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썼던가?

이제 이게 한 이야기인지 안한 이야기인지, 했다면 누구에게 했는지...

행여 같은 이에게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나만 박장대소하는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다.

들었다면 처음 듣는 것 처럼.... 처음이라면 다행이고....

 

지금 이 도시에 이사를 와서 처음 만든 것이 도서관 대출증이었다.

그리고 처음 사람들과의 관계속으로 들어간 것이 학교 도서관 책읽는 모임이었다.

내가 대단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거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아니 그때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책읽는 것밖에 없던 거였다.

기술도 없고 경력도 없으며 사회성이 아니고 사교성마저도 떨어지는 인간이라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두려워서  그저 내 편한대로 펼치고 접어버리면 그만인 책만이 유일한 방편이었다.

낯선 도시는 정이 들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가 바쁘거나 씩씩해보였다.

좋은 일로 이사를 한것도 아니어서 굳이 정을 붙이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고 그냥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투명하게 존재하기를 원했다.

그래도 무언가 생활에 재미는 있어야한다는 생각과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가족을 몰아서 도서관을 갔고 어색한 표정으로 즉석사진을 찍고 대출증을 만들었다.

다행이 이 도시는 도서관이 잘 되어 있어 여기저기 걸어가거나 조금만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었다. 워낙에 길치라 한동안은 딱 한 도서관만 죽어라 팠지만 점차 길을 알게 되면서 다른 도서관도 기웃거리고 그러다 상호대차라는 편리한 제도가 생긴 덕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그 전에 살던 곳에서도 아이학교 도서관 도우미는 내내 했었다.

가장 사교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봉사였다. 그냥 나가서 말없는 사서 선생님의 무뚝뚝함에 감사하며 책 정리하고 서가 정리하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만 주면 그만이었으니까

옮겨 와서도 그 일은 계속했다. 어느 학교나 도서관 봉사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연하게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어느 정도 책읽기는 자신있었다.

읽는 근력이 제법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보아하니 그리 어려운 책을 읽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면 그냥 그냥 읽어갈만한 가벼운 독서가 될거라 짐작했다. 틀리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한다는 것이 조금 주저되긴 했지만 꼭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을거라고 믿었고 실제 그랬다.

열명이 넘는 회원중에는 주로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간혹 삼천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다시 돌려 놓는 사람도 있었다.

제각각 다른 배경과 다른 학년의 아이를 가진 집단이라 의외로 편했다.

그렇게 그냥 우연하게 시작된 독서모임을 4년동안 했다.

고전들을 읽고 아이들 책을 읽고 소설을 읽고 인문학을 읽었다.

독서력이 제각각이라 다양한 수준의 책을 읽었고 매년 맴버들이 드나들면서 사람들도 바뀌었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껄끄러운 사람도 있고 한 번만에 정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매년 보지만 어색하고 힘든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냥 잊어버렸다.

오랫동안 모임을 하지만 책을 통해 성장했다는 건 없었다. 단언컨대.....

그저 한때는 겨우 이수준을.... 하는 마음에 오만해지기도 했고

제대로 읽어오지 않은 멤버들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내가 내켜지지 않은 책은 은근슬쩍 핑계를 대며 빠지기도 했으며

내가 느낀 감정과 의견이 반대에 부딪치면 빈정상했고 내가 거부당한 기분이었는데

타인의 의견은 쉽게 부정하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와 함께 정하는 목록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

조금 한편에 치우치거나 편협하더라도  그렇게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에 책은 많고 내가 읽은 책들은 바닷가 모래알 한줌정도나 될까

 

 

 

 

 

그 해 에이바가 북클럽에 들어간 것 역시 사람들이 절실했고 친교가 절실해서였다.

갑작스럽게 알게된 남편의 외도 그리고 이혼

어릴 적 동생이 사고로 죽고 엄마마저 자동차 사고로 동생을 따라간 이후 꾹꾹 눌러놓았던 기억과 감정들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또한번 거절당하고 버려졌다.

무언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참가한 북클럽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래도 내가 경험한 북클럽과 다르지 않다

다만 도서관 사서인 케이트가 모든 일을 진행하고 매번 그 책에 맞게 다과를 준비하고 코스프레를 준비한다는 게 더해질 뿐이다(라고 우긴다)

간혹 다른 주제로 빠지기도 하고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사람과 조용히 듣는 사람이 뒤섞여 있다는 건 다르지 않다.

에이바가 가입한 해의 도서 주제가 < 내인생의 책>이었다.

내게 있어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일까?

그건 누군가의 말처럼 그때의 내 감정과 내 상황과 책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감동이거나 전율이다. 그때 그 느낌과 그 흥분이 다른 시간 다른 상황에서도 같게 느껴질까

다만 그때 그 책이 나의 삶의 방향을 조금 꺽어놓아서 내가 조금 다른 내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면.... 그 달라짐을 그 순간 알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제각각 가지고 있던 내 인생의 책들이 모여서 북클럽은 진행된다.

책이 주는 감동은 찰라에 지나기도 한다.

그저 꾸역꾸역 읽어가다가

오홋 이거 흥미로운걸 하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조금씩 야금야금  남아있는 페이지를 세어가며 아쉬운 마음에 아껴가며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 그 책이 내 삶에 훅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휘리릭 사라지기도 한다.

누구나 좋은 책이라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추천하던 책이 그저 읽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다가

우연히 다시 읽는 순간 다른 모습으로 들어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책일뿐이다.

책은 책일뿐이고 읽는다는 것이 사람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진 않는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에이바도 읽지 않고 읽은 척하다가 망신도 당하고  읽지 않고 얌전히 있거나 겨우겨우 읽는 과정을 거쳐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어리고 힘들었던 시간을 견디게 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기억한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걸 알지만 그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걸 주저하기도 했다.

한때 책읽기를 좋아하던 에이바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잃었다는 걸 깨닫지도 못했다. 그리고 찾아온 고통앞에 다시 친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책을 찾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책에서 길을 찾지는 않는다.

절실한 사람에게만 길이 보인다.

질실한 사람은 자기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고 책을 통해 나를 만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저 많이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읽는것이다.

그걸 에이바는 해냈다. (소설이니까 흥흥흥)

 

 

4년간 독서모임을 하고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 역시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4년전보다 조금 더 많이 읽은 인간이 되었고 조금 더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을 뿐이고

조금은 책 욕심에서 놓여나기도 했고 관심분야가 일단은 넓어지기도 했다.

그림책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것도 독서모임덕분이었고

작가별로 책을 읽어보는 경험도 모임을 통해서였고

내가 제법 말을 잘 하고 진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것도 모임덕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을까?

여전히 싫은 사람은 너무너무 싫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고 거부당하면 화가 나고 쪼잔하게 복수하고 싶다.

다만 ... 도무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예전보다 조금은 더 많이 한다.

당연히 .... 해야한다. 되어야 한다. 하는 것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어짜피 너의 삶은 너의 것이고 나의 삶은 내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내가 생각보다는 괜찮은 구석이 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아쉽다.

 

책은 책이고 삶은 삶이고 나는 나이다.

그래봐야 책이지만 그럼에도 책이다. 그게 내가 알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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