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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집에 계신 티비는 달랑 네개의 공중파만 나오는지라 캐이블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그저 그림의 떡이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때마다 하도 1997 1997 해대는 통에 도데체 뭔가 하고 보기시작해서 딱 4일만에 15화까지 다 마쳤다.

아.. 이런 재미난 드라마가 있었다니..

첨 드라마를 볼때는 알콩달콩한 로맨스보다는 그 깨알같은 시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보다보니 시원이와 윤제 사이가 참 오묘하다.

어릴적부터 허물없이 보아온 친구사이

나는 저 아이의 식습관 잠버릇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걸 세세하게 다 알고  상대의 첫 생리가 언제 터졌는지 어떤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고 어디에 빠져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다아는 사이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울하면 옆에서 어꺠를 내밀어 주고 기분좋아 미치겠는 순간에 등짝을 팍팍 맞아주며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이..

아 흔한 구도로 친구가 언젠가 연인이 되는거구나..

그렇게 시작하고 봤는데 오묘한걸 발견했다.

윤제에게 시원이는 엄마가 아닐까?

윤제가 싫어하는 오이를 대신 먹어주고 자장면에 올라가 있는 완두콩을 대신 먹어주고

내가 빨던 빨대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입으로 빨고 침을 뭍혀서 뭐 묻은거 때어주고

그건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자식에게 해주는게 아닐까

어릴적 부모를 잃은 윤제에게 아마 엄마는 늘 부제중이었을테고 그 빈 공간을  어느새 시원이가 차지하고 메워주는 것이아닐까 했다.

시원이가 그렇게 윤제를 구박하고 떄리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굴어도 그건 친구나 연인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하는 잔소리고 간섭이고 잘되라고 하는 매질(?)이고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윤제의 정서적 빈공간을 채워주는 사람 그 사람이 시원이고 그렇게 둘이 정을 쌓고 그게 사랑으로 변해간다.

 

열달동안 엄마의 뱃속에 있다가 나온 아이는 몹시 두렵다. 탯줄이 잘리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느낌 그때 첨으로 나를 안아주고 배고플때 먹을 것을 주고 기분나쁜 젖은 귀저기나 불쾌함 두려움을 울음으로 나타내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챙겨주는 사람 그 사람이 엄마였다.

(그 엄마에게 모성이 자연스러운가 아닌가는 차후로 미루고 일단)

그런 엄마가 채워주는 정서적인 안정감은 아기에게 대단한 것이다.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고 빽이고 투정이나 화내는 것짜증내는 것 다 받아줄 사람

내가 나보다 더 편하게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엄마가 아이의 정서를 채워주고 나면 아이는 세상에 나설 용기가 생기고 또다른 세상의 문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열어젖힐수 있지 않을까

윤제와 시원이를 보면서 나는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밀당을 하고 서로 마음을 몰라주고 그게 아니라 어쩌면 20년 가까이 그렇게 자기들도 모르게 서로 빈 정서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는 엄마와 아들같은 관게구나 하는 걸 보았다.

시원이의 잔소리 니킥 무모한 고집이 윤제를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면서 정서적 안정감을 함께 주었던게 아닐까

책 썸네일

최근 읽었던 홍당무

그 소년도 불안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엄마로 인해 정서적 빈 공간을 채우지 못한 소년이었다.

늘 속을 줄 알면서도 엄마말을 믿고 따르고 뭐든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닐까 싶다. 채워지지 않은 내 정서의 빈공간을 어서 채워달라고 비어있어 지금 내가 몹시 불안하고 두렵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 아니었을까

지치고  임계점까지 화가 찬 엄마의 마음을 그스를까봐 자기 감정은 죽이고 담담하게 바라보면서도 자꾸 바라는 것

그도 빈 공간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참 자라는 내 아이들에게는 얼마만큼의 빈공간이 남아있을까

탯줄을 자르면서 부터 함께한 불안과 두려움을 나는 얼마나 달래주고 안아주었을까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지만

사랑은 주는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기준이라고 했다

사랑이 아니라 배려가 그랬다는 건지 좀 모르겠다

주는 사람이 이만하면 충분하다가 기준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감사하고 이만하면 충분하ㅏ다고 느끼는 만큼이 진정한 충분한 배려고 사랑이라고

주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이만큼 주었는데 왜 반응이 없는가 왜 나에게 돌아오는 댓가가 없는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동정이거나 강요로 느껴질 수도 있단다

내가 이렇게 희생해서 너를 가르치고 기르고 돌보는데 너는 왜 그렇게 삐딱하게 나를 보고 나를 원망하니 내가 도데체 뭘 잘못했니? 나는 하느라 했다.

이런건 어쩌면 자식에게 족쇄가 되고 도망가고 싶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아이의 정서를 매워주면서도 쿨한 엄마

늘 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조금은 거기를 두고 무심한 엄마

그 적당한 거리가 참 어렵다.

암만 생각해도 홍당무의 엄마 르픽부인은 홍당무를 사랑하는 방법이 홍당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닌걸 모르는 거같다. 그럼에도 자기 방식으로 사랑이라고 믿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갈 그녀가 안쓰럽다.

나는 지금 나 혼자 일방적으로 사랑이라고 퍼부으면서 혼자 지쳐가고 있지 않나

사춘기가 된 아이는 그걸 지*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갑자기 불안하다.

딱 윤제에게 시원이만큼 되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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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비룡소 클래식 3
쥘 르나르 지음, 펠릭스 발로통 그림, 심지원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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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의 홍당무는 참 재미있고 따뜻했다.

그 엄마가 아이를 왜그렇게 학대했는지의 기억보다는 홍당무가  이름과 비슷하게 당혹스럽고 어처구니없는 엉뚱한 아이라는 기억이 남아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기억이 아름답게 미화된다는 걸 알지만 이 책을 읽은 느낌이 따듯하고 재미있다는 건 어떤 이유일까

나의 유년이 홍당무처럼 우울하고 힘든것도 아니었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중간에 낀 아이가 가지는 특유의 우울하고 뭔가 모르게 아래위로 치인다는 자기 연민이랄까 자격지심이랄까 그런것이 홍당무에 빠지고 재미있게 본게 아니었을까

아 나만 이렇게 힘든건 아니구나 이렇게 엄마에게 오해받고 이쁨받고 싶어하는 아이가 여기 또 있구나 적어도 나는 이 아이처럼 더럽고 엉뚱하진 않으니 더 사랑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누가 나무라거나 뭐라고 하지 않아도 혼자 주눅들고 우울하고 사랑에 굶주렸던 아이에게 홍당무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거같다

 

다시 나이를 먹어 이제 내가 그 홍당무의 엄마 나이 가까이 와서 읽게 되면서

참 이 집안도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엄마는 왜 형과 누나와 달리 홍당무를 무시하고 엽신겨기고 만만하게 여기는지 

흔히들 세아이의 막내라면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워 숨쉬고 있는 것만 봐도 대견스럽다고하던데

홍당무는 막내이면서 그런 사랑스러움은 전혀 없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지도 못하고 그저 엄마가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갈망하면서 비위맞추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항상 모든 상황을 합리화 하면서 엄마가 화난 이유 자기를 매질하는 이유를 자기에게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엄마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마침내 그것도 쌓이고 쌓여서 엄마를 미워한다고 고백하고 집을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반전..(이랄수 있을까... 이미 행간에 드러간 일이어서..)

아버지가 말한다 "나는 니 엄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아무도 좋아하지 않은 엄마 엄마의 난폭함 변덕 일관성없는 야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책에서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빠역시 엄마를 무시하고 막 대한다.

빵을 던져주고 다정한 말이나 대화도 없다. 깔끔해보이는 엄마의 성격과는 반대로 사냥을 핑계로 옷을 더럽히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정은 불안하다. 부부는 정이 없고 아이들은 스스로 그런 환경에 살아가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큰 아들은 떼쓰고  나약함으로서 끈없없는 보호를 요구하고 딸은 다정하고 착하다는 이름을 얻어서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홍당무는 무얼 해도 어색하고 우물쭈물하게 되고 머리로 고민하다가 행동으로 옮길 기회를 놓치고 오해받게 된다.

이런 어둡고 막막한 이야기가 외외로 담담하고 유머스럽게 쓰였다.

어떤 감정도 드러니지 않고 있는 모습을 스케치하듯이 담담하게 홍당무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그 집 상황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간간히 유머도 섞여있다.

이런 담담한 문체가 홍당무네 상황을 더 무겁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홍당무네 집이 문제가 있는 집인걸까

어쩌면 100년이 지난 지금 이런 가정을 보편적인게 아닐까

능력있는 아버지 상냥하고 가정적인 엄마 그리고 나름 공부도잘하고 말도 잘 듣는 아이들 물론 아이가 많다보니 장난꾸러기도 양념처럼 끼어있고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모두가 외롭고 사랑을 원한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소통이 힘들고 서로를 너무나 당연히 여겨서 사랑에 인색하다.

요즘 어느가정에도  고통의 무게가 다를뿐 각각의 무게를 가진 홍당무들이 있지 않을까

 

집을 나가고 싶어하는 홍당무는 못나가고 결국 집에서 모든 걸 견디고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호밀밭의 파수꾼의그 녀석이 생각난다.

그 녀석도 학교를 퇴학당하고 멀리 떠나겠다고 하지만 결국 떠나지 못했다.

둘다 가정에서 겉돌고 뭔가 가슴속에 가득한 원망을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거리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소년들이다.

둘다 중산층이상 가정을 가졌다는 것 보기에는 멀쩡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녀석에게는 피비라는 아름다운 여동생이 있었지만

홍당무에게는 누가 있을까 간혹 아빠가 마음을 알아주지만 ...

 

내가 엄마라서 인지 나는 그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

엄마의 화풀이 대상 이 홍당무라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엄마가 속풀이를 할 유일한 대상이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엄마도 가엾다.

 

"홍당무야 행복따윈 단념해라 이 아버지가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너는 지금보다 결코 더 행복해 질   수는 없다. 암 그렇고 말고"

"장담하시는군요"

"체념해라 그리고 너 자신의 방비를 튼튼히해라 어른이 될때까지 말이다, 네가 한 사람 몴을 하게 되면 그때는 자유롭게 될 수 있단다. 타고난 성질이나 마음은 바꾸지 못하지만 가정은 바꿀 수 잇단다. 또 부모 형제와 인연을 끊을 수도 있고 그때까지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하탆은 일에 속썩이지 말고 주위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해라. 특히 네 가까이 있는 식구들을 말이다. 재미도 있을 게다. 내가 장담하지. 뜻밖에 위안이 되는 일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건 그걸 거예요. 각자가 다 자기의 괴로움을 지녔을테니까.내일부터 그런 사람들을 동정해 보겠어요 오늘까지 저는 저 자신만의 정의를 외친거예요. 다른 사람의 어떤 가혹한 운명도 제것보다 다 나아보였던 거죠. 제 엄마는 단 한분 뿐잉에요. 그런엄마가 절 사랑해주지 않고 저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

"그러면 너는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믿고있니?"

 

세상을 살아온 아버지의 충고. 자신의 경험에 비춘  조언이기도하지만 적나라한 현실이기도 하다. 일단 바짝 엎드려 견디는 건뿐이다. 그리고 내가 힘을 가졋을때 바꿀 수 있는 건 바꾸어라 가족마저도...

어쩌면 아버지의 이말 한마디에 홍당무는 가족안에서 희생하고 구박받는 자기의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 하나 희생하는 것 그것이 우리 가족이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르겠다고

이후 홍당무의 행동은 여전하고 홍당무를 대하는 사람들도 여전하지만 홍당무의 속은 변했을 것이다

엄마를 이해하진 못해도 인정해버릴 수는 있고  은연중 자유를 누리는 법도 알아간다.

이것이 홍당무의 성장일까

어느 성장소설보다 서글프지만 웃음을 놓지 않게 만드는 묘한 이야기였다.

홍당무는 참 독특한 매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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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글들은 리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생각에 가까우니 페이퍼에 속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을 읽고 느낀점은 쓴다는 게 독서감상문이고 그게 리뷰라고까지 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내 위치와 상황에 비춰보기도 하고 그때그때  변화하는 내 변덕이 맞춰서 책이 이렇게도 읽혔다가 또 며칠을 묵히고 다시 책장을 넘겨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

그리고 내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것

그때 그때 기분이 변화하는 것 날씨가 변하는 것

그런 것들이 책을 대할때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뭘 읽어도 시큰둥하고 시니컬해지고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맘이 들때가 있었다.

좋은 구절을 읽어도 누구나 좋다고 하는 책을 읽어도 그래서 뭐

이렇게  남에게 알랑거리는 말 누가 못하랴.. 그런 심보만 가득한 적이 있었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면서도 왠지 남의 이야기는 다 삐딱하게 들리고 흥 니가 뭘 그리 잘 알아서 하는 심보가 들기도 했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거나 훌륭해지는 것도 아니다.

책몇권 더 읽었다고 해서 사람이 변한다면 세상에 변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그나마 변하거나 조금 나아질 기회를 가져보고자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좋은 부모도 아니고 좋은 자식도 아니다

아주 가끔 좋안 그런 존재가 되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나의 삶과 행동들을 평균내어보면 그냥 그런 인간이다.

그나마 더 이상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것이 그나마 책이라고 읽어서일까싶기도 하다.

 

친정엄마는 책 많이 읽는 남편 즉 나의 친정아부지한테 너무 치여서 책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책 읽는 사람들의 잘난척이 무지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책 많이 읽는 니 애비 그리고 너 혼자 잘나서  수준낮은 사람이랑은 대화도 안하고 혼자 고고하고 잘 나서 매사 무시하고 대꾸도 없고 숙이 음흉하다...

이게 엄마가 본 책보는 사람들의 속이다.

차라리 책을 보지 않고 드라마를 보고 텔레비젼 많이 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감능력도 좋고 남들말도 잘 들어주고 이해해준단다.

뭐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근데 엄마가 착각하는 것중 하나는

아부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말이 없는 이유는 사실 잘난척 하기뒤해서가 아니라 무지하기때문이다.

뭐라고 질문을 받아서 즉각 답이 나오는 뭔가 지식적인 것이 아닌다음에는

뭐든 즉각 대답을 하거나 뭐라고 하기 어려운게 꽤 된다.

나도 잘 모르고 뭐라고 쉽게 말했다가 그 쉬운말에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무거워서 쉽게 말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니? 이렇게 해야하지 않니? 등등  그런 류의 질문에 쉽게 답하기 힘들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아.. 그때 이렇게 말을 할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한참 뒤에 이렇게 대꾸가 생각나는 걸 보면 나도 참 멍청하고 단순한 사람인데 다만 책을 좀 많이 본다고 잘난척 하는 걸로 오해받는 건 억울하다. 요즘 친정아부지를 가만 보면 어쩌면 아쩌지도 나처럼 뭔가 알지못해 대꾸를 못하거나 하는 건데 고학력과 고지식으로 인해 오해받고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

 

책을 읽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내가 바뀌지도 않는다

어느순간 내가 깨달음을  만나서 대단하게 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어제만큼은 유지하게 위해서 조금 아주 개미 뚱구멍먼큼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책을 본다.

그리고 숫기없고 사교성이 없어서 책속으로 글 줄 속으로 숨어야 마음이 편안한 활자 히키고모리같은 면이 있기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보다는 책이 대하기 편하고 안정적이기때문에책을 읽는다고 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보일까?

오늘도 모임에 다녀왔더니 괜히 피곤하고 힘들다 그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 사간이 지루한것도 아니었는데 나도 무지 웃고 이야기하고 좋은 시간이었는데 집에 돌아오 혼자 이렇게 알라딘을 뒤지고 다니는게 더 편하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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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빈슨 크루소 통합논술 多지식 세계명작 18
다니엘 디포우 지음, 황근기 엮음, 이승수 그림 / 대교출판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책공부 2학기 첫책 ....

 

어릴적 읽었던 요약된 로빈슨 이야기는 무인도에 표류한 로빈슨의 모험과 개척정신에 대한 이야기었던거 같다.

혼자 무인도에 버리지고 살기위해 여러가지를 궁리하고 만들고 위험에 처하고 이겨내고 마침내 돌아가는 이야기

그런데 그로부터 30년도 더 지나 읽은 로빈슨의 모험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참... 내가 진부하고 통속적이고 속물아는 걸 인정하는 거지만...

이 이야기는 로빈슨이라는 영국남자의 치부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로빈슨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고 배를 타고 죽도록 고생하지만 사이사이 좋은 기회를 가지고 돈도 많이 벌고 게다가 돈을 맡기는 사람도 신뢰가 있어 그를 속이지 않고 돈을 보관하는데다 불려주기까지 하고.. 비록 무인도에 표류되어 겨우 살아나지만

그 곳은 지상낙원이나 다름없다.

사람이 없을뿐 물도 있고 식량도 있고 게다가 난파된 배마저 가까운 곳으로 떠내려와서 식량과 술과 도구 무기와 돈까지 손에 넣는다.

그 섬에는 사나운 짐승도 없다. 농사도 잘 되고 무서운 해충도 없고 크다란 자연재해도 없다.

그렇게 20년을 살아도 무탈할 수 밖에

고난이라고 해봐야 야만인이 포로를 끌고 와서 야만스러운 짓을 하는 것

나중에 선상쿠데타가 난 영국배가 가까이 오고 그들을 도와주고 쿠데타를 진압하고 가진 돈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가 더욱 큰 부자가 된다. 20년 넘게 남에게 맡긴 돈을 알토란같이 불려져 있고  무인도에서 감추어둔 돈도 남았고  다만 사람의 정이 그리웠겠지만 다른건 부러울게 없다.

 

게다가 신심이 깊은 로빈슨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지으신 일이고 이끄신 일이고 자신은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모든 것을 해왔고 용서받았고 야만인들을 전도했다고 믿는다.

 

아... 내가 너무나 속물이구나...

하지만 그 이상의 느낌이 없다는게 사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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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 이 책을 읽었을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했다.

80분간 지속하는 기억 그 속에서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박사의 마지막 자존심

그리고 그 처절한 자존심을 지켜주는 가정부와 그의 아들 루트

그들에 서로에 대해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예의가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수학이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해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려운 수학이 아름다운 시가 되고 산문이 되어 나오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 명확하고 영원하면서 인간을 한없이 낮추게 하는 것 그것이  그 세사람에게 수학이었다,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건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구나. 아름답고 슬픈 러브스토리..

80분간의 기억순환은 무엇이든 영원한것이 없다. 늘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추억을 가졌는지를 그냥 파도가 쓸어가든 다시 원상태로 돌린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숫자 0처럼

모든 것을 그냥 무의 상태로 돌린다.

나에게 영원한 사랑이 이야기했던 상대에게 나는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두번째 독서에서는 세사람과 함께 안채의 미망인까지 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 미망인은  사고로 인해 드디어 자신만이 박사를 온전히 독차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가정부와 그의 아들이 자꾸 박사의 기억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 보고 몹시 흔들렸을 것이다. 불안했을것이다.

미망인은 박사의 기억속에 자신만 채우고 싶었고

가정부와 그의 아들은 박사가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누가 더 옳고 그런가 우월한가는 없다.

기억앞에서  사랑앞에서는 누구나 약자가 아닐까... (더구나 사랑을 잊어버린 박사와 달리 아직도 기억하는 미망인이 사랑이라는 권력앞에서 영원한 약자일테니까 )

박사는 루트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아이여서 부호받아 마땅하고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기억하려고 애쓴다. 모자지간에 살아오며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몰랐던 루트지만 그 사랑에 대해 정직하고 명확하게 반응하고 애정을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의와 믿음이 그들 관계에 있다.

80분 뒤에 그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와 나는 또다시 함께 시작할 수 있고 또다시 시간을 메워나갈 수 있으리라

가정부와 아들을 시기했던 미망인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그의 기억이 풍성할수록 (비록 돌아서서 잊혀진다해도) 더 좋은게 아닐까

 

수학처럼 정확하고 한치의 빈틈이 없는 학문이 주는 아름다움이 사람사이의 관계까지 설명해주고 정의해준다. 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와 존재감, 없다는 것 그것은 그냥 비어있고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마지막 하나의 방점이라는 것

세상에는 어떤 것이든 하찮은게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어떤 사건도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수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인간사이의 예의와 믿음이라는게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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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