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상대는 가족이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하고 동시에 나를 너무 몰라서 외롭다,

 

일찍 죽은 형의 기일에 맞춰 오랜만에 료타네 가족은 부모님 집으로 간다,

아이가 달린 여자와  결혼한 이후  아직 어색한 관계인 모양이다,

그러나 더 어색해 하는 건 아내나 아들보다 료타 자신이다,

어떻게든  하룻밤을 자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궁리하지만 오히려 아내는 담담하다.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음식을 하며 수다를 떤다,

그 수다의 상대는 결혼한 딸이고 남편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고 본인 관심이 없으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가 오면 할머니는 깍듯하게 맞이한다,

서로가 예의바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함꼐 음식준비를 하면서 어릴적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쉽게 어울린다. 음식이 모자를까 스시를 주문하고 배달온 오랜 이웃인 스시집 아들과 수다를 떨고 함께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다,

사위는 어색함인지 무사태평인지 식사후 잠들어버리고  아버지와 료타는 둘만 남을까 전전긍긍이고 어머니는 그래도 부자지간에 무언가 대화를 하기를 바라며 자리를 비운다,

그러나 어색하게 피하거나 무의미하게 부딪칠 뿐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다가가는지 알지 못한다,

형의 무덤을 다녀오고 아들이 출세해서 뭔가 뻐기가 싶은 어머니의 속물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런 어머니가 귀찮고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죄스러운 아들도 있고  무심하게 엄마의 도움을 당연시 하는 딸이 있고 어색한 가운데서 예의는 다하려고 하지만 마음을 나누기는 힘든 며느리도 있다,

오후 큰 아들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사내가 찾아온다,

큰 아들이 구해준 그때 물에 빠졌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뭐하는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취직도 안되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이런 하찮은 인간을 위해 내 귀하고 잘난 아들이 죽었다는 걸 부모는 아직도 못견뎌하면서

잔인하게 그 청년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자식은 부모곁은 떠나면서 마음편하게 안도하고 부모는 또 다시 찾아올 자식을 벌써 기다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게 상대를 향한 마음은 늘 엇갈리고 같은 물질 같은 성질을 가지면서도 그 부피와 색 냄새가 미묘하게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어려워한다,

그게 가족이다,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은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다,

사람은 누구나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해보이기도 하고 선해보이기도 하다,

료타도  아내도 그저 부모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정도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외로운 누부부는 자식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막상 마주하면서는 데면데면하다,

 

 

따로 살면서 늘  엄마는 아빠에게 자주  전화 좀 드리라고 했었다, 자주 내려오지는 못해도 전화라도 자주하라고.. 꼭 내가 하라고 하라고 해야 마저 못해나냐고... 늘 잔소리였다

어느순간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엄마에게는 전화를 자주하라고 어색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괜찮지만 니 엄마는 얼마나 너들  걱정하는지 아느냐,. 늘 니들 생각밖에 없는 엄마인데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줘라,

그냥 흘려들었다,

영화속에서 료타도 늙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그 잔소리를 세삼스러운 표정으로 듣지망 아마 나처럼 흘려들었을 것이다,

자식도 살아가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젊다고 모든 게 다 견딜만한것도 아니고 이제는 젊은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내 앞의 삶에 허덕이다보면 지금 이순간 눈에 보이지 않은 부모는 가족은 잊히기 마련이다, 마음이 없는게 아니라  여우가 없다, 속을 비워야 무언가가 들어올텐데 이것저것 정리되지도 못한 것들이 뒤죽박죽 속을 꽉 채우고 있다, 그 복잡하고 찌질한 속내를 부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건  그 나름의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 배려가 부모에게는 무심함이고 무관심이고 서운함이다,

조금만 조금만 걸어도 걸어도 둘 사이의 거리를 가까워지지 않는다,

영화속 긴 계단과 언덕길처럼 그렇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보인다,

저 계단 위에 부모가 있고 저 언덕위에 그가 있음을 알지만 그 아득한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하거나 언젠가 다시 갈  시간은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 없이 물처럼 흘러가지만

계속 무언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터져봐야 별거 아닌 거라는 걸 알지만 그 갈등의 고조가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아서

꼭 내 부모와 나의 관계처럼 예리하게 다가온다,

가족끼리만 아는 지뢰밭이 있고 가족끼리만 아는 지름길이 있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안되는 지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 해야하는 지점이 어니딘지 진심이 담기지 않아도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된다는 지침같은 것들

이미 익숙해진 가족끼리 모두 알아서 제대로 피하고 모른 척하고 있지만 무심코 본 모습이 드러나거나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정들로 어느 순간 지뢰를 밟아버리거나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버리는 용심을 부릴 때가 있다,

그냥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혹은 이젠 괜찮지 않을까  행여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러나 모든 것을 덮어두고 모른 척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라고 변명하고 싶다,

내가 잘 안다고 여기는 내 엄마의 섬뜩한 모습 혹은 정신 나간거 같은 모습이 순간 낯설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알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언제나 벽같은 아버지는 늙고 쪼그라들어가고 있고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의지하는 배우자나 내가 든든하게 지켜줘야 할 내 아들도 언젠가 타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나도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뭘까 한 참을 생각해본다,

가장 가까운 존재

가장 잘 아는 존재

가장 의지 되는 존재

그래서 가장 알 수 없는 존재

그냥 내가 아는 걸 인정하고 모르는 건 새롭게 알아가고

또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아는 이상적인 가족이란 언제나 화목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웃고 미소짓고 걱정하고 그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도와준다,

언제나 다독이고 이해하고 배려한다,

우리는 그런 만화를 보고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족이니까 남이 아니니까

가족이라고 묶이는 순간 그런 화목함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가족이 그런 이상적이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노력하지 않고 이상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연히 가족이라면 따라와야하는 풍경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은 내탓이 아니었고

그건 왠지 죄스러움이기도 했고 불만이기도 했지만 그게 노력을 필요로 하고 간혹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냥 데면데면할 수도 있고 서로 서운 할 수 도 있고 목청을 올리며 싸울 수도 있고 속물스러움을 나누면서도 그려려니 하고 그러면서도 직설적으로 충고도 하고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야 하고 누구보다 진심이어야 하는게 오히려 가족이라는 걸

가족속에서 태어나고 또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지 40년이 넘어서 조금씩 알아간다,

가족은 힘이지만 독이다,

잘 쓰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치명적이고 내게 든든한 뒷배경이지만 언제 그 힘이 나를 압도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가족관이 꽤나 비관적이고 냉소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관계든 노력없이 애씀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

하루하루 나이들면서 계속 꺠달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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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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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정의에서 귀신이란

할말이 있어 아직 떠나지 못한 존재들이다,

할 말을 하지 못해서 말이 하고 싶어서 입에 피를 흘리거나  그저 목이 매어서 상대를 노려보기만 하는 그런 존재

 

이 책의 주인공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런 귀신을 본다,

 

물론 오랫동안 말을 못해서 그 기회를 놓쳐서 몸이 가루가 되고 희미해질 때까지 맺히고 맺힌게 남아서 악귀가 되어버린 귀신도 있고 그냥  육신에서 혼이 이탈해서 저 혼자 떠도는 외로운 소녀도 있고 그렇고 그런 귀신을 그녀는 본다,

악귀는 쫒아야 하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해가가는 것들으을 막아야 하고 외로운 귀신에게는 말동무가 되어준다,

영화에서처럼 쎈 언니 캐릭터로 첨단 무기비슷한걸 지닌 고스터바스터는 못되고 비비탄과 플라스틱 칼을 들고 귀신을 쫒는 조금 스타일은 구겨지는 퇴마사다,

남의 말을 들어주고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봐야하느라 늘 기력이 딸리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학교 이사장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한문교사 홍인표를 통해 에너지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받은 에너지를 그 학교를 위해 쓰니까 뭐 쎔쎔인 셈이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귀신은 학교에 있는 귀신이고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학교가 맞지 싶다 으슥하고 오래되고 낮에는 왁자지껄 아이들이 떠들다가도 순간 고요해져버리는 텅 빈 공간은 누군가 스며들기 딱 좋다, 게다가 오래된 학교 시설이라면 더욱.....

 

그냥 작가의 말처럼 가볍게 오로지 쾌감을 가지고 쓴 글이라 믿고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읽다가 순간 울컥해지는 부분이 있다,

첫사랑  정현이나 중학교 동창 강선이 이야기

그리고 외로운  황유정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가 그냥 가볍게 쓰려고 애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드랬다,

그냥 심각하지말고 가볍게 들어. 이거 심각한건 아니야 심각한건 아닌데

그냥 귀신이 나오고 혼들이 나오고 뭐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니까 그냥 들어

그래서 그냥 들었는데... 막 먹먹하기도 하다

그냥 잊고 있는 것 잊어서는 안되는 게 있는데

그래서 귀신이 나오나  꿈을 꾸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뒤엉키면서

그래도 계속 키득거리며 읽어야겠지 하는 마음도 들면서....

 

아는 형은 아니고 안은영은 애를 써서 귀신을 쫒고 학교를 지키지만

학교는 자꾸자꾸 무서워진다,

뭐 용을 없앴으니 그리고 해피앤딩처럼 마무리는 되었지만

학교는 학생들은 자꾸 그대로다,

점점 무서워지고 점점 서늘해지고 점점 막나가고  물불 가리지 않고

 

나도 비비탄과 플라스틱 무지개 칼이라도 지니고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따.

 

난 이작가가 참 좋아졌다는 말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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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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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뭐라고 리뷰를 쓰다가 다 지웠다,

뭐라고 해봐야 뭐하나.....

 

모른다는 것이 죄악일 수 있다,

내 몸을 움직이고 내 귀를 기울이고 여기저기 읽어보고 들어보면서 알려고 하지 않는 행동 자체가 죄일 수 있다

알지 못하고 잘못된  말들을 믿고 그렇게 프레임을 짜고 판단해버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믿어버리는 게으름이  죄다,

내가 알고 있지만 내가 안다고 으스대면서 니들은 모르지 사실은... 하고 혼자 만족하고 자족하는 행동도 죄다,

 

내 몸을 움직여 진실을 알아내려고 노력해야하고 여러가지 말들을 듣고 종합해서 내 감각과 판단을 믿어보고 다시 처음부터 다시 생각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그리고 아는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모르는 것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 자꾸자꾸 물어봐야 한다,

귀찮아한다고 내가 너무 무지해 보일까봐 혹은 내대는 것처럼 보일까봐 수다스럽고 가벼워 보일까뫄 우아하고 교양있게 입을 다물지 말고 자꾸자꾸 나대고 물어보고 귀찮게 하고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떠올려 볼 수 있게 해야한다.

 

결국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욕심이고 사람의 죽음이고 사람의 고통이고 사람의 소외다,

모든게 사람의 일인데

우리가 알고 있던 건 숫자이고 뭉뚱그려진 어떤 집단이다

사망자 생존자 실종자 해경 정부 학생 민간인 잠수사 전문가 등등등

결국 그들이 사람이라는 걸 자꾸자꾸 잊는다,

너무 당연해서?

어쩌면 어쩌면 그 개개인의 사람이 너무 하찮아서일거란 생각이 자꾸 불쑥 대가리를 든다,

사람이 너무 하찮다,

돈이 중요하고 권력이 중요하고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게 중요해서

사람은 자꾸자꾸 주변으로 밀려난다,

누군가가 그리고 내가 우리가 자꾸자꾸 말하고 떠들고 나대고 주장하고 물어야 한다

 

그동안 나는 너무 우아했구나,,,,

책을 다 읽고  무심코 책 커버가 떨어졌다, 그 속에 고운 안감처럼 쓰여진 두 줄의 문장이

결국은 아프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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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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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

1.박연선 작가라는것
내 인생의 드라마 두개중 하나가 얼렁뚱땅 흥신소이다
그리고 육아로 우울할 때 혼자 야심한 밤에 빠져들었던 드라마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전자는 B급 정서인데 한없이 심각해지는 우스꽝스런 상황 그러나 점점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 매력이었고
후자는 악인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라는 문제에 유혹되면서 점점 변하는 소년들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평균신장180이 넘는 모델출신 배우들을 보느라 더 좋았다.

2. 게다가 올해처럼 사람 팔딱 뛰게 만드는 더위에는 결국 미스테리물이다. 다만 끈적임과 불쾌감이 높으니 피가 낭자하고 내장이 튀고 두뇌싸움이 필요한것보다 딱 코지 미스테리가 좋다. 게다가 점점 노안도 심해서 머리 아픈 외국이름이나 문화대신 익숙한 배경이 더 좋다
그렇다면~~~~~
결국 이 작품일 수밖에
두께도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분량에
드라마작가답게 탁구치듯 이어지는 대사도 좋고 상황도 익숙하면서 기발하다.

3. 80넘은 할머니와 21살의 삼수생손녀의 동거
정반대의 생활 패턴,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손녀
얼떨결에 발견한 보물지도는 15년전의 사건으로 끌고가고 단순한 호기심과 꽃돌이 소년의 등장으로 드디어
홍간난 여사와 강무순콤비가 탄생한다.

그날 전혀 공통점이 없던 4명의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정말 그들은 전혀 접합점이 없었을까?
강무순의 뽈뽈거림과 츤데레같은 홍간난여사의 합은 절묘하게 맞거나 헛다리를 짚거나 하며 진실로 다가간다

4.우리는 누군가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내게 익숙한 공간 내가 나처럼 잘 아는 이웃 혹은 가족
그들의 또다른 얼굴은 그저 놀라움일까? 아니면 나의 편견에 나만 몰랐던 부분일까?
누구나 사정은 제각각이고 진실은 언제나 낯선 얼굴을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조금만 더 세심했다면 알 수도 있을 부분이며 동시에 죽었다 깨나도 절대 모를 부분이기도하다.

5. 이 유쾌하고 조금은 꽤쬐죄한 커플 이야기가 또 나오면 좋겠다.
사실 할머니 탐정이라는 설정은 참매력있다
누구나 간과하고 쉽게 대하는만큼 사건의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는 인물~~~(사실 나도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우리나라 추리물이 어떨까 생각만 했는데)
간난여사와 무순의 활약이 겨울판으로도 나오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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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을 가지고 살 권리 - 열 편의 마음 수업
이즈미야 간지 지음, 박재현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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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몇년전 일이다,

잘 알고 지내던 언니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한번도 호들갑을 떨거나  심하게 우울해하거나 슬퍼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마 좋은 의미로 하려고 했던 거 같다,

그만큼 신뢰가 가고 일희일비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사실 내 성격이 그렇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자면 물에 물탄거 갔고 술에 술탄거 같고

어떤 일에도 쉽게 동요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와라라 입이 찢어지도록 웃은 기억도 없고 땅이 꺼지도록 꺼이꺼이 울어본 기억도 없다,

한 번은 돌아가신 아빠가 혼잣말처럼 한 말이 있었다,

"언제 한 번 확 필려나 필려나 하다가 나이 먹어가네"

뭐 그게 외모에 대한 품평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일에도 크게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내 모습이기도 했다,

사실 그게 싫지 않았다,

난 언제나 이성적이고 원칙이 있으며 분별이 있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회적 매너를 지닌 사람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다,

사실 그래서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심한 변덕을  보이는 사람이 불편하고 싫었다,

물론 나도 변덕이 심하고 마음이 자주 바뀌는 편이지만 그걸 드러내지 않고도 잘 다스려 왔다고 믿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고 감정이란 많이 드러내지 않은 것이 세련되고 멋있다고 믿었다,

 

#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하지 말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던 거 같다,

어디 가서 욕먹거나 험담 듣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 흔한 말로 잘 되라고 하는 잔소리가 심한 엄마였다,

그 덕인지 아이는 예의있고 나름 반듯하게 자랐다고 믿었다,

문제는 사춘기에 터졌다,

언제나 어른 말을 잘 듣고 순하게 자라는 초등 저학년때의 아이들은 다들 비슷하다

개구지고 말안듣는 녀석들이 간혹 섞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말 잘듣고  질서나 예의를 잘 지키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조금씩 자기주장이 나타났다,

아이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고 싶어하지 않은 동시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받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하나를 주면 누군가도 내게 하나를 주어야 했고

실수로 타인을 치거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하면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한다고 믿었다,

함께 할 때 누구도 빠뜨리지 않고 공평해야 하고 남의 물건을 쓸 때는 꼭 주인에게 먼저 물어보고 쓰거나 먹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다,

그건  다른 아이들이 악하고 못되먹어서가 아니었다,

고의가 아닌 실수는 누구나 그냥 장난처럼 넘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자기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걸 못 알아차릴 때도 있고 친한 친구라면 연필 하나 펜하나 정도는 그냥 나눠 쓸 수도 있고  뭔가 일이 있으면 남의 자리에 앉을 수도 있고 남의 물을 허락없이 입대고 마시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그걸 견디지 못했다,

늘 사과받기를 원했고 허락받기를 원했다,

아이는 까탈스럽고  예민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아이가 말했다,

난 엄마가 잘 교육시켰다고 생각해 그런데 다른 집에서는 그런 교육을 하지 않나봐...

왜 모두가 예의없고 더러운지 모르겠어....

 

#

뒤늦게  독서상담을 공부하면서 많이 배웠다,

감정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 감정에게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감정표현을 어떻게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그런 감정을 가진 것은 괜찮다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한 자기 감정에 솔직해지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건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공부를 하며서 나는 내가 대가리만 커다란 콩나물같다는 생각을 했다,

많이 아는 것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감정은 하찮게 여기고 살았다는 것이다, 머리로 들어와서 머리에 자리 잡은 모든 지식이나 사고는 중요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가슴으로 들어오는 감정 정서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원칙을 정하자

객관적으로 생각하자

내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그렇게 나는 비대칭적이고 기괴하게 머리만 크고 있었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그리고 그렇게 머리만 크진 엄마는 결국 아이에게도 머리만 커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생각을 했었다,

감정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일도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다,

감정은 어느정도 본능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본능이기때문에 억누르면 누르는대로 저 깊은 곳에 숨어서 제 존재를 드러내는 법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감정조차 내가 나에게 집중해서 느끼고  공간해주는 연습기간이 필요했다,

내가 내 마음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남도 받아들이고 존중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고 공감하는 일이 가끔 머리로만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 섬뜩해졌다. 내가 공감하고 있다, 존중하고 있다는 사고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것

내 감정을 안다 느낀다는 것도 어쩌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으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

머리가 언제나 대장이 아니라는 것 머리가 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야 말로 그것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요즘

이 책은 명확한 정리가 되게 해주었다,

어쩌면 알고 있는 일 나도 느끼고 있는 생각들이 언어로 정리된다,

아... 어쩌면 이것도 머리로 하는 이성적인 '생각'인가보다

나는 요즘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연습 그리고 타인 특히 아이들의 감정을 잘 받아주는 걸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늘 익숙했던 이성이 먼저 들어오고 감정표현이 서투르고 그래서 타인의 표현조차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견뎌볼 생각이다,

조금 마음을 풀고 긴장을 풀고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다고 내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 사랑과 욕망의 문제

흔히 사랑이라는 것 관심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관심과 사랑은 이것인데 타인이 주는 사랑과 관심은 이것과 다른 경우가 많다,

책에도 있었다,

미워하는 마음이라면 차라리 미워서 저러는 구나 하고 여기면 그만이지만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해주는 그 나에게 버겁고 무거운 그 사랑은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그걸 거부하면 내게 죄책감이 생기고 그렇다고 받아주자니 내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고 무겁다,

그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욕망이라고 책은 말한다,

내가 이만큼 주니까 고마워해주길 바라고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으니까 알아주면 좋겠다는 나의 욕망일 뿐이지 타인을 위한 사랑은 아니라고 말이다,

 

#

여행을 가면 늘 싸우게 된다.

가족여행이라고 함께 들뜨고 출발하지만 꼭 한번 큰 소리가 나고 싸우게 된다,

별거 아닌데 사실 정말 별거 아닌데 내가 해주고 싶은 것과 바라는 것이 각각 다르다는 이유였다,

아버지는 기왕 돈을 쓰고 나온 김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고 더 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는 나를 가족들이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가족들은 기왕 멀리 나온김에 조금이라도 더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다, 하나를 더 보는 것도 좋지만 그냥 여유있게 생각지 못한 골목을 발견하고 맛있는 걸 여유있게 먹고 조금은 숙소에서 뒹굴거리는 일도 하고 싶다, 어짜피 휴가 아닌가 일이 아닌 휴식이 목적이니 쉬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다른 취향과 다른 기질이 부딪친다,

각자 서로가 참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희생하고 많이 노력한다고 생각했다,

타인은 너무 독재적이거나 너무 게으르다,

그래서 참다 참다 정말 엉뚱한 시점에서 터지지 말아야할 욱이 터져버리고 어색해지고 순간 여행 아니 온것만 못한 상태가 된다,

초창기에는 아버지의 욱하는 성질머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이유없이 이러는 걸까

그러나 그 이유가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바람이 다를 수 있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내버려두고

좋은게 좋은 거고 기왕 나온거 내가 계획한대로 하고 싶고 다른 가족은 따라주고 박수쳐주고 잘했다고 해주면 안되나? 게다가 나랑 다른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맞는것도  외롭다는 생각도 있고.... 그렇게 욱 하고 가장은 폭발한다,

날도 덥고 힘든데 마음은  염전이다,

늘 나만 힘들고 나만 참는다, 내 선의는 전달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식입장에서 아버지가 애쓴다는 건 알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다, 그냥 내버려두고 뒹굴거리는 시간을 주길 바랄 뿐이다, 일정을 짜고 돌아다니고 하나라도 더 눈도장을 찍고 좋은 스폿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안해도 되는데...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그래서 화가 나지만 화를 낼 수 없다, 상대는 아버지다, 가장이고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까 화를 내고 말안듣고 싶은 내가 나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그렇게 나를 나쁜 놈으로 나쁜 년으로 모는 아버지가 싫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내가 나쁜 놈년이 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건 사랑이 아니라 타인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결국 이 다음엔 가족여행은 가지 않는게 낫겠다는 각자의 잠정적이 결심만 안고 여행은 끝이 났다, 책을 먼저 읽고 간다해도 상대가 변하지 않으면 별 수 없다,

갈등은 부딫져 풀어질 수 없다면 가능한 피하는게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답고 싶다면 내 멋대로 해도 되고 내 욕구에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다, 안다 물론 잘 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언제나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함께 해야하는 존재일때는 내 욕구 내 감정은 쉽게 닫아 버리게 된다,

상식적으로 살기 위해서 교양있게 살기 위해서 조금 더 나아보이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나는 원래 감정에 흔들림 없는 사람이었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감정을 드러내어서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고 그냥 똑똑해보이는 것 이성적이고 담담해보이는 모습에 더 사람들이 좋아해주었던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소하나 일에 징징대지 말라거나  왜 그렇게 변덕스럽냐거나 너무 기분대로 하지말라는 말들

어쩌면 상처를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받는 입장에서 자잘하고 사소한 것을 좀스럽고 찌질하게 받아들이게 된 건 아닐까

그렇다고 왜 그렇게 받아들이냐고.. 진심은 몰라주고 왜 멋대로 해석하느냐고 하기도 뭣한게

누구나 사람은 자기 기준과 그때의 감정과 상황으로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안에 축적된 어떤 피드백들이 감정은 되도록이면 드러내질 말것

이성적으로 담담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해왔을 것이고 나도 그렇게 맞춰가면서 점점 내가 원래 어떠했는지 뿔을 가지고 있었는지 뾰족한 가시가 있었는지 산만하고 천진한 구석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냥 담담하고 조금 재미없는 내 성격이 나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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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지금의 모습이 싫은 건 아니다,

어쩌면 오래동안 내것인 줄 알고 가지고 있어서 이젠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성정이되었고 가장 안전한 내 은신처이기도 하다. 내 성격과 표현방법들이 말이다,

사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든가

내 성격이나 행동이 정말 맘에 안든다.. 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다,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나는 내가 너무 좋다  그런 건 아니고 물론 나 스스로 맘에 안드는 구석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는 하는 생각 이 정도면 그래도 잘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살았었다,

후회도 있고 불안도 있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심리 공부를 하면서 나를 들여다 보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꺼집애 내어 보아도 그때 그래서 이렇게 성격이 형성되었구나. 그래서 그 사람과는 좀 불편하구나 .. 하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게 다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지 않은 탓도 있겠고 이미 지난 일 누구탓을 하면 뭐하나 싶은 것도 있고 나름 운좋게 괜찮게 살았다는 자부심도 있어서 그럴 것이다,

<뿔을 가질 권리>를 읽으면서도 나를 생각해보고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 내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내가 받았던 겪었던 무엇도 생각하지만 그보다 나로 인해 내 아이들 혹은 주변사람들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지만 아주 썩 좋은 사람도 아니고 그냥 좋기도 하고 안맞기도 한 사람일테니 누군가와의 관계에서는 내가 상처를 입은 만큼 그 상대도 상처를 입었겠다 싶기도 하고 뭐 그랬다,

띠지에 적힌 것처럼 몇번이나 울고 내 삶의 빛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 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책이 되었다,

가장 좋은 점은 참 쉽게 조곤조곤 설명하고 알려준다는 것

조금 유치해보이는 그림들과 도표들이 이해를 쉽게 한다,

일본은 이런 책이 특화된거같다,

쉽고 별거 아닌데 읽고 나면 조금 개운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그치만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엔 조금 애매한 그런 책들....

 

따라서 억압당한 것을 갈등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면 충분히 의미있는 치료가 된다,

의뢰인은 '병이 나으면 개운해져 고민도 없고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야할 고민은 어떻게든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낫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억압하고 있을 때는 '병적인 안정'이라 할 수 있다, '병적인 안정'에서 건강한 불안정으로 옮겨가는 작업 그것이 치료의 본래 모습이다,

                                                                            26-27

 

 

지금까지 사람들은 말의 두 가지 측면을 나름대로 구분해서 사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 구분에 서툰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사적인 말을 그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내뱉거나 반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던져진 말을 자신의 사적인 필터로 받아들여 '상처입었다'거나 '심한 말을 들었다;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실로 많아졌다,

이런 사태는 자타의 구별이 어려운 경우에 일어난다,  

자신과 타자가 서로 다른 내면 세계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은 단어라도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과 타자가 다른 존재라는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빚어지는 문제다,

                                                                   43 

 

 

머리는 이성의 장소다

머리에서는 '해야만 한다' '해서는 안된다'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시간 공간인식에서는 과거를 분석하고 미래나 이곳 이외의 장소를 모의 실험하는 것이 특기다,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은 머리에서 만들어진다, 반대로 지금 이곳에 관해서는 서툴러서 바르게 파악하지 못한다,

또 다른 머리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이든 제어하려는 경향성이다,

자신의 마음이나 몸에 대해 닥쳐오는 운명에 대해 자연에 대해 등등 그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 데 소위 '욕망'은  '역구'와 달라서 마음이 아니라 바로 이 머리의 제어 지향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58-59

 

 

인간에게는 바이오리듬이라는 것이 있고 여성에게는 월경주기도 있다, 여러가지 사건 사고도 기분도 이리저리 변한다, '생물'인 인간은 계절도 날씨도 나날이 변하는 관경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니 시계로 정한 인공적인 시간에 맞춰 규칙적인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난폭한 이야기다,

                                                    80

 

 

이때 감정의 우물 뚜껑을 열고 분노를 표출하는 것과 분노를 말로 내뱉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한다, 뚜껑을 열고 분노를 토해내야 하지만 그걸 말로 하지 않은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원망이나 미움을 그대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그 감정을 승인하는 데서 그치면 인간관계가 깨지는 문제를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이론 상으로 그렇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을 승인하는 것만으로 오래된 분노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분노를 글로 표출할 것을 권한다,  (중략0

그저 자신의 의식속에 쌓아두는 것과 글자로 자신의 외부로 꺼내 놓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다, 노트에 쓰는 동안 자기 안에 억눌려 있던 오래된 분노와 슬픔이 넝쿨처럼 줄줄이 밖으로 나와 정리되고 정화된다, 이승을 떠돌던 혼령같던 오래된 감정이 이 작업을 통해 구원받는다,                                

                                                                 108

 

 

사랑: 상대가 상대답게 행복해지는 것을 기뻐하는 마음

욕망; 상대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기를 강요하는 마음

 

 

 

스위스의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그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사랑으로 위장한 부모의 욕망만큼 아이를 왜곡시키는 것도 없다, 오히려 악의가 더 죄길이 가볍다, 사람은 자신을 향한 악의에 대해서는 거절이나 반발할 여유를 가질 수도 있는 반면 '너를 위해서'라는 선의가 자신에게 향할 때는 거절도 반발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랑과 욕망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ㄴ를 위해서 라고 말하며 강요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굳게 믿기 때문에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에 둔감하다, 게다가 흔들림 없는 그 생각 이면에 상대에게 감사받고 싶다는 욕망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감사 받고 싶다는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것도 역시 상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제어 지향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악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좋은 것이라 생각해서 한 일이니 부디 너그럽게 봐달라고도 할 수 없다,

 

               130-132

 

 

때로 지금까지 사랑받지 못했으니 그만큼 더 사랑받지 못하면 나는 이 고통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밖에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게다가 이 경우 당사자가 기대하는 사랑은 자기 생각대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희망대로 상대가 응해주는 것이며 명백히 비대화한 욕망이라는 환상이다,

이 생각을 깨기 위해 플요한 것은 '사랑의 자급자족'을 채현하는 존재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급자족을 방해하는 요소를 성심껏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해야한다,

 

 

기다리다 지치면 사람은 어떤 상태에 묶인다, 절망을 입에 담을 때 사람들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기대했지만 얻을 수 없다며 한탄하는데 그 고통은 바람이 이뤄지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생타에 묶여 자연스럽지 못한 데서 온다, 결국 이것은 집착에서 오는 고통이다, 하지만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

사람들은 약간의 바람이 남아 있을 때 절망을 말한다, 만일 기다리는 대상이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만두고 다른 행동으로 옮겨가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원망이 끊긴 절망의 모습이다, 진짜로 절망했을 때 사람은 집착을 떠나 자유로워진다, 더는 그 곳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이다, 그리고 진실로 필요한 행동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다,

                                          1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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