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명 앗아가주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지음, 강성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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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의 한 소녀의 긴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엔 평범한 여자의 삶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도 같이 담겨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영상들과 사실들이 낯선 시대의 모습을 하나씩 재현하게 만든다. 이 모습들은 현재 멕시코를 배경으로 구성된 것들을 뒤집어 놓고, 해방 후 우리의 정국을 잠시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낯선 역사와 사람들은 강한 몰입을 방해하고 살짝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열다섯의 카탈리나는 서른이 넘은 남자의 구애를 받고 결혼한다. 지금 같으면 말도 탈도 많은 결혼일 텐데 그 시절엔 조금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그 남자 안드레스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장군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어린 처녀가 어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 결혼 얼마 후 남편이 잡혀가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다행히 금방 남편이 돌아오지만 어린 신부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나이 먹고, 남편이 주지사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면서 조금씩 바뀌게 된다. 

성공한 남편을 둔 아내지만 남편이 벌이는 놀랍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나 사고들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정치라고는 아내나 딸의 관점 등에 머물 정도로 평범한 수준이지만 일반 상식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의 다른 정부들에게서 난 아이들도 돌보면서 그녀는 점점 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집밖에서 힘을 발휘할 정도는 못된다. 안드레스가 그녀의 요구 조건을 일축하고,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카탈리나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멕시코 혁명 시기의 혼돈 상황을 남편 안드레스의 행위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최근에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의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권력과 자산을 위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살인하고, 상대를 협박한다. 어느 날 사라진 사람이 토막이 나서 어느 집 앞에 버려지는 사태도 발생하고, 범죄자로 감옥에 갇힌 권력의 하수인은 탈옥하여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낸다. 이런 사실을 보면서 왠지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떠오른 것은 비약일까? 

지루하고 재미없고 남편의 목적에 이끌려 다니는 그녀에게 위대한 모성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가 연인에게 하는 말을 보면 자신이 우선이고 가족들은 부차적이다. 남편을 처음 사랑했을 때 같은 불같은 열정은 어느 듯 사라지고 눈앞에 나타난 멋진 남자는 몸과 마음을 달뜨게 만든다. 정적이나 방해자를 죽이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남편을 생각하면 그녀의 이런 마음이나 행동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위험이 클수록 사랑은 더 정열적으로 바뀌는 것일까? 아니면 너무 사랑하기에 그 위험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한 여자의 성장과 사랑만 다루었다면 지극히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멕시코 혁명의 혼란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것인 동시에 그 시대 여성들의 목소리다. 남편에 대한 엄청나고 끔찍한 소문을 친구의 입을 통해 듣고, 그 소문에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녀는 약하게 부정하거나 무시한다. 이런 현상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통제되어 있고, 그 통로가 대부분 남편의 소리를 통해 얻게 되는 그녀가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충실한 역사의 기록자다. 비록 여성들의 시각이 강하게 담겨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단숨에 읽으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갔다. 몸 상태 탓도 있지만 낯선 이름들과 시대 상황이 몰입을 살짝 방해했다. 그리고 카탈리나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멕시코 혁명기의 삶과 모습들이 너무 낯설었다. 중반 이후 그녀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읽을 때는 깊은 몰입을 했다. 이 사랑은 또한 그녀의 남은 삶을 좌우할 정도의 변화를 가져오고, 세상을 좀더 대담하게 보고 다가가게 만드는 힘을 줬다. 마지막에 권력을 잃은 남자의 초라한 여생을 보면서 권력은 마약 같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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