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50명의 사람들이 풀어내는 제각각의  50가지 이야기

할머니가 오랜 기간동안 모아서 다락방에 꼭꼭 챙겨놓은 천조각들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고  뜬금없기도 하고 사소하고 지리하고 때로는 어정쩡하게 뚝 끊어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크다란 조각보를 만든다,

결국은 사람,,, 그럼에도 사람,

통계뒤에 사람이 있고

지역뒤에도 사람이 있고

학생  주민 시민 국민이라는 이름도 결국 제각각 사람이 있다,

사람이 우선이라면서 늘 사람은 젤 뒤전이다,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 국민이 제각각 다양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나 하는 말일까

국민이 판단할 거다, 시민의 힘이다 학생들은 어떠어떠해야한다,...

말하기 쉽지

그들이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지는  존재가 아니라 제각각 하나의 존재라는 것

그건 늘 잊고 산다,

세상의 사람은 세상의 사람수만큰 각기 다른 성격이 있고 배경이 있고 감정이 있다,

그런데 자꾸 그걸 잊고 산다, 나부터..

이러이러하니 비정상이고 저러저러해서 이상한 사람이고  이렇게 행동하니 튀게 되고 너무 나데고 부담스럽게 굴고 까칠하게 굴고 무심하게 굴고  나랑 안맞고 나랑  취향이 틀리고 나랑 사고가 달라서.. 하면서 판단한다, 그 판단의 기준도 결국 사람의 수만큼....

 

그렇게  50명이 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제각각  자기 이름을 제목으로 걸고 펼쳐진다,

시시한 이야기도 있고 더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다,

나랑 닮은 사람도 있고 내가 무지하게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도 있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은.. 없다, 제각각 다르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알고 있거나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소소하게 지나치던 사람이 저기서는 주인공이고 저기의 주인공은  다음 이야기에서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게 하나하나 가볍게 읽다가 "권나은"의 이야기에 목이 꽉 잠겨버렸다,

많이 친하지 않았고 많이 다르지만 좋아했던 친구

그 친구 사고로 죽었다,

죽은 이유가 드러내기에 꺼림칙하고  어쩌면 사람들은 배려하는 차원에서 혹은 입에 올리기 뭣하다는 이유로  그 죽음을 덮으려고만 한다, 그렇게 덮여진 죽음앞에 나은이는 마땅한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죽은 친구 승희가 가졌던 물건들을 모으고  나중에 그 물건들을 입고 쓰고 승희처럼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 ... 그렇게 조금은 달라지고 이상해진 나은의 행위들이 결국은 애도였다

 

정말이야 대학가서 잉ㅂ을거야 말하고 나니 그게 원래부터의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승희 옷을 입고 대학에 갈거야, 승희 옷을 입고 다닐 거야, 내가 입으니까 하나도 안 이쁘지만 어쩌면 졸업할 때까지 더 친해지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졸업하고 나선 한 번도 못 만날 수도 있지만 나만 승희를 좋아했던.... 나은은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고 방에 혼자 있고 싶었다, 가족들은 나은이가 커서 중학생 같더니 사춘기가 늦게 왔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은으로서는 그 흔한 설명이 차라리 나았다,

아마도 잊어버릴 것이다, 승희를. 나은은 그 사실이 몸서리치게 싫다, 왜냐하면 벌써 중학교 때는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고작 고등학생인데도 몇년 전의 일들이 희미하다, 승희가 체육대회 때 계주를 뛰었던 것 같다,  계주를 이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응원을 했던 것만 희미하게 떠오른다, 반바지가 잘 어울렸던 승희의 일자 다리는 엄청 잘 뛰었었다, 종아리와 발목이 거의 비슷한 일자였다, 스포츠 만화주인공 다리 같았다, 승희가 철봉에 앉아 있던 것도 기억난다, 권나은 학원가냐? 너같은 애들을 뭐라고 부르게? 설치류. 설치류라고 부른대

학생이 죽으면 장레버스가 학교 운동장을 한바퀴 돌고 가던데 그런거라도 했으면 나았을거다, 텔레비젼에서만 하는 건지 승희는 오지 않았다, 승희어머니가 너무 여력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하신게 틀림없었다, 장례식장에도 선생님들만 갔는데 마치 승희가 잘못해서 죽은 것처럼 승희의 장례식장에 가면 뭐라도 옮을것처럼  못 가게 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것도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승희가 뭐 어때서? 승희를 나쁜 소문쯤으로 취급하는 건 말도 안돼. 승희는 정말 좋은 애였어

 

                                                                 P156

 

 

혼자 분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흄치다가 다음 장의 소개팅 이야기에 웃음이 난다,

울다가 웃으면 안되지만,,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은가?

죽도록 서럽다가도 한마디에 벙긋 마음이 풀어지는 일

소개팅은 잘 이어지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참 서로에게 예의바르다는게 마음에 드는 에피였다,

그렇게 읽다가

 

기부금을 투명하게 쓰고 세세하게 기록하고 그걸 공개하고 나면 또 1년이 갈 것이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진 채 다친 동물처럼 실려온 여자들에게 아이들에게  그 일이 이제 지나갔다고 말해주면서 1년이 갈 것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또 바보같은 소리를 할 테고 거기에 끈질기게 대답하는 것도 1년중 얼마 정도는 차지 할테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누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렷다, 본관의 입원실의 낮은 층 창가에 있던 사람이 잠깐 망설이더니 설아에게 손을 흔들었다, 설아도 마주 흔들어주었다, 창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손바닥만큼은 다정했다,

 

 

사람은 사랑때문에 웃고 사람때문에 울고 사람때문에 상처받고 위로받는다,

사회적인 존재인 사람은 그렇게 관계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두에게 만족할 수도 없다...

한사람 한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는 방법이 좋았다,

모두를 모아놓고 그리고 안전하게 돌려보내 준 결말이 좋았다,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안이한 해피앤딩이라니... 하면 분개했을지 모르겠지만

이젠 어떤 사고도 없이 어떤 슬픔도 없이 무탈하게 모두가 안전하게 마무리 되는 게 좋다,

누구도 멋대로 나서지 않고 누구도 타인에게 지시하지 않으면서

각자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을 동원해서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마무리가 좋았다,

 

지금 현재 여기서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사람때문에 머리아프지만

그래도 해결책 역시 사람임을 알고 있다,

사람이어서 저러면 안되는데.. 사람이라서 짐승만 못하기도 하고 사람이라 곧 들킬 꼼수를 쓰고 사람이라서 뜬금없고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라서 다행이고 사람이라서 행복한 일이 조금은 더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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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약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언제나 이 물음앞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휙휙 지나간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여러가지 계산들

어떤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아이가 생기기 전? 대학시절? 결혼전?  아니면 고등학교 때로 가서 다시 빡세게 공부를 해봐?

어디로 가야 내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풍부할지 머리를 굴리지만

어떤지점도 만족스럽지 않고 어떤 지점도 포기할 수 없다,

아예 다시 태어나는건?

그렇게 질문앞에서 망설이는 동안 그 질문은 스르르 사라진다,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도데체 어느 지점으로 돌아갈까?

가능하지도 않은 물음앞에서 진지하게 오래 고민한다

다만 변한건 어느 지점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지금의 나와 다를까?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도  뿌듯하지도 않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럽지 않다

아니 후회홰도 소용없다는 마음이 강해서일거다,

되돌린들 나는 또 같은 지점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고 같은 시간에 같은 실수를 하고 엉뚱한 일을 저지르거나 우물쭈물하다고 놓칠것이다,

어쩌면 그 지점이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선택에 다름이 있을 지 모르겠으나 나는 역시 지금의 나의 삶과 많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될것이다,'그러니 굳이 되돌아 갈 이유가 없다,

 

단편속의 인물들은 지금의 나에게 또다른 삶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고민하지만

결국의 지금의 삶을 받아들인다,

남들 눈에는 초라하고 평범하고 별것 아니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내는 일도 만만찮은 일이라는 걸  안다, 다른 내 모습이 있다거나 다른 선책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지금까지 나도 그런 기대로 살아왔을 것이고 지금 내 모습도 그런 선택과 기대의 결과일 뿐이다,

 

비슷비슷하고 한 번쯤 스치며 혹은 진지하게 생각해 좠을 지금 여기와는 다른 어떤 삶에 대한 고민이 각각의 단편에 담겨있다,

스윽 보면 닮아보여서 그게 그거 같은 이야기지만

오래 들여다 보면 제각각의 이야기가 숨어있고  결이 다르다,

 

 

#  2

 

마지막 단편 "어딘가 있을 너에게"

별거 아닌 단편에 눈물이 났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남은 시간 동안 그 때일을 복기하는 사람

그때 내가 아이를 잡지 않았더라면

주먹밥을 만들어 주지 않았더라면

그 앞 차를 탈 수만 있었더라면

 

그때 내가 세탁기를 배달받지 않았더라면

운반해주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창문을 열어두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사랑하는 대상은 없다,

그 순간의 내 선택이 내 행동이  어쩌면 나의 배려가 그런 사건을 만들어 낸건 아니라고 이성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해주지만 나도 알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내가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배려했더라면... 자꾸 모든 원인이 나에게 돌아온다,

 

분명 이 여자는 키치를 찾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겠지, 그리고 키치를 찾지 못하거나 더 슬픈 현실이 펼쳐지면 자신의 일처럼 울어주겠지, 어느 쪽이든 자신의 슬픔과 비교하는 일 없이 그렇게 해주겠지 그리고 나도 이 여가가 슬픔을 떠올릴 때마다 줄곧 슬퍼하겟지 아마도.

 

슬픔이나 후회는 단 1 밀리그램도 줄어들지 않지만 크기의 차이가 아닌 무게의 차이도 아닌 그저 그것을 짊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공명한다,. 그것이 이렇게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니와코는 이제야  그것을 깨닫는다,

 

아들을 잃은 요다와 고양이를 잃은 니와코

누구의 슬픔의 무게가 더 큰지는  중요하지 않고 서로 공감하고 공명하게 함께 울어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뫁으로 올라올 일만 남은 낡고 망가지 세월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함께 공명하고 함께 울어주어야 할 시간이다,

그 때 내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런 표정 그런 말투는 하지 말아야 했느데 하고

끝임없이 내 속에서 자책을 찾아내는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해주는 것보다

함께 울어주는 일 울음을 안아주는 일... 그게 더 위로가 된다고 말해준다,

 

 

무심하게 되돌릴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나

이미 생은 지나버린걸... 하는 마음으로 단편을을 읽다가

마지막에,,, 그럼에도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 법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다시 쉽게 다 안다는 듯 말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누군가의 간절한 시간은 언제나 존재한다,

 

#  3

 

미스터리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한 단편들이다,

삶에서 내가 모르는 귀퉁이가 있다면 그것 역시 미스테리일 수 밖에...

내가 모르는 부분들 알지 못했던 부분들 그리고 덮어버릴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한

삶은 어떤 면에서 미스테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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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늑대 작은 늑대 - 프랑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83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나딘 브룅코슴 글, 이주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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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창피해,...

 

큰 아이가 7살쯤에 살짝 한 말이다,

깊이 공감되었다,

사실 엄마지만 나도 내 자식이 창피할 때가 많았다,

지금은 많이 사람되었지만.... 그 당시는 본인에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흑역사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라며 스스로도 의아해한다,

 

작은 아이는 3살부터 5살까지 까다롭고 예민하기가 끝이 없었다,

멀쩡하게 집에서는 잘 있다가 외출만 하면 낯선 사람만 보면 누군가 타인만 보면 아주 예민하게 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탄 이웃이 있으면 내릴때까지 째려보고 있거나   엄마 따라 낯선 곳에 가면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고 두시간도 세시간도 그러고 있었다,

고집에 땡깡에... 그런 동생때문에 늘 뒷전이던 큰 아이가 한 말이다,

쟤가 너무너무 창피해...

그런 힘든 시간이 지나고  지금도 강아지와 고양이처럼 둘은 참 다르고 참 어긋난다,

한 놈이 기분좋게 다가가면 한놈이 팩하고 돌아서고 한놈이  뭐라고 하려치면 한놈이 문닫고 들어가고... 마주치면 싸우고  오죽하면 서로 자기 폰에 전화번호조차 저장하지 않는다,

둘이 사이가 좋아지는 순간은 엄마에게 혼날 때나 뭔가 아이돌 이야기하면서 나는 모르는 말들을 주고받을 때.... 아주 잠깐....

오죽하면 둘 중 하나가 죽어야 싸움이 끝나겠구나 ... 하고 혼자 중얼거리며 나중에 한놈은 동쪽 끝에 한놈은 서쪽끝에살아라... 하고 말았다,

그래도 지들은 .. 쥐어뜯고 싸우는게 서로 무시하고 말도 안하는거보다 낫지 않냐고... 하지만

뭐 그것도 그렇다고 위안한다,

큰 녀석은 저대로 작은 녀석한테 트라우마가 많다, 동생때문에 양보한 일이 많고 손해본 일이 많고 늘 언니니까 큰 아이니까 참아라 했던 말... 양보를 당당하게 받던 작은 녀석의 모습 등등이 아직도 상처가 되고 .. 작은 놈은 제 언니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건 지나간 일인데 쪼잔하다고 자기는 뭐 잘하기만 했냐고 하며 상처받는다

이놈 이야기를 들으면 이놈이 짠하고 저놈 이야기를 들으면 저놈이 짠하고...

이래저래 엄마는 솔로몬왕이 될 수는 없다,

공정하다는 건 누구에게나 상처고 불만일 수 밖에 없다,

 

 

큰 늑대는 호자 나무아래 살다가 저기 멀리 한점처럼 다가오는 작은 늑대를 만났다,

자기보다 크면 어쩌나  어떤 녀석일까 큰 늑대는 혼자 몰래 걱정이 많고 겁이 났다,

그러나 작은 늑대를 보며 마음이 놓인다, 나보다 작구나...

모른 척 무시하지만 자꾸 신경쓰인다,

살짝 곁눈으로 보고 조금 무심하게 자기것을 나눠주고

자기를 따라해도 모른 척하고 내버려두고

그리고 혼자 나무아래 두고 산책을 나간다,

점점 숲으로 가까이 갈 수록 작은 늑대는 멀어지고 점으로 보이다가 끝내 보이지 않게 되지만

큰 늑대는 알고 있다, 작은 늑대가 거기 있다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함을 알고 있다는게 크게 뿌듯하다는 것도 알았다,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나무아레로 돌아오니 작은 늑대는 없었다,

당연히 있을거라고 믿었던 존재가 사라졌다,

큰 늑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슬플 뿐이었다,

작은 늑대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큰 늑대는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짐도 했다,

작은 늑대가 자기보다 커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작은 늑대가 여전히 작은 모습으로 왔다,

 

"네가 없으니까 쓸쓸해..."

둘의 마음이 같았다,

그 말을 듣고 둘은  기분이 좋았고 아마도 안도했을 것이다,

 

친구 사귀기 타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이 책이 내게는 작은 동생을 만난 큰 아이 이야기였고

큰 아이를 만난 작은 아이의 이야기처럼 읽혔다,

타인은 불편하고 낯설고 거북하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면 좋기도 하다,

뭐라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피시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게 든든하기도 하고 배꼽아래가 간질간질한 어색함이기도 하면서 그 간지르움이 싫지 않다,

큰 녀석도 작은 녀석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이건 내 동생이야" 하면서 누구도 손도 못 데게 하던 시절도 있었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제일먼저 안아주고 자전거 뒤에도 태워주던 때도 있었는데...

작은 놈이 자기 주장을 하면서 둘의 평화는 깨어졌다,

그래도 없으면 쓸쓸하지 않을까

그게 설령 엄마의 착각이고 바람이라도 .... 그렇게 믿는다,

 

아주아주 얄미워도 절대 때릴 수도 없고 말로 논리로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너무너무 무식해서 말을 함께 할 수도 없고 (세상에서 무식이 제일 쎄다는 걸 쟤를 보면 알수 있어... 라고도 했었다)  자긱보다 30센티가 작았던 동생이 어느 순간 자기랑 10센티도 차이나지 않게 되고 어는 순간 나보다 커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 지금은 무식이 철철 넘치지만 어느 순간 쑥 자라서 나보다 좋은 학교를 가고 더 잘되면 어쩌나 질투도 나면서.... 행여 저렇게 굴다가 내가 저 놈까지 책임져야하나 싶은 마음도 있고... 뭐 그렇게 매일매일이 복잡하다,

 

작은 놈대로 언니는 어렵다가 만만하다가 측은했다가  고소하다가  업으면 자꾸자꾸 빈 방을 열어보게 되고 있으면 깐죽거리고 뭐 그런 존재일 것이다,

 

늙은 엄마는 감수성이 점점 풍부해져서 소소한 그림책에 울컥하고 있는데

애들은 그냥 읽고 만다,

그림책에 감동하고 재미있어할 순진한 나이는 지나버렸고  그래서 뭐... 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춘기라 그림책에 자기들을 반영할 줄 모른다,

그래도 둘이 서로 죽일 듯 싸우는 시기는 지났고

서로가 측은해지고 그려러니 하는게 꼭  중년에 접어든 부부같단 생각도 든다,

뭐 좋아사 사나... 이제 익숙하고 서로 측은하니 봐주는거지 뭐.. 그런

 

이젠 나도 지쳐서 둘이 싸워도 집 천정으로 고성이 휙휙 날아다녀도 나는 모른다,

그러다 조용히지면 그냥 물어볼 쭌이다,

누가 이겼니?

 

아마 큰 늑대 작은 늑대도 서로 좋기만 하진 않겠지

그림책은 이렇게 끝나지만... 그 뒤의 두 늑대의 삶은 계속될테니까,,,,

동화는 동화일 뿐이고 현실은 누구나 팍팍하고 낭만적이지 않다.

고로 나도 두 아이의 전쟁이 이젠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다들 그러고 살테니까,,,

 

그림책이 동생을 가진 언니를 위로하지도 언니가 있는 동생에게 감동을 주지도 않지만

두 아이를 가진 엄마에게는 참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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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의 나이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깊은 주름을 가진 외모

그와 다르게 아직도 탄탄하게 살아있는 근육과  빈첩한 반사신경

그녀의 직업은 청부살인업자이고  그들끼리는 방역업자로 통한다,

쥐 바퀴벌레 등등 사람에게 해로운 해충이나 미물을 없애나가는 일을 한다는 방역업자가 그들의 일이다, 결국 사람에게 해가되는 건 그런 미물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가장 해롭고 가장 두려운 대상은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 다른것이 아닌 사람을 없애는 일을 하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나이든  조각이다

'조각'이라는 명칭도  주인공의 본명은 아니다,

어느 하나 빈틈 없이 일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치운다고 붙은 별명

그 세계가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이니만큼 주인공도 그렇게 하나의 가면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이제 65세 세속의 어떤 일을 하건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그 조각이 어는 순간 자신의 한쪽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무엇엔가 욕심을 내고  지켜야할 무언가를 가지는 순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연민이 남고 미련이 남아있다면 주저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의 주저앞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을 쳐내고 건조하고 매마른  강팍한 줄기하나만 남겨놓은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누군가를 욕심낸적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 마음이 되돌려주었던 피비린내나는  앙갚음에 살기위해 그리고 누군지모를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조각이 어느 순간 방역과정에서 몸을 다치게 하고 강박사를 만나고 그의 무심하고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이 무너진다, 그건 어떤 연애감정이라기 보다  오랫동안 꽁꽁 묶어놓았던 저 심연아래 감정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실금을 만들어가다가 어느  부지불식간에 그 틈으로 스며나온 물기처럼 올라온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본 진심의 감정이나 무심한 다정함이 조금씩 그 균열을 넓히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주는 대상이 생기는 것

그렇게 무언가 지켜보고 싶고 잘 살았으면 바라게 되는 대상이 생기는 것은 위험하다

조각에게도 위험하지만 그 대상에게도 위험하다,

 

그것이 나이듦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된 외로움의 끝에 드러나는 지쳐버린 순간이 왔기 때문일까

알지 못한다,

조각이 65세가아니라고 해도 오랫동안 억누르고 살아왔던 누군가가 방심하던 순간 불쑥 내 바운더리를 침범해온 다정함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긴장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사실 이 소설이 나왔던 시점에 읽었었다,

그때는 너무 길게 늘어지는 문장과 도데테 65세의 킬러라니.,

그리고 소설 말미에 그렇게 피비린내 풍기는 난투극을 겪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몇년되지 않은 과거지만 그때의 나는 젊었거나 아직도 억누를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읽게 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지루하고 길을 잃기 쉬운 그 긴 문장들도 어쩌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이 이어지는 노년의 평범하고 막막한 시간의 흐름같았다, 아직 조각의 나이는 한참 남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아무런 연관없이 이어지는 경험을 나도 한다,

그 이어지고 이어지는 상념을 문장으로 풀어낸다면 이렇게 마칠듯 마치지 않은 만연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강하고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듯 단단하게 여며진 조각에게서 얼핏 보여지는 소심하고 주저하는 모습들도 좋았다,

혹시 나의 어떤 행동이 말들이 어떻게 들리려나 순간 생각하고 지나가는 순간들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마음이 먼저가는 순간들이 좋았다,

대상을 처리해야하는 순간 페지 줍는 노인을 도와줄 수 밖에 없다거나

나갈 때마다 행여 혼자 남게될  반려견 무명을 위해 창을 잠그지 않은 행동들

군데군데 보이는 소소한 묘사가 좋았다,

 

한때 농염한 향기를 풍기고 한 입 깨물면 수밀한 과즙을 흘리며 싱싱하게 살아있던 과육이

잊혀지고 방치되어 구석에서 점점 물러지고 흘런내리고 색이 변해서 순간 시큼하고 들큰한 냄새를 풍기는 파과가 되어가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이듦의 묘사이기도 하다,

한때 아름답지 않았던 노년이 어디 있으랴

어쩌면 그렇게 빛나는 순간을 빛나는 순간이라고 알지 못하고 그 시간 한가운데서도 그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서서히 익어가고 익어서 더이상 익을 수 없어 썩어가는 순간  아 그때 내가 아름다웠고나 하고  돌이키게 된다, 그 순간의 가운데서는 언제나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녀 조각의 가장 어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삶이란게 발단 전개 절정 결말잉라는 드라마틱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미미하고 지루하게 꾸역꾸역 살아내거나 치열하게 돌아볼 틈도 없이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순간 반짝하는 반딧불처럼 살기도 하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

이제 절정의 순간이야

이제 결말을 해야할 시간이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저 몰아치다가 순간 무심해지다가 그저 살아내는 것같다가 순간 반짝했다가,... 또 다시 반짝할 수도 있는 것... 그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유선을 그렸다가 다시 되올아갔다가 하는 제각각의 곡선을 가지는 것이 삶이아닐까

 

이제 조각의 나이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나의 삶은 이미 뭉큰해져버린 파과로 가는 길일까

아직도 팔팔한 파과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다시 읽은 책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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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다보면 늘 비슷한 패턴이 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내가 쓰는 글은 어쩔 수 없이 내 스타일이구나 하는 생각

그것이 좋다 나쁘다의 판단은 할 수 없지만 내가 쓰는 글은 늘 비슷하구나 생각한다,

누군가의 글을 읽으며 어쩜 이렇게 쓸 수가 있을까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 라는 욕망을 느끼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아도 결국 내 스타일로 돌아온다,

 

내 스타일이란 어떤거지?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뭐랄까

투명하지 않고 조금 애매하며 웃기도 울기도 애매한 표정같은거??

 

저자는 사회심리학자로 심리치유적 글쓰기 연구에서 시작에서 사람들이 쓰는 글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음을 주장한다,

오랫동안 다양하게 프로그로밍된 컴퓨터가 개인이 쓴 글을 분석하면서 엌던 단어를 쓰고 어떤 보조어를 썼는가를 계산하고 분석하면서 사람을 판단한다,

'나'와 '우리'를 쓰는 것에 대한 비교

부정적 감정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

인칭대명사를 쓰는 빈도

등등등

여러가지 분석을 통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한다,

흥미롭다,

이렇게 사람을 알아볼 수도 있구나

그런데 읽어갈수록...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사고가 강한 나라서인지

그래서 어쩌라구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든다,

어떤 심리학 실험이든 결론은 항상 ... 세상은 세상에 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긴다는 것 그것이다,

그 다양한 경우의 수를 비슷한 것들로 묶을 수 있지만 결국 비슷하다는 것이지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컴퓨터의 정확성을 수치로 여러번 말하지만 사람이 판단하는 50%의 정확성과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 (내 생각엔)

통계적으로 50%와 75%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화고 맞지 않은 50%와 25%는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렇게 많은 변수가 있고 예외상황이 있다면 결국 그저 이렇게 저렇게  대략적 구분이상은 아니지 않나 싶다,

저자도 늘 강조하듯이 사람이 쓰는 단어를 통해 그 사람을 알 수 있지만  사용하는 단어를 바꿈으로써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러이러한 단어를 쓰고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랆 말을 하는 사람은 이런 특성이 있다고는 알 수 있지만  이러이러한 성격이나 특징을 가지려면 이런 단어를 쓰야한다고 말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결과론이 아닐까

그래도 흥미로운 부분이 몇 있다,

 

왜 지위가 높은 사람은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할까?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요 는 자신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이다,

내가 쓰는 단어를 통해 나의 <성취욕구>  < 권력욕구>  < 소속욕구>를 알 수 있다

'우리'라는 단어는 알듯 모를 듯 최고로 미묘하고 불가사의한 단어이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 스타일로 관계의 지속 여부를 알 수 있다,

권력이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이 명사를 쓸까 동사를 더 많이 쓸까?   명사다.

대입 논술에 쓴 단어로 미래의 대학 성적을 예측할 수 있다

위증과 진실로 밝혀진 증언의 차이는 대명사에 있다,

대통력의 연설을 보면 그의 리더쉽을 알 수 있다,

단어는 나를 보여주는 <광고판>이다.

 

 

흥미롭지만 딱 거기까지...

어쩌면 굳이 컴퓨터를 돌려 분석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의 말투 쓰는 말 단어 그리고 글에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딱 구분지어 이러이러한 유형의 사람이라고 나누진 않더라도

내가 지금 대화를 나누는 사람

내가 읽는 이 글을 쓴 사람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의 말투와 말의 내용을 통해서 ...

우리는 사람을 알 수 있다,

 

어제 뉴스룸에 나왔던 한잔 걸친것 처럼 무례한홍준표 답답하게 단답형 대답만 반복하던 안철수 그리고 부들부들하면서도 끝내 침착함을 유지한 손석희의 말을 보면서 그 사람을 다시 알게 된다

사람은 의외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모습을 많이 흘리고 다니는  존재다.

나도 어딘가 나를 많이 흘리고 다녔을 것이고 그게 나의 전부일 수도 일부일 수도 혹은 전혀 나와 상관없을 수도 잇지만..... 어쨌든 타인의 눈에 보이는 나다,

 

이 책은.... 처음은 창대했으나... 그 끝은 조금 미약하다, 유감스럽지만,

 

 

p.s.  나는 분석적이고 이성적으로 책을 평가하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걸 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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