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비시선 121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집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편안함보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그보다는 조금 당황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시’를 떠올릴때면 아름다움, 편안함 등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 시집에 담긴 시들은 오히려 긴장감을 주는 편이라 하는게 더 나을까?
자신의 생각을 시 속에 담은 그녀의 용기와 대담함 필체와 단어들이 시 속에서 힘이 느껴진다.

예쁜 단어로 포장된 시는 없다. 좋은 말로 포장되어 있는 글도 없다. 그저 현실의 삶을 그대로 시로 옮겨적었을 뿐...
운동, 혁명, 섹스, 이념, 삶, 사랑, 상처 등을 가차없이 써내려간 그녀는 시 속에는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 속에 담아 놓고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은 듯 하다.
저으기 당황스러웠던 그녀의 시들은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그게 우리네 인생사이기 때문은 아닐런지..

나는 그녀의 시 속에 글들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시가 모두 전투적이거나 모두 강렬함만이 전해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여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상처입은 가려인 여인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표현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는 꼭꼭 숨겨놓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것에서 나는 박수를 치고 싶다. 
그녀는 솔직하고 용기있는 시인이자, 가려린 여인일 뿐이다.

이 작은 책이 누군가에게 바쳐져야 한다면 무엇보다도 내 자신에게 바치고 싶다. 할 말은 많은데 어떻게 밖으로 내놓을지 몰라 한참을 더듬거려야 했다. 그러다보니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썼노라고 하면 이 너절한 시편들에 대한 변명이 될는지 모르겠다.
진짜로 싸워본 자만이 좌절할 수 있고 절망을 얘기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대체 내게 그 말을 조금이라도 입에 올릴 건덕지가 있는 건가고 여러 차례 반문해보았다.
125p (저자의 후기 중)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꼬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어침고프다, 사랑하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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