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
노승영.박산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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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따라 작품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고 책을 읽는 편이다. 그러다 《카뮈로부터 온 편지》라는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소설은 ‘김화영의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번역 연재를 했던 6개월의 시간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한데다 실제 번역 과정을 소설로 재탄생시킨 일은 유례없는 일을 보여준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읽기전에는 번역에 따라 작품이 주는 재미와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크게 중점을 두지 않았었다. 서로 다른 두 언어가 딱 하나의 의미로 대응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로 인해 작품의 의미가 훼손될 수 있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번역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독특한 구성을 통해 번역을 옹호하며, 번역 방법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담아낸 《번역을 위한 변명》에 이어 이번에는 《번역가 모모씨의 일일》을 통해 번역의 세계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문학은 언어 예술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여기에 여타 예술 장르와의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문학은 음악이나 미술과는 달리 '언어'를 표현 수단으로 삼는다. 음악의 재료인 소리와, 미술의 재료인 이미지는 인류에게 보편적이어서 국경 밖으로 쉽게 전파되지만 문학은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 번역의 도움 없이는. (본문 17p)

 

이 책은 과학책 번역하는 노승영과 스릴러 번역하는 박산호의 공동저서로 번역과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북클럽 오리진>이라는 온라인 매체에 2016년 6월 28일에 '번역의 세계: 번역가 승영 씨의 일일'이라는 제목으로 칼럼 연재가 시작되고 2016년 7월 22일에 박산호 씨가 '번역의 세계: 장르 소설 전문 번역가 박산호의 "책바다에서 헤엄치기"라는 제목으로 합류하면서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글을 올렸는데 2017년 11월 9일까지 1년 반 가까이 쓴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게 된 것이다.

 

글쓰기는 인간의 일이고 편집은 신의 일이라고 한다. 번역은, 인간이 하는 신의 일이다. (본문 8p)

 

1장 번역이라는 직업, 2장 생계형 번역가의 하루, 3장 살펴보고, 톺아보고, 따져보기, 4장 번역가의 친구들, 5장 번역가를 꿈꾸는 당신에게 등 총 5장으로 나뉘어진 이 책은 번역가의 일상에서부터 번역과 관련한 에피소드, 번역의 테크닉, 번역가가 되는 법에 이르기까지 온갖 주제와 번역이라는 직업이 앞으로도 여전히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전망도 담아냈다.

 

번역은 텍스트에서 출발하지만 텍스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말하자면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상태,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존재할 뿐인 무정형의 상태에 언어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작가를 일종의 번역가로 볼 수도 있고 번역가를 일종의 작가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직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어떤 플롯을 한강은 한국어로 번역했고 스미스는 영어로 변역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어느 지점부터 작가와 번역가는 대등한 존재가 된다. (본문 18p)

 

이렇듯 《번역가 모모씨의 일일》은 두 명의 번역가가 이야기하는 번역과 번역가의 이야기이다. 번역가에 대한 일상을 실질적으로 담아내고 있어 앞으로 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유용한 책이 될 듯 싶다. 물론 잘 알지 못했던 변역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짜릿함이 있으니 누구라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번역가들은 자신이 다루는 텍스트를 읽고 또 읽고 다시 읽는다.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그 텍스트를 생각한다. 그 문장에서 작가가 한 말은 무슨 뜻일까? 작가가 살아 있고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면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실제로 그런 번역가들도 있다)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마음속으로 작가와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며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 일어나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줄기차게 매달린다. 그래서 번역가는 그 작품의 가장 성질한 독자이자 가장 열렬한 독자이기도 하다. (본문 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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