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감사용 (2disc)
김종현 감독, 이범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재미없는 영화였다
평론도 좋고 책이 워낙 유명해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다소 실망스럽다
너무 밋밋하고 배우들 연기도 너무 무난해서 진짜 평범 그 자체다
엔터 시네마에서 봤는데 우리까지 포함해서 열 명도 안 됐다
내 옆 자리에 혼자 영화 보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 사람에게 딱 어울리는 극장이다
그런데 왜 혼자 보러 왔을까?
이런 영화는 집에서 컴퓨터로 다운받아 보거나 비디오로 봐도 충분한데 말이다
혼자 이런 영화 보려고 시내까지 나오면 우울해지지 않을까?
혹시 공짜표가 딱 한 장 생겨서 온 건가?
아니면 시간 때우기?

어쩜 그렇게 연기를 무난하게 하는지...
못한다기 보다는 참 무난하고 평범하게 한다
다른 배우는 신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김수미는 연기 경력이 벌써 몇 십 년일텐데 참 연기를 펑범하게 한다
고두심이나 윤여정 같은 배우를 보면 진짜 감탄할 정도로 리얼하게 하는데, 김수미는 정말 평범하다
아마 그래서 역할을 많이 못 맡을 것이다
김범수도 정말 무난 그 자체다
얘는 아무리 봐도 스타로 성공하기 글렀다
일단 생긴 게 너무 평범하고 연기도 너무너무 평범하다
얘 짝으로 나온 여자애도 진짜 무난 그 자체다
정말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얘기다

대신 공유는 참 멋졌다
별 대사도 없는데 생긴 걸로 관심을 끈다
내가 보기에 공유가 훨씬 더 클 것 같다
이혁재야 원래 코메디언이니까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걸 테고
감사용을 갈구는 "양승관" 으로 나온 배우가 좀 낫다
캐릭터가 멋있어서 그런가?
솔직히 멋있다기 보다는 좀 싸가지가 없다
그래도 잘난 놈이 형편없는 팀에 있으면서 겪어야 하는 울분을 비교적 잘 그린다
자기는 올스타전까지 나가는 실력파인데 같은 팀 놈들이 패배주의에 젖어 형편없는 경기를 하면 얼마나 화가 날까?
감사용의 형으로 나온 배우도 리얼리티가 있다
약간 모자라 보이면서도 후까시를 세우며 동생을 격려하는 무능한 형의 모습을 잘 그린다
그렇지만 택시 사고 내면서 동생 응원하는 장면은 진짜 오버다

딱 한 장면은 기억에 많이 남았다
맨날 패전처리 전문 투수로 나서면서 괴로워 하던 감사용이 감독에게 (장항선도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워낙 형편없어서 그런가? 진짜 별 볼 일 없더라) 선발로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감독은 콧방귀도 안 뀌고 너한테 주어진 일이나 잘 하라고 한다
그게 프로라면서 감사용을 비참하게 만든다
사실 프로가 그런 거 아닌가?
실력만큼 대우 받는 거, 그게 프로니까 선발 나갈 실력 안 되면 자존심 상해도 패전 전문으로 나가야지, 어쩌겠어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비참해진 감사용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은 가슴이 좀 아팠다
나는 아직껏 그 정도로 괴로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사회에 나온지 얼마 안 되서 그런가?
그 정도로 힘들고 비참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적은 아직 없었다
나는 아직 인생의 쓴맛을 맛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경험을 겪고 나면, 또 잘 이겨내면 정말 강해질 것 같다
근육을 키울 때도 고통을 이기면서 근육이 파열된 후 다시 생성될 때 훨씬 커진다고 한다
그렇지만 파열만 되고 다시 안 생기면 어떻게 될까?
그러니까 이기지 못한 고난은 미리 피하는 게 상책이다
나이가 들면 그래서 안정을 추구하나 보다

박철순의 20승 재물이 된 경기는 정말 오버였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한 거라 역시 감사용의 패배로 끝났다
만약 가상의 이야기였다면 당연히 극적으로 이겼겠지
그러나 현실은 소설보다 언제나 냉정하고 잔인하다
1승도 못 해 본 감사용이 어느 날 선발로 나서 한국 최고의 투수를 상대로 어떻게 1승을 올리겠는가?
대신 패배 장면 후 바로 삼미 팀이 열심히 런닝하는 장면으로 바뀌면서 이들의 승승장구를 전하는 자막은 괜찮았다
산뜻한 구성이라고 할까?
결국 감사용은 그렇게 소원하던 1승을 올렸고 삼미도 그 해 패넌트 레이스에서 4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여자 주인공과의 과장된 로맨스가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이제 정말 영웅 대신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보다
옛날 같으면 당연히 박철순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20승을 극적으로 그릴텐데, 1승도 못 올린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다니 참 세상 많이 변했다
그래서 영화 보는 게 더 편하다
노태우가 주장하는 바로 그 보통 사람의 시대가 된 걸까?
아니면 다들 너무 똑똑해져 더 이상 잘난 놈들 얘기를 듣고 싶지 않은 걸까?
가히 주체성과 자의식의 시대라 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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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1-1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너무 흥분하시 마시길~~ ^^
 
알포인트 : 디지팩 한정판
공수창 감독, 감우성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알 포인트" 관람

감우성 때문에 봤는데 그런대로 느낌이 괜찮았다

다소 유치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귀신 소리나 피 같은 거)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진부하지 않고 뭔가 자아성찰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까?

나는 느낌이 괜찮아서 평론들을 찾아 봤는데 역시 비교적 호평을 들었다

알 포인트에서는 살아 나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왜냐면 그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군인들이기 때문이다

원한이 서려있다고 할까?

그럼 민간인이 이 곳에 오면 안 죽는다는 얘긴가?

귀신이 나온다는 진부하고 유치한 설정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적이나 귀신이 죽이는 게 아니라 실은 우리 자신이 서로를 죽인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무고한 양민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공포감이 소대원들을 짓누른다

참 재밌는 건 전투가 시작되면 미친듯이 총을 쏘다가도 1:1 로 대응하게 된다거나 눈 앞에서 총을 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멈칫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집단으로 할 때는 아무런 부담감도 안 갖다가, 혼자 하면 공포감과 두려움에 떠는 걸까?

알 포인트에 온 군인들만 죽은 이들의 원한에 사로잡혀 죽는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무고한 양민 학살 때문에 그들의 복수로 죽게 된다면 베트남전에 참가한 모든 군인들이 다 응징을 받아야지, 왜 하필 알 포인트에 주둔한 병사들만 본보기로 죽는단 말인가?

결국 상식적으로 따지자면 그 소대원들을 죽인 것은 원귀 따위가 아니라 전설이 주는 공포심과 두려움, 또 양민 학살에 대한 죄책감 등이 어우러져 자기편들에게 총을 휘갈긴 것에 불과하다

즉 내면의 공포감과 양심의 소리가 스스로를 죽인 셈이다

마지막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고뇌하는 지식인상에 딱 어울리는 감우성이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리라 믿었는데 결국 그도 죽고 만다

요즘 영화들은 주인공에게 관대하지가 않다

적의 모습이 보이거나 죽은 이들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총을 갈기지만, 실상은 자기 편 병사를 쏜다는 사실을 아는 감우성은 결국 눈이 먼 병사에게 자신을 쏘라고 명령한다

마지막 남은 병사를 자신이 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일까?

결국 소대원들을 보호해서 알 포인트로부터 빠져 나가려고 했던 감우성 역시 부하의 총에 맞고 죽는다

그로서는 그 부하를 죽이게 될까 봐 스스로 죽은 셈이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좀 유치한 면도 있지만, 내용은 진지하고 뭔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감우성이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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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가 아주 묘한 영화. 전 전쟁영화이자 공포영화인 이 영화가 관객에게 전쟁에 대한 성찰도, 억지 공포도 강요하지 않아서 더 좋았어요. 독특한 영화였죠. 근데, 그 아오자이( ? 맞나요?) 입고 나오던 하얀 베트남 소녀는 좀 너무 했어요.

marine 2004-12-10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우성한테 달려드는 그 여자요? 좀 오버긴 했죠 그런데 왜 남우 주연상 후보에도 못 올랐을까요? 괜찮은 영화였는데 흥행 실패한 걸 보면 아무래도 홍보 부족 아니었을까요?
 
트로이 한정판 (2disc)
볼프강 피터슨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영화였다
고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자칫 지나치게 큰 scale 때문에 지루해지기 쉽상인데 트로이는 모든 면이 빛나는 훌륭한 영화였다
확실히 영화의 주제가 과거와는 달라졌다
옛날에는 영웅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은 한 사람의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이 영화 역시 아킬레스와 헥토르라는 두 영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같지만, 영웅으로서의 삶보다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친구 등등을 버리고 전쟁터로 나가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괴로움과 고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웅 아킬레스 대신 인간 아킬레스의 이야기를 한다고 할까?

사실 영화의 배경 자체만으로도 감동스러운 면이 있다
처음 해설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3200년 전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나온다
3200년 전이라, 너무 아득해 잘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오래 전이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면 호모의 일리아드가 원전으로 등장한다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일이다
무려 3천여년 전에 쓰여진 서사시가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을 흔드는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책들 중 과연 몇 권이나 3천년 후 우리 후손들이 읽어 줄까를 생각하면 호머의 일리아드가 갖는 위대함을 금방 알 수 있다
고전이란 이처럼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인류에게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 위대한 문명의 진수 같다
영화 내용으로만 따지자면 아킬레스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이름을 얻은 셈이다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스 역을 맡았기 때문에 그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될 것 같은데, 의외로 영화는 헥토르와 아킬레스 두 사람의 관점으로 사건을 진행시킨다
오히려 인간적인 면으로 보자면 헥토르가 더 멋지고 비극적인 인물로도 보여진다
그는 전쟁 때 가장 앞에 서서 군대를 지휘하는 용맹하고 책임감 강한 왕자이지만, 명예욕이나 정복욕에 휩싸여 백성을 전쟁터로 모는 어리석은 군주는 아니다
또 조국 트로이의 힘을 과신하지 않고 가능하면 그리스의 공격을 피하려고 한다
아킬레스와 싸울 때 그는 이길 수 없음을 알지만 조국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성문을 열고 나아간다
그리고 유언처럼 아킬레스에게 명예로운 장례를 치룰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한다
사랑하는 사촌 동생을 헥토르 손에 잃은 아킬레스는 너는 망자가 되어서도 끔찍한 모습으로 이승을 떠돌거라면서 너의 귀와 눈과 입을 모조리 뽑아 버리겠다고 독설을 퍼붓는다
아킬레스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사다
이 두 사람의 결투 장면이 가장 압권이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나가는 헥토르의 막막한 심정이 보는 이를 아프게 했다
이런 비극성이 헥토르라는 캐릭터를 더 멋지고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평생을 받들어 온 아버지와 자기 백성들을 뒤로 하고 죽으러 나갈 때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헥토르의 절절한 심정이 나에게도 전이되어 안타까웠다
해 볼만한 싸움도 아니고 자신에게 역부족인 시대의 영웅과 결투를 치룰 수 밖에 없는 현실을 헥토르는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적에게 자신의 장례를 치룰 수 있는 자비라도 베풀어 주라고 부탁하지만 오히려 너는 죽어서도 편하게 쉬지 못할 거라는 저주를 들었을 때, 그는 얼마나 두렵고 공포스러웠을까?
이 영화에서 아킬레스라는 캐릭터는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로 나온다
그는 신이 사랑하는 영웅으로 어떤 전투에서도 패한 적이 없는 가장 용감하고 뛰어난 전사로 나온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과 싸울 때 가장 무섭고 떨릴 것 같다
헥토르는 열심히 싸우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백성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아킬레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아킬레스는 그를 죽이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마차에 그의 시체를 매단 후 질질 끌고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간다
트로이 최고의 전사가 시체가 되어 비참하게 적의 마차 뒤에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가족과 백성들의 슬픔과 분노, 또 그 적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더 감동적인 장면은 헥토르의 아버지인 트리암 왕이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스의 진영으로 숨어들어 갔다는 것이다
왕은 헥토르의 막사로 찾아가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키스를 한다
그는 방금 자신이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했다고 한다
아들을 죽인 적의 손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왕은 아킬레스에게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부탁한다
전사로서의 명예에 걸맞는 장례를 치룰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는 내 사촌을 죽였다고 말하는 아킬레스에게 왕은 천천히 말한다
당신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촌과 아들과 아버지들을 죽였는가?
그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이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웅이라는 아킬레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후 고통받는 한 인간에 불과하다
비록 전쟁터에서 적을 죽인 것이라고 하지만 그 적들 역시 집에서 애타고 무사귀환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내 편, 니 편을 떠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혹은 인간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전쟁이란 이렇게 허망하고 끔찍한 살육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킬레스 역시 그 비극성과 덧없음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는 트로이에 대한 총공격이 시작되기 전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면서 부관에게 말한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왕을 위해 싸운다지만 그들은 왕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그들이 충성을 바치는 아가멤논 왕은 정복욕에 사로잡혀 병사들을 전쟁터로 내모는 비겁하고 어리석은 군주일 뿐이다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얼마나 덧없고 허망한 개죽음인지 아킬레스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고대의 영웅에게 어울리지 않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죽어가는 군인 개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현대적인 관점이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전체의 보잘 것 없는, 이름없는 구성원에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 고귀한 인간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 같다
전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의 전환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대세로 보인다

헥토르 역시 전쟁의 허망함을 잘 알고 있는 현명하고 인간적인 군주로 나온다
비록 그 자신은 아버지인 왕을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뤄왔고 가장 앞에 서서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운 전사지만, 정작 전쟁 여부를 결정할 때는 언제나 화친 편에 선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입으로 전쟁의 승리를 외치고 평화주의자를 비겁하다고 비웃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 보면, 전쟁으로 이득을 챙기거나 불리한 상황이 되면 제일 먼저 도망가는 표리부동한 사람이기 일쑤다
아니면 어설픈 자존심 때문에 현실 판단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든가
헥토르는 어떻게 해서든 그리스와의 전쟁을 막기 위해 애쓴다
그러나 한 차례의 승리에 도취된 신하들은 그리스를 섬멸해야 한다도 떠들어댄다
특히 아폴로 신전의 신탁을 내세우며 그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신관들이 제일 밉살맞았다
전쟁이 터지면 제일 후방에 숨어 있을 사람들이 감히 신의 뜻을 내세우며 전쟁을 부추긴단 말인가?
트리암 왕은 인자하고 자상한 군주로 나오지만 상황 판단은 전혀 못하는 어리석은 왕이기도 하다
너무 늙어서 판단이 흐려진 것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신의 뜻에 의존하는 것일까?
영화의 전개상으로 보면 왕의 자질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파리스 왕자가 그리스의 왕비 헬렌을 데리고 왔을 때 헥토르는 그녀를 돌려 보내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왕은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라면서 오히려 파리스 왕자를 위로한다
한 사람의 사랑 놀음으로 온 국민이 희생당하게 생겼는데도 왕이란 사람이 사랑의 위대성 어쩌고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다
또 왕은 그리스가 쳐들어 왔을 때도 화친하자는 아들 헥토르의 말 대신, 아폴로 신전의 신탁에 의거해 공격을 감행한다
그 덕분에 그는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트로이의 영웅인 헥토르를 잃고 만다
왕의 어리석음은 계속된다
그리스군이 목마를 만들고 물러가자 둘째 아들 파리스는 적의 것이라면서 불태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왕은 신전에 바치라는 신관들의 말을 쫓아 성내로 목마를 들여 온다
결국 왕의 어리석은 판단들 때문에 트로이가 멸망한 셈이다
지도자란 자기가 이끄는 사람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가?
차라리 왕이 빨리 죽고 헥토르가 왕위에 올랐으면 트로이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헥토르가 위대한 영웅으로 남는 것은,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겁쟁이라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평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전쟁이 터지면 누구보다도 앞에 서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와 다르게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왕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그를 보필한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권력을 탐하지 않는 바람직한 모델상을 보여 준다고 해야 할까?

헥토르는 아킬레스와의 전투에 나가기 직전 아내에게 비밀통로를 가르쳐 주면서 자기가 변을 당하면 아들과 함께 이 길로 빠져 나가라고 한다
그 장면을 볼 때 헥토르에게 약간 실망했다
결국 영웅이란 사람도 제 가족의 안전만을 챙긴단 말인가?
그가 그토록 떠들어 온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은 어쩌란 말인가?
백성들은 버려두고 가족의 살길만 찾는 건 아닌가 싶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뒷말이 다시 그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는 아내와 아들만 피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많은 백성들을 이 길로 피신시키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트로이가 망한 후 마지막까지 죽음으로 버틴 트로이 병사들의 희생 덕분에 백성들은 그 통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 나간다
통로로 향하는 마지막 성문을 막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병사들의 희생이 감동적이었다
단칼에 죽는 것도 아니고 곧 죽음이 닥치리라는 공포와 대면했을 때 그 두려움을 이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켜 줘야 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죽음의 순간을 벗어나지 않는 병사들의 희생정신은 인간이 가진 고귀한 가치로 느껴졌다
결국 이렇게 살아 남은 백성들은 이탈리아 반도로 넘어가 로마를 건설한다
그리스 보다 더 위대하게 역사에 길이 남을 대로마 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자기 백성들을 사랑한 위대한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지혜가 트로이를 역사 속에 길이 남게 한 셈이다

역사적으로 궁금한 것은 과연 트로이의 목마가 존재했냐는 것이다
트로이라는 존재 자체가 최근에서야 입증된 걸 보면, 전설이 사실의 변형과 과장은 있을지언정 전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분명히 트로이의 목마 역시 뭔가 있는 사실의 변형일 것이다
진실은 뭘까?
설마 전설처럼 진짜로 거대한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 보내 트로이를 함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적이 만든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을 함부로 성에 들인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
트로이 정복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나 증거물이 발견되서 그 진상을 속시원히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전투 장면도 실감나게 잘 보여주고, 인물 하나하나의 캐릭터도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개성있는 살아있는 모습이라 마음에 든다
세련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영웅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내면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를 건들었다는 점에서 높이 사고 싶다
더불어 브래드 피트의 근육 장난 아니게 멋지다
대체 언제부터 이런 근육질 남자였단 말인가!!
전투복을 입고 칼을 든 팔 근육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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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2 권을 읽을 때는 바로 이게 현대 예술이구나, 무릎을 칠 정도로 탄복했는데 마지막 3권은 혼란스럽다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내용이 사라지고 형식마저 사라진 현대 예술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풍요를 생산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는 자본주의 법칙에 손을 들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과 개념의 확장이 나에게는 너무 부담스럽다

뫼비우스의 띠를 그린 에셔나 대상을 다르게 관찰한 마그리트까지는 이해가 갔다
그런데 3권에 등장하는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은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그가 관람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적어도 관람객에게 어떤 느낌이라도 줘야 하는데 갈수록 현대 예술은 관객과의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 장에 저자는 한 예를 들어 현대 예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려는데 캔버스가 찢어졌다
예술가는 장난 삼아 그냥 제출했다
유명한 평론가가 고민한다
내가 이걸 살려, 말어?
평론가는 신문에 온갖 현학적 수사를 동원해 찢어진 캔버스를 새로운 양식인양 떠벌려 준다
본인도 무슨 말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평론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평범한 독자들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평론가의 권위를 믿고 수 천만원에 그림을 산다
그것이 의미가 있냐, 없냐는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 그림은 이미 권위있는 평론가의 호평을 얻었기 때문에 곧 가격이 뛸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술은 이런 식으로 존속해 온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고개를 흔든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이란 어떤 의미를 갖다 붙이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얘기인가?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없는 현대 예술은 더더군다나 누가 그것을 평가하느냐에 달라질 것이다
문득 세상의 모든 관계는 권력 관계라는 푸코의 말이 떠오른다
평범한 관객은 권위 있는 평론가가 부여하는 의미를 받아들여 이해하도록 애써야 한다는 말인가?

표현 양식의 파괴라는 점은 마음에 든다
특정한 양식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허락됐다는 점에서 현대 예술은 민주주의의를 실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권위가 사라진만큼 기준도 함께 사라져 옳고 그름, 혹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현상일까?
현대 예술은 사물을 묘사하는 대신 철학을 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는 행위는 그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을 뿐, 본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것처럼 정교하게 그리는 기술은 이제 힘을 잃어 버렸다
물감을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도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는 시대이니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 보다 직접 그리는 것이 자아 실현에 한 수 위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제 평범한 관객들도 직접 붓을 들고 자신을 표현할 일이다
잘 그리냐, 못 그리냐는 더 이상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창조적이고 독특하게 표현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도 부담없이 물감을 집어 들어 볼까?

현대 예술은 존재자 대신 존재를 구현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꽃을 그리면 꽃이라는 존재자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므로 얼마나 실제 꽃처럼 그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꽃 안에 숨어 있는 의미, 즉 존재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해진다
마그리트 그림을 보면 꽃 안에서 부엉이의 형상을 보고, 비가 올 때 빗방울에서 사람의 형상을 발견한다
꽃밭에서 부엉이가 피고, 하늘에서 사람이 내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된다
존재자 대신 존재를 그린다...
문득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내가 꽃이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는 너는 의미없는 사물이었다
그러나 내가 꽃이라고 명명한 후 그 이름을 불러 주면 비로소 너는 하나의 의미있는 사물이 된다...
현대 예술은 너무 어렵다
모더니즘이 형식과 내용의 파괴를 통해 남과 내가 다름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서로 다르게 표현하다 보니 결국 다 똑같아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의 말처럼 전시회에 변기 같다 놓고, 똑같은 박스 쌓아 놓는 건 뒤샹이나 앤디 워홀 하나로 족하다
전시회의 변기를 여러 번 갖다 놀 필요가 있겠는가?

미국 유학간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유머 감각이라는 말을 한다
창의성 부족한 거야 그런다 치지만 대체 유머 감각 부족한 게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
코메디언 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유머란 기존의 권위에 억압받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재기발랄한 감각을 말하는 게 아닐까?
세상은 갈수록 다원화 되가고 하나의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예전에는 전체의 질서를 깨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듯) 21세기에는 남과 똑같이 생각하면 발전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
안정과 질서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어울리는 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왕따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지배 원리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주체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따라야 할 모범은 없다
개성이나 창조성이야 말로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개념이 될 것이다
예술을 대할 때도 내 머리로 생각하면 된다
평론가의 거창한 이론에 기죽을 것 없고, 작품을 통해 예술가와 직접 교류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권위주의는 해체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 매체라는 강력한 힘이 대중을 하나의 흐름으로 몰아 세우고 있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남을 모방하고 연예인을 따라하는 게 바로 젊은이들의 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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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와꼬맹이 2004-12-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세상의 모든 관계는 권력 관계라는 푸코의 말이 떠오른다"-윗글 인용

미술,예술에 대해 흔히 말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권력에 의한 예술의 제단은 결국 본심을 잃은 주술에 불과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의 어투가 투박하기도 하지만 "권력"은 가정에서부터 사라져야할 무서운 병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marine 2004-12-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파시즘을 청산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 하겠지요?

마늘빵 2004-12-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미학오딧세이를 보셨군요. 이상하게 보고싶으면서도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에요. ㅡㅡ; 왜 그렇지?

marine 2004-12-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보는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전 미학 오디세이 메모하면서 열심히 읽었는데... 꼭 읽어 보시길^^
 
무대 뒤의 오페라
밀턴 브레너 지음, 김대웅 옮김 / 아침이슬 / 200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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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훨씬 재미없고 지루하다
가끔 외국책을 읽다 보면 정서가 안 맞는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특히 인문학 분야의 책은 더욱 그렇다
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장황한 설명들이 지루해질 때가 있다
(이건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를 보면 자잘한 일상의 모습에서도 쉽게 웃음을 터뜨리는 반면 외국 영화는 아무래도 덜 웃게 된다 난 "택시" 가 왜 프랑스의 코메디 영화인지 정말 모르겠다)
이 책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구석이 있긴 한데 그래도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켜 준다
간단히 말하면 오페라에 얽힌 뒷얘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페라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나면 더 이상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궁금할 게 없으니까 그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창작 과정 등을 설명한 책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읽었는데 솔직히 지루하다
박홍규가 쓴 "비바 오페라" 가 훨씬 재밌다
같은 의미로 김원일이 쓴 "피카소" 가 더 재밌다
한국 사람이 쓴 책이 좀 더 잘 와 닿는다

오페라는 처음부터 오페라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했는데, 대부분 원작이 존재한다
소설이 먼저 힛트친 후 작곡가가 곡을 붙여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모짜르트나 베토벤 하면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라 그런지 아주 옛날 사람 같지만 의외로 18세기 사람 밖에 안 된다
특히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때도 있었으니 완전히 근대인인 셈이다
그런데 왜 아주 옛날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워낙 큰 명성을 획득한 위대한 인물들이라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가?
베토벤은 무척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라 그의 단 하나 뿐인 오페라 "피델리오" 를 두고 극장주와 격한 대립을 했다고 한다
그가 작곡한 "피델리오" 의 원본이 워낙 길고 지루해 길이를 줄이려고 하자 베토벤은 한 음절이라도 바뀌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은 3막짜리가 2막으로 줄어 들어 오늘날 전해지는 걸 보면, 천재들의 고집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바그너가 혁명에 참여했다는 건 참 의외다
바그너 하면 히틀러가 연상되고 왠지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제국주의적 인간 같은데 의외로 드레스덴 혁명에 참가해 스위스로 망명하는 바람에 그렇게도 공을 들인  "로엔그린" 을 11년 후에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가 혁명 정신에 고취됐다기 보다는 "로엔그린" 을 상영할 수 없다고 하자 극장주에게 악감정을 품고 홧김에 혁명에 뛰어들긴 했지만 (저자가 바그너의 의도를 삐딱하게 보고 있으니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어쨌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니 그 용기가 대단하다
나중에 바그너는 친구인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한다
코지마는 리스트의 제자인 뵐로의 아내였으니, 이 사랑도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였을 것이다
바그너는 여자 문제도 복잡했고 정치적 성향 등으로 봐서 꽤나 격정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오페라들은 워낙 거창하고 복잡해서 "니벨룽의 반지" 같은 걸 보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인 "춘희" 는 저자 뒤마의 자전적 얘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속사정을 알고 보면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결핵에 걸린 가엾은 동백 아가씨 마르그리트의 실제 모델 마리는 뒤마와 사랑했지만, 그가 그녀의 사치스런 생활에 돈을 대 주기 힘들어지자 결국 8개월 만에 헤어지고 만다
아름답지만 돈이 없는 젊은 여성이 19세기 파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춘 뿐이었다고 하니, 슬프지만 그게 현실인 모양이다
소설이나 오페라에서라면 마리와 알프레드가 죽도록 사랑하지만 아버지에 의해 헤어지는데 현실에서의 마리는 돈없는 알프레드, 즉 뒤마를 스스로 떠난다
남자의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마리로서는 자신의 우아한 사교 생활을 서포트 할 수 없는 뒤마 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뒤마의 아버지 대 뒤마는 호색적이고 정열적인 인간으로 아들의 사랑을 지지했다고 한다
현실은 결국 돈이 우선이었으니, 씁쓰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뒤마가 그녀에게 보낸 이별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을 원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만 주는 사랑에 만족할 가난뱅이도 아니다, 결국 당신을 떠나는 수 밖에...
결국 그녀는 뒷돈을 충분히 대줄 남자와 결혼했고 한 때는 리스트의 연인이 되기도 했단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아주 빼어난 미인은 아닌 것 같은데, 교양있고 세련된 매너로 남성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어쨌든 소설 "춘희" 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로 예술사에 길이 남을 여성이 됐으니, 비록 결핵으로 일찍 죽은 가엾은 매춘부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모짜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이 바로 "세비야의 이발사"다
처음 이 이야기들을 접할 때는 복잡해서 제대로 정리가 안 됐는데 몇 권의 책에서 반복해 읽다 보니 이제야 정리가 된다
난 이해가 안 갔던 게 모짜르트가 로시니 보다 앞선 사람인데 어떻게 "피가로의 결혼"이 "세비야의 이발사" 보다 후편이란 말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두 편의 원작은 모두 루이 16세 시대 사람인 보마르셰의 유명한 희곡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로시니나 모짜르트 모두 기존에 있던 유명한 희곡들을 오페라고 편곡한 것이다
"세비야의 이발사" 의 경우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도 많은데 로시니의 것이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발사 피가로가 바로 보마르셰 자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전편인 "세비야의 이발사" 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로지나와 결혼하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런 긍정적인 인물을 후편 "피가로의 결혼" 에서는 사라진 초야권을 부활시켜 자기 아내의 시녀인 수잔나를 가로채려는 나쁜 인물로 탈바꿈 시킨다
보통 한 번 착한 사람은 계속 착한 사람이고 극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선한 인물이기 마련인데, 전편에서 착한 사람이 후편에서 갑자기 나빠지는 변화가 참 새롭다
오페라 자체가 원래 개연성이나 논리적인 면이 좀 부족하긴 한데, 하여간 인물의 이런 입체적인 변화가 이 희곡을 오늘날까지 존속시킨 힘인지도 모른다

모짜르트가 시대의 반항아였다는 것도 신기하게 들린다
그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결사대의 일원이었는데 저자의 말로는 특별히 의식이 있어서 가입한 건 아니고 당시에 이것이 유행이라 그가 오페라 "마술 피리" 에 이 소재를 끌어들였다고 한다
"마술 피리" 에 등장하는 밤의 여왕이 바로 프리메이슨단을 탄압하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빗댄 것이라고 해서 당시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박홍규가 쓴 "비바 오페라" 를 보면 이 "마술 피리" 야 말로 시대의 압제에 저항하는 의식있는 오페라라고 하는데, 저항 어쩌고 하는 상징을 갖다 붙이는 건 말도 안 되는 넌센스라는 게 이 책의 논조다
프리메이슨단이 유명하니까 대중들이 흥미있을 만한 소재를 끌어온 것 뿐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모짜르트 자신은 기득권층에 있지 않은 건 분명하다
위대한 천재였을 모짜르트가 음악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귀족이나 왕에게 굽신거렸을 리 만무하다

여러 가지 재밌는 일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페라 자체도 재밌지만 거기에 얽힌 비화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읽기는 만만치 않다
문화적 차이가 커서 그런 것 같다
또 요즘 얘기가 아니고 2,3 백년 전 얘기다 보니 쉽게 와닿지 않는 게 많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빨리 성공했더라면 판소리나 탈춤 같은 전통 예술들도 생생하게 살아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을까?
유럽 사람들에게 오페라는 하나의 휴식이고 생활이었다고 한다
텔레비젼도 없고 책도 쉽게 접할 수 없으니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오페라는 시간 때우기 좋은 대중 예술이었던 셈이다
유럽의 전통 예술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문화로써 자리잡고, 몇 백년 전의 뒷얘기들도 하나의 책이 되어 극동에 사는 외국인까지 읽고 있는데, 정작 우리의 전통 문화는 그 수명을 다해 그저 전통이라는 이름 만으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처지인 게 안타깝다
판소리나 탈춤, 가야금 같은 전통 예술들이 여전히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생산력 있는 21세기의 문화로써 자리잡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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