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의 나이

나이보다 늙어보이는 깊은 주름을 가진 외모

그와 다르게 아직도 탄탄하게 살아있는 근육과  빈첩한 반사신경

그녀의 직업은 청부살인업자이고  그들끼리는 방역업자로 통한다,

쥐 바퀴벌레 등등 사람에게 해로운 해충이나 미물을 없애나가는 일을 한다는 방역업자가 그들의 일이다, 결국 사람에게 해가되는 건 그런 미물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가장 해롭고 가장 두려운 대상은 사람이다,

사람을 위해 다른것이 아닌 사람을 없애는 일을 하는 것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그런 일을 하는 나이든  조각이다

'조각'이라는 명칭도  주인공의 본명은 아니다,

어느 하나 빈틈 없이 일을 완벽하게 깔끔하게 해치운다고 붙은 별명

그 세계가 본명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이니만큼 주인공도 그렇게 하나의 가면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이제 65세 세속의 어떤 일을 하건 은퇴할 나이가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그 조각이 어는 순간 자신의 한쪽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삶이었다,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 무엇엔가 욕심을 내고  지켜야할 무언가를 가지는 순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연민이 남고 미련이 남아있다면 주저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의 주저앞에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것을 쳐내고 건조하고 매마른  강팍한 줄기하나만 남겨놓은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한때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고 누군가를 욕심낸적이 없던 것도 아니지만 그 마음이 되돌려주었던 피비린내나는  앙갚음에 살기위해 그리고 누군지모를 누군가를 위해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조각이 어느 순간 방역과정에서 몸을 다치게 하고 강박사를 만나고 그의 무심하고 다정함에 조금씩 마음이 무너진다, 그건 어떤 연애감정이라기 보다  오랫동안 꽁꽁 묶어놓았던 저 심연아래 감정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실금을 만들어가다가 어느  부지불식간에 그 틈으로 스며나온 물기처럼 올라온 감정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받아본 진심의 감정이나 무심한 다정함이 조금씩 그 균열을 넓히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주는 대상이 생기는 것

그렇게 무언가 지켜보고 싶고 잘 살았으면 바라게 되는 대상이 생기는 것은 위험하다

조각에게도 위험하지만 그 대상에게도 위험하다,

 

그것이 나이듦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래된 외로움의 끝에 드러나는 지쳐버린 순간이 왔기 때문일까

알지 못한다,

조각이 65세가아니라고 해도 오랫동안 억누르고 살아왔던 누군가가 방심하던 순간 불쑥 내 바운더리를 침범해온 다정함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이제 그만 긴장하고 살아도 되지 않나 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사실 이 소설이 나왔던 시점에 읽었었다,

그때는 너무 길게 늘어지는 문장과 도데테 65세의 킬러라니.,

그리고 소설 말미에 그렇게 피비린내 풍기는 난투극을 겪고도 멀쩡하게 살아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쩌면 몇년되지 않은 과거지만 그때의 나는 젊었거나 아직도 억누를 수 있을 힘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시 읽게 되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지루하고 길을 잃기 쉬운 그 긴 문장들도 어쩌면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이 이어지는 노년의 평범하고 막막한 시간의 흐름같았다, 아직 조각의 나이는 한참 남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아무런 연관없이 이어지는 경험을 나도 한다,

그 이어지고 이어지는 상념을 문장으로 풀어낸다면 이렇게 마칠듯 마치지 않은 만연체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강하고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듯 단단하게 여며진 조각에게서 얼핏 보여지는 소심하고 주저하는 모습들도 좋았다,

혹시 나의 어떤 행동이 말들이 어떻게 들리려나 순간 생각하고 지나가는 순간들

나도 모르게 손이 먼저 마음이 먼저가는 순간들이 좋았다,

대상을 처리해야하는 순간 페지 줍는 노인을 도와줄 수 밖에 없다거나

나갈 때마다 행여 혼자 남게될  반려견 무명을 위해 창을 잠그지 않은 행동들

군데군데 보이는 소소한 묘사가 좋았다,

 

한때 농염한 향기를 풍기고 한 입 깨물면 수밀한 과즙을 흘리며 싱싱하게 살아있던 과육이

잊혀지고 방치되어 구석에서 점점 물러지고 흘런내리고 색이 변해서 순간 시큼하고 들큰한 냄새를 풍기는 파과가 되어가는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나이듦의 묘사이기도 하다,

한때 아름답지 않았던 노년이 어디 있으랴

어쩌면 그렇게 빛나는 순간을 빛나는 순간이라고 알지 못하고 그 시간 한가운데서도 그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서서히 익어가고 익어서 더이상 익을 수 없어 썩어가는 순간  아 그때 내가 아름다웠고나 하고  돌이키게 된다, 그 순간의 가운데서는 언제나 알지 못하는 법이다

그녀 조각의 가장 어름다웠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일까?

어쩌면 삶이란게 발단 전개 절정 결말잉라는 드라마틱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저 미미하고 지루하게 꾸역꾸역 살아내거나 치열하게 돌아볼 틈도 없이 몰아치다가  어느 순간 순간 반짝하는 반딧불처럼 살기도 하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

이제 절정의 순간이야

이제 결말을 해야할 시간이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그저 몰아치다가 순간 무심해지다가 그저 살아내는 것같다가 순간 반짝했다가,... 또 다시 반짝할 수도 있는 것... 그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유선을 그렸다가 다시 되올아갔다가 하는 제각각의 곡선을 가지는 것이 삶이아닐까

 

이제 조각의 나이로 나아가는 일만 남은 나의 삶은 이미 뭉큰해져버린 파과로 가는 길일까

아직도 팔팔한 파과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다시 읽은 책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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