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억중에 하나다. 이것이 진실인지 혼자만의 상상인지는 모르겠다. 어떤 사실에 상상이 더해진 것일 수도 있다.

등에 동생을 엎은 엄마 손을 잡 고 시장엘 갔다.

장을 보긴 했는지 무얼 샀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그냥 그 시장 어느 모퉁이에서 무언가를 모여서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떠돌이 약장사였는지 어떤 시장 공연인지도 모르겠다.

구경을 했었고 혹시나 사람 틈에서 엄마를 잃어버릴까봐 동생을 둘러 엎은 포대기 끈을 잡고 있었다. 엄마 손을 잡지 않은 건 어쩌면 손에 물건들이 있었기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 참을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그 곳에 엄마가 없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것은 포대기 끈의 끝자락이 아니라 어떤 할머니가 입은 저고리 고름이었다.

내게 고름이 잡힌 그 할머니는 빙긋 웃으며 이제 다 봤냐 집에 가자.. 그러면서 나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분명히 데려다 주었을 것이다. 혼자 간 기억은 없으니까

그 할머니가 누구인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알거나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갔고 엄마에게 왜 먼저 돌아갔냐고 떼를 쓰거나 따지지 않았다.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때 감정은 떠오른다.

그때 내가 가진 감정은 체념이었던거 같다.

뭐 그렇지 뭐...... 그런 마음

가족이 많아서 언제나 바빠서 마음 편히 시장 구경도 못할 엄마를 이해한 건지

등에 엎은 아이는 처지고 장바구니는 무거워서 더 이상 서있을 수 없었던 그 상황을 이해한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그냥 내가 이해해야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다..

내 기억은 그것뿐이다

그 초기 기억이 어떤 작용을 했했는지 하긴 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아주 어릴 적 기억이라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무심하게 떠올랐을 뿐이다.

억울했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뭐 그런 때도 있었구나 하는 마음 뿐이었다.

그 때 이후 나는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 기억을 그날 집단 상담때 이외 누구에게- 가족에게 도 한 적이 없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전에 선물했던 시계를 돌려달라고 연락이 왔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시계를 돌려주는 일이 주된 스토리는 아니었다.

유학을 떠난 여자친구를 위해 연락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간 남자의 이야기도 그들의 극적인 러브스토리가  주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때 엄마 아빠가 동물원에서 버리려고 했다고 믿는 삼남매의 이야기도 그 비정한 부모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암투병으로 세브란스 지하에서 보낸  어두운 시간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런 투병기도 아니었고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첫 문장이 이야기 전체를 보여줄 때도 있지만 그 이야기도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이야기는 맥락없이 시작했다가 느닷없이 마무리괸다.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었고 소소하고 무심했다.

때로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때로는 그저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이젠 기억이라고 하기엔 주관이 너무 들어가버린 희미한 그림자같은 것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어서 후회조차 소용이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남에게 털어놓기에는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래도 내겐 어느 순간 느닷없이 떠오르는 기억이고 상처일 수도 있고  변화였던 이야기들이다.

이미 시간은 흘렀고 이젠 그저 되새김질 하는 것 이외엔 어떨 도리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히지 않는 것... 무심하게 들었거나 보았지만 내게 순간 의미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다보면 대단한 사건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온나라가 온 세상이 들썩이는 일들은 분명 역사를 바꾸기도 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게 분명하지만 때로는 사소하고 나만 알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누구에게 말하기 쑥스럽고 애매한 것들이 삶의 각도를 바꿀 때도 있다. 아주 미세하게 누구도 타인은 알아차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내 삶이 바뀌어버린 그런 변화를 가진다.

단편속의 인물들은 대단한 사람은 없다.

물론 그들이 만나거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 중엔 대단하고 위대한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그 주인공들이나 대부분의 인물들은 그저 우리곁을 스치는 사람들이고 지나가다 보아도 눈에 띄지 않는 그냥 그런 희미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겪는 소소한 일들이 어느 순간 삶의 각도를 미묘하게 벌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전의 나와 달라진다. 뭐가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을 할 수는 없다.

그건 나만 느끼고 나만 알아차리는 변화이니까...

 

사실 처음 이 단편을 읽었을 때는 그냥 그랬다.

좀 소녀취향인가 싶었고 뜬금없고 느닷없다는 기분도 들었고  심하게 말해서 한편한편이 너무 널뛰는 거 아닌가 싶었다.

 

몇해를 보내고 다시 읽는 지금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게 없는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생각도 했다.

이어 쓴게 아니라 시기를 달리해서 다른 매체에 그때 그떄 써서 기고했던 작품들이라면 저마다 다른게 당연하다.

그동안 단편집에서 찾아내던 전체를 흐르는 무언가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평론가의  발견이거나 나 개인의 착각일것이다.

그저 내가 경험했던 무언가와 내가 기억하는 어떤 정서들과 책을 읽는 지금 내가 가진 주위 환경과 나의 마음의 상태가 더해져 그 책에서 무언가를 찾아낼 뿐이다.

바람같은 사랑이나 이미 소멸해버린 무언가를 향한 손짓같은 건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언가 일 것이다.

내가 가진 내 기억의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그건 나의 기억이고 나의 시간이다.

내가 기억한 모든 조각과 내가 느낀 정서의 조각들을 끌어모으면 내가 될까

그렇게 완성된 나는 어떤모습일까

지금 이순간 나이 먹은 나와 같은 모양일 수도 아닐 수도.....

그냥 의미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그리고 그 작은 조각조각마다 의미가 있을거라고 믿는 것 그것만 남을 뿐이다

단편을 읽는다는 건 그렇다

별 거 아니지만 별난... 그런 묘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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