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 이 책을 읽었을때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했다.

80분간 지속하는 기억 그 속에서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박사의 마지막 자존심

그리고 그 처절한 자존심을 지켜주는 가정부와 그의 아들 루트

그들에 서로에 대해 보여주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예의가 이 책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수학이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해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어려운 수학이 아름다운 시가 되고 산문이 되어 나오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게 하는 것 명확하고 영원하면서 인간을 한없이 낮추게 하는 것 그것이  그 세사람에게 수학이었다,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건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구나. 아름답고 슬픈 러브스토리..

80분간의 기억순환은 무엇이든 영원한것이 없다. 늘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기억하고 추억을 가졌는지를 그냥 파도가 쓸어가든 다시 원상태로 돌린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추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숫자 0처럼

모든 것을 그냥 무의 상태로 돌린다.

나에게 영원한 사랑이 이야기했던 상대에게 나는 영원히 기억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하여 두번째 독서에서는 세사람과 함께 안채의 미망인까지 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 미망인은  사고로 인해 드디어 자신만이 박사를 온전히 독차지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가정부와 그의 아들이 자꾸 박사의 기억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걸 보고 몹시 흔들렸을 것이다. 불안했을것이다.

미망인은 박사의 기억속에 자신만 채우고 싶었고

가정부와 그의 아들은 박사가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누가 더 옳고 그런가 우월한가는 없다.

기억앞에서  사랑앞에서는 누구나 약자가 아닐까... (더구나 사랑을 잊어버린 박사와 달리 아직도 기억하는 미망인이 사랑이라는 권력앞에서 영원한 약자일테니까 )

박사는 루트에 대해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아이여서 부호받아 마땅하고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기억하려고 애쓴다. 모자지간에 살아오며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몰랐던 루트지만 그 사랑에 대해 정직하고 명확하게 반응하고 애정을 보여준다.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의와 믿음이 그들 관계에 있다.

80분 뒤에 그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그와 나는 또다시 함께 시작할 수 있고 또다시 시간을 메워나갈 수 있으리라

가정부와 아들을 시기했던 미망인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그의 기억이 풍성할수록 (비록 돌아서서 잊혀진다해도) 더 좋은게 아닐까

 

수학처럼 정확하고 한치의 빈틈이 없는 학문이 주는 아름다움이 사람사이의 관계까지 설명해주고 정의해준다. 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와 존재감, 없다는 것 그것은 그냥 비어있고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마지막 하나의 방점이라는 것

세상에는 어떤 것이든 하찮은게 없다는 걸 알려주었다.

 

어떤 사건도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수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인간사이의 예의와 믿음이라는게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들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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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8 1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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