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민음인 입니다.

민음인 신간 <축제 여행자>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지금, 즐거운가요?"


지구촌 구석구석 축제의 마당에 뛰어들다!

『축제 여행자』





브라질 리우 카니발, 독일 옥토버페스트, 일본 삿포로 눈꽃 축제 등 세계 3대 축제를 비롯해 모든 뮤지션이 꼭 한 번 공연하고 싶어 하는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모두가 빨강이 되는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 등 지구촌 구석구석의 특별한 축제를 찾아다닌 30대 여자의 여행기를 기록한 색깔 있는 포토 에세이입니다.


이 책은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과 멋진 만남, 설렘과 낭만만을 다루지 않습니다. 저자는 여행의 쓴맛 단맛, 설렘과 아쉬움, 축제의 역동적인 현장과 파하고 난 후 남는 추억과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을 책 속에 소담스레 담아냅니다.





“모든 여행자는 각자의 추억을 만들며 여행하고, 또 다른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곳에서 자기만의 추억을 만든다. 같은 곳을 여행해도 각자의 추억은 모두 다르다. 마치 지하철 환승역처럼 우린 서로의 길이 겹치는 곳에 있지만 어디서든 서로 다른 추억을 품고 떠난다.” - 책 속에서



▶ 추천사


“작지만 당찬 배우, 주어진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

축제와 한지혜는 참 잘도 어울린다.

그가 밟았던 길을 따라가면 우리도 그처럼 활짝 웃을 수 있을 것이다.”

- 송승환(공연 제작자)



“최고의 장소에 가면 뭐하겠습니까.

그곳에서 즐길 줄 모르면 소파에 누워 티브이 보는 것과 다름없겠지요.

즐거움은 즐길 줄 아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 아닐까요.


진정 즐길 줄 아는 한지혜 작가가 이 책으로

축제 구석구석의 즐거움을 전해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정성화(뮤지컬 배우)



▶ 『축제 여행자』 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해당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를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6월 24일(화)~2014년 06월 30일(월) 6일간 입니다.


셋, 총 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당첨자 발표일은 2014년 07월 2일 (수) 오후 입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7.07(월)~07.14(월) 7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 『축제 여행자』 서평단 발표 페이지에

온라인 서점 블로그와 개인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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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와 헤리엇은 그 시대에서도 정숙하고 건전한 연인이었다.

방탕하고 자유로운 연애시대에 자신들의 신념을 고수하고 결혼을 하고  이상적이고 안정된 가정을 가지기를 소망했다.

커다랗고 방이 많은 집에서 방마다 가득한 아이들을 갖고 집에는 햇살이 가득하고 웃음이 끊어지지 않고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집안 가득 사람이 넘쳐서 행복한 기운이 끊어지지 않은 집

두 사람은 그런 가정을 꿈꾸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하나 둘 셋 넷을 낳았다.

그 동안 아무탈 없이 그들이 꿈꾸는대로 살아갔다.

큰 집과 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엔 아직 젊은 부부들은 부자인 데이비드의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혼자 사는 헤리엇의 어머니에게 양육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사실 완전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꿈을 꾸었지만 그걸 독립적인 힘으로 부양할 능력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첫번째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게 생각했고 그 자랑스러운 가정을 집을 가졌다는 것을 누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다섯째 아이가 생겼다.

그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헤리엇을 힘들게 했고 무언가 이질적인 물체가 자신과 접속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임신 내내 이물감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열달을 채우지 않고 다섯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전에도 앞으로도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이질적인 괴물이었다.

그런데 사실 다섯번째 벤이 무엇이 어떻게 이상하고 두려운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힘이 쎄고 작지만 단단하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어딘가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벤

화목한 가족은 벤 하나의 등장으로 공포스러워지고 어색해지고 두려워진다.

다른 아이들은 벤을 슬슬 피하게 되고  친척들은 핑계를 대고 이들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아이때문에 가정이 위태로워지자 데이비드는 아이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요양원이지만 살아 이별이고 절대 다시 볼 수 없음을 모두는 안다.

벤이 떠나고 가정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가족은 다시 옛생활로 돌아간다.

하지만 헤리엇은 자꾸 벤이 떠오르고 그 아이를 그렇게 둔다는 것이 걸린다.

결국 빗길을 달려 벤을 만나러간 헤리엇은 벤을 데리고 돌아온다.

그대로 둔다는 건 아이의 죽음을 방치하는 것이고 내 손을 더럽히지않아도 아이를 없앨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를 데리고 온다.

헤리엇이 엄마라서 아이를 데리고 왔을까?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모성때문에?

하지만 헤리엇에게는 벤뿐 아니라 나머지 네명의 아이가 또 있다.

벤을 데리고 가자면 벤은 죽지 않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공포감에 다시 싸이게 되고 가족은 행복히지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나머지의 행복을 생각하게되면 벤이 죽어야한다.

그 사이에서 헤리엇은 다른 생각없이 벤을 선택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가정은 망가진다.

다시 친척들의 방문은 끊어지고 아이들은 자라면서 집을 떠나버리고 남편은 일에 파묻힌다.

헤리엇과 벤만이 집에 남았다. 아니 막내 폴이 아직있긴하다.

폴은 벤으로 인해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그래서 조금 불안하고 예민한 아이다.

행복하고 보여지는 가정을 원한 헤리엇에게 벤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를 데리고 가면 헤리엇이 꿈꾸던 완벽한 가정은 무너진다. 그럼에도 헤리엇은 벤을 데리고 가지만.... 어쩌면 보여지는 것에 매달리는 헤리엇으로서는 벤으르 데려가는 것도 하나의 보여지는 무언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헤리엇의 불안대로 가족은 해체되고 서서히 무너진다.

여전히 헤리엇은 벤이 사랑스럽지도 않고 미안하지도 않고 그저 길들이고 다루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겁을 주고 협박을 하면서 관리하고 관찰하고 통제해야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벤은 언제나 불길한 예감을 뿌리고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지만 무언가를 하는 것은 없다. 간혹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기는 하지만 이야기가 끝날때 까지 누군가를 정말 해한 적은 없다. 그저 이질적이어서 두려울 뿐이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존재가 나타났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울 수 있다는 걸 책은 충분히 보여준다. 뭐라고 묘사하는 건 아닌데도 분위기상 꼭 벤이 지금 무언가를 저지를거 같은 예감을 가지게 한다. 내가 벤을 모른다는 것 도무지 내 상식과 내가 사는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벤이라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헤리엇도 데이비드도  다른 가족도 그렇다.

데이비드는 그리고 다른 형제는 그냥 벤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만다.

사람들이 그렇다. 두려움을 마주하면 일단 가능한한 고개를 돌리고 무시한다. 그래서 넘어갈 수 있다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있을 때까지는 피하자.는 생각

그러나 헤리엇은 벤을 안을 수도 없고 외면할 수도 없다.

통제하고 위협하면서도 돌보고 누군가가 벤에 대해 자기와 같은 감정을 가지길.. 누군가 자기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의사도 교사도 벤이 보통 아이와는 다르지만 비정상은 아니라고 한다. 그건 헤리엇에게 전혀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다.

벤은 이상하고 기묘한것이 맞고 그 벤을 포기하지 않은 헤리엇을 동정하고 위로해야하는데

가족들과 친척은 헤리엇을 마녀처럼 대하고  타인들은 헤리엇을 모성이 없는 어미로 대할 뿐이다.

낯선 존재를 이해한다는 건 정말 쉬운 것이 아닌데.. 헤리엇은 혼자 궁지로 몰리고 위로받지 못한다. 낯선 존재.. 그것이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라도 두렵고 낯선 누군가는 꺼려진다.

그 사이 벤은 자란다. 존을 만나고 데릭을 만나며 자신을 바꾸지 않고 본능에 충실하면서 어떤 무리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헤리엇은 끊임없이 불안하게 벤을 관찰하지만 벤에게 동화되거나 이해하거나 교감할 수는 없었다. 그게 헤리엇의 비극이다.

남편이나 다른 자녀가 헤리엇에게 거리를 두는 것만큼 헤리엇도 벤에게 거리감을 둔다.

피할 수없지만 마주할 수도 없는 딜레마속에 헤리엇은 빠져있다.

이미 헤리엇과 데이비드가 꿈꾸던  가정은 사라졌다.

그런대도 헤리엇이 잡고 있던 건 무엇이었을까

 

 

예전에 열심히 본 드라마가 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외딴 곳에 위치한 명문 고등학교가 있다. 겨울방학이 되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기숙사에 남은 아이들과 갑자기 내린 눈사태로 조난을 당해 이 학교로 피해온 정신과 의사와의 이야기다.

외딴곳 어디와도 연락이 되지않는 학교에서 아이들 사이의 갈등도 있고 외부에서 온 의사도 수상한 조금은 으시시한 드라마였는데 그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가 그럿이다.

악인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그 드라마에서는 악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라 기억되는데...

지금 책을 다 읽고 드는 생각은 악은  누군가의 편견이나 무지로 인해 탄생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거다. 벤은 태아부터 헤리엇이나 다른 가족들에게 이질적이었고 태어나서 보여지는 모습에서는 경악이었고 그래서 악이라고 규정되었다. 왜냐하면 벤은 데이비드와 헤리엇의 다른 네아이와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그들 가족이  그 커다란 집에 모이는 다른 누구와도 다른 존재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이다.

악으로 태어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첫대면에서 벤을 무어라 규정지어버리는 그 가족들에 의해 벤의 정체성이 결정되어지는 것이다.

벤은 헤리엇이나 데이비드가 꿈꾼 가족에는 어울리지 않은 존재였으므로 그리고 그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존재이므로 악이고 괴물이 되는 것이다.

방이 많은 따뜻한 집안 넓은 식탁에서의 가족끼리의 소통 웃음과 행복 북적이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들을 깨어버리는 존재로 벤을 규정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될때 괴물은 자란다.

괴물은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나 원리에 의해 악이나 괴물은 태어나기도 하겠지만

그 악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것은 결국은 사람들 사이의 편견과 편가르기가 아닐까

그 명문고의 머리좋은 아이들도 스스로의 울타리에서는 벗어나질 못했다. 내 생각이 너무나 명확하고 틀린 곳이 없다보니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하고 서툴러서 서로를 의심하고 무시하며 악을 키웠던 것다. 그리고 그들만큼 똑똑한 정신과 의사의 교묘한 술수에도 쉽게 넘어갔기도 하고..

행복이나 이상적인 가정에 집착했던 헤리엇이 만든 것이 결국 벤이 아니었을까

벤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막연한 공포의 대상으로만 여겨질지 정말 무언가 확실한 악행을 저지를지도..

그저 모르는 우리는 무엇이 일어나기도 전에 겁을 집어먹고 나와 다른 존재를 타자와 하고 울타리 밖으로 밀어낼 뿐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것에서 관심이 나오고 관심을 가지면 애정이 생긴다 그리고 이해되면서 그는 나와 다른 것이 아니고 나와 함께가 되는 것이다.

다른 여럿이 모여 우리가 되는 것처럼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바라보고 관심갖는 것에서 우리가 시작된다.

하지만 나와 다르다는 것만 보고 그대로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언제나 두려운 타인이 있을 뿐이다.

(헤리엇은 바라보지만 그냥 보는 것뿐이다.벤을... 왜 다르지? 저 다른 것이 어떻게 될까.. 그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다른 가족은 그냥  고민조차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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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입장이 되어보기전에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 보면 새롭게 보이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실천이 힘들다.

사람은 때로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은 일들이 많다.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거나 현실은 이론과 다르다거나.. 혹은 맞지만 눈치껏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타인의 입장을 무시하거나 애써 모른 척한다.

 

세상에는 지는 걸 뻔히 아는 싸움이 있다. 진다는 걸 알지만 그만 둘 수 없는 싸움이 있고 끝을 알지만 시작해야하는 일들이 있다.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하거나 바보같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시작이 되리라  믿어야 할때가 있다.

누군가 이 발걸음을 보고 길을 따라 올거라고 믿는것

세상에는 보이지 않아도 가야할 길이 있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먹이고 입히고 편하게 쉴 수있게 하는 일 말고는 더이상은 없다는 생각을 들 때가 있다.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배우게 하고 키워내는 것은 나 개인의 역량 밖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도 시험을 통해 자격을 줘야하는게 아닐까 싶을 만큼 막막하고 힘들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책에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것 그것에 답이다.

남매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정성껏 대답한다. 하지만 그 이상 아이들을 통제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행동할 뿐이다.

아이는 어른의 등을 보고 배우고 결국 열마디 말보다는 한번의 발걸음이 아이를 가르친다.

알지만 잊고있었고 쉽지 않아 모른 척 했을 뿐이다.

 

내 아이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첫 부분의 가계도 비슷하게 나오는 부분과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이름이 혼란스럽기는 하겠지만 그 부분을 참고 넘기면 이야기는 쉽게 전달되고 몰입된다.

그리고 스카웃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상황들이라 이해가 쉽기도 하다.

아이의 시선이라는 것이 편한 이유는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라는데 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내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 설명되어지는 이야기들은 솔직하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눙치거나 돌려 말하지 않고 있는그대로의 진실을 보여준다.

편견을 갖지 마라.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그리고 세상에 내가 무시해서 좋을 인간이란 없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노래하는 앵무새를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가 사람의 말을 한다고 기분나빠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나와 소통가능함이 다행이지 않은가...

 

정의에 대해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떤 책보다 좋은 책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미국적인 배경에서 씌여진 지극히 미국적인 사건의 이야기지만 지금 현실에서도 보편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나는 구판 (한겨레에서 나온)을 가지고 있는데... 번역이 너무 엉망이다.

새로 나온 책은 어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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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편의 이야기가 모두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밥을 먹지 못해 학교 급식에 매달리고 늘 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용기는 내는 초년생 선생님 이야기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으로 자기 딸을 다시 학대하고 구타하는 젊은 엄마 이야기

어린 시절 학대와 차별을 하던 엄마가 이제 늙어 치매에 걸려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자 용서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어 혼자 괴로워하는 독신 여성

친구 아들이 구타당하고 학대받는다는 걸 짐작하면서 직접 해결책을 찾아주지는 못하지만 모른 척 따뜻하게 받아주고 품어주는 아버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고단한 엄마와 그 엄마와 만난 오랜시간동안 아픔을 꽁꽁 숨기고 내색하지 않아 이제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되어버린 할머니의 우정까지

이야기는 담담하게 상처받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성장한 상처받은 어른들을 보여준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사는 동물일 것이다.

태어나 자라면서 듣게 되는 칭찬과 만족감이 스스로를 존중하게 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되고 습관이 된 두려움이나 패배감은 그 인생을 점점 고단하게 하고 망가뜨린다.

모든 이야기가 다 감동적이지만 개인적으로 세번째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가 좋았다.

어릴적 학대하고 괴롭히고 차별하던 어머니를 떠나 독립해서 잘 살던 여자 주인공은 늙어 치매에 걸려 모든 걸 잊어버린 어머니와 이틀간 함께 생활해야만 했다.

난 아직 아무것도 잊지 못하고 상처받고 힘든데 어머니는 치매라는 이유로 모든 걸 잊고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앞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겐 주지도 않았던 자기의 유년기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기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엄마가 주인공은 정말 밉다.

게다가 계속 먹을 것만 찾고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엄마.. 그 이틀은 지옥이었다.

엄마를 다시 동생에게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주인공은 꿈꾼다.

엄마를 버리고싶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전차안에서 한번 시도를 하지만 천진한 엄마의 모습에 그만 다시 전차에 오란다. 안좋은 기억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옛동네 엣집 근처에서 주인공은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풍경들을 기억해낸다.

죽을뻔한 나를 구해준 어린 동생  사춘기의 방황을 바로 잡아줬던 고등학교때의 선생님  가난하지만 자기집에 볼러 저녁을 먹였던 이웃 아줌마. 내가 쫒겨나 밖에서 떨고 있을 때  무심하게 한구석에서 함께 지켜줬던 주정뱅이 아저씨.. 그리고 그 기억속엔 찰라의 엄마의 미소도 있었다.

그랬구나..

주인공은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

나는 그때 혼자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엄마의 그때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고 ..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 아직은 엄마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내 삶이 피폐해질 수는 없다

주인공은 그걸 알게 된다.

공감하지 않아도 이제 엄마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엄마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마흔이 된 이제야 비로소..

 

마지막 이야기는 전쟁을 겪고 온갖 풍파를 겪은 80대 할머니가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한동네에서 오래살았지만 너무 오래 살아 이제 더이상 아는 얼굴이 없고 대화상대가 없는 할머니는 늘 혼자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본 것이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할머니로 보일 뿐이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할머니에게 늘 만날 때마다 인사해주는 소년이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 인사는 할머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시간이 많은 할머니는 엣기억을 떠올린다.

결혼했다가 돌아온 일. 공습으로 집이 불타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온 일 여학교 시절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 그때의 캬라멜 냄새. 그 많은 캬라멜과 쵸콜렛은 과연 누가 먹었을까?

왜 그때 하나를 쓸쩍 가져 오지  않았을까. 동생이 그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다면 하나를 가져와 동생에게 줄것을.... 그리고 여공이라는 이유로 공습때 늦게 대피해서  죽은 여공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뒤죽박죽이고 그게 맞는 기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알면서 모른 척한 일. 너무 고지식하고 순종적이어서 후회할만한 일들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화석이 되어서 마음에 단단하게 박혀있다는 걸 느낀다.

그때 그러지 말것을..

그때 조금 더 생각해보고 누군가에게 말을 해볼걸,,

할머니의 그 아쉬움은  말하지 않았던 것들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규범을 잘 지키는 모범 학생이고 시민이었던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었던 행동을 꾹꾹  눌러놓고 살아왔고 이제 그로인해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그 할머니가 늘 인사하는 규범적인 소년을 만나고 그 소년의 문제를 알게되고 그 가족의 불행을 알게되는 건 어쩌면 할머니의 삶을 다시 되돌리는 의미이기도 할것이다.

그때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았던 것들..

넌 나쁜게 아니야 좋은 딸이고 좋은 누나였어

그때 공습때 우리가 먼저 대피해서 미안해. 우리가 너희에게 피해를 준거같아.

그리고 달콤한 캬라멜 한개쯤은..

그때의 후회를 젊은 아이 엄마는 하지 말라고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두 모녀에게 위로를 하고 따뜻하게 품어준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이미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고 .. 지금이라도 아이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너는 착한 아이라고 말해주라고 할머니는 전하기때문이다.

 

얼마전 친정에 다녀왔다.

이젠 늙었고 아버지마저 안계신 엄마는 많이 힘들고 작아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엄마가 약해진건 참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 조금 떨어져서 보면 나도 엄마도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의 마구 내뱉는 말들이 너무 싫었던 거 같고

엄마는 나의 꾹 다문 입이 너무 거슬렸던거 같았다.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이제 그나이가 된 나는 이해가 가는데 그때의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짜증났고 무식해보이기도 했고

앙 입을 다물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딸을 보면서 그때 입을 닫고 책속으로 숨어버리고 단답형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딸이 엄마도 참 야속했을 거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사랑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너무 기대가 커서 좋다.. 착하다는 기준을 높이 세워버린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분리가 되지 않은 가족이라  그게 사랑이라 믿어서 내 말이 무조건 약일거라고, 쓴 약일거라고 생각했지 그 약이 가진 부작용도 있다는 건 몰랐다.

이제 와서 따지고 그때 서러웠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내 속의 어린 아이는 엄마에게 속상하고 서운한게 많이 남아있지만 그만큼 엄마 속에서도 있을거니까 서로 퉁치자고.. 혼자만 계산기를 두들기며 착한 척 하고 왔다.

 

세상 모든 아이는 착한 아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이가 먹어서도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넌 착한 아이야.

니 잘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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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는 물리적 신체적인 접촉도 있고 눈빛 무언의 몸짓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방식 타인에대한 오해등도 있다. 어떤 관습이나 오래 묵은 상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도 폭력이 될 수 있고 나 아니면 상관없다는 방임과 무관심도 폭력이다.

세상 어떤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폭력이 나온다.

 

외딴 바닷가 마을 엄마가 도망가고 의붓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도희는 모든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술만 마시면 두들겨 패는 아버지와 할머니만이 아니라 그런 사정을 눈감아주는 마을 사람들 그러다보니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믿어버리고 함부로 대하는 학교 친구들 모두가 폭력이다.

그 마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좌천된 파출소장 영남이 내려온다.

이곳에서는 타인인 영남의 눈에는 도희에게 가하는 다른 모든 사람의 행동이 비정상적이고 그런 오랜 관습과 행동에 익숙해져버린 도희조차  정상이 아니다.

영남의 도희의 상처를 처음으로 들여봐 준 사람이다.

하지만 영남역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이 너무 커서 밤마다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만큼 피폐한 상태이다.

그러나 직업윤리인지 개인적인 상식과 가치관에서인지는 몰라도 영남은 도희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고 마을에 관습처럼 무심해진 폭력에 맞서면서 점점 외로워진다.

영화에는 다양한 폭력이 나온다

도희가 당하는 물리적인 폭력

나와 다르고 약한 존재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도 그만이라는 암묵적인 폭력(이주 노동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다르고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한 태도들( 영남의 취향에 대한 마을 사람들 경찰동기들의 태도들)

그리고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도덕적 법률적인 사소한 위반이나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구습까지 영화  구석구석 너무 폭력적이어서 충격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보는 내내 너무너무 아프다.

영화는 내내 보여지는 것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고 타인을  평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폭력이 오래 노출되고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은 점차 별거 아닌것이 되고 별거 아닌것은 무시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 되면서 남이 당하는 건 나만 아니면 그만이고 내가 당하는 건 무언가 내게 잘못이 있을거라는 죄책감과 무기력으로 되풀이된다.

도희는 폭력이 익숙해져서 너무나 무감하고 당연하다.

도희가 말한다. 아무리 맞아도 춤한번 추고 나면 다 잊을 수 있다고...

그건 극복이 아니고 그냥 덮어두는 것일뿐이고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일뿐이다.

그렇게 피해에 익숙해진 도희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자기는 나쁜 아이니까 맞아야 한다는 자학적인 행동이나 마지막의 반전은 그런 도희를 잘 보여준다. 살기위해서 괴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받고 지지를 받을 경험이 없었던 도희는 스스로 괴물이 되면서 자기를 방어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려한다.

폭력이 얼마나 나쁘고 잔인한지 도희는 온몸으로 모든 행동에서 보여준다.

 

영남은 자신도 혼자 서기 힘들만큼 피폐해졌다.

자기 잘못은 아닌데 대다수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불이익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다름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없는 폐쇄적이고 고지식한 사회에서  본능과 이성사이에서 힘들다. 밤마다 소주를 벌컥거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고 점점 그녀가 둘러싼 껍질을 두껴워지기만 한다.

하지만 내 고통에 흔들리는 영남은 내가 힘들고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도 도희에게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아는척 단단한 척 손을 내밀었지만 도희와 함께 할수록 그리고 그녀가 찾아와 흔들릴때도 도희에게 내민 손을 잡아준다.

성숙하고 바르게 서있을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부족한 내 도움을 바라는 상대를 보면서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남이 참 아픔답다.

 

살기위해 괴물이 되는 건 도희만이 아니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아픈 어머니에게 가고 싶어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스스로를 위해 순간 괴물이 된다. 살기위해서 내 속에 있던 눌러놓았던 괴물을 꺼내야 하는 순간은 얼마나 또 비참할까... 괴물을 꺼집어 내어 순간을 넘기지만 그 괴물이 다시 사라지고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은 비참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철창에 갇힌 노동자의 눈빛이 슬프다.

스스로 괴물처럼 영악하게 굴어  영남을 구해낸  도희도 너무 슬프고 부끄러울 것이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게 없다는 것

자꾸 아니라고 하고싶지만 살기위해서 괴물이  또 될 수도 잆다는 생각과 그러다 영영 괴물이 되어 나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갈등으로 괴물은 무서우면서 슬픈 존재가 된다.

영남도 괴물이 되었었던 도희를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순간 깨닫는다.

내가 지금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그 괴믈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리고 나는 괴물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서툴고 불안하지만 둘은 함께한다.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누군가는 살기위해 괴물이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그 괴물을 두려워하고 마주 보지 않는다는 것

내가 피하고 방임하면서 괴물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슬프게 발톱을 세우고 있을 거라는 것...

그러다 내가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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