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편의 이야기가 모두 아동학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고 밥을 먹지 못해 학교 급식에 매달리고 늘 늦게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소년을 바라보며 용기는 내는 초년생 선생님 이야기
어린 시절 학대받은 기억으로 자기 딸을 다시 학대하고 구타하는 젊은 엄마 이야기
어린 시절 학대와 차별을 하던 엄마가 이제 늙어 치매에 걸려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되자 용서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어 혼자 괴로워하는 독신 여성
친구 아들이 구타당하고 학대받는다는 걸 짐작하면서 직접 해결책을 찾아주지는 못하지만 모른 척 따뜻하게 받아주고 품어주는 아버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사는 고단한 엄마와 그 엄마와 만난 오랜시간동안 아픔을 꽁꽁 숨기고 내색하지 않아 이제 모든 기억이 뒤죽박죽되어버린 할머니의 우정까지
이야기는 담담하게 상처받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성장한 상처받은 어른들을 보여준다.
사람은 칭찬을 먹고 사는 동물일 것이다.
태어나 자라면서 듣게 되는 칭찬과 만족감이 스스로를 존중하게 하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되고 습관이 된 두려움이나 패배감은 그 인생을 점점 고단하게 하고 망가뜨린다.
모든 이야기가 다 감동적이지만 개인적으로 세번째 이야기와 마지막 이야기가 좋았다.
어릴적 학대하고 괴롭히고 차별하던 어머니를 떠나 독립해서 잘 살던 여자 주인공은 늙어 치매에 걸려 모든 걸 잊어버린 어머니와 이틀간 함께 생활해야만 했다.
난 아직 아무것도 잊지 못하고 상처받고 힘든데 어머니는 치매라는 이유로 모든 걸 잊고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앞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내겐 주지도 않았던 자기의 유년기 추억을 이야기하고 자기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풀이해서 이야기하는 엄마가 주인공은 정말 밉다.
게다가 계속 먹을 것만 찾고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엄마.. 그 이틀은 지옥이었다.
엄마를 다시 동생에게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주인공은 꿈꾼다.
엄마를 버리고싶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전차안에서 한번 시도를 하지만 천진한 엄마의 모습에 그만 다시 전차에 오란다. 안좋은 기억만 남았다고 생각하는 옛동네 엣집 근처에서 주인공은 그때는 미처 보지 못한 풍경들을 기억해낸다.
죽을뻔한 나를 구해준 어린 동생 사춘기의 방황을 바로 잡아줬던 고등학교때의 선생님 가난하지만 자기집에 볼러 저녁을 먹였던 이웃 아줌마. 내가 쫒겨나 밖에서 떨고 있을 때 무심하게 한구석에서 함께 지켜줬던 주정뱅이 아저씨.. 그리고 그 기억속엔 찰라의 엄마의 미소도 있었다.
그랬구나..
주인공은 만족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위안을 얻는다.
나는 그때 혼자는 아니었다고
그리고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엄마의 과거를 기억하면서 엄마의 그때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고 ..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 아직은 엄마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미워하지 않을 수는 있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내 삶이 피폐해질 수는 없다
주인공은 그걸 알게 된다.
공감하지 않아도 이제 엄마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엄마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다.
마흔이 된 이제야 비로소..
마지막 이야기는 전쟁을 겪고 온갖 풍파를 겪은 80대 할머니가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한동네에서 오래살았지만 너무 오래 살아 이제 더이상 아는 얼굴이 없고 대화상대가 없는 할머니는 늘 혼자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본 것이 까마득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할머니로 보일 뿐이지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할머니에게 늘 만날 때마다 인사해주는 소년이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그 인사는 할머니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시간이 많은 할머니는 엣기억을 떠올린다.
결혼했다가 돌아온 일. 공습으로 집이 불타 살던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온 일 여학교 시절 공장에서 일했던 기억 그때의 캬라멜 냄새. 그 많은 캬라멜과 쵸콜렛은 과연 누가 먹었을까?
왜 그때 하나를 쓸쩍 가져 오지 않았을까. 동생이 그렇게 빨리 죽을 줄 알았다면 하나를 가져와 동생에게 줄것을.... 그리고 여공이라는 이유로 공습때 늦게 대피해서 죽은 여공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뒤죽박죽이고 그게 맞는 기억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알면서 모른 척한 일. 너무 고지식하고 순종적이어서 후회할만한 일들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화석이 되어서 마음에 단단하게 박혀있다는 걸 느낀다.
그때 그러지 말것을..
그때 조금 더 생각해보고 누군가에게 말을 해볼걸,,
할머니의 그 아쉬움은 말하지 않았던 것들 표현하거나 행동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규범을 잘 지키는 모범 학생이고 시민이었던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었던 행동을 꾹꾹 눌러놓고 살아왔고 이제 그로인해 자기가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떤 사람인지조차 가물가물해진다.
그 할머니가 늘 인사하는 규범적인 소년을 만나고 그 소년의 문제를 알게되고 그 가족의 불행을 알게되는 건 어쩌면 할머니의 삶을 다시 되돌리는 의미이기도 할것이다.
그때 표현하지 않고 말하지 않았던 것들..
넌 나쁜게 아니야 좋은 딸이고 좋은 누나였어
그때 공습때 우리가 먼저 대피해서 미안해. 우리가 너희에게 피해를 준거같아.
그리고 달콤한 캬라멜 한개쯤은..
그때의 후회를 젊은 아이 엄마는 하지 말라고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두 모녀에게 위로를 하고 따뜻하게 품어준다.
그래서 그 마지막이 눈물나게 아름답다.
이미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는 일이라고 .. 지금이라도 아이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너는 착한 아이라고 말해주라고 할머니는 전하기때문이다.
얼마전 친정에 다녀왔다.
이젠 늙었고 아버지마저 안계신 엄마는 많이 힘들고 작아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엄마가 약해진건 참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 조금 떨어져서 보면 나도 엄마도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엄마의 마구 내뱉는 말들이 너무 싫었던 거 같고
엄마는 나의 꾹 다문 입이 너무 거슬렸던거 같았다.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는 걸 이제 그나이가 된 나는 이해가 가는데 그때의 어린 나는 그게 너무 싫었고 짜증났고 무식해보이기도 했고
앙 입을 다물고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 딸을 보면서 그때 입을 닫고 책속으로 숨어버리고 단답형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는 딸이 엄마도 참 야속했을 거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사랑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너무 기대가 커서 좋다.. 착하다는 기준을 높이 세워버린다.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분리가 되지 않은 가족이라 그게 사랑이라 믿어서 내 말이 무조건 약일거라고, 쓴 약일거라고 생각했지 그 약이 가진 부작용도 있다는 건 몰랐다.
이제 와서 따지고 그때 서러웠노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내 속의 어린 아이는 엄마에게 속상하고 서운한게 많이 남아있지만 그만큼 엄마 속에서도 있을거니까 서로 퉁치자고.. 혼자만 계산기를 두들기며 착한 척 하고 왔다.
세상 모든 아이는 착한 아이다.
그리고 이 말은 나이가 먹어서도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넌 착한 아이야.
니 잘못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