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0 - 미국 : 미국인 편 먼나라 이웃나라 10
이원복 글 그림 / 김영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대통령편보다 훨씬 더 재밌게 읽었다
무엇보다 미국인은 이러하다는 정형화된 단정짓기가 없어서 부담이 없었다
미국에서 몇 년 산 사람들의 미국 문화 안내기를 읽어 보면 미국에 대한 단정적인 얘기들이 많아 자칫 편견을 갖기 쉬운데, 저자는 미국에 체류한 기간이 1년 뿐이라면서 오히려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자료들을 통해 조심스레 소개한다
책을 쓸 때 한 가지 관점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어떤 주장이든 100% 옳을 수는 없기 때문에 한 쪽을 취하면 반대편의 비난을 받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양쪽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 중립적인 입장을 편다면 자칫 전체 내용이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쪽으로 흐르기 쉽상이다
모름지기 책이란 일관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반미와 친미가 대립적인 시점에서 미국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건 참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되도록 객관적으로 미국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애썼지만 이 쪽도 나쁘고 저 쪽도 나쁘다는 양비론적인 느낌이 없지 않다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일관된 주장을 펼치며, 반론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갖기란 참 어려운 일 같다
만화라는 양식의 한계이면서도 장점이 이 문제점을 비켜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만약 이 책이 만화가 아니라 글로 서술됐다면 애매모호한 책이 됐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미국 사회를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 선거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얻게 된 점이 기쁘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의 대선은 우리에게도 큰 관심사가 됐다
더구나 2000년도의 선거에서는 앨 고어가 조지 부시를 전체 득표수에는 앞서면서도 선거인단 수에서 패하는 기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에 대체 민주주의의 산실이란 미국에서 왜 저 같은 일이 벌어지는지 무척 궁금한 터였다
저자는 이것을 파퓰리즘을 경계하기 위해 헌법의 아버지들이 고안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미국이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뽑는 이유는, 땅덩어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선거인단을 먼저 뽑은 후 그 사람들이 국민의 뜻에 따라 투표하는 간접 선거 방식을 택했다고 배웠다
과학 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에서 단지 국토가 넓다는 이유만으로 간접 선거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아 질문을 했지만 만족스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아마 그 선생님도 미국 선거제에 대해 정확히 모르셨던 것 같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산실인 미국의 간접 선거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한다

헌법의 아버지들은 국민이 지배자를 뽑는다는,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만큼 진보적인 발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파퓰리즘을 경계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미국이 탄생한 18세기 어떤 나라도 지배자를 귀족이 아닌 평범한 국민이 뽑는 나라는 없었다
엄연히 계급제가 살아 있었고 평범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시절이다
헌법의 아버지들은 대중에게 투표권을 주면서도, 이들의 자질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또 노예나 여자, 돈없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국민으로 여기지도 않는 시절이다
그들은 세금을 납부할 수 있는 성인 백인 남성에게 지배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를 주면서도, 그들이 투표권을 아무렇게나 행사하지 않기 위해 이중 장치를 만들었다
국민들은 다만 대통령 선거를 할 수 있는 선거인단을 뽑을 뿐이다
이 선거인단이 대표가 되어 대통령 선거에 권리를 행사한다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미국에서 아직도 이런 간접 선거의 전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 역시 파퓰리즘의 폐해를 경계하는 것이다

또 하원 선거는 2년마다 이뤄지지만, 상원 선거는 6년마다 치뤄지며, 1/3씩 바꾼다
그러니까 나라 전체의 의원이 한꺼번에 바뀌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이것 또한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일시에 정국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방지하기 위해 생긴 법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발달된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입법권과 사법권, 행정권의 정확한 분립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한술 더떠 미국은 연방 정부로부터 주의 독립도 중시 여긴다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서울 올인인 나라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앙 집권화가 산업 혁명 시대에 나라이 발전을 주도했으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각 지방마다 고르게 힘이 분배되는 지방 분권주의가 이뤄져야 진정한 민주화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역사적인 특성 때문이긴 하지만, 각 주마다 자치권이 보장되고 개별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말 부럽다

그런데 이 나라는 크긴 정말 크다
제일 작은 워싱턴 주가 한반도 크기라고 하니, 미국이란 나라의 영토가 실제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
미국 영화를 보면 엄청나게 큰 집과 넓은 마당이 나오는데, 영토는 크고 인구밀도는 낮으니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주거 공간이 넓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워낙 넓기 때문에 자동차는 필수이고 상대적으로 대중 교통의 발달이 더디다고 한다
청교도 윤리 때문에 즐길 수 있는 놀이 문화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게 최고의 오락이라고 한다
기름값도 유럽이나 한국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에 자동차에 쏟는 애정은 대단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담배값은 대단히 비싸서 한 갑에 6천원에 이르며, 대부분의 공공장소가 금연이라고 한다

2002년 발표에 따르면 히스패닉계가 흑인을 앞질러 최다 소수민족이 됐다
헌팅턴의 저서를 읽어 보면, 히스패닉에 대한 우려가 대단하다
이들은 미국이 강제로 뺏다시피 한 뉴멕시코 등지로 불법 이민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으며, 멕시코 정부에서는 오히려 장려할 정도라고 한다
빼앗긴 땅에 돌아온다는 생각 때문에 불법 이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하고, 굳이 영어를 배우려 하지 않으며, 다산하기 때문에 어느새 미국에서 스페인어는 영어를 위협하는 중요 언어로 떠오르고 있다
또 자기들의 언어를 고집하기 때문에 미국 문화에 쉽게 동화되지 못해 똘똘 뭉쳐서 정치세력화 되고 있다
헌팅턴은 히스패닉이 미국의 근간을 무너뜨리리라 우려한다
세계화나 다양성의 개념을 어디까지 적용해야 할지 모르겠다
미국의 소수 민족 배척 정책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우리 역시 타민족에게는 대단히 배타적이다
미국 주류 사회의 우려를  이국인이 쉽게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하나의 미국으로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인데, 주류 사회는 쉽게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주류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똑같은 혜택을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이 최강의 국가를 유지하는 길은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을 없애면서 이들을 포용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힘으로 억누르기엔 이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 버렸고, 그것은 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되며,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 꼴이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 범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른바 백인 쓰레기 층이라고 한다
경제적, 교육적 능력이 떨어지는 하위 백인 계층이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이 피부색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모든 불만을 약자인 소수 민족에게 퍼붓는 것이다
감옥 운영비와 전국 대학의 운영비가 비슷한 이 엄청난 범죄율을 막기 위해서는, 더더욱 인종 차별의 벽을 없앨 수 밖에 없다
피부색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우월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계속 된다면, 자신들의 무능력에서 오는 불만을 유색인종에게 퍼붓는 악순환은 되풀이 될 것이다
(저자는 "헌팅턴의 미국"을 편견이 많은 책으로 묘사하지만, 백인 중심주의 시각으로 쓰여진 건 사실이나 객관적인 근거와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이는 훌륭한 책이다 어차피 한쪽의 주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헌팅턴의 미국 사회 분석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내용은 미국 대통령제의 설명과 더불어, 유대인에 대한 분석이다
대체 유대인은 어떻게 해서 미국을 장악하게 됐는가?
인구는 겨우 2%에 불과하고 2차 대전 때 무려 600만명이 학살당했을 정도로 주류 사회의 미움을 받았던 유대인이 어떻게 해서 세계 최강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유대인이 미국을 장악한 가장 큰 힘은 금융이라고 설명한다
토지를 소유할 수 없던 유대인이 중세 이래 택할 수 있는 직업은 금융업 뿐이었다
말이 좋아 금융업이지 당시에는 고리대금업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유대인의 금융업은 놀랄 만한 속도로 성장하여 결국 세계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결국 유대인의 미국 장악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때를 같이 한다
특히 독일의 유명한 유대계 금융업자인 로스차일드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는 아들들을 유럽 각 지사로 보내 그 나라의 돈줄을 쥐고 흔들게 했다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한 밸포어 선언도 로스차일드 일가가 영국에 전쟁 비용을 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이 건국되기 전 청교도 혁명 시대부터 유대인은 크롬웰에게 전쟁 자금을 후원하므로써 영국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미국이 유대인 손아귀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전에 영국을 먼저 장악했다는 건 새롭게 안 사실이다

요컨대 유대인의 미국 지배는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온 금융업이 자본주의 발달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라 할 수 있다
이제는 언론과 헐리우드, 석유 산업까지 장악했으니 국가의 가장 중요 부분을 다 차지했다고 할 만 하다
그러므로 미국은 끊임없이 중동의 아랍 국가들을 자극하면서 홀로 고립된 이스라엘을 지원한다
오사마 빈 라덴의 자살 테러단이 미국의 상징인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를 들이 받은 그 절박한 심정을 알 만 하다
중동 사태에 미국이 끼치는 악영향은 상당하다
부시는 계속 미국 패권주의로 밀고 나가는데, 보다 진보적이고 평화적인 인사가 당선되지 않는 이상 세계는 계속 전운이 감돌 것 같다
(참고로 미국은 여전히 사형제를 유지하는데, 특히 텍사스 주는 전체 미국 사형 집행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여기 주지사가 바로 조지 부시였으니, 오늘날의 강경 정책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대통령편에서는 피상적인 내용 때문에 실망했지만, 이 책은 깊이 있게 미국을 분석하고 가능하면 편견없이 정보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현 미국 사회에 대해 궁금하다면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한다
미국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친미든 반미든 상관없이 새뮤얼 헌팅턴이 쓴 "미국" 도 함께 권한다
그의 보수적인 주장과는 별개로 미국 사회에 대한 분석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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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자리를 찾아서 - 김인성의 영국문학기행 1
김인성 지음 / 평민사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아빠가 권해 줘서 읽은 책인데 정말 글을 잘 쓴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영국 문학에 대해서도 정통하다
이렇게 잘 쓴 책은 의외로 안 팔리는 경우가 많다
1999년에 나온 책이니 벌써 출간된지 6년이나 지났지만 어떤 문학기행 보다 훌륭하고 참신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을 여행할 계획이 있거나 영국 문학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더구나 영시는 저자의 걱정대로 일단 번역하면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글이 되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기가 참 힘들다
그렇지만 여기 등장하는 시인들의 이름은, 영국의 국력 덕분인지 교과서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낭만파 시인 워즈워드나 셸리, 키츠, 밀턴 등 시는 모르지만 이름은 유명한 시인들의 이야기가 심도있게 펼쳐진다

실낙원과 복락원으로 유명한 밀턴은 끔찍할 정도로 철저한 청교도였다고 한다
그는 신앙심이 몹시 깊었으나 교회 권력과는 끊임없이 싸웠다
시력을 잃은 후 딸들에게 대필시키며 글을 쓴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딸들에게는 몹시 매정해서 아버지를 싫어했고 밀턴 역시 그녀들에게 대필시키면서도 책에는 손도 못대게 했다고 한다
아무리 위대한 시인이라 할지라도 시대의 한계는 넘어서기 힘든 법이다
밀턴은 당시에는 파격적일 만큼 진보적인 사상을 주장하고 이혼의 자유 등을 외쳤으나 정작 남녀평등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없었다고 하니, 딸들과 여러 아내와의 불화 등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산물 같다

키츠는 약제사이자 외과 의사였는데 19세기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 의사의 지위는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낮은 계층이었다고 한다
키츠는 불행히도 폐렴 걸린 동생을 간호하다가 전염되어 약혼녀를 남겨 둔 채 죽고 만다
셸리의 아내 매리는 프랑크슈타인을 만들어 낼 정도로 부부가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매리의 어머니가 여성 운동가로 유명한 매리 울스턴크래프트인데 정작 당시 영국에서는 난잡한 여성으로 악명을 떨쳤다고 하니, 시대적 한계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셸리는 불행히도 요트 타고 갔다가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천재에게 걸맞은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바람둥이로 유명한 바이런은 당대 최고의 멋쟁이로 유럽 귀부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사생아가 1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귀족 출신에다가 얼굴도 잘 생기고 시까지 잘 썼으니 요즘 말로 하면 인기 스타였을 것 같다
그리스 독립 전쟁에 나갔다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열병에 걸려 죽고 만다

낭만주의 시인이라고 하는 이 세 사람이 일찍 죽은데 비해 이들보다 앞 시대를 산 워즈워드는 후배들보다 훨씬 오래 살아 계관시인이 된다
워즈워드는 쉬운 영어로 영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했는데 오래 살다 보니 늙그막에는 보수적 성향으로 돌아서 후배들의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계관시인이 된 것에 대해 기득권층에 흡수되어 시의 정신을 훼손시켰다고 비난을 많이 받았다
예술가라고 하면 고흐처럼 광적인 구석이 있고 돈과는 거리가 멀고 당연히 권력에도 아무 관심이 없으며 요절할 것 같은데, 90이 넘게까지 장수하면서 그림 판 돈으로 엄청난 갑부가 된 피카소나 역시 80 넘게 살면서 계관 시인의 영예를 안은 워즈워드 등을 보면 예술가에 대한 이런 생각도 그저 대중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예술도 인정받고 돈도 모으고 사회적 지위도 획득하면 더욱 좋다는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다

올드 랭 싸인의 가사를 보면 좀 이상한 단어들이 많은데 알고 봤더니 스코틀랜드 민요로써 스코틀랜드어로 썼기 때문에 철자가 달랐다
이 민요에 시를 붙인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영웅인 로버트 번즈다
영국은 오랫동안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등으로 나눠져 있다가 16세기에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함으로써 합병이 됐기 때문에 지역색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잘 나가는 잉글랜드에 비해 스코틀랜드는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어 더더욱 자신들의 것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강하다고 한다
별로 내세울 게 없기 때문에 더욱 한 두 가지 뛰어난 것을 과대포장하듯, 스코틀랜드 지방에 가면 로버트 번즈 숭배는 시인에 대한 찬사 이상이라고 한다
번즈는 그 지방의 민요를 모으고 스코틀랜드 언어로 많은 시를 썼다

뒷쪽으로 가면 영국의 여성 작가들이 등장한다
제일 유명한 여성 작가라면 역시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일 것이다
에밀리와 그녀의 언니 샬롯이 살았던 하워드 지방은 "폭풍의 언덕" 에 묘사된 대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지역이다고 한다
에밀리의 다섯 남매들이 서른 살을 전후해 일찍 죽었을 뿐더러 교회 묘지에 가면 오히려 이들은 오래 산 편이라 할 만큼 당시 하워드 지방은 상수도 시설도 형편없고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로 환경이 나빳다고 한다
"제인 에어" 를 쓴 샬롯이 이런 환경을 싫어했던 반면 에밀리는 자신이 고향을 사랑해 "폭풍의 언덕" 같은 명작을 남겼다
그런 걸 보면 환경이란 결국 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달라지는 것 같다

"엠마" 나 "센스 앤 센서빌리티" 같은 영화로 더 유명한 원작자 제인 오스틴도 그녀들과 비슷한 시기를 살았다
사실 나는 "오만과 편견" 을 정말 지루하고 힘들게 읽었다
지루하기는 "폭풍의 언덕" 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그래도 그 복잡하고 공감하기 힘든 히드클리프 같은 어려운 캐릭터들에 비하면 "오만과 편견" 은 비교적 쉽게 읽히긴 한다
어쨌든 600페이지가 넘는 긴 장편 속에 등장하는 얘기가 오직 어떻게 결혼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라는 사실부터가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랑없는 결혼이 오랜 전통이고, 사랑과 결혼의 결합은 최근에 일어난 풍조라고 하지만, 대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사랑 같은 건 안중에도 없고 오직 어떻게 하면 조건 좋은 남자를 골라 시집갈 수 있나에만 골몰한다고 불평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18세기 영국에 대한 나의 몰지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오스틴 당시만 해도 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오만과 편견" 에 등장하는 결혼 타령은, 실은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과업이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역사나 정치, 전쟁 등과 같은 자신이 잘 모르는 어려운 주제들을 건드는 대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들을 소재로 삼아 예리한 필체로 생생한 캐릭터들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즉 아주 쉽게 쓰면서도 날카로운 관찰력이 돋보인다는 얘기다
그녀의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생명력을 이어가는 걸 보면, 대단한 가치가 있는 건 틀림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오만과 편견" 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오스틴 역시 에밀리 브론테처럼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다가 40대에 신장 결핵으로 세상을 떴다

그녀들에 비하면 조지 앨리엇은 행복한 소설가였다
여자 이름이 주는 편견을 피하기 위해 남자 이름을 필명으로 삼은 그녀는 루이즈라는 당대의 지식인과 동거 관계로 지내면서 남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루이즈는 사랑과 결혼에 관대한 사람으로써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는데 그들이 사생아가 되는 것을 걱정해 자기 호적에 입적시켜 주고 이혼으로 아이들이 피해를 볼까 봐 별거하면서도 결혼 관계를 유지했다
21세기를 사는 내 눈에도 대단하게 보일 정도니, 19세기 영국인들에게 이 남자가 얼마나 특별했을지 알 만 하다
그런 이유로 조지 앨리엇은 루이즈와 결혼 대신 평생 동거를 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영국에서 동거란 일탈 행위였기 때문에 조지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지만 헌신적인 남편을 만나 평생 보살핌을 받으며 문학적 재능을 마음껏 뽐냈다
올리판트 부인은 조지 앨리엇을 두고, 그 정도로 헌신적인 후원을 받는다면 글을 못 쓰는 게 이상하다고 비판했다는데, 과연 남편의 외조가 대단하긴 했나 보다
그녀의 초상화를 보면 상당히 못생겼지만 한 번 그녀를 만나면 그 매력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었다고 하니, 꽤나 멋진 여성이었을 것 같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20세기의 페미니스트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장식한다
가난한 여류 작가였던 플로라 톰슨은 "가난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작가에게 치명적인 장애다 나는 시작할 준비를 갖추는데만 한평생이 들었다" 는 슬픈 얘기를 남겼다
책 읽는 것은 다른 것에 비해 돈이 적게 든다고 하지만 시간도 많아야 하고 독서력이 쌓이고 글 쓰는 훈련을 하려면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랫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이 방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60대에 처음으로 주목받는 글을 쓴 가엾은 톰슨에 비해 울프는 교양있고 지적인 목사의 딸로 태어나 결혼 후에도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격려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올라 갈수록 유리 천정은 있었으니, 개인이 사회적 제도의 장벽을 뛰어넘기는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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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길을 따라 - 김인성의 영국문학기행 2
김인성 지음 / 평민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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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성이라는 여자는 참 글을 잘 쓴다
나는 이렇게 알차고 재밌는 기행문을 읽어 본 적이 없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감상적인 미사여구와 진부하기 짝이 없는 풍경 묘사에 질린 적이 있는데 ("수도원 기행" 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니라 공지영이 쓴 기행문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다 즉 작가 이름값 때문에 팔린 게 분명하다) 이처럼 잘 다듬어진 책은 왜 안 팔리는 걸까?
1990년대에 발간된 책이니 벌써 10여년 전 책이지만, 세월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갈하고 깊이있는 내용이 돋보인다
진지하게 글을 쓰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빼놓지 않는 저자의 글솜씨에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도 문학가로 성공하지 못하고 기행문이나 엮어 내는 걸 보면 (본인도 이에 대한 회한이 아주 많은 것 같다) 창조자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녀의 영국 기행문이 돋보이는 이유는 그녀가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유적지 한 곳도 허투로 지나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학부부터 시작해, 석사, 박사 과정까지 젊은 시절을 바친 학문의 산지를 방문한 느낌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겨우 TV에서 빅벤이나 윈저궁 보고서도 직접 영국에 가면 감탄하면서 보는 게 평범한 우리들의 실상이고 보면, 세익스피어나 버나드 쇼, 토마스 하디 등 세계 문학사에 길이 빛날 작가들을 전공한 저자가 직접 그 문학의 발생지를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하면서 독자에게 영문학에 관한 깊이있는 지식을 전달해 준다
굳이 기행문이 아니더라도 영국 문학에 대한 입문서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있는 영국 문학가는 세익스피어가 고작이었다
물론 세계사 교과서에서 밀턴이나 버나드 쇼, 토마스 하디, 셸리 등 여러 이름을 듣긴 했지만 그저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그들의 작품을 접하지는 못했다
막연하게 이런 영국 작가들이 있더라고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자세한 해설과 더불어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으로 생생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가장 훌륭한 입문서나 평론서는 그 책을 읽음으로써 원전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김인성의 영국문학기행" 은 훌륭한 책이다
특히 나는 시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는데 시인들의 유적지를 방문해서 거기에 얽힌 일화와 영시를 감상하는 법을 조곤조곤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에 반해 영시를 읽고 싶다는 새로운 충동을 느꼈다
저자도 지적한 바지만, 시는 번역하면 그 맛을 잃어 버린다
시처럼 운율을 중시하는 문학 형식은 특히 그렇다

잘 알려지지 않은 스코틀랜드나 웨일즈 시인을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20세기 초반의 웨일즈 시인인 딜런 토마스는 이 책에서 처음 알았는데, 39세의 짧은 생이 참으로 슬펐다
피카소처럼 예술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도 있건만, 딜런 토마스는 짧은 생을 평생 가난과 싸우다 갔다
집도 없어서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빈곤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만 하다
더구나 독일인 여자를 아내로 얻은 덕에 (그나마 남의 아내를 가로챈 것이다) 1차 대전 당시 영국 정부의 감시를 받았고 급기야는 추방 명령까지 받았다고 한다
아내의 사촌이 당시 독일의 최정예 전투기 조종사로, 영국 군인들에게 악명을 떨쳤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세상의 압박에 대항하는 무기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당연히 시였고, 다른 하나는 불행히도 술이었다
어찌나 술을 좋아하는지 미국 시낭송회에서 번 돈은 영국으로 건너 오기도 전에 술로 탕진했고, 급기야는 네 번째 미국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예술가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술을 뮤즈로 여기고 지리멸렬한 삶의 방어책으로 생각한 가난한 예술가의 일생이 안타깝다
토마스는 부모에 대한 정이 많아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매일 맥주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권위 유지와 체제 질서로서의 효를 강요하는 유교 문화권의 부모 공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눈 먼 아버지를 모시고 기꺼이 시내로 나가 함께 잔을 기울여 주는 이 가난한 예술가의 정겨운 마음이 따스하게 전해지는 기분이다

영국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들이 많은 것도 의외였다
내가 특히 열광하는 꼬마 곰돌이 Pooh나 귀여운 토끼 피터 래빗,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 등이 모두 영국 출신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들이 대부분 어린이 동화 작가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문학가로서 필명을 떨친 후 나중에 동화를 썼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이야기는 보통 내공으로는 안되는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를 지은 루이스 캐럴은 수학자였는데 책을 재밌게 읽은 여왕이 다음 책을 달라고 했더니 수학 교본을 헌정했을 정도로 신실한 수학 교수였다고 한다
지금도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해리 포터나 BBC 방송국의 텔레토비 등을 생각해 보면 과연 어린이 동화의 원조답다
유명한 추리 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도 말년에는 동화를 썼다고 하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절대 동화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여인의 초상" 을 쓴 헨리 제임스는 미국인이면서도 영국의 격식있는 귀족문화에 반해 평생을 영국에서 산 사람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아일랜드 대기근을 피해 미국에 건너 온 이민자였는데 뉴욕에서 큰 돈을 벌어 재산이 300백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금도 3백만 달러면 큰 돈이니, 당시에는 대단한 갑부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돈 버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문학이나 철학 등 돈 안 되는 고상한 취미를 가지도록 격려했다
덕분에 그의 손자들은 유명한 작가나 철학자가 되어 돈과는 거리가 먼 고고한 직업을 택할 수 있었다
헨리 제임스는 당대에도 넓은 독자층을 갖지 못했지만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돈에 관계없이 순순한 문학적 열정만으로 글을 썼다고 하니, 19세기 귀족 신사에 대한 부러움이 생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에서도 읽은 바지만, 산업 혁명 시대의 귀족들은 고상한 취미의 일종으로 지질학이나 생물학 같은 인문 과학 분야를 택했다고 한다 즉 취미 생활로서 그 복잡한 학문을 즐긴 것이다 유럽이 과학의 혁명을 일으킨 사회적 배경을 알 만 하다)
할아버지 재산이 아무리 컸다고 해도 여러 자손들에게 분배됐기 때문에 정작 헨리 제임스에게 남겨진 돈이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는 계절마다 옮겨 다닐 수 있도록 여러 채의 별장을 두고 정원사와 요리사와 가정부 등등 많은 하인들을 거느렸다
그는 영국의 격식있는 귀족문화에 반했기 때문에 재산 증식 대신 풍요롭고 우아한 삶을 즐기려고 했다
부르주아의 사치스런 생활이라고 느끼는 대신, 왠지 모르게 돈 대신 격조있고 우아한 삶을 택한 것처럼 느껴진다
예술가에 대한 내 편견이 작용된 셈인가?
(하긴 제임스는 결혼을 안 해서 재산을 물려 줄 사람도 없었다)

영국이 낳은 위대한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설명하는 것 자체가 구차스러울 정도로 종교로까지 숭배받는 인물이다
호사가들은 인도하고도 안 바꿀 정도로 대단한 문학가라고 떠벌이고, 또 이를 두고 인도 국민을 우롱하는 제국주의의 어처구니 없는 행패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영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인의 세익스피어에 대한 사랑은 놀라울 정도다
저자는 석사 때 남들이 다 말리는 세익스피어를 졸업 시험 과목으로 택했던 만큼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저자는 남들처럼 자기 전공인 대문호를 찬양하는 대신, 이런 찬양을 너무 많이 들어서인지 오히려 지겹다는 시니컬한 반응을 보인다
왜 사람들은 위인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려 놓고 완벽한 인간이라고 정의하길 좋아할까?
성공과 실패, 이기심과 충성심 등 인간을 구성하는 양면적이고 다양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더욱 극적이고 멋있지 않을까?
세익스피어와 관계있는 것이라면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대단한 관광지로 만들어 버리는 영국인들의 광적인 태도에 저자는 질린 듯 하다
16세기 튜더 왕조 시대 사람이니, 왕조차도 세세한 기록을 남기기 어려운 판에, 한낱 배우 겸 극작가에 대한 오늘날의 넘치는 전설과 기록들은 확실히 과한 구석이 있다
아무리 하늘처럼 떠받들어지는 대문호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익스피어의 위대함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고 하니, 괜시리 그 성역에 들어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얄궂은 호기심이 생긴다
진짜 위대한지 아닌지, 내가 직접 읽어보고 판단하겠다는 얄미운 생각 말이다
(그런데 원전으로 읽은 "로미오와 줄리엣" 희곡은 정말 지루했다!!)

"천로역정" 을 쓴 존 번연은 뜻밖에도 직업이 땜쟁이였다고 한다
17세기 청교도 혁명 시대 작품인 만큼 독실한 목회자가 아니었나 짐작했는데 땜쟁이라니, 깜짝 놀랐다
그는 교구 목사에게 감동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설교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덕분에 국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상불순죄로 12년간 감옥에 갇혔을 때 번연은 이 유명한 "천로역정" 을 저술한다
번연은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 계층이었기 때문에 목사에게 큰 감흥을 받은 후 순전히 자신의 신앙심과 기도 만으로 훌륭한 저작을 쓴 셈이다
1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자기 삶에서 가장 알찬 수확을 일궈낸 작가의 정신력이 놀랍다
그가 이 작품을 쓰는데 몰두하지 않았다면 수감 생활은 한낱 의미없은 고통의 시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눈먼 딸의 옥바라지를 받아 가면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집필하고, 출옥 후 더욱 훌륭한 설교자가 된 그의 위대한 삶에 감탄을 보낸다
재밌는 것은 번연이 설교자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땜쟁이 일을 계속 했고, 청중들이 원하면 일 하다가 연장을 놓고 유창한 설교를 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로 볼 때 그는 분명히 에너지가 넘치는 활달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

저자가 소개하는 영국 문학가 한 사람, 한 사람에 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다
자랑할만한 문학가들의 생가를 잘 보전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끄는 영국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사소한 유적지라 할지라도 일단 예술가와 작품들과 연관을 맺으면 감흥을 자아낼 훌륭한 곳으로 변모한다
이미 그들이 사라지고 사소한 유물들만이 우리를 반긴다 할지라도, 그들의 작품을 읽고 슬퍼하고 기뻐했던 이들은 그 곳을 직접 방문함으로써 다시 한 번 그 때의 감동을 되새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상업적인 전술이라 비난하더라도 위인들의 유적지를 보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유적지가 경제적인 이득을 산출함으로써 계속 유지될 수 있음이 다행스럽다
아무리 훌륭한 유적지라 할지라도 사람들에게 잊혀지면 더 이상 보존할 의미가 없어지는 까닭이다
먼저 영문학을 탐독한 뒤 직접 작가들의 발자취를 찾겠다는 야무진 꿈이 생긴다
어쩌면 유럽 100배 즐기기 같은 여행 안내서 대신 배낭여행객들에게 정말 필요한 책은 이런 훌륭한 문학 안내서인지도 모른다
유럽 여행을 계획했을 때 호텔이나 관광지 정보 모으는 나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먼저 읽고 가라는 여행 경험자의 충고가 떠오른다
우리가 관광지를 여행하는 진짜 목적은 단순히 눈요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어 있는 상징들, 문학과 역사에 녹아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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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2 - 미국 : 대통령 편 먼나라 이웃나라 12
이원복 글 그림 / 김영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때 먼나라 이웃나라를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 역사 외에는 잘 몰랐는데 네덜란드나 독일 등의 유럽 여러 나라의 역사를 재밌게 서술해 무척 유익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이번 대통령편은 좀 허술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중요하지 않은 대통령이 없기 때문에 인물마다 똑같이 6장 씩을 배분했다고 하는데, 벌써 여기서 문제점이 드러난다 겨우 6장의 만화로 미국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알겠다는 독자의 태도가 잘못일 것이다 칼라로 화려하게 인쇄는 됐지만, 실상 내용은 별 게 없었다 만화가 지니는 한계점인 것 같다 알기 쉽게 핵심만 전달할 수 있는 반면, 깊이 있는 내용 전달에는 실패했다 하긴 책으로 쓴다 해도 47명의 대통령을 한 권에 담기는 힘들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을 들자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이 강대국이 되기 전의 역사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단순히 흥미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노무현 말투를 따라 했을까? 아니면 정말 노무현 정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걸까? 노무현 어록을 수록했다 해서 유명해진 책이긴 한데, 저자의 진짜 정치관에 대해 궁금하다

위인전을 비롯한 가벼운 입문서의 문제점은 다면적인 분석 대신 통상적으로 알려진 한쪽 면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지면이 짧고 깊이 분석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 가지 주제 의식을 갖고 서술한 것은 이해하지만, 독자는 저자의 그 한 가지 시점을 절대적으로 받아 들이는 폐해를 입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위인전을 읽는 게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학생들에게 이런 역사적 인물이 있었다고 소개해 준다는 장점도 있지만, 위인은 절대적으로 옳다는 편견을 갖게 된다 적어도 대학생 이상 된 사람이라면 관심 있는 위인에 대한 평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듯, 아무리 역사적 인물이라 할지라도 후세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찬양을 받아야 할 정도의 대단한 사람은 없다 신으로까지 추앙되는 예수마저 비판할 지경인데 하물며 무조건 옳고 착한 위인이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중고생 정도의 수준에서 가볍게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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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 2km
신정원 감독, 임창정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코메디 영화로서 괜찮다는 평 때문에 봤는데 전반부는 재밌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지루하고 황당했으며 또 유치했다 대략 그 귀신 나오면서부터 유치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에 다이아몬드 훔치러 가는 마을 사람들의 차를 운전하던 사람에게 귀신이 쓰여 일부러 낭떠러지로 돌진한다는 식의 결말은,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보험금 타 먹으려다 가족까지 죽이게 되는, 박진희 나오는 영화와 거의 흡사해 신선도 떨어졌다

처음에는 퍽 흥미로웠다 우리나라 영화는 욕 빼면 할 얘기가 없다더니, 깡패들의 욕은 마치 일상 생활의 한 장면을 촬영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임창정의 연기는 아주 자연스러워 가수 그만하고 연기에 몰두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권오중 연기도 괜찮다더니만, 앞부분에만 잠깐 나와서 평하고 말 게 없다 제일 어색했던 캐릭터는 말할 것도 없이 송이라는 귀신 여자애다 캐릭터 자체가 워낙 현실성이 없어서 누가 해도 다 어색했을 것이다 공포 영화도 아니고, 아무리 코믹 영화라지만 좀 더 호러스럽고 사실적인 분위기를 낼 수는 없었을까? 한국 영화 기술의 한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혹은 시나리오 작가의 역량 부족이던지

발단부나 전개부는 괜찮았다 권오중이 조직에서 다이아몬드를 훔쳐 도망가고 차 사고 때문에 시실리라는 마을 팬션에 묶에 되는데 우발적인 사고로 기절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때문에 그를 생매장 하는 데까지는 괜찮았다 그 다음에 조직의 중간 보스인 임창정이 쫓아 와서 권오중 내노라고 난리칠 때까지는 재밌었다 그런데... 꼭 귀신 등장으로 사건을 마무리 해야 했을까? 사건을 풀어 갈 다른 전개 방법은 없었을까?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송이라는 여자애가 토지 보상 문제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정은 그런대로 봐 줄만 한데, 대체 귀신으로 등장해 임창정이랑 농담 따먹기 하는 장면은 왜 삽입했단 말인가?

여기서부터 영화는 완전 유치 짬뽕으로 흐른다 마을 사람들에게 돌아 가면서 송이의 귀신이 쓰이는 장면은 참 억지로 웃을 수 밖에 없는 유치한 코메디였다 번개 맞아 죽은 권오중은 대체 왜 등장한 건지... 짜증나 죽는 줄 알았다 권오중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생매장 당한 뒤 임창정 일파가 그를 쫓아 왔을 때 어떤 식으로 사건이 해결될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사건 해결 방법이 기껏해야 귀신의 등장이라니, 시나리오 작가의 한심한 상상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진짜 다이아몬드를 보면 정신이 홱 돌아 버릴까? 하나에 천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이라면 잠시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금도 아닌 장물인데 이걸 꿀꺽 삼키기가 쉬울까? 더구나 시체를 자기 팬션에 은닉한다는 게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일까? 나중에 보니까 마을 사람 전체가 토지 문제로 송이를 살해한 전적이 있는 걸 보면 이해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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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2-1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신에 대한 편견을 깨준 영화였어요. ^^; 코믹한 공포(?)영화?

marine 2005-02-15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 아프락사스님 귀신에 대한 편견을 깼다는 말은 맞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