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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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내 몸을 통과한다, 그 책이 통과한 후 나는 그 이전의 나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사실 나는 여전히 늘 제자리이고 그 모양 그 꼴이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왜? 늘 질문을 하며 읽었어야 했다,

늘 비슷한 책들 내 취향에 맞는 내가 소화시킬만한 양념이 듬뿍들어가고 연하게 숙성시겨서 입에 맞게 잘 잘라놓은  책들만 읽었다,

물론 사이사이 나름 독서근력이 필요한 책들도 읽었지만 그냥 읽었을 뿐이엇다,

읽는 동안 두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고 입에서 반사적으로 욕이 나올 때도 있었고 몸이 떨리는 내가 정말 무지하구나 하는 쨍한 두통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예전의 나였다,

처음 어딘가에 잘못끼워진 단추가 분명히 하나가 있는데 쓱 보기에 아무렇지 않고 멀쩡해보여서 그냥 계속 단추를 채워나갔는데 순간 마지막 구멍이 하나 남거나 단추가 하나 남은 꼴이었다,

나름 열심히 읽었는데 열심히 알게 되고 느꼈고 배웠는데 나는 여전히 나다,

 

 

생각 좀 하고 행동해~~

아이들에게 혹은 덜렁대거나 실수를 하는 사람에게 쉽게 하는 말이다,

생각을 하고 예측을 해서 행동하라 그래서 실수를 줄여라  아니 없애라.. 뭐 그런 의미겠지만

책을 통해 나는 이제 행동하고 생각하라,... 를 더 믿게 되었다,

자꾸 생각만 하고 계산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나면 행동을 해야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혹은 계속 불안하고 아직은 아닌거같다는 주저함만 남을 때가 있다,

생각이란 사건이 터지고 모든 일이 과정을 넘긴후에 되돌아보고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고 그 의미를 찾는 일일 뿐이다, 늘 사후 약방문같은 거고  일 처리후에 남기는 보고서같은 것이다,

물론 미리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하는 것도 있지만 정돈된 이론이나 관념은 늘 뒤에 따라오는 거였다.

내가 경험하고 행동하고 저질러보고 돌아보는 과정이 내게는 필요했다.

늘 준비하고 준비하고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 챙겨야 할것들의 목록은 마법의 두루마리처럼 끝이 없이 계속될것만 같고 이대로 일단 저지르는 건 누군가 등쳐먹는 일이거나 사기치는 일같다는 스스로의 검열만 계속하고 있었다,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은 배가 고프다,, 뭐 그런 말만 되내이면서 계속 생각하고 준비하고 또 생각하고....

배가 덜 찼어도 옴직일 수 있고 부족한 건 하면서 혹은 살면서 채워도 되고 덜 채워진들 어떠하랴 하는 마음을 마흔이 넘어 쉰을 바라보도록 갖질 못했다,

그런 처지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는 턱없이 높아서 왠만한 변화나 발전은 변화도 발전도 아니라고 생각하다보니 늘 채워도 채워도 부족하고 배고픈 가오나시처럼 되어버렸다,

결국 나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끝없이 채워야 할 것들의 목록만 쥐고 있다,

내게 책 읽기는 계속되는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지 이 이상의 무언가는 아니었다,

 

 

저자의 독서목록에서 내가 읽었거나 들어본 책은 열손가락을 채 꼽을 수가 없다,

대부분이 처음 듣는 책이었고 이런 책도 있나? 이런 주제의 책도 있을 수 있구나 하는 무지한 끄덕임만 계속되었다,

몇권의 책은 장바구니에 넣고 몇권은 끌리긴 하지만 내가 읽을 거 같지않기도 했고 몇권은 나도 읽었지만 전혀 다른 감상이었고 ... 그랬다,

처음엔 말랑말랑한 문장들도 보여서 뭐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자만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파이이야기> 는 나도 꽤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라 좀 더 느낌이나 생각을 듣고 싶었는데 그저 리처드파커와의 이별을 통해 저자의 상실감을 이야기해서 조금 실망이긴 했지만 다른 글들에서 나도 생각을 했었는데 그걸 참 잘 정리하고 표현했구나 싶은 문장들에 샘도 나고 그랬다,

연재를 했던 글이라 쓸 때의 감정이나  상황등이 제각각일테니 어떤 글은 너무 과잉된 감정이 보이고 어떤 글을 필사를 하고 싶을만큼 완벽하게 좋았다, 아주 잘 쓴 글 이라는게 사람마다 다른 거지만 아주 잘 쓴 글..이란 말이 주는 매끈함은 없지만 투박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파도치는 감정들이 모두가 절실하고 솔직했다, 투박할 때도  이게 뭐지 싶게 툭 끝맺음이 있기도 했지만 글은 경험하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고  나름 자기가 찾은 자기의 답들이었다.

 

어릴 적 나는 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어른이 되고싶었다,

누구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을 해내고 상대 코를 납작하게 해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 억울하고 이게 아닌데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 순간 말로 표현할 길이 없고 하룻밤을 자고 나면 그 일들이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는게 너무 답답하고 억울했었다,

부모의 말이라고, 어른의 말이라고 모든 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부들부들 떨리면서 잔뜩 약이 오른 모양으로 소리만 꽥꽥 지르는게 전부였던게 어린 맘에도 참 창피하고 분했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그런 마음도 책읽기의 한 시작이 되었던거 같다,

그러나 읽어도 읽어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았고 점점 내가 알게 된 것은 나는 모르는게 많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따지기 좋아하던 꼬마는 말없는 사춘기를 지나고 말없는 성인이 되었는데

속에는 말이 부글부글 끓어넘쳤고 그게 한쪽으로는 열등감도 되어허 누군가  몇 마디 하지도 않은 내 말에 딴지를 걸거나 내가 미쳐 표현하지 못한 언어들을 유창하게 드러낼때 바글바글 속만 태웠다, 나 내가 저랬어야 했는데,,.. 저건 내 생각이고 내 언어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몇번을 경험하고 넘어지고 상처받으면서 나는 점점 입을 닫고 책속으로만 들어갔지만

어려운건 이쪽으로 치우고 위험한 건 저쪽으로 치우고 맘에 안드는건 던져놓으면서 내 취향 내 수준에 맞는 독서만 게속이어갔다,

누군가가 권하는 책 누군가가 읽고 좋다는 책을 몰래 아닌척 읽으면서 왜 나는 좋지 않을까 왜 나는 이게 이해가 안되지? 그런 사소한 문제에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 정작 책을 제대로 마주하려고 하는 태도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책이란 누구에게나 같은 내용을 보여주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제각각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렇게 제각각 다른 책이 된다, 그걸 나는 몰랐다,

타인이 알아낸 것 타인이 느낀것 타인이 감동한 것을 나도 똑같이 알지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해서 늘 동동거렸다,

저 사람은 저런 책도 읽어내는데,. 나는....

오랜 독서기간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누군가를 따라하고 흉내내고 질투하면서 보냈었다,

차라리 누군가 한 사람읨 모텔을 놓고 따라하는 책읽기라도 했더라면 나았을까 싶게

마음만 급해서 이사람 저사람 마구잡이로 흉내내고 따라하다가 제풀이 지치곤 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선명해지는 건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것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내가 아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다,

그 때문에 조급하고 불안하기만 했다,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내가 아는 것이며 그것을 내가 정확하게 알고 있고 내 것이 되었는가를 생각해야했다,  책이 누군가 타인에게 다다르는 길과 나에게 다다르는 길이 다른 건 당연하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만났던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 내 감정 내가 했던 실수나  결과은 오롯이 내것이어서 그런 단하나의 내가 만나는 책은 또 다른 단하나의 타인이 만나는 책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나는 나름 괜찮게 책을 읽어왔던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 단 하나 내 방식으로 읽었던 것이고 그걸 굳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안달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정희진처럼 읽기"는 내게 그걸 말해줬다,

계속 너의 방식으로 읽어라 대신 너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라,,

읽을수록 불안하다는 건 읽을수록 겸손하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마음이다,,)

읽고 함께 나누는 일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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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1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북플에 접속하면 관심 있는 책들을 많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제 취향과 거리가 멀고, 읽으려고 해도 다른 책에 눈길 가느라 읽지 못합니다. 선호하는 취향에 맞는 책을 읽을 때가 마음 편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진다,

자본주의는 굳이 인간의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위에서 성장하고 몸집을 불려왔지만

그 자본주의가 완성된 곳에서 인간은 없다.

 

완벽한 시스템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어도 우리는 먼저 기계음을 들어야 한다,

전화 버튼을 누르고 나면 녹음된 기계음을 듣고 또 한참을 유료로 기다린다,

그리고 몇번의 질문에 목소리없이 대답하는 순간을 지나야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을 처리해야할 경우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편리한 인테넷 그리고 넷망을 통해 정보처리가 되고 물물교환이나 매매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루종일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소비하는 일을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가능한 세상이다,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는 40년을 목수로 일한, 지금은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아마 60대 백인 남성이다, 그는 한번도 컴퓨터를 사용해본적이 없고 연필이 익숙하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고 드래그를 해야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고 의료수당의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다니엘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첨단의 기술로 편리하고 세련된 세상에는 사람이 없다,

I  나 라는 존재는 없다,

영화 첫 장면에서 화면없이 대사가 나온다,

의료수당을 위햔 면접에서 면접관의 질문과 다니엘의 답변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예와 아니오로 이루어진다, 뭐든  다른 말이 첨언되면 에러가 된다, 보충설명이나 다른 구체적인 상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저 묻는대로 예 아니오 두가지뿐이다,

컴퓨터가   0 아니면 1 두가지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그것을 발달이라고 하고 기술혁신이라고 하고 편리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날로그 인간이다,

자기처지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싱글맘 케이티 가족을 돕는다,

집안 곳곳을 손봐주고 전기료를 내라고 돈을 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인간대 인간으로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인다,

케이티는 다이엘보다 더 처지가 딱하다,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만 식사를 주고 자기는 과일로 연명하고 식료품 배급소에서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통조림을 따서 손으로 허겁지겁 먹어버린다,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배급소에서 정작 케이티가 필요했던 것은  생리대였다,

그녀가 어렴게 뱉은 질문은   '혹시 생리대는 없나요?" 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만 필요한게 아니다,

의식주는 기본일 뿐이다,

사람답게 숨쉬고 살기위해서는 필요한게 또 더 있다,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서  또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언저리로 밀려난 싱글맘 케이티에게 생리대는 음식 이상의   절박한 무엇이다,

결국 그녀는 슈퍼에서 물건을 훔친 것을 들키고 급기야 매춘으로 나서게 된다,

젊고 아직은 아름다운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선택은 결국 자신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것이다,

 

시스템은 잘못이 없을 것이다,

입력되고 세팅되어진대로 일을 행할 뿐이다,

네 아니오의 대답만을 세팅했으니 그 이상의 말들은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고

인간을  알지못하고 의뢰인 고객 사용자 만 알 수 밖에 없고

제각각의 개성이나  심성을  넣지 않아서 보험번호나 사회보장번호따위로  분류할 뿐이다,

결국 그 시스템은 편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배제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엄마는 매춘을 결심하고 권리 하나 얻기위해 여기저기 시혜를 구걸하던 다니엘은 결국 자긴을 구직수당 대상자에서 이름을 빼라고 한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저항의 뭄부림을 치지만 결국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승소가 확실한 항고를 앞두고 다니엘은 어이없이 숨을 거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항고할때 말하려고 준비했던 것이 그의 유언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편하려고 개발된 시스템에서 정작 사람은 없었다,

함리적이고 신속한 과정이라는 것이 사람을 소외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고 자기 처지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구걸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았고  어떤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렇게 가버렸다,

사람이니까 여기 사람이 있으니 사람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아무도 듣지 않고 절차를 거치고 인터넷을 거치고 기다리고 맞추라고만 했다,

사람이 너무 흔해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으로 대우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

 

 

아직 삼성동 집 (사저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사저는 무슨..) 난방이 되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 추운계절이라 난방이 필요하고 도배가 필요하고 인터넷망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일개 개인이 되어버린 인간이 일개 개인은 쉽게 들어갈 수도 가까이 갈 수 도 없는 청와대에서 빼대고 살았다 ( 경상도 울 할머니 말투인데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없다)

인간적인 호의로 그정도는 봐주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적인 호의 인간적인 도리, 정... 그래 좋다

그런데 누구는 인간적인 호의를 받아 마땅하고 누구는 인간적인 흐의따위는 불공정한 예외조항이 되니까 하면 안되는 일이 되나?

누구는 춘삼월 보일러가 안되서 집에 못들어가고

누구는  같은 봄날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내 목소리를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그렇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법에 어긋나고 원칙에 어긋나고 시스템에 맞지 않아서  들은 척도 하지 않나?

전세집을 옮길때도 칼같이 만기날을 맞춰야 하고 혹시나 하루 이틀 더 있어야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법이다,

돈내고 들어가는 호텔이나 여관방도 체크아웃 시간을 넘기면 추가요금이 붙는다,

인간적인 도리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칙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다들 동동거리는데

누구는 저 삐졌다고 온동네 티 다내면서 입 딱 다물고 엥돌아서 버티고 버티다  나간다,

누구는 사람이고 누구는 짐승인가

 

 

 

 

 

 

 

 

 

 

 

 

 

 

책을 읽고 어떻게 리뷰를 써야햐나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나같이 마르크스는 이름만 알고 들은 풍월이 전부인 사람에게 마르크스의 여러가지 사상과 삶을 보면서 하나 내게 닿은 것은 사람이 우선이다,,, 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노동과 자본으로 부가 축적되는 시기를 보면서 자본이 축적되면 될 수록 사람은 희미해진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 그것은 선명한데 그 자본을 움직이고 생산을 하는 노동은 점점 희미해지고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 사람이 만드는 노동 자본때문에 소외되는 노동을 먼저 보자고 하는게 마르크스라고 읽었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아리송한 가운데 영화를 보았다,

 

다니엘은 아이의 방에 뽁뽁이를 발라주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모여 따뜻해질거라고 말해준다,

손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모빌을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환한 바다속이라고 말해준다,

아이는 노인을 찾아가 이젠 우리가 돕게 해달라고 말한다,

아이가 노인을 안아준다,

그렇게 사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일 뿐이다 사람의 체온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는 다니엘에 항고판정을 받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항고가 잘 되더라도 다니엘이 승리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의료수당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보지 못하고 다니엘은 사망한다,

어떤 작은 승리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어떤 것도 작은 마무리도 없이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까

 

탄핵이 되고 청와대가 비었다고 모든게 마무리가 된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처웃으면서 자기 잘못은 손톱만큼도 모른다는 얼굴이고

변화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어떻게 될지 나도 너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긴장해야하고 생각해야하고 말해야하고 행동해야할 읾이 계속될 뿐이다,

이젠 좀 쉬자는 마음을 지난 일요일밤 야간도주하듯 돌아와 쳐웃던 그 얼굴을 보고 화들짝 다잡게 되고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계속이구나,,,  생각한다,

아직은 화를 풀어야 할 시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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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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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본 미스테리를 많이 읽지 않았는데 다 알아버린 기분?
딱히 재미 없진 않지만 트릭도 알만하고 반전도 익숙하고...
네명의 형사 조합은 뭐랄까? 굉장히 정의롭고 진지하지만 허세가 가득한 중3 남학생들 같다. 본인들은 무지 진지한데 어딘가 허당끼가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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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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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뭐 읽어?

아이가 묻는다,

책표지를 보여줬다.

-재미있어?

-응

잠시 표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아마 나중에 어떤 내용이냐고 물어볼 것이다,

얘기해줘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절대 이야기해주지 말아야지 하고 다시 생각을 고쳤다.

아직은 이런 깊은 우울함과 슬픔과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을 알리가 없을테고 알 필요가 없고 꼭 알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기적이지만.......

 

제임스와 메릴린의 가족을 어디로 되돌리면 이런 비극에 닿지 않을까?

메릴린이 집을 나가기 전으로? 이곳으로 이사하기 전으로? 결혼 전으로 두 사람이 키스를 하기 전으로? 메릴린이 수업에서 제임스를 만나기 전으로? 아니면 태어나기 전으로?

어디로 되돌리든 그들의 삶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1060년대 미국으로 이민간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고

그 시대에 의사가 되고 싶었던 여성이라는 사실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둘은 다시 되돌려도 서로 첫눈에 알아 볼 것이고 서로 끌릴것이고 결혼했을 것이다,

아니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음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음 이외의 판단이 불가능하다.

 

만약 내가 신이어서 두 사람의 삶에 관여할 수 있다면

두 사람이 결혼식무렵으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 두사람의 결혼을 막을 생각이 아니라 그 무렵 그들의 생각을 바로 잡고 싶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절대 되돌아 보지 않을거라고 결심했다,

모든 지난 시간은 다 여기에 두고  새롭게 시작할거라고 결심했다,

그게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과거든 그렇게 묻고 싶다고 묻어지는 건 절대 아니라고 말해줘야했다,

깊이 구덩이를 파고 묻어도 언젠가 그건 새봄 연한 땅을 뚫고 올라 올것이고 알게 모르게 내몸에서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고 내가 눈을 감아도 누군가는 나를 통해 내 과거를 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고 어쩌면 그건 내가 직면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될 수도 있다도 말해줘야했다,

눈을 감는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그래서 제임스와 메릴린이 자기의 과거를 인정하고 결혼을 하고 삶을 시작했다면 모든 것은 잘 풀렸을까?  그것도 확신할 수 없다,

삶은 살아보기 전엔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나고 나면 그 분기점이 보이고 순간의 선택이 보일 뿐이다,

지나야 선명해지는 것 그것이 삶이다,

 

 

리디아가 죽었다,

왜 죽었을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중국게 미국인인 아버지와 백인인 엄마 사이에 중국인처럼 생긴 삼남매가 산다,

아버지는 대학교수이고 엄마는 지적이고 아름답다,

아이들은 아름답고 똑똑하다.

도무지 죽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가 리디아를 납치해서 죽이지 않은 이상 혼자 죽을 이유따위는 없다, 그러나 리디아는 죽었다,

그리고 가족들 각각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성적이 우수하고 영리해서  언젠가 의대를 진학하고 의사가 될거라고 믿었던 딸

에쁘고 똑똑해서 친구들이 많고  인기가 있었을 거라고 믿었던 딸

부모는 리디아에게 보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만 본다,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아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사회의 비주류였던 그래서 언제나 어디서나 다르기만 했던 아버지 제임스는 검은 머리지만 푸른눈과 흰피부을 가진 리디아는 주류 사회에 무난하게 편입할거라고 믿었다,

검고 찢어진 눈을 가지지 않고 엄마를 닮은 푸른 눈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고 믿었다,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동시에 여자는 의사가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까지 가졌던 엄마 메릴린은 딸에게는복종하고 결혼하는 삶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 딸은 세상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여자가 될거라고 믿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투영한다,

똑똑하고 자립심을 가진 여자. 대인관계가 좋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이루는 주류의 삶

부모의 기대가 리디아에게 집중되는 동안 그 시선 바깥에는 아들 네스와  막내 안나가 있었다,

동생의 부담을 알지만 도울 수 없는 네스와

모두의 감정을 읽지만 표현하지 않은 그림자같은 안나가 있다,

가족은 모두 자기가 가진 무게에 눌려서 자기 호흡조차 힘들어서 타인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못 보는게 아니라 자기 시선으로 타인을 본다,

메릴린은 자기의 꿈을 통해 리디아를 보느라 다른 아이들을 잊어버린다,

제임스는 과거 자기 못난 모습을 네스에게 투영해서 그 아이를 미워하고 리디아에게 집중하며

네스는 무심한 부모를 모른 척하지만 아프다, 동생의 부담을 알지만  질투를 느낄만큼 자신의 외로움이 힘들다.

안나는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관심받고 싶어하지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자기연민과 자기만이 자기를 위로할 수 밖에 없는 각각 닫힌 상태로 가족들은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어쩌면 리디아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리디아에게 몰린 모든 무게의 추를 모른척 하는게 다른 모두가 살아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리디아만 괜찮다면....

엄마와 아빠는 못다한 꿈을 이룰 것이고  네스는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안나는 평화로운 가정을 지속할 수 있다, 리디아만 견뎌낸다면

그러나 리디아가 죽었다,

그리고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금이 가고 있던 가정은 그렇게 단 하나의 기둥이 사라지면서 그래도 폴싹 주저앉을만큼 위태했었다,

 

건강하지 않은 부모는 건강하지 않은 자녀를 다시 생산한다,

그래서 모든 비극의 원인을 건겅하지 않은 제임스와 메릴린에게 돌려야 할까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들 역시 건강하지 않은 부모의 자녀들이었다,

괜찮은 하버드생을 잡아 결혼하라고 하는 엄마를 거부하며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메릴린은 결국 엄마와 다르지 않은 어쩌면 더 고약해진 버전의 엄마가 되었다.자식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중국인 부모를 가진 제임스에게 부모란  고마움과 죄책감 그리고 부담의 존재였다, 고맙고 미안해서 미워할 수 없고 그래서 내가 나쁜 놈이 되어가고 그 죄책감에 반발하지만 그냥 입을 다무는 것 그리고 잊어버리는 것으로 도망친다,

그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이해되지 않을게 없고 공감해주지 않을게 없지만

내가 상처를 입었다고 다른 이애게 상처를 주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하나하나의 상처를 모두 들여다 볼 수도 없다,

제임스와 메릴린이 자기가 보는대로 자기 부모를 보았듯이 네스와 리디아와 안나도 보이는대로 부모를 볼 뿐이다,

 

 

'축하해'와 파란색으로 쓴 L.Y.D는 엄마가 운전면허증처럶 보이게 만들려고 햏던 모든 노력은 , 매끈한 하얀색 밑에 감춰져버린거야, 비록 볼 수는 없지만 그건 저 밑에 있는 거야. 얼룩처럼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끔찍하게 그러니까 맛도 날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와 아빠는 게속해서 아이들 사진을 찍고 또 찍었지만 한나는 웃지 않았다. 리디아와 다르게,  아직 한나는 웃는 체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 대신 한나는 눈을 반만 떴다. 텔리비젼에서 무시무시한 장면이 나올 때 그러는 것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을 반만  볼 수 있게

 

매끈하게 손 본 케이크처럼  모든 것이 저 아래에 있는데 모른다, 모른척 한다,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크림으로 매끈하게 덮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없는 일이 될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아무도 믿지 않으면서...

 

메릴린이 어린 아이들을 두고 자신을 찾아 집을 떠났던 일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임신과 결혼으로 꿈을 포기한 여자가 다시 꿈꾸는 일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겨진 아이들은 끊임없이 지가때문이라고 자책한다, 내가 나쁜 아이여서 엄마가 떠났고 사람들이 불쌍하게 바라보고 아빠가 힘들어한다고 믿는다,

돌아온 엄마를 보며  무조건 엄마가 원하는 건 다 하겠다는 결심은 그래서 애처롭다,

어떤 질문에도 어떤 요구에도 YES이외의 답은 없었다.

리디아의 복종은 그무게를 더해가면서  동시에 네스의 외로움은 깊어가고 안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그래도 가정은 유지된다, 리디아가 있으니까....

그리고 리디아에게는 자기를 알아주는 유일한 가족 오빠가 있으니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가족이 어느날 무너져버린다,

리디아가 죽었으므로..

그럼에도 가족은 다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덮어야 할 것은 다시 덮어야 하고 마주해야할 것은 아파도 마주해야할 것이다,

 

파멸이  그 속에 있듯이 구원도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같은 곳에서 파멸을 찾는 자는 파멸할 것이고 구원을 찾는 자는 구원받을 것이다,

중국계 리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해야한다,

그건 리디아가 남긴 숙제도 된다,

그리고 가족은 어쨌든 변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내 아이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고 할지를 알. 았. 다.

부모의 치부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상처많은 사람이란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만 적나라하게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

결국 나도 제임스나 메릴린과 다르지 않은 부모라는 것

그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가 드러내고 싶어하는 어떤 상처도 나는 아직 모른 척 하고 싶다,

똑바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볼 그 어떤 것이 아직은 두렵다.

피한다고 없어지진 않겠지만 내가 어떤 부모인가 이전에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꼼꼼하게 돌아본 후 마주하고 싶다고 변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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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이란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있기는 하되 눈에 띄지 않은 사람

그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은 사람

없으면 없는댇로 아무런 문제없이 세상이 계속될 수 있는 사람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처해도 아무런 불편이 없는 사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단 하나의 존재이기를 바란다.

나의 존재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몸짓이 그렇게 세상에 단 하나가 되기를 그렇게 세상에 기억되길 바라지만 세상에는 무수하게 많은, 셀 수 없이 많은 '내'가 있다.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이고 나는 언제나 쉽게 잊혀지고 대체된다.

 

무오는 무오여서 이부의 눈에 띈게 아니다,

아니 무오여서 이부의 눈에 띄였겠지만 그 이유가 무오라는 단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세상에 많은 무오들 중 하나일 수 있어서였다,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사람 그렇게 없는 사람이라서 이부의 선택을 받는다,

어쩌면 이부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흔하디 흔한 없는 사람이어서 선택된 존재일 수 있다.

이야기는 무오가 없는 사람이길 원하던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게 되고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세상과 관계를 가지고 싶어한다는데서 시작한다.

도트를 보면서 마음이 움직이고 반점의 눈에 띄어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무오는 없는 존재에서 있는 존재가 되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이부에게도  그냥 무오는 무오고 농성집단속에서도 무오는 그냥 무오다

특별하지 않아 눈에 띄지 않는다는게 그렇다,

 

각자도생이라는  우울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불안을 감추기 위해 결국 혼자를 택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고 혼자 티비를 보면서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

한켠의 불안을 나와 닮은 혼자가 편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위안한다

혼자에서 이제 관계망으로 들어가보려고 하지만 양쪽에서 손을 내밀때만 손을 맞잡을 수 있다

혼자 내민 손은 그저 허공에서 퍼드득거리다가 떨어진다,

 

투박하게 직진으로 다가오는 소설을 읽으면서 그렇게 각자도생할 수 없는 없는 사람들

나 역시 다르지 않은 그런 사람들을 생각한다,

 

다 읽고 나니 "없는 사람"이라는 제목이 슬펐다,

유령도 아닌데 없는 사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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