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 의사
포프 브록 지음, 조은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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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만병통치약을 파는 장수들을 간혹 볼 수 있다. 각종 악기 연주와 곡예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검증되지 않은 약들을 팔았지만, 그 시절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은 간절함에 약을 사곤 했다. 지금은 그 어떤 호객행위로도 이러한 약을 사는 이들이 많지 않겠지만 그 시절은 그랬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시대적 상황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가능케하는 힘을 가지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이 미국을 돌팔이들의 황금시대가 열리게끔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소담 《돌팔이 의사》는 20세기 미국 돌팔이들의 황금시대를 담아낸 실화소설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와 대공황 시기로 미국은 잃어버린 젊음의 활력을 한창때로 돌려놓는다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한 세대를 이끌어갈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서구사회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고 중장년층이 단기적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한 탓에 정력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억눌린 욕망과 간절함이 돌팔이들의 황금시대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 중심에 존 R. 브링클리가 있었다.

 

의료 사기는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번성했었다. 대부분의 사기가 탐욕을 표적으로 삼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의료 사기는 칼 융의 명제인 '죽음에 대한 공포와 기적에 대한 갈망'을 깊숙이 파고든다. 게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대체로 바보가 된다. (본문 23p)

 

이 책은 남자들의 잃어버린 정력을 되찾아주겠다며 염소 고환 수술이라는 위험천만한 의술을 강행한 존 R. 브링클리와 그를 쫓는 의료사기 사냥꾼 모리스 피시바인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담아냈다. 표지에 염소가 등장하는 이유가 그저 의사 느낌을 주는 동물을 그려낸 단순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브링클리의 의술이 염소 고환 수술이라는 점을 알고나니 표지 속 염소가 왠지 무시무시하게 보여진다. 아니, 이 소설의 또 하나의 희생양이기에 안타깝게 바라봐야할지도 모른다.

 

해식 박사는 브링클리 박사가 환자의 음낭 두 군데를 동일하게 절개하는 모습을 꼼꼼히 지켜보았다. '고환을 길게 절개하고 뭉툭한 바늘로 각 절개 부위에 0.5퍼센트 머큐로크롬을 2cc 주입'했다. 그러고는 막 적출한 염소 고환을 그 절개 부위에 이식한 후, '벌어진 조직'을 봉합했다. (본문 15p)

 

제약회사 영업 사원에 불과했던 브링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1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수술을 성공시키게 되었고, 생식선 이식의 선구자가 되고 만다. 그의 언변술 또한 그를 성공에 이르게 하는데 한 몫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촉망받는 학생이었던 모리스 피시바인은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의학협회지 편집장에게 속기 실력을 인정받아 조수 자리를 제안 받게 된다. 임시방편으로 시작된 이 일을 통해 오랫동안 독특한 경력을 쌓은 그는 브링클리의 뒤를 쫓는 지옥의 개가 된다.

 

"남자든 여자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정직한 사람이든 파렴치한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의사란 이름을 사용할 수 있으며, 환자가 낫든지 죽든지 책임지는 일 없이 누구에게나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이곳은 진정한 자유국가다!" (본문 24p)

 

이 소설은 맷 데이먼 주연으로 영화화가 예정된 작품이다. 누구나 의사란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고, 정력이라는 억눌린 욕망에 휩싸였던 시대에 뛰어난 언변과 능력으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브링클리 박사와 그를 쫓는 피시바인의 이야기가 영화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사뭇 기대가 된다. 초반부 이야기가 그 시대를 설명하고 있어 딱딱하게 시작되는 듯 했지만 금새 몰입되는 흥미로움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세상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은 채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이는 허구를 쫓는 우리들의 망상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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