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2 권을 읽을 때는 바로 이게 현대 예술이구나, 무릎을 칠 정도로 탄복했는데 마지막 3권은 혼란스럽다
대체 예술이란 무엇인가?
내용이 사라지고 형식마저 사라진 현대 예술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풍요를 생산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는 자본주의 법칙에 손을 들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생각과 개념의 확장이 나에게는 너무 부담스럽다

뫼비우스의 띠를 그린 에셔나 대상을 다르게 관찰한 마그리트까지는 이해가 갔다
그런데 3권에 등장하는 피라네시의 상상의 감옥은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그가 관람객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적어도 관람객에게 어떤 느낌이라도 줘야 하는데 갈수록 현대 예술은 관객과의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 장에 저자는 한 예를 들어 현대 예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 예술가가 그림을 그리려는데 캔버스가 찢어졌다
예술가는 장난 삼아 그냥 제출했다
유명한 평론가가 고민한다
내가 이걸 살려, 말어?
평론가는 신문에 온갖 현학적 수사를 동원해 찢어진 캔버스를 새로운 양식인양 떠벌려 준다
본인도 무슨 말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평론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평범한 독자들이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평론가의 권위를 믿고 수 천만원에 그림을 산다
그것이 의미가 있냐, 없냐는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면 그 그림은 이미 권위있는 평론가의 호평을 얻었기 때문에 곧 가격이 뛸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술은 이런 식으로 존속해 온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고개를 흔든다
그렇다면 결국 예술이란 어떤 의미를 갖다 붙이냐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는 얘기인가?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없는 현대 예술은 더더군다나 누가 그것을 평가하느냐에 달라질 것이다
문득 세상의 모든 관계는 권력 관계라는 푸코의 말이 떠오른다
평범한 관객은 권위 있는 평론가가 부여하는 의미를 받아들여 이해하도록 애써야 한다는 말인가?

표현 양식의 파괴라는 점은 마음에 든다
특정한 양식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 허락됐다는 점에서 현대 예술은 민주주의의를 실현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권위가 사라진만큼 기준도 함께 사라져 옳고 그름, 혹은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는 것조차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현상일까?
현대 예술은 사물을 묘사하는 대신 철학을 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는 행위는 그저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방법에 지나지 않을 뿐, 본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것처럼 정교하게 그리는 기술은 이제 힘을 잃어 버렸다
물감을 캔버스에 흩뿌리는 것도 하나의 예술로 인정받는 시대이니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 보다 직접 그리는 것이 자아 실현에 한 수 위라는 걸 생각해 보면, 이제 평범한 관객들도 직접 붓을 들고 자신을 표현할 일이다
잘 그리냐, 못 그리냐는 더 이상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창조적이고 독특하게 표현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나도 부담없이 물감을 집어 들어 볼까?

현대 예술은 존재자 대신 존재를 구현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꽃을 그리면 꽃이라는 존재자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므로 얼마나 실제 꽃처럼 그리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꽃 안에 숨어 있는 의미, 즉 존재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해진다
마그리트 그림을 보면 꽃 안에서 부엉이의 형상을 보고, 비가 올 때 빗방울에서 사람의 형상을 발견한다
꽃밭에서 부엉이가 피고, 하늘에서 사람이 내리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된다
존재자 대신 존재를 그린다...
문득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내가 꽃이라고 이름 붙이기 전에는 너는 의미없는 사물이었다
그러나 내가 꽃이라고 명명한 후 그 이름을 불러 주면 비로소 너는 하나의 의미있는 사물이 된다...
현대 예술은 너무 어렵다
모더니즘이 형식과 내용의 파괴를 통해 남과 내가 다름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은 서로 다르게 표현하다 보니 결국 다 똑같아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의 말처럼 전시회에 변기 같다 놓고, 똑같은 박스 쌓아 놓는 건 뒤샹이나 앤디 워홀 하나로 족하다
전시회의 변기를 여러 번 갖다 놀 필요가 있겠는가?

미국 유학간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유머 감각이라는 말을 한다
창의성 부족한 거야 그런다 치지만 대체 유머 감각 부족한 게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인가?
코메디언 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유머란 기존의 권위에 억압받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재기발랄한 감각을 말하는 게 아닐까?
세상은 갈수록 다원화 되가고 하나의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예전에는 전체의 질서를 깨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셨듯) 21세기에는 남과 똑같이 생각하면 발전할 수가 없게 돼 버렸다
안정과 질서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어울리는 말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왕따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지배 원리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인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주체성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더 이상 따라야 할 모범은 없다
개성이나 창조성이야 말로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개념이 될 것이다
예술을 대할 때도 내 머리로 생각하면 된다
평론가의 거창한 이론에 기죽을 것 없고, 작품을 통해 예술가와 직접 교류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권위주의는 해체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 매체라는 강력한 힘이 대중을 하나의 흐름으로 몰아 세우고 있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남을 모방하고 연예인을 따라하는 게 바로 젊은이들의 현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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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와꼬맹이 2004-12-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세상의 모든 관계는 권력 관계라는 푸코의 말이 떠오른다"-윗글 인용

미술,예술에 대해 흔히 말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권력에 의한 예술의 제단은 결국 본심을 잃은 주술에 불과할 수 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의 어투가 투박하기도 하지만 "권력"은 가정에서부터 사라져야할 무서운 병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marine 2004-12-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파시즘을 청산해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 하겠지요?

마늘빵 2004-12-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미학오딧세이를 보셨군요. 이상하게 보고싶으면서도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에요. ㅡㅡ; 왜 그렇지?

marine 2004-12-20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보는 것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전 미학 오디세이 메모하면서 열심히 읽었는데... 꼭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