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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평점 :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머하나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한 것도 없는 내가 시시한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가끔은 이런 시시한 내가 싫고, 나혼자 동떨어지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라는 책 제목이 왠지 나한테 해주는
말인 듯 했다. 그래, 시시하면 좀 어때. 책 제목처럼 특별할 것도 없는 삽화가 책도 좀 시시하게 보이긴 한다. 수많은 책 무덤 속에서 이 책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듯 싶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시시하다는 것 자체가 시시한게 아니라 평범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른다. 어쩌면 난
시시한게 아니라 평범한 건 아닐까? 시시해보였던 책이 눈에 확 들어오면서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풀어냈을지 너무 궁금해졌다.
컴컴한 독서실에서 엎드려 울던 내가, 도무지 될 것 같지 않은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또
고치다 컴퓨터 앞에서 졸던 내가, 알바를 마치고 땀에 젖은 유니폼을 갈아입지도 못한 채 기진맥진해 집으로 돌아오던 내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실패로 끝났기에 이야기는 커녕 추억으로도 남기지 못했던 내 삶이 가장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순간들과 함께. 늦었지만,
그래도 이제 적어 낼 수 있게 됐구나.
뒤늦게, 그리고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를 쓴다. (본문 6p)
합격수기 속 열악한 환경 속에서 딱 죽지만 않을 정도로 먹고 자며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끝에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는 흠잡을 데 없는 성공담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는 아직 못 붙은 놈의 하소연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였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 책은 [잘못 된 길에도 풍경이 있다][그의 무례는 내 탓이
아니다][청춘이기를 포기합니다][소비에 실패할 여유]로 나뉘어 총 46편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읽기 쉽게 쓰여진 에세이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공감을 주는 커다란 이야기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다시 한 번 안도한다. 나의 괴롭고 못난 시간들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것이었음에. 그리고 감사한다. 어느새 내가 가끔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본문
16p)
남들은 앞서가는데 나만 혼자 동떨어지는 느낌, 매번 실패하는 느낌 때문에 늘 시시한
내 자신이 미울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위안과 위로를 받게 된다. 어쩌면 나만 느끼는 공감과 위로가 아니리라.
그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나는 여전히 이루고 얻는 것보다 버리고 포기하는 게 더
많은 시시한 삶을 산다. 앞으로 버려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으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예전처럼 무섭지 않다. 조금 시시해지면 뭐
어떻단 말인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씩 덜어 낼수록 나는 나를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을 텐데. (본문 114p)
특별할 것 없는 삶의 지극히 평범한 소소한 일들의 이야기지만 큰 힘을 주는 이야기다.
나와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시시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아주 큰 힘을 가진 책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지금을 살아가는 시시한(지극한 평범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위로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줄
책!
그런데 참 희한했다. 내가 시시할 정도로 흔한 사람이라는 걸 내 입으로 이야기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애써 무엇이 되려고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고, 굳이 어떤 가능성을 보여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제야,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본문 1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