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가장 높은 곳의 정원 라임 청소년 문학 44
버지니아 아론슨 지음, 김지애 옮김 / 라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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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기 전, 2020년은 역대급 폭염이 다가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장마가 길어졌고 곳곳에서 폭우가 쏟아지면서 폭염보다는 홍수와의 사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는 지구 온난화에서 야기된 것으로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필요로 하고 있고 세계 곳곳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병든 지구를 낫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북극 빙하  면적이 25%만 남은 실정이며 2030년에는 북극 얼음이 사라진다고 할 정도로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그렇다면, 2066년 그린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의 장면은 단순히 허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성 싶다.

 

환경의 역사를 배우면서 지구상의 그 어떤 곳보다 극지방의 기온이 훨씬 더 빠르게 상승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린란드에서는 매해 수천억 톤의 얼음이 녹아서 사라졌다. 지표면 아래에 매장된 토탄에 불이 붙으면서 들불이 수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해수면 상승을 멈추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니!

첫 번째 해수면 상승이 일어났을 때가장 먼저 태평양의 작은 섬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다음에 바다는 방파제 역할을 하던 섬인 보초도들을 차례차례 집어삼켰고, 뒤이어 해안 도시를 비롯해 해안 지대를 둘러싼 전 지역을 사라지게 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륙의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기면서 수많은 강이 범람했다. 조수 방지 시스템과 제방, 수로들이 물의 유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침내 여섯 번째 해수면 상승 시기에는 소속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본문 41p)

 

빠른 속도로 환경이 변화한 탓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2066년의 그린란드에 사는 열여섯 살의 조니는 이주민 도시인 샤메드의 100층짜리 초고층 건물에서 살고 있다. 조니네 가족은 상품 판매를 위한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조니는 가족들의 시끌벅적한 집안 분위기에서 벗어나 옥상에 올라가 아빠가 제3차 세계 대전 때 사용했던 쌍안경으로 거리와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을 즐겼다. 늘 혼자만의 옥상이었던 곳에서 조니는 비둘기들에게 둘러쌓인 백발의 할아버지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레드 할아버지를 도와 낡은 닭장을 비둘기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동참하던 조니는 비둘기 똥에서 씨앗을 발견하게 되고 '씨앗, 정원, 진짜 음식'을 상상하게 되면서 레드의 도움으로 조니의 정원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도대체 버릴 줄을 모른다니까?"

"그게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천연자원을 아끼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건데……."

"그렇긴 하지. 문제는 물건을 많이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도 그만큼 줄었다는 거야. 그 바람에 가진 게 거의 없는 사람이 아주 많잖니? 사람들이 새 물건을 살 능력이 없어서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가 그만큼 나쁘다는 뜻이고. 실업률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빈곤층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거지." (본문 78p)

 

이 소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변한 도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동물이나 식물이 사라지고 3D프린터로 만들어진 가짜 음식을 먹으며 물건이 부족하여 쓰레기조차 가질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은 그야말로 암울하다. 초국적 기업인 모나코는 3D 음식은 물로 교육, 모든 정보에 대해 사전 검열과 통제를 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담은 영화나 소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권층들이 존재하고 있다. 진짜 음식을 먹고 정원을 가꾸는 그들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비특권층의 고통을 더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겠지만, 지구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부의 격차는 존재한다는 사실은 더 씁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니가 만들어가는 세상에는 우리가 가져야 할 희망이 존재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 전 읽었던 라임 《뉴 어스 프로젝트》가 생각났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피폐해진 환경 속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와 달리 소수의 특권층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여전히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 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아이시스가 식물을 키우고 아이들을 위해 교육을 하는 모습 등을 통해 보여주는 희망 또한 닮아있다. 과학의 발달은 삶의 풍요로움 대신 점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지만, 두 소설에서 보여주듯 우리가 꿈을 꾸는 한 희망은 언제나 존재한다. 미래 식량에 대한 섬뜩한 예측을 담은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지금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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