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의 오페라
밀턴 브레너 지음, 김대웅 옮김 / 아침이슬 / 200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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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훨씬 재미없고 지루하다
가끔 외국책을 읽다 보면 정서가 안 맞는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특히 인문학 분야의 책은 더욱 그렇다
그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고 장황한 설명들이 지루해질 때가 있다
(이건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 영화를 보면 자잘한 일상의 모습에서도 쉽게 웃음을 터뜨리는 반면 외국 영화는 아무래도 덜 웃게 된다 난 "택시" 가 왜 프랑스의 코메디 영화인지 정말 모르겠다)
이 책 역시 지루하고 따분한 구석이 있긴 한데 그래도 오페라에 대한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켜 준다
간단히 말하면 오페라에 얽힌 뒷얘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페라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나면 더 이상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궁금할 게 없으니까 그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창작 과정 등을 설명한 책도 괜찮을 것 같아서 읽었는데 솔직히 지루하다
박홍규가 쓴 "비바 오페라" 가 훨씬 재밌다
같은 의미로 김원일이 쓴 "피카소" 가 더 재밌다
한국 사람이 쓴 책이 좀 더 잘 와 닿는다

오페라는 처음부터 오페라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했는데, 대부분 원작이 존재한다
소설이 먼저 힛트친 후 작곡가가 곡을 붙여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모짜르트나 베토벤 하면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라 그런지 아주 옛날 사람 같지만 의외로 18세기 사람 밖에 안 된다
특히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때도 있었으니 완전히 근대인인 셈이다
그런데 왜 아주 옛날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워낙 큰 명성을 획득한 위대한 인물들이라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가?
베토벤은 무척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라 그의 단 하나 뿐인 오페라 "피델리오" 를 두고 극장주와 격한 대립을 했다고 한다
그가 작곡한 "피델리오" 의 원본이 워낙 길고 지루해 길이를 줄이려고 하자 베토벤은 한 음절이라도 바뀌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은 3막짜리가 2막으로 줄어 들어 오늘날 전해지는 걸 보면, 천재들의 고집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바그너가 혁명에 참여했다는 건 참 의외다
바그너 하면 히틀러가 연상되고 왠지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제국주의적 인간 같은데 의외로 드레스덴 혁명에 참가해 스위스로 망명하는 바람에 그렇게도 공을 들인  "로엔그린" 을 11년 후에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가 혁명 정신에 고취됐다기 보다는 "로엔그린" 을 상영할 수 없다고 하자 극장주에게 악감정을 품고 홧김에 혁명에 뛰어들긴 했지만 (저자가 바그너의 의도를 삐딱하게 보고 있으니 독자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어쨌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으니 그 용기가 대단하다
나중에 바그너는 친구인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한다
코지마는 리스트의 제자인 뵐로의 아내였으니, 이 사랑도 보통 시끄러운 게 아니였을 것이다
바그너는 여자 문제도 복잡했고 정치적 성향 등으로 봐서 꽤나 격정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오페라들은 워낙 거창하고 복잡해서 "니벨룽의 반지" 같은 걸 보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인 "춘희" 는 저자 뒤마의 자전적 얘기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는데 속사정을 알고 보면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결핵에 걸린 가엾은 동백 아가씨 마르그리트의 실제 모델 마리는 뒤마와 사랑했지만, 그가 그녀의 사치스런 생활에 돈을 대 주기 힘들어지자 결국 8개월 만에 헤어지고 만다
아름답지만 돈이 없는 젊은 여성이 19세기 파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춘 뿐이었다고 하니, 슬프지만 그게 현실인 모양이다
소설이나 오페라에서라면 마리와 알프레드가 죽도록 사랑하지만 아버지에 의해 헤어지는데 현실에서의 마리는 돈없는 알프레드, 즉 뒤마를 스스로 떠난다
남자의 수입에 의존해야 했던 마리로서는 자신의 우아한 사교 생활을 서포트 할 수 없는 뒤마 곁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뒤마의 아버지 대 뒤마는 호색적이고 정열적인 인간으로 아들의 사랑을 지지했다고 한다
현실은 결국 돈이 우선이었으니, 씁쓰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뒤마가 그녀에게 보낸 이별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을 원하는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만 주는 사랑에 만족할 가난뱅이도 아니다, 결국 당신을 떠나는 수 밖에...
결국 그녀는 뒷돈을 충분히 대줄 남자와 결혼했고 한 때는 리스트의 연인이 되기도 했단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아주 빼어난 미인은 아닌 것 같은데, 교양있고 세련된 매너로 남성들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어쨌든 소설 "춘희" 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로 예술사에 길이 남을 여성이 됐으니, 비록 결핵으로 일찍 죽은 가엾은 매춘부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모짜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이 바로 "세비야의 이발사"다
처음 이 이야기들을 접할 때는 복잡해서 제대로 정리가 안 됐는데 몇 권의 책에서 반복해 읽다 보니 이제야 정리가 된다
난 이해가 안 갔던 게 모짜르트가 로시니 보다 앞선 사람인데 어떻게 "피가로의 결혼"이 "세비야의 이발사" 보다 후편이란 말인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두 편의 원작은 모두 루이 16세 시대 사람인 보마르셰의 유명한 희곡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로시니나 모짜르트 모두 기존에 있던 유명한 희곡들을 오페라고 편곡한 것이다
"세비야의 이발사" 의 경우 다른 사람이 작곡한 것도 많은데 로시니의 것이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이발사 피가로가 바로 보마르셰 자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전편인 "세비야의 이발사" 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로지나와 결혼하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런 긍정적인 인물을 후편 "피가로의 결혼" 에서는 사라진 초야권을 부활시켜 자기 아내의 시녀인 수잔나를 가로채려는 나쁜 인물로 탈바꿈 시킨다
보통 한 번 착한 사람은 계속 착한 사람이고 극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선한 인물이기 마련인데, 전편에서 착한 사람이 후편에서 갑자기 나빠지는 변화가 참 새롭다
오페라 자체가 원래 개연성이나 논리적인 면이 좀 부족하긴 한데, 하여간 인물의 이런 입체적인 변화가 이 희곡을 오늘날까지 존속시킨 힘인지도 모른다

모짜르트가 시대의 반항아였다는 것도 신기하게 들린다
그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결사대의 일원이었는데 저자의 말로는 특별히 의식이 있어서 가입한 건 아니고 당시에 이것이 유행이라 그가 오페라 "마술 피리" 에 이 소재를 끌어들였다고 한다
"마술 피리" 에 등장하는 밤의 여왕이 바로 프리메이슨단을 탄압하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빗댄 것이라고 해서 당시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박홍규가 쓴 "비바 오페라" 를 보면 이 "마술 피리" 야 말로 시대의 압제에 저항하는 의식있는 오페라라고 하는데, 저항 어쩌고 하는 상징을 갖다 붙이는 건 말도 안 되는 넌센스라는 게 이 책의 논조다
프리메이슨단이 유명하니까 대중들이 흥미있을 만한 소재를 끌어온 것 뿐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모짜르트 자신은 기득권층에 있지 않은 건 분명하다
위대한 천재였을 모짜르트가 음악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귀족이나 왕에게 굽신거렸을 리 만무하다

여러 가지 재밌는 일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오페라 자체도 재밌지만 거기에 얽힌 비화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읽기는 만만치 않다
문화적 차이가 커서 그런 것 같다
또 요즘 얘기가 아니고 2,3 백년 전 얘기다 보니 쉽게 와닿지 않는 게 많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빨리 성공했더라면 판소리나 탈춤 같은 전통 예술들도 생생하게 살아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지 않을까?
유럽 사람들에게 오페라는 하나의 휴식이고 생활이었다고 한다
텔레비젼도 없고 책도 쉽게 접할 수 없으니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오페라는 시간 때우기 좋은 대중 예술이었던 셈이다
유럽의 전통 예술들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문화로써 자리잡고, 몇 백년 전의 뒷얘기들도 하나의 책이 되어 극동에 사는 외국인까지 읽고 있는데, 정작 우리의 전통 문화는 그 수명을 다해 그저 전통이라는 이름 만으로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처지인 게 안타깝다
판소리나 탈춤, 가야금 같은 전통 예술들이 여전히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생산력 있는 21세기의 문화로써 자리잡는 것은 요원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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