아니고 가난하면 다야?" (본문 232p)

책을 읽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가슴의 아림과 먹먹함은 가시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광란의 도가니’를 다 보여준 소설 도가니는 그렇게 모든 비리를 적날하게 보여줬다. 잊혀졌던 사건을 꺼내들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다시금 보여줌으로서 세상에 일침을 가한 저자 공지영.
그녀는 정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글로  보여준 셈이다. 그것은 마치 서유진이 모든 부조리와 싸우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녀의 노력이 꺼져가는 정의라는 이름의 불꽃을 다시금 타오르게 한다.
내 아이들이 이 그지같은 세상이 아닌, 안개가 걷힌 곳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 역시 서유진이 되어보려고 한다.
희망의 도가니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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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7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화세상 2009-12-28 13:41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겨찾기 한 서재인지 몰랐어요..ㅋㅋ
제가 알라딘을 잘 안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