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의 편지 - 사람과 시대를 잇는 또 하나의 역사 사람을 향한 인문학
손문호 지음 / 가치창조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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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창조 《사람을 향한 인문학》은 우리 전통의 인문학을 재조명하는 시리즈로 그동안 가치에 비해 멀게만 느껴졌던 인문학을 우리 곁에 두고자 새롭게 시도하는 기획물이다. 이 시리즈는 쉽고 어려움을 떠나 인문학이 사람을 향해 있고 사람을 위해 존재함을 느끼게 하고 다소 어렵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역사조차도 바로 자기 곁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이 책 《옛사람의 편지》는 조선조 지식인들의 친필 편지를 역사의 흐름에 맞춰 풀어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고민과 연민을 실타래 풀듯 하나하나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한다.

 

지금은 이메일, SNS, 메신저 등을 대신하고 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편지는 소통의 도구였다. (이 책의 말을 인용하자면) 편지는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가는 가장 솔직한 자기표현이며 쓰는 이와 받는 이의 관계까지 숨김없이 보여주는 사람 사이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다양한 매체들이 생겨났지만 옛 선조들에게 편지는 유일한 개인적인 소통이었는데 여기에는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와 일상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까지 담겨져 있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이에 《옛사람의 편지》에서는  조선조 지식인들의 편지를 역사의 흐름에 맞춰 풀어내고 풍부한 해설을 담아 조선의 정치사회사를 새로운 분야로 읽어볼 수 있다.

 

이 책은 정도전이 정모주에게 쓰는 '정달가에게 보내는 편지',  남효은이 김시습에게 답하는 '동봉산인 잠공 기시습 선생께 답하는 편지', 김종직이 남효온에게 답하는 '추강 남효온에게 답하는 편지', 숙부 조원기가 조카 홍언필과 조광조에게 쓰는 '의정 홍자미와 대헌 조효직에게 보내는 편지', 이왕이 이전인에게 답하는 '이전인에게 답함', 이황과 조식이 주고받은 편지, 이황이 기대승에게 답하는 '기명언에게 보내는 답장', 율곡 이이가 이발에게 답하는 '이발에게 보내는 답장', 이순신의 난중 편지, 남구만이 )최석정에게 답하는 '최여화에게 보내는 답장', 송시열이 안방준에게 쓰는 '은봉 선생께 올림', 삼환지가 정사년(1797)7월 6일 저녁에 종저에게 받은 편지, 박지원의 편지, 정약용과 이기경이 주고받은 편지, 김정희의 편지로 나누어 옛사람들의 삶을 재생시킴과 동시에 역사의 흐름에 맞춰 정치적 사회적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애초 생각은 웅천이 부산으로 가는 길목인 데다 흉학한 왜적들이 요새를 지키고 나오지 않은지라, 명나라 군사가 남진하는 날 수군으로 거느리고 곧장 부산으로 가자면 필시 후방을 돌봐야 하는 걱정이 없지 않을 것이니, 그때 불로 왜적들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형세는 명나라 군사가 오래 지체하고 있으니, 만약 적함을 불살라 없앤다 해도 왜구를 잠시 머물러 있게 할 뿐입니다. 이러하니 영감께서 알려주신 계책을 어찌 써볼 수 있겠습니까. (중략) 앞으로 백성과 명나라 군사를 먹일 식량이 크게 걱정인데, 이를 마련할 방책이 딱히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각 전선에 배치된 군사들을 경내고 들여보내 파종에 진력하게 하고, 명나라 군사들의 소식을 듣는 즉시 바다로 나가게 하려고 합니다. (본문 229, 230p)

 

편지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인문서임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이 편지들을 읽다보면 그 당시의 생각과 정서, 삶 그리고 더 나아가 당시의 사건과 역사에 대해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미 알려진 편지보다 새로운 편지를 발굴하고자 했으며 32통의 편지를 통해 옛 사람들의 삶과 사상을 풍성하게 재생시키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편지로 역사를 담아내고 사람과 시대를 이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구성은 큰 의미를 띄고 있는 듯 보인다.

 

다만 '벼슬하는 것이 가난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가난하기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으나, 어찌 지금이 가난을 면하기 위해 벼슬할 때이겠느냐.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어서 벼슬을 하게 되지만 뒤로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벼슬을 그만두려면 쉽지 않다. 그래서 옛 성인도 벼슬 사양하는 것을 흰 칼날 밟는 것에 비유하여 어려운 일이라 했던 것이다. 무릇 남의 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설혹 네가 벼슬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위선이라고 비방하지 않을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이것이 나의 걱정인바 이번 천거가 기쁜 것만은 아니고 근심스러운 이유다. 오직 허물없고 명예 없이 지내는 것이 참으로 몸을 보전하는 길이라 할 것이다. (본문 91. 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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