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2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작가정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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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식같은 거 안할 수는 없을까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높은 힐을 신고 표정관리를 해야하고 아름다워보여야 하고 하객들의 축하와 부러움도 받아야 하고  당당하고 자신있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 날

그런 과정을 뿅~ 하고 지나면 안될까

예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꼭 거쳐야 하는가

피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다,

결혼은 당사자들의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들의 일이기도 하고 그 예식과 관련된 계산들 약속들 상업적인 여라가지 계약들이 오고간다.

인형처럼 차리고 방글러기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마법을 걸어가면서도 속내는 복잡하고 정신없다.

이 책은 딱 하루 그날 일어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여러명.. 옴니버스형식이다.

각각의 사연을 가진 주인곧들이 화려한 결혼식장인 아르마이티에서 벌이는 소동같은 이야기

웨딩마치를 울리는 순간까지 내 사랑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쌍둥이 자매

무대책으로 이중결혼식을 코앞으로 당겨놓은 멍청한 남자

이모가 결혼식에 위험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떠는 꼬마

그리고 자강 미운 상대가 가장 행복한 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하는 웨딩플레너

그들의 하루는 숨가쁘다.

계속 일은 꼬이기만하고 뭔가 대책은 안보이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계속 미소를 짓고 있어야한다.

일단 오늘을 무사히 마치면 그만이다.

화려하게 꾸미고 미소짓고 치장한 그 이면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겨우 쪼가리 천을 덧대서 덕지덕지 기워놓은 것이든 임시방편으로 풀을 발라 막아놓은 것이든 그 이면의 복잡하고 정신사나운 모습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지금은 화려하고 밝게 행복한 그런 모습만 보여주어야 한다.

최대한 감추고 싶은 이면은 감추고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려는게 모든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내가 행복해지려고 감추고 보여주고 또 감추고 보여주고...

그런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가 단 하루 결혼식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보여준다. 치밀하고 세심하게

누구와 비교되지 않고  나 자신 스스로 빛나고 싶은 쌍둥이도  어쩔 수 없는 바람기와 무개념으로 이중혼인앞에 놓인 사내도, 아무도 모르는 이모의 위험앞에 혼자 전전긍긍하는 꼬마

하지만 누구보다 내마음을 끈 것은 웨딩 플레너인 다카코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과거 이야기 그리고 지금 악연으로 만난 고객 하지만 마음을 접고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미운 사람의 결혼을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 그걸 통해 느끼는 인간에 대한 배려 그리고 스스로 마음의 치유과정이 흥미로웠고 약간 뭉클하기도 했다.

이제 미움도 남아 있지 않지만 명치끝에 아스라히 남아 있는 통증으로 혼란스러우면서도 담담하게 드러내지 않고 본연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엄청 거슬리는 사람이 오면 어쩔거야? 목에 칼이 들어와도 행복하라고 빌어줄 수 없는 그런 상대말이야 있잖아 간혹, 그래도 변함없이 마법을 걸어 최고의 날이 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지? 자기 멋대로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 많지?

 

아무리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난 맞지 않은 머리를 얹고 기모노를 입은 신부의 모습은 두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어 내가 만진 머리가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굴욕이야

 

지저분한 일이건 돈 계싼이건 하나하나 밟아나가야만 결혼식이 완성되기에 추한 부분과 이기적인 부분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신부들의 로망을 이루어 줄 수 있다.

 

다카코는 원수같은 레이나의 결혼을 완벽하게 준비해주면서 스스로 흔들리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는 법을 배우고 레이나의 의외의 모습에 미움을 씻어낸다. 그리고 성장한다

 

젊은 작가인데 사람의 미묘한 심리가 잘 포착되고 묘사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전전긍긍하는 신부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질투 미움 달라지고 싶다는 욕구와 함꼐 나타나는 쌍둥이 다운 동일감사이의 갈등이 절절하게 나타난다.

 

가장 축복받는 자리..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할 권리를 가진 날

그 이면에 숨어있는 많은 욕망과 복잡미묘함을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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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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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신대로 돈 키호테 나리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미치광이 기사입니다. 그분의 행동으로 우리 모두가 얻은 즐거움에 비하면 그분이 말짱해진 다음에 보일 사려깊은 행동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시나 보군요. 그렇게 되면 그분의 재치와 매력은 사라지겠지요. 산초 판사의 재치도 덩달아 잃게 되고요. 두 사람의 재치있는 말과 행동은 어떤 우울한 상황도 즐겁게 만드는 능력이 있거든요. 아무튼 당신은 그분을 몹시 염려하여 행한 일이니 그만큼의 복을 받으시겠지요. 자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p299

 

돈안토니오의 이 말이 돈키호테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눈에는 한심하고 정신없는 미치광이에 불과한 늙은이지만 그게 세상에 준 즐거움 유쾌한 소동도 가치가 있었다.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그를 놀리고 조롱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라고 해도 좋고 지루하고 피폐한 일상에 쉼표같은 재미를 준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의 엉뚱한 기행은 가치가 있다.

그 엉뚱함속에 돈키호테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매력이 드러난다.

불의를 참지 않고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달려들줄 알고 누구든 가리지 않고 옳은 말을 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없이 지속하는 것.. 세상사람이 가져야할 미덕을 모두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미쳤다고 한다는 건 세상이 잘못되어있다는 것뿐 다른 의미가 없다.

산초는 어떠한가

배고프고 춤고 힘들다는 현실을 모두 알고 투덜거리고 겁을 내고 징징대지만 결코 돈키호테를 버리지 않고 때로는 깜짝놀랄만한 지헤를 보여주기도 한다.

미쳤다는 걸 알고 간혹 핀잔을 주지만 자기가 모시는 기사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의 세게를 존중해주는 마음 그건 요즘 말로 하면 배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높은 사람이라 하사하고 시혜를 베풀듯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와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미쳐버리는 것 그리고 그 세게를 함께 공유하는 배려를 보여준다.

배움이 잚은 무지렁쟁이지만 기본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여주는 사람 남들은 미치광이라고 손가락질 해도 빛바랜 기사도를 지켜나가는 사람 그들이 돈키호테와 산초였다

 

어린시절 읽었던 책의 기억에는 풍차를 거인이라 여기고 돌진하는것. 엉터리 기사 수여에 감겨하는 것 양떼들 사이를 돌진하다가 매맞는 것등등  소동을 일으키는 사건들만 있었다.

햄릿과 대조되는 인간형으로 돈키호테형인간형

고민하고 머뭇거리는 햄릿과달리 일단 행동하고 저지르고 보는 인간형

어떤 인간형이 더 나은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그렇게 국어 시험에 나오는 저돌적이고 허무맹랑한 인간이라고 기억했던 돈키호테의 매력을 다시 느낀 계기가 되었다. 이번 겨울엔 완역본에 도전해볼까

 

"라이팅 클럽의 주인공이 미국으로 도망치듯 가면서  가져갔던 단 한권의 책 " 돈 키호테"

길고 긴 외롭고 힘들고 추운 시간을 함께 견딘 책이라고 나왔을때도 궁금했다.

이 허무맹랑한 노이네가 희망이었다니...

그러나 이제는 알거가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사도를 잃지 않는 품위를 가진 진정한 기사였음을 알겠다.

남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묵묵히 자기의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주인을 무조건 따랐던 종자까지...

이 둘과 함께라면 어디서든 견딜 힘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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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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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로 전학온 아이가 있다.

동네 친구들은 그 아이에게 동네 전설을 이야기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하지만 확실하게 각인을 시키듯이 ....

흔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무서운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너무 실감난다.

아들이 죽고 남은 노부부는 병에 걸리고 그 치료약으로는 어린 아이의 간이 필요하다

그 간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을 잡아간다.

죽은 아이를 낳은 여자가 아이를 뱀산에 묻고도 그 아이가 그리워 매년 찾아오는데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그 곳을 해맨다,

일제시대 강제 노동을 하다 죽은 독립투사가 자기가 노동한 아카시아나무를 찾아온다.

염하는 노인네는 어려 죽어버린 자식들을 대신할 아이를 잡아간다,

이게 뭐,, 하고 무시하고 싶지만 그래도 등골이 으스스하다.

그리고 아이들은 함께 행동한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 ...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은 친구가 되고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만의 은밀한 비밀도 갖게 된다,

 

어쩌면 준영은 아이들에게 마을의 전설에 대해 들었을때 부모님께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물어볼 수도 있고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어쩌면 사실이 무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것이다,

뭔가 함께 나누는 것이 있고 그걸 함께 느끼고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친해져가는 과정 그것이 더 중요하다.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아이들은 어렵게 고민하고 걱정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아이들이 그렇게 어른에게 쉽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혼자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아이는 성장을 하는 것같다.

데미안에서 왜 싱클레어가 프란쯔에게 협박당하는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 끙끙거렸는지.의아해 했지만 이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알거같다.

혼자만의 비밀을 갖는것 나의 미빌과 내가 정면으로 마주하고 고민하고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는 그 순간이 사춘기의 시작이고 성장의 시작이 아닐까

부모는 뭐든 내게 털어놓고 상의하라고 하지만 어쩌면 부모가 개입하기 애매하고 개입해버리고 나면 스스로가 나약해 보여서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들이 생기는 순간이 성장이 아닐까

 

준영은 그렇게 마을의 전설을 아이들과 함께 나구고 두려워하고 은밀한 동지감을 느끼면서 서서히 성장한다. 여름이  어느새 지나고 가을빛치 눈에 보이듯이 그렇게 준영도 점점 득산리에 동화되어가고 득산리 아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자란다.

내가 막연히 두려워하든 실체인 돼지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그 마음을 알고 세상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밤나누에서 밤이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함께 듣는다.
돼지 할아버지와 함께 나눈 새벽의 시간이 또다시 준영을 한뼘 자라게 한다.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일.. 성장은 그렇게 이해의 다른말이고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용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등 뒤에서 간접적으로 사실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고 마주하면서 알게 되는 진실들이 더 값진것으로 남는다

 

덕수를 비롯한 아이들이 왜 새로운 아이에게 득산리 마을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겁을 주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덕수 패거리들이 준영을 위협하려고 하는 의도가 아니라 그들 나름의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는, 어색함을 없애는 한가지 방법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인듯하다.

누군가와 무섭고 은밀한 것을 나누면 더 친해진다. 함께 어색해하며 들어간 귀신의 집에서 나올때는 두 손을 꼭잡고 얼굴을 마주보며 안도의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것 처럼 함꼐 공포를 경험하고 약간의 짜릿한 나쁜 짓을 경험하는 것이 친밀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그 누구도 영악하지 않고 위악을 떨지도 않아서 좋았다.

그게 자칫 밋밋해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선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아이다운 악동짓이 더 마음에 든다. 밤서리를 하면서도 돼지 할아버지를 걱정하기도 하고 방앗간집 할머니의 죽음에 함께 상여꾼이 되려는 마음에서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읽는 내내 그 전설이 사실인지 어떻게 결론이 날지 궁금했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그건 중요한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그렇게 무서운 사람들인지보다 그 은밀한 전설을 통해서 아이들이 자라는 것 더 친밀해지는 걸 느끼고 나도 모르게 득산리에 적응해가는게 더 좋았다.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면서 세세하고 단순한 아이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큰 격랑은 없지만 일상적이면서도 그 안에서 크게 요동치는 아이들의 마음이 손에 잡힐듯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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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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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이 함께 몽골여행을 한다.

단둘만의 여행은 아니고 엄마의 동창여행에 딸이 함께 따라가는 모양새다.

엄마와 딸의 최초의 세계여행. 단 둘만의 여행

낭만적이고 뭔가 은밀한 소통 즐거움이 기대되지만 천만에...

엄마와 딸은 그저 대면대면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할퀴고는 정작 자기가 받은 상처만을 들여다 보느라 내가 상대에게 하는  한마디 무심한  몸짓 하나가 상처가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책을 펼치면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이먹은 아줌마들의 주책 젊고 잘생긴 가이드에게 체면도 모르고 알랑거리고 아줌마 특유의 넉살과 입담으로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놀리고 친근하게 들러붙고.. 한마디도 15살 소녀의 눈에는 그저 한심하고 속물스러운 아줌마부대였고 계속 여행을 후회한다.

볼거리가 대단한것도 아니고 음식이 입에 맞는것도 아니고 말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내가 좋아했던 그룹의 오빠를 닮은 가이드때문에 뭔가 기대를 하고 설레지만 번번히 엄마로 인해 방해받고 정작 그 왕자님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뿐이다.

밖에서  엄마의 새로운 면을 보기도 하지만 흥... 한때 주름잡던 문학소녀였고 나같은 두근거림이 있다는 건 상상조차 되지 않고 지금은 그저 팔뚝살이 철렁거리고 젊은 가이드에게 잘보이려고 화장을 떡칠하고 번번이 내 로맨스를 방해하는 훼방꾼일뿐이다.

데려온 딸은 신경도 안쓰고 친구들과 떠들고 히히덕거리기 바쁜 엄마..

나는 여기 왜 왔을까.. 한순간 가이드와 함께 본 석양에 가슴 설레고 본격적인 로맨스를 꿈꾸지만 그런 하룻밤의 신기루였을까... 아침에 천청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린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1부가 끝나면 엄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생애 전환기에 선 엄마는 딸과 함께 좋은 시간을 위해서...라며 여행에 나선다.

딸을 보며 나도 한때 저랬지 하는 감성을 느끼지만 내가 한떄 그랬던것들이 나이들어 보니 별거 아니라는 걸 아는  현재라.. 사사건건 딸을 챙기기 바쁘다.

그런 허튼데 마음주고 시간 빼앗길 필요가 없다는 것 화려하고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삶을 지향해서도 안된다는 것... 이 어미가 살아온 45년의 인생이 알려준 그 정답을 딸은 어떤 시행착오없이 알기를 바란다.

거인이 펼쳐놓은 외투의 구멍사이로 보이는 쏟아질듯한 별빛들 가도가도 지평선만 보이는 막막하기만 사막 그 거대한 자연앞에 초라하고 작아지는 나를 보면서 울음도 터뜨리고  친구에게 날선 질투도 느끼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자유롭게 뭔가 굉장한 터닝포인트를 기대하며 온 여행이지만 정작 내 속에 꽁꽁 숨겨둔 무언가를 꺼내 보기는 두렵다.

어쪄면 그걸 꺼내어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45년 내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게 될까봐 그게 두렵다.

 

엄마와 딸의 여행 , 이국에서 겪는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보는 딸과 엄마의 성장이라는 건  상투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가슴이 먹먹하다.

어쩌면 지금 내가 글 속의  엄마의 나이에 다인과 같은 딸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 엄마가 느끼는 현실을 마주 하기 두려움같은것이 내 속에 아직도 웅크리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아둥바둥 잡고 힘들게 끌고 가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한순간의 착각 신기루일거라는 것

계속 쿵쾅거리는 가슴은 마지막 부분 다인의 말에서 왈칵 감정이 쏠렸다.

신기루가 마냥 신기하고 이상하고 허무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여행중에 그 신기루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기대를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것

살아가는 세상에 아무 의미없는 시간은 없을 것이다.

그 시간이 나중에 뼈아픈 후회가 될지라도 혹은 나중에 기억도나지 않는 허무한 시간일지라도 그게 의미없는 건 아닐껏이다. 그 순간순간은 뭔가 절실하고 몰두했던 것들이 있었으므로...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해서 빌렸다가 시험기간이라 내가 먼저 읽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내가 먼저 읽기를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이도 이 책을 읽고 제 엄마를 이해하려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쩌면 그나이에 그저 내 성적에 안달하고 엄친딸과 비교나 하고 투덜거리기나 하고 돈돈거리는 엄마를 보며 한심하다고 내아이도 생각할지도 모른다.

엄마는 마냥 팔자가 좋아서 시험도 안보고 단어를 외울필요도 수학을 풀 필요도 없고 친구들 사이의 고민도 없어보이고 빈 집에서 하루종일 (적어도 반나절은) 원하는 걸 하고 지내는 구나.. 하는 그런 부러움반 한심함 반 생각을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런 딸에게 나도 책속의 엄마 이상의 무언가를 줄 수는 없을 거같다. 무언가 멋진 말을 하고 싶지만 번번히 누군가에게 가로채이거나 기회를 잃을것이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싶은 멋진 엄마이고 싶은 동시에 아이의 성적과 미래를 당겨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할것이다.

 

전혀 비슷하지는 않지만 라이팅 클럽이 생각났다.

 

 

 

공통점이라면 둘 다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이고  딸이 엄마를 한심하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 둘사이의 한없이 깊은 애증이 보여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상처주고 상처입는 다는 것 아닐까

 

엄마는 딸들에게 꼭 너같은 딸낳아서 키워봐라 하고

딸은 절대로 엄마와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절대 닮고 싶지도 않고 닮기를 바라지도 않지만 내게 가장 무서운 비판자이고 내게 가장 쓰라린 상처와 위안을 동시에 주는 존재들이다. 엄마에게 딸은 딸에게 엄마는...

나도 한때 내 엄마가 좀더 멋지길 바랬고 너무나 통속적이고 집요하게 걱정하는 걸 간섭이라고만 생각했고 절대 내 마음을 이해못한다고 나랑 수준이 맞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렇게 오만했던 나이때의 나를 지켜보았을 엄마 나이가 되면서 엄마의 행동이 이해가 되고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그때의 엄마는 나보다 많이 젊었고 그래서 피가 더 뜨거웠을 것이고 더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이 늦은 그래서 속물이 되어 결혼한 나랑 달란 보송보송한 20대 초반에 결혼한 엄마에게 시집이며 남편이며 딸이며 하나같이 버겁고 혼자 수습할 수 없는 대상이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제 나도 엄마랑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고 엄마랑 다르지 않는 모습을 내딸에게 보여준다.

나는 다를 거라고 적어도 아이와 친구가 되고 이해하고 소통하는 사람이 될거라고 큰소리 쳤지만

그리고 지금 그러하다고 믿고 있지만.. 아마  내 아이는 속으로 엄마랑 말이 안통해! 할지도 ..

엄마가 딸이 되고 딸이 엄마가 되는 순간이 겹쳐진다고 그게 반복된다고 책은 조용히 이야기해준다.

라이팅 클럽을 다 읽고 책을 덮었을때 뭐라고할 수 없던 먹먹함이 지금도 느껴진다.

계속 나는 달리고 있는데.. 이 울타이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데 자꾸 제자리를 맴도는 느낌.. 사막에서 길을 잃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자동차처럼 나도 그렇게 열심히 도망치고 달렸었는데 어느새 내가 정말정말  달아나고 싶었던 바로 그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을때 느끼는 망연함...

그리고 그 달리는 과정에 내가 봤던 아름다움, 이상, 꿈이 어쩌면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는 것

지금부터 내 아이도 그렇게 지독한 달리기를 하겠지만 어쩌면 계속 맴돌기만하는 걸 시작할것이다

멀리 멀리 엄마로부터 떨어져보라고.. 나랑 다른 길을 가보라고 등을 떠밀어주고 싶지만 한편 그 손을 차마 놓지도 못하는 이야기..

그리고 항상 깨달음은 나중에 온다는 것..

 

지금 마흔의 중반에 서서 문득 삐뚤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한없이 삐뚤어지고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봐도... 나쁘진 않을거같다는 건..

어쩌면 숙희로 살다가 이제 춘희로 살고 싶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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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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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대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유행가의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아하자 하지만 곧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올텐데 그때는 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물론 더 좋은 것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른 더 좋은 것을 좋아하자 아무튼 지금 여기에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만 좋아하자.

....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최고의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사는 것이리라. 물론 가장 좋은 삶이라는 건 매순간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제대로 산다면 옛날 좋아했던 유행가를 들을 때처럼 특정 시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험들을 많이 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다고 해서 하기 싫은 일을 반드시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없으니까 하기 싫은 일은 더구나 하지 말아야지.

 

아마도 어른들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하라고 말하는 때의 그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던 그 일을 할것이다,이건 지금의 나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인생은 왜 이다지도 긴 것일까 그 이유는 긴 인생의 눈으로 조망할 때에만 지금 이 순간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하고 어른들은 말하지만 그건 다 뻥이다. 애들은 싸우면서 서열정하는 법과 복종하는 법을 배운다. 아마도 어른들은 자란다는 것은 질서에 복종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없이 펴든 책에서 날카로운 송곳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무심코 집은 책에서, 그냥 설렁설렁 눈으로 훓어가다가 한구절에 마음에 와서 콱 박혀버리는 순간.. 사실 다시 돌아가 읽어보면 별 말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 순간 그 구절에 내게 와서 꽂혀버렸다는 건 내가 감추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내 가장 약하고 부끄러운 부분과 맞아떨어졌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때 벌떼처럼 몰려서 누구나 손에 들고 인용하던 하루끼를 부끄러운 말이지만, 읽지 않았다.

처음 나왔던 노르웨이의 숲을 손에 들었지만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그의 문체가 자꾸 겉돌기만 했다.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라던 그의 글들이 촌스럽고 고지식한 나에게 맞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의 단편들이나 소소한 에세이는 열심히 많이... 아마 전부 읽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그의 단순하지만 경쾌하고 쿨한 사고방식이 어떤건지 알았고 작가이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샐러리맨처럼 시간을 정해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생활방식도 맘에 좋아하게되었다. 흔히 작가라고 하면 날밤을 새고 쬐죄죄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진 종류라고 생각하고 반듯하고 시계추같은 생활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게 나름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 반듯하고 성실한 사람이 뭘해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하루키가 생각났다. 그의 달리기에 대한 몇몇 책들과 해외거주시 썼든 에세이들 일상생활에 대한 담담한  소감들을 쓴 글들이 자꾸 오버랩된다.

그렇다구 누가누구를 따라하고 모방했다는 생각이 든건 아니고 이 지구상에 바슷한 사람도 많ㅇ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도 만히고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구나 했다.

그리고 그의 몇몇 문장들이  이유없이 내 속살을 찔러대고 있었다.

저 위의 구절이 어째서 나를 찔러대는건지는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래 그랬지 하는 공감도 있었고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을 단순하고 경쾌하게 진단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생각하면서도 뭐라고 표현하지 못한 걸 쉽게 글로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그것뿐인것이 약해있는 나를 찔러 상처주고 있었다.

원래 체력이 떨어지면 감기도 쉽게 걸리고 쉽게 상처입고 쓰리지는 법이니까

우연히 나랑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젊은 (이제 젊다고 할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내가 다녔덨 곳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고민하고 혹은 고미하는 지도 모르면서 힘들었던 어떤 문제에 대해서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샘나고 속상하고 부끄러운거였던거 같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 작가의 소설은 읽은게 없고 이런 에세이만 두권째 읽고 있다.

이제 조금씨 소설을 찾아봐야겠따는 생각이 든다

왠지 하루끼때와는 달리 조금은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끌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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