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억중에 하나다. 이것이 진실인지 혼자만의 상상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실에 상상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다.

등에 동생을 엎은 엄마 손을 잡 고 시장엘 갔다.

장을 보긴 했는지 무얼 샀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그냥 그 시장 어느 모퉁이에서 무언가를 모여서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떠돌이 약장사였는지 어떤 시장 공연인지도 모르겠다.

구경을 했었고 혹시나 사람 틈에서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동생을 둘러 엎은 포대기 끈을 잡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지 않은 건 어쩌면 손에 물건들이 있었기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 참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 엄마가 없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은 포대기 끈의 끝자락이 아니라 어떤 할머니가 입은 저고리 고름이었다.

내게 고름이 잡힌 그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이제 다 봤냐 집에 가자.. 그러면서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분명히 데려다 주었을 것이다. 혼자 간 기억은 없으니까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알거나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엄마에게 왜 먼저 돌아갔냐고 떼를 쓰거나 따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감정은 떠오른다.

그때 내가 가진 감정은 체념이었던거 같다.

뭐 그렇지 뭐...... 그런 마음

가족이 많아서 언제나 바빠서 마음 편히 시장 구경도 못할 엄마를 이해한 건지

등에 엎은 아이는 처지고 장바구니는 무거워서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었던 그 상황을 이해한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이해해야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내 기억은 그것뿐이다

그 초기 기억이 어떤 작용을 했했는지 하긴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주 어릴 적 기억이라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무심하게 떠올랐을 뿐이다.

억울했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뭐 그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 때 이후 나는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 기억을 그날 집단 상담때 이외 누구에게- 가족에게 도 한 적이 없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전에 선물했던 시계를 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계를 돌려주는 일이 주된 스토리는 아니었다.

유학을 떠난 여자친구를 위해 연락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간 남자의 이야기도 그들의 극적인 러브스토리가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때 엄마 아빠가 동물원에서 버리려고 했다고 믿는 삼남매의 이야기도 그 비정한 부모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암투병으로 세브란스 지하에서 보낸  어두운 시간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런 투병기도 아니었고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첫 문장이 이야기 전체를 보여줄 때도 있지만 그 이야기도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야기는 맥락없이 시작했다가 느닷없이 마무리괸다.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었고 소소하고 무심했다.

때로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때로는 그저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이젠 기억이라고 하기엔 주관이 너무 들어가버린 희미한 그림자같은 것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어서 후회조차 소용이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남에게 털어놓기에는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내겐 어느 순간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이고 상처일 수도 있고  변화였던 이야기들이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이젠 그저 되새김질 하는 것 이외엔 어떨 도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것... 무심하게 들었거나 보았지만 내게 순간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다보면 대단한 사건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온나라가 온 세상이 들썩이는 일들은 분명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게 분명하지만 때로는 사소하고 나만 알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누구에게 말하기 쑥스럽고 애매한 것들이 삶의 각도를 바꿀 때도 있다. 아주 미세하게 누구도 타인은 알아차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 삶이 바뀌어버린 그런 변화를 가진다.

단편속의 인물들은 대단한 사람은 없다.

물론 그들이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엔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 주인공들이나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저 우리곁을 스치는 사람들이고 지나가다 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 그냥 그런 희미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겪는 소소한 일들이 어느 순간 삶의 각도를 미묘하게 벌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전의 나와 달라진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을 할 수는 없다.

그건 나만 느끼고 나만 알아차리는 변화이니까...

 

사실 처음 이 단편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

좀 소녀취향인가 싶었고 뜬금없고 느닷없다는 기분도 들었고  심하게 말해서 한편한편이 너무 널뛰는 거 아닌가 싶었다.

 

몇해를 보내고 다시 읽는 지금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게 없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생각도 했다.

이어 쓴게 아니라 시기를 달리해서 다른 매체에 그때 그떄 써서 기고했던 작품들이라면 저마다 다른게 당연하다.

그동안 단편집에서 찾아내던 전체를 흐르는 무언가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평론가의  발견이거나 나 개인의 착각일것이다.

그저 내가 경험했던 무언가와 내가 기억하는 어떤 정서들과 책을 읽는 지금 내가 가진 주위 환경과 나의 마음의 상태가 더해져 그 책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뿐이다.

바람같은 사랑이나 이미 소멸해버린 무언가를 향한 손짓같은 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언가 일 것이다.

내가 가진 내 기억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그건 나의 기억이고 나의 시간이다.

내가 기억한 모든 조각과 내가 느낀 정서의 조각들을 끌어모으면 내가 될까

그렇게 완성된 나는 어떤모습일까

지금 이순간 나이 먹은 나와 같은 모양일 수도 아닐 수도.....

그냥 의미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그리고 그 작은 조각조각마다 의미가 있을거라고 믿는 것 그것만 남을 뿐이다

단편을 읽는다는 건 그렇다

별 거 아니지만 별난... 그런 묘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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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썼던가?

이제 이게 한 이야기인지 안한 이야기인지, 했다면 누구에게 했는지...

행여 같은 이에게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나만 박장대소하는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다.

들었다면 처음 듣는 것 처럼.... 처음이라면 다행이고....

 

지금 이 도시에 이사를 와서 처음 만든 것이 도서관 대출증이었다.

그리고 처음 사람들과의 관계속으로 들어간 것이 학교 도서관 책읽는 모임이었다.

내가 대단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거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아니 그때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책읽는 것밖에 없던 거였다.

기술도 없고 경력도 없으며 사회성이 아니고 사교성마저도 떨어지는 인간이라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두려워서  그저 내 편한대로 펼치고 접어버리면 그만인 책만이 유일한 방편이었다.

낯선 도시는 정이 들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가 바쁘거나 씩씩해보였다.

좋은 일로 이사를 한것도 아니어서 굳이 정을 붙이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고 그냥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투명하게 존재하기를 원했다.

그래도 무언가 생활에 재미는 있어야한다는 생각과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가족을 몰아서 도서관을 갔고 어색한 표정으로 즉석사진을 찍고 대출증을 만들었다.

다행이 이 도시는 도서관이 잘 되어 있어 여기저기 걸어가거나 조금만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었다. 워낙에 길치라 한동안은 딱 한 도서관만 죽어라 팠지만 점차 길을 알게 되면서 다른 도서관도 기웃거리고 그러다 상호대차라는 편리한 제도가 생긴 덕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그 전에 살던 곳에서도 아이학교 도서관 도우미는 내내 했었다.

가장 사교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봉사였다. 그냥 나가서 말없는 사서 선생님의 무뚝뚝함에 감사하며 책 정리하고 서가 정리하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만 주면 그만이었으니까

옮겨 와서도 그 일은 계속했다. 어느 학교나 도서관 봉사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연하게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어느 정도 책읽기는 자신있었다.

읽는 근력이 제법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보아하니 그리 어려운 책을 읽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면 그냥 그냥 읽어갈만한 가벼운 독서가 될거라 짐작했다. 틀리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한다는 것이 조금 주저되긴 했지만 꼭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을거라고 믿었고 실제 그랬다.

열명이 넘는 회원중에는 주로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간혹 삼천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다시 돌려 놓는 사람도 있었다.

제각각 다른 배경과 다른 학년의 아이를 가진 집단이라 의외로 편했다.

그렇게 그냥 우연하게 시작된 독서모임을 4년동안 했다.

고전들을 읽고 아이들 책을 읽고 소설을 읽고 인문학을 읽었다.

독서력이 제각각이라 다양한 수준의 책을 읽었고 매년 맴버들이 드나들면서 사람들도 바뀌었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껄끄러운 사람도 있고 한 번만에 정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매년 보지만 어색하고 힘든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냥 잊어버렸다.

오랫동안 모임을 하지만 책을 통해 성장했다는 건 없었다. 단언컨대.....

그저 한때는 겨우 이수준을.... 하는 마음에 오만해지기도 했고

제대로 읽어오지 않은 멤버들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내가 내켜지지 않은 책은 은근슬쩍 핑계를 대며 빠지기도 했으며

내가 느낀 감정과 의견이 반대에 부딪치면 빈정상했고 내가 거부당한 기분이었는데

타인의 의견은 쉽게 부정하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와 함께 정하는 목록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

조금 한편에 치우치거나 편협하더라도  그렇게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에 책은 많고 내가 읽은 책들은 바닷가 모래알 한줌정도나 될까

 

 

 

 

 

그 해 에이바가 북클럽에 들어간 것 역시 사람들이 절실했고 친교가 절실해서였다.

갑작스럽게 알게된 남편의 외도 그리고 이혼

어릴 적 동생이 사고로 죽고 엄마마저 자동차 사고로 동생을 따라간 이후 꾹꾹 눌러놓았던 기억과 감정들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또한번 거절당하고 버려졌다.

무언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참가한 북클럽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래도 내가 경험한 북클럽과 다르지 않다

다만 도서관 사서인 케이트가 모든 일을 진행하고 매번 그 책에 맞게 다과를 준비하고 코스프레를 준비한다는 게 더해질 뿐이다(라고 우긴다)

간혹 다른 주제로 빠지기도 하고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사람과 조용히 듣는 사람이 뒤섞여 있다는 건 다르지 않다.

에이바가 가입한 해의 도서 주제가 < 내인생의 책>이었다.

내게 있어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일까?

그건 누군가의 말처럼 그때의 내 감정과 내 상황과 책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감동이거나 전율이다. 그때 그 느낌과 그 흥분이 다른 시간 다른 상황에서도 같게 느껴질까

다만 그때 그 책이 나의 삶의 방향을 조금 꺽어놓아서 내가 조금 다른 내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면.... 그 달라짐을 그 순간 알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제각각 가지고 있던 내 인생의 책들이 모여서 북클럽은 진행된다.

책이 주는 감동은 찰라에 지나기도 한다.

그저 꾸역꾸역 읽어가다가

오홋 이거 흥미로운걸 하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조금씩 야금야금  남아있는 페이지를 세어가며 아쉬운 마음에 아껴가며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 그 책이 내 삶에 훅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휘리릭 사라지기도 한다.

누구나 좋은 책이라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추천하던 책이 그저 읽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다가

우연히 다시 읽는 순간 다른 모습으로 들어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책일뿐이다.

책은 책일뿐이고 읽는다는 것이 사람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진 않는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에이바도 읽지 않고 읽은 척하다가 망신도 당하고  읽지 않고 얌전히 있거나 겨우겨우 읽는 과정을 거쳐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어리고 힘들었던 시간을 견디게 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기억한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걸 알지만 그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걸 주저하기도 했다.

한때 책읽기를 좋아하던 에이바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잃었다는 걸 깨닫지도 못했다. 그리고 찾아온 고통앞에 다시 친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책을 찾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책에서 길을 찾지는 않는다.

절실한 사람에게만 길이 보인다.

질실한 사람은 자기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고 책을 통해 나를 만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저 많이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읽는것이다.

그걸 에이바는 해냈다. (소설이니까 흥흥흥)

 

 

4년간 독서모임을 하고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 역시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4년전보다 조금 더 많이 읽은 인간이 되었고 조금 더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을 뿐이고

조금은 책 욕심에서 놓여나기도 했고 관심분야가 일단은 넓어지기도 했다.

그림책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것도 독서모임덕분이었고

작가별로 책을 읽어보는 경험도 모임을 통해서였고

내가 제법 말을 잘 하고 진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것도 모임덕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을까?

여전히 싫은 사람은 너무너무 싫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고 거부당하면 화가 나고 쪼잔하게 복수하고 싶다.

다만 ... 도무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예전보다 조금은 더 많이 한다.

당연히 .... 해야한다. 되어야 한다. 하는 것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어짜피 너의 삶은 너의 것이고 나의 삶은 내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내가 생각보다는 괜찮은 구석이 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아쉽다.

 

책은 책이고 삶은 삶이고 나는 나이다.

그래봐야 책이지만 그럼에도 책이다. 그게 내가 알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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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가 위안이 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빛과 그림자 그 선택도 내가 하는것이고 내삶이 충만한가 망가지는가도 지금 내가 정하는것이다. 책은 정답은 아니다. 다만 곁을 지켜주며 함께 해줄 뿐이다
선택은 내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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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1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었나봅니다.
푸른희망님,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  한식이란 누군가가 차려줄 때는 그보다 정성가득한 존중은 없지만 내가 차려야 할때는 이 이상의 노동이 없다. 구입하고 다듬고 요리하고 뒷설거지까지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지만 먹는건 금방이다. 금방 식거나 금방 축 쳐져 물기가 흥건해지거나 말라버리기 일쑤다.

정확한 시점에 정확하게 내놔야 한다는 타이밍까지 신경써야 하는 음식이다.

한편 미리 만들어 놓은 밑반찬 어제 먹었던, 다시 데운 국이라면 쉽고 얼렁뚱땅 차려내고 크게 차이 나 보이지 않는 면도 있다

장장 열흘이라는 긴 연휴를 보내면서 상차리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열흘에 하루 세끼 그러니까 서른끼가 지나간 셈이다

물론 모든 걸 다 집에서 차려낸 건 아니고 사먹기도 하고 나가서 외식을 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신경써야하는 차림에서 아무런 감정없이 무미건조하게 냉장고에서 식탁으로 이동만 하는 상차림까지 모든걸 하고 보니 온간 생각이 들었다.

먹는 일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참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먹는 일이 의외로 노동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식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이쁘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건 즐거움이라고 하는 건 그냥 앉아서 차려먹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다가도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자치는 줄 모르고 만들어 먹이고 그렇게 만들었는데 안먹고 투정하면 혼자 속상하고 내가 거부당한것 마냥 서럽고 억울했는데 그게 다 무슨 짓인가 싶다.

이래도 한끼 저래도 한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이 기복이 심한 나의 감정곡선의 가장 밑바닥인 시간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 우리집은 종가집이라 4대 봉제사를 지냈다.

그러니까 4대 여덟분 일년에 명절 차례까지 하면 열번의 제사가 있는 셈이고 일년에 두달 빼고 매달 제사가 있는 셈이었다

우리 뒷동에  살던 내 친구는 어느 날 밤 우리집 베란다를 봤는데 거실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뒷모습이 웅성웅성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애가 본 그날 밤은 아마 제사가 있던 밤이었을 것이다.

명절이면 그실 한면을 길게 주욱 있다가 모자라 한 면은 꺽어진채 놓은 상까지 네 개의 상을 놓고 남자들은 절을 했다.

당연히 손끝하나 놀리지 않은 남자들은 혀끝은 예민하게 놀려댔다,

뭐가 빠졌구나 뭐가 잘 못 놓였다 뭐가 이상하다....  뭐는 너무 일찍 만들어서 다 말랐다...

손끝은 무딘데 혀끝은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사흘전부터 동동거린 엄마는 그 말에 죄인이 되고  입맛이 없다면서도 다들 한그릇 뚝딱 비우고 후식까지 찾는 통에 정작 내가 먹은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거나 아에 그게 싫어서 가뿐하게 건너뛰기 일쑤다

명절의 그 의식이 지나면 잘 차려지고 잘 치른 건 당연한거고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들은 언제나 말끝에 묻어났다.

꼴보기 싫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어쩌면 그때 명절때 마다 찾아오는 어른들 말고 그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들이나 손자들은 오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명절때만 보는 친척집에 가서 차례상이 준비되는 동안 남의 방 한구석에서 기다려야 하고 낯선 어른들과 함께 밥상을 받아서 조금 주눅들어 먹어야 하고 어색하게 인사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듣는중 마는둥하다가 어른들이 이만 가자 하는 순간 화색이 도는 그 남자들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이제사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매번 꾸역꾸역와서 밥 먹고 과일먹고 떡먹고 먹기만 하다가 말없이 돌아가는 남자들이 싫었다. 나이가 많건 적든 나보다 어리든 그냥 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제사를 꼬박꼬박 형식을 갖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나름 자부심이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일을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도와주면 칭찬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고 이런 전통을 즐기면 되는 입장이었으니까

결혼하고  남편집은 돌아가신 시아버지 제사 달랑 한 상이었다.

그걸 보면서 쥐뿔도 잘하는게 없으면서 우스웠다.

겨우 차례상 하나쯤이야......

집집마다 다른 상차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내가 20년 넘게 보아온 것이 정석이라고 믿어서 조금만 달라도 이상하고 틀렸다고 생각했다.

상차림은 쉽고 별거아니라고 여기면서도 우리 집이 아닌 곳에 오래 있는 건 불편했다.

그렇게 일이 많지도 않고 누군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은근히 내맘대로 해도 별 말 없는 분위기지만 시집이라는 게 그런 거였다. 나혼자 맞지 않은 퍼즐판에 끼어있는것 마냥 어색하고 불편하고 엎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맞춰야 할 부분조차 내게 맞추길 바랬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음식을 차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자취를 했고 요리에 관심도 많았고 잘하지는 않아도 겁내는 경우가 없어서 망치든 잘하든 일단 하고 보는 스타일이라 음식을 한다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맛없으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하다보면 대충 꼴은 갖추었으니까 그냥 자만했다.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거야 그래서 안하는 거지 못하는 건 아니야...

이게 30년동안 나를 지배한 요리에 대한 자만심이었다.

그런데 올해 긴 연휴를 겪으면서  이제 겨우 50도 되지 않아서 이제 안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처음으로 우리 서행자 여사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40년 넘게 종가집 종부로 제사상과 차례상을 차려낸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본가가 중요하고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장남으로 장손으로 책임감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버지였기에 명절이나 제사가 대충 허투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수술하던 딱 한 해를 제외하고 (제주가 아프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까지 제사는 엄마의 가슴에 얹힌 돌이었을 것이다.

동서들이 와서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건 전날 와서 이미 그 주 내내 계획하고 장보고 몇번을 날라다 놓았던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서 차곡차곡 마련해놓은 걸 와서 지지거나 무치거나 하는게 전부였다. 그래도 어른들(이라 쓰고 남자들) 눈에는 내 눈앞에서 쭈그려 앉아서 하루 종일 전을 뒤집고  손 마를 새 없이 나물을 무치고 탕국을 끓이는 사람이 더 일하는 것 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이 돌아갈때  모두에게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고 뒷 마무리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버리는 사람은 볼 수 없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나 역시 결혼해서 일이 쉬워보이고 우스워보였던 건 미리 준비하고 다듬어 놓은 시어머니를 보지 않아서이고 내가 일을 했다고 하나 그때 역시 모든게 갖추어진 상황에서 자리잡고 앉아서 전을 뒤집은게 전부였기때문이었다.

해보지 않고 보기만 하는 건 대개는 쉽다.

누군가의 노래도 들을 때는 쉽고 단순한 노래였고 남이 하는 게임도 가만히 보기만 하면 나는 저것보다 적어도 배는 더 잘할 거 같고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자고 빈둥거리는 아이들도 그 시간에 왜 공부하지 않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법이다.  내가 딱 그랬다.

어느 순간 나이 먹고 모든 준비가 내 차지가 된 순간  밥상을 차리는 일은 (제상이든 차레상이든) 요리하고 차려내는 일은 그냥 껌이라는 거다.

선택하고 다듬고 준비하는 일이 태반이고 그 뒷처리가 남은 태반이다.

그 모든 보이지 않은 일을 40년간 한 서여사님께 세상 모든 존경을 다 바쳐도 모자란다는 걸 한참 나이 먹어 알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제사를 절대 내 아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 서여사의 생각이셨다

4대 봉제사를 지내는 집안 장손은 절대 결혼할 수 없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자는 세상에 한명도 없다는 반 협박과 반 애원으로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제사를 줄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우리 올케는 주문식단으로 제사상을 차린다.

맞벌이고 일이 바쁜 입장에서 제사때마다 명절때마다 일찍 와서 상을 차릴 수 없는 입장이다.

시대도 바뀌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서여사도 받아들였다.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 서운한 것이 그녀 마음이었다.

- 니 아버지가 어떤 정성으로 조상을 모시고 어른들을 대접했는데 니 아버지는 그 반도 받을 수가 없는거냐며  한탄하시지만 어쩌시겠는가?

내가 한만큼 나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고 계속 그렇게 자격이 이어지면 이놈의 제사는 끝이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내가  획득한 내 자격을 그냥 자격으로 남겨두겠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네버엔딩스토리가 된다.  물론 본인이 스스로 내 제사는 간소하게 하라고 하신건 아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삶이 바뀌면서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한편으로 그렇게 자격있게 아버지의 권위를 세운건 결국 서여사다.

우리 아버지지만 명절이나 제사때 한 건 새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거나 그 전 주에 세탁소에서 잘 손질해온 한복을 입고  잘 차려놓은 제사상 앞에서 술을 따르고 축문을 읽고 절을 한 것 뿐이다. 만약 내가 한 정성을 내가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면 그건 죄송하지만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이 아니고 할머니나 우리 엄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서여사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부니까 당연히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시어머니라 부엌에 들어가는 사위는 그르려니 하지만 부엌에 들어가는 아들은 안타깝고 애틋하다.

우리 올케는 사실 내 남동생보다 바쁘다.

자라면서 공부밖에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공부를 썩 잘했고 좋은 학교를 갔고 또 공부를 잘하고 공부밖에 잘 하는게 없어서 좋은 직장엘 갔고 좋은 직장이란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고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란 일을 많이 시키는 직장이다. 그 모든 조건에 맞게 올캐는 늘 바쁘다 뭐 물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려면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낸 시간을 시가 제사에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서여사 입장에서는 며느리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한 거고 같은 여자로서 내가 보기엔 그래도 날짜 잊지 않고  챙기고 주문한 음식이라도 자기집에서 공간을 내고 손님을 맞는(물론 그 옛날 양복입는 남자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고 조폭?을 떠올린 내 친구의 착각을 가능케한 그런 규모는 아니지만)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하든 적게 하든 주문을 하든 뒷처리는 남는 법이니까.

엄마 입장에서 그리고 시누 입장에서 그래도 며느리인데 조금이라도 정성을 보이면 좋지 않나 싶어 얄밉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또 여자입장에서 보면 내가 주관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하겠다고 결정했는데 거기 제 3자가 토를 달 수도 없는 것이라고 수긍한다.

40년을 한결같이 종부로 살아온 우리 서여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그녀의 은근한 질투와 아쉬움도 이해할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다.

 

# 정말 이번 연휴는 드럽게 길었다.

쉬어도 쉬어도 끝이 없었고 아침에 눈뜨면 다들 나가서 보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하루 내내 집안을 뒹굴거리고 있었고 이 인간들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아귀들이나 다름 없었고(미안하다. 내가 인격이 덜 되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하루 세끼 차리는 일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울 수 있다.

따끈한 밥과 두어가지 찬이어도 정성껏 차리는 것이 가능하고

십첩 반상을 아무런  영혼없이 사온 찬이나 미리 해둔 밑반찬으로도 차려낼 수 있다.

게다가 우리에겐 햇반도 있지 않은가!!!!!

 

 

 

 

 

 

 

 

 

 

 

 

 

 

 

 

 

연휴가 시작될 무렵 다시 읽었다.

한편 한편 여기저기 헤집어가면서도 다 읽었다.

늘 그렇듯 술이 당겼고 늘 그렇듯 집에 먹을만한 알콜은 없었다.

왜 모든 일들은 지나간 후에야 그 상황이 더 선명해지는 걸까?

시간이 지날 수로 선명하고 단순해지는 기억이고 상황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어쩌면 그 순간 몰랐고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을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화려한 시간이었다는 것

내가 내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어설프고 한순간의 헤프닝같은 일이지만 그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꼭 한템포 뒤에 알아지는 것이다.

내가 밥상을 차리는 일이 이러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달라졌을까?

 

 

연휴 마지막날 오후 봄에 담근 매실을 걸렸다.

얼마가 나올지 몰라 2리터 생수병을 네개를 깨끗하게 씻고 말려뒀는데 겨우 두병 나왔다.

남은 매실로 담은 매실주는 ..... 예전 약초주를 담그고 남은 담금주로 해서인지 내겐 독했다.

그래도 그 매실주를 찔끔 찔끔 마시면서 연경을 생각하고 이모를 생각한다.

내 삶도 이렇게 취하거 깨거나  그렇게 반복하는동안 아하. 하고 무릎을 칠 일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늦게라도 알게 되는게 다행 아닐까  스스로 위안한다.

스스로 위안하고 만족하는 건 내 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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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파고 들 곳없는 바닥으로 떨어진 여자들이 비상하는 방법.
잊지않는것 기억하는것 그리고 마주 보는것
바닥에서 모든 혐오를 뒤집어 쓴 것도 나이고,지금 떠오르는것도 나다.
다만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
그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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