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썼던가?

이제 이게 한 이야기인지 안한 이야기인지, 했다면 누구에게 했는지...

행여 같은 이에게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나만 박장대소하는건 아닌지 두려울 때가 있다.

들었다면 처음 듣는 것 처럼.... 처음이라면 다행이고....

 

지금 이 도시에 이사를 와서 처음 만든 것이 도서관 대출증이었다.

그리고 처음 사람들과의 관계속으로 들어간 것이 학교 도서관 책읽는 모임이었다.

내가 대단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거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아니 그때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책읽는 것밖에 없던 거였다.

기술도 없고 경력도 없으며 사회성이 아니고 사교성마저도 떨어지는 인간이라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것도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도 두려워서  그저 내 편한대로 펼치고 접어버리면 그만인 책만이 유일한 방편이었다.

낯선 도시는 정이 들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두가 바쁘거나 씩씩해보였다.

좋은 일로 이사를 한것도 아니어서 굳이 정을 붙이려고 애쓰고 싶지 않았고 그냥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투명하게 존재하기를 원했다.

그래도 무언가 생활에 재미는 있어야한다는 생각과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가족을 몰아서 도서관을 갔고 어색한 표정으로 즉석사진을 찍고 대출증을 만들었다.

다행이 이 도시는 도서관이 잘 되어 있어 여기저기 걸어가거나 조금만 버스를 타면 쉽게 갈 수 있었다. 워낙에 길치라 한동안은 딱 한 도서관만 죽어라 팠지만 점차 길을 알게 되면서 다른 도서관도 기웃거리고 그러다 상호대차라는 편리한 제도가 생긴 덕이 쉽게 책을 빌릴 수 있었다.

 

그 전에 살던 곳에서도 아이학교 도서관 도우미는 내내 했었다.

가장 사교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봉사였다. 그냥 나가서 말없는 사서 선생님의 무뚝뚝함에 감사하며 책 정리하고 서가 정리하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만 주면 그만이었으니까

옮겨 와서도 그 일은 계속했다. 어느 학교나 도서관 봉사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연하게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어느 정도 책읽기는 자신있었다.

읽는 근력이 제법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보아하니 그리 어려운 책을 읽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면 그냥 그냥 읽어갈만한 가벼운 독서가 될거라 짐작했다. 틀리지는 않았다.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한다는 것이 조금 주저되긴 했지만 꼭 말을 많이 할 필요는 없을거라고 믿었고 실제 그랬다.

열명이 넘는 회원중에는 주로 이야기를 이끄는 사람도 있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고 간혹 삼천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사람도 있고 다시 돌려 놓는 사람도 있었다.

제각각 다른 배경과 다른 학년의 아이를 가진 집단이라 의외로 편했다.

그렇게 그냥 우연하게 시작된 독서모임을 4년동안 했다.

고전들을 읽고 아이들 책을 읽고 소설을 읽고 인문학을 읽었다.

독서력이 제각각이라 다양한 수준의 책을 읽었고 매년 맴버들이 드나들면서 사람들도 바뀌었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껄끄러운 사람도 있고 한 번만에 정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매년 보지만 어색하고 힘든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상대에게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냥 잊어버렸다.

오랫동안 모임을 하지만 책을 통해 성장했다는 건 없었다. 단언컨대.....

그저 한때는 겨우 이수준을.... 하는 마음에 오만해지기도 했고

제대로 읽어오지 않은 멤버들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했고

내가 내켜지지 않은 책은 은근슬쩍 핑계를 대며 빠지기도 했으며

내가 느낀 감정과 의견이 반대에 부딪치면 빈정상했고 내가 거부당한 기분이었는데

타인의 의견은 쉽게 부정하고 반박했다.

그리고 이제 누군가와 함께 정하는 목록말고 내가 읽고 싶은  책들

조금 한편에 치우치거나 편협하더라도  그렇게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모든 책을 다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에 책은 많고 내가 읽은 책들은 바닷가 모래알 한줌정도나 될까

 

 

 

 

 

그 해 에이바가 북클럽에 들어간 것 역시 사람들이 절실했고 친교가 절실해서였다.

갑작스럽게 알게된 남편의 외도 그리고 이혼

어릴 적 동생이 사고로 죽고 엄마마저 자동차 사고로 동생을 따라간 이후 꾹꾹 눌러놓았던 기억과 감정들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또한번 거절당하고 버려졌다.

무언가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참가한 북클럽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그래도 내가 경험한 북클럽과 다르지 않다

다만 도서관 사서인 케이트가 모든 일을 진행하고 매번 그 책에 맞게 다과를 준비하고 코스프레를 준비한다는 게 더해질 뿐이다(라고 우긴다)

간혹 다른 주제로 빠지기도 하고 활발하게 의견을 내는 사람과 조용히 듣는 사람이 뒤섞여 있다는 건 다르지 않다.

에이바가 가입한 해의 도서 주제가 < 내인생의 책>이었다.

내게 있어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일까?

그건 누군가의 말처럼 그때의 내 감정과 내 상황과 책이 함께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하나의 감동이거나 전율이다. 그때 그 느낌과 그 흥분이 다른 시간 다른 상황에서도 같게 느껴질까

다만 그때 그 책이 나의 삶의 방향을 조금 꺽어놓아서 내가 조금 다른 내가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면.... 그 달라짐을 그 순간 알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제각각 가지고 있던 내 인생의 책들이 모여서 북클럽은 진행된다.

책이 주는 감동은 찰라에 지나기도 한다.

그저 꾸역꾸역 읽어가다가

오홋 이거 흥미로운걸 하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조금씩 야금야금  남아있는 페이지를 세어가며 아쉬운 마음에 아껴가며 읽어가다가

어느 순간 그 책이 내 삶에 훅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휘리릭 사라지기도 한다.

누구나 좋은 책이라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추천하던 책이 그저 읽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다가

우연히 다시 읽는 순간 다른 모습으로 들어올 때도 있다

그럼에도 책일뿐이다.

책은 책일뿐이고 읽는다는 것이 사람을 드라마틱하게 바꾸진 않는다.

사람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니까....

에이바도 읽지 않고 읽은 척하다가 망신도 당하고  읽지 않고 얌전히 있거나 겨우겨우 읽는 과정을 거쳐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고 어리고 힘들었던 시간을 견디게 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기억한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걸 알지만 그 책을 다시 읽는다는 걸 주저하기도 했다.

한때 책읽기를 좋아하던 에이바 그러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잃었다는 걸 깨닫지도 못했다. 그리고 찾아온 고통앞에 다시 친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책을 찾는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책에서 길을 찾지는 않는다.

절실한 사람에게만 길이 보인다.

질실한 사람은 자기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고 책을 통해 나를 만나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저 많이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읽는것이다.

그걸 에이바는 해냈다. (소설이니까 흥흥흥)

 

 

4년간 독서모임을 하고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 역시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4년전보다 조금 더 많이 읽은 인간이 되었고 조금 더 읽고 싶은 책이 늘어났을 뿐이고

조금은 책 욕심에서 놓여나기도 했고 관심분야가 일단은 넓어지기도 했다.

그림책이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것도 독서모임덕분이었고

작가별로 책을 읽어보는 경험도 모임을 통해서였고

내가 제법 말을 잘 하고 진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것도 모임덕분이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을까?

여전히 싫은 사람은 너무너무 싫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싶고 거부당하면 화가 나고 쪼잔하게 복수하고 싶다.

다만 ... 도무지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예전보다 조금은 더 많이 한다.

당연히 .... 해야한다. 되어야 한다. 하는 것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어짜피 너의 삶은 너의 것이고 나의 삶은 내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내가 생각보다는 괜찮은 구석이 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실수하고 후회하고  아쉽다.

 

책은 책이고 삶은 삶이고 나는 나이다.

그래봐야 책이지만 그럼에도 책이다. 그게 내가 알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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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최고의 책
앤 후드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가 위안이 된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빛과 그림자 그 선택도 내가 하는것이고 내삶이 충만한가 망가지는가도 지금 내가 정하는것이다. 책은 정답은 아니다. 다만 곁을 지켜주며 함께 해줄 뿐이다
선택은 내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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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1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었나봅니다.
푸른희망님,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  한식이란 누군가가 차려줄 때는 그보다 정성가득한 존중은 없지만 내가 차려야 할때는 이 이상의 노동이 없다. 구입하고 다듬고 요리하고 뒷설거지까지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지만 먹는건 금방이다. 금방 식거나 금방 축 쳐져 물기가 흥건해지거나 말라버리기 일쑤다.

정확한 시점에 정확하게 내놔야 한다는 타이밍까지 신경써야 하는 음식이다.

한편 미리 만들어 놓은 밑반찬 어제 먹었던, 다시 데운 국이라면 쉽고 얼렁뚱땅 차려내고 크게 차이 나 보이지 않는 면도 있다

장장 열흘이라는 긴 연휴를 보내면서 상차리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열흘에 하루 세끼 그러니까 서른끼가 지나간 셈이다

물론 모든 걸 다 집에서 차려낸 건 아니고 사먹기도 하고 나가서 외식을 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신경써야하는 차림에서 아무런 감정없이 무미건조하게 냉장고에서 식탁으로 이동만 하는 상차림까지 모든걸 하고 보니 온간 생각이 들었다.

먹는 일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참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먹는 일이 의외로 노동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식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이쁘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건 즐거움이라고 하는 건 그냥 앉아서 차려먹는 사람들의 상투적인 생각이 아닐까 싶다가도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서 자치는 줄 모르고 만들어 먹이고 그렇게 만들었는데 안먹고 투정하면 혼자 속상하고 내가 거부당한것 마냥 서럽고 억울했는데 그게 다 무슨 짓인가 싶다.

이래도 한끼 저래도 한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이 기복이 심한 나의 감정곡선의 가장 밑바닥인 시간이라서 더 그런지 모르겠다.

 

# 우리집은 종가집이라 4대 봉제사를 지냈다.

그러니까 4대 여덟분 일년에 명절 차례까지 하면 열번의 제사가 있는 셈이고 일년에 두달 빼고 매달 제사가 있는 셈이었다

우리 뒷동에  살던 내 친구는 어느 날 밤 우리집 베란다를 봤는데 거실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뒷모습이 웅성웅성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애가 본 그날 밤은 아마 제사가 있던 밤이었을 것이다.

명절이면 그실 한면을 길게 주욱 있다가 모자라 한 면은 꺽어진채 놓은 상까지 네 개의 상을 놓고 남자들은 절을 했다.

당연히 손끝하나 놀리지 않은 남자들은 혀끝은 예민하게 놀려댔다,

뭐가 빠졌구나 뭐가 잘 못 놓였다 뭐가 이상하다....  뭐는 너무 일찍 만들어서 다 말랐다...

손끝은 무딘데 혀끝은 예민하기 짝이 없었다.

사흘전부터 동동거린 엄마는 그 말에 죄인이 되고  입맛이 없다면서도 다들 한그릇 뚝딱 비우고 후식까지 찾는 통에 정작 내가 먹은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거나 아에 그게 싫어서 가뿐하게 건너뛰기 일쑤다

명절의 그 의식이 지나면 잘 차려지고 잘 치른 건 당연한거고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들은 언제나 말끝에 묻어났다.

꼴보기 싫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어쩌면 그때 명절때 마다 찾아오는 어른들 말고 그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와 함께 온 아들이나 손자들은 오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명절때만 보는 친척집에 가서 차례상이 준비되는 동안 남의 방 한구석에서 기다려야 하고 낯선 어른들과 함께 밥상을 받아서 조금 주눅들어 먹어야 하고 어색하게 인사하고 지루한 이야기를 듣는중 마는둥하다가 어른들이 이만 가자 하는 순간 화색이 도는 그 남자들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이제사 말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렇게 매번 꾸역꾸역와서 밥 먹고 과일먹고 떡먹고 먹기만 하다가 말없이 돌아가는 남자들이 싫었다. 나이가 많건 적든 나보다 어리든 그냥 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제사를 꼬박꼬박 형식을 갖춰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나름 자부심이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일을 꼭 해야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도와주면 칭찬받을 수 있는 입장이었고 이런 전통을 즐기면 되는 입장이었으니까

결혼하고  남편집은 돌아가신 시아버지 제사 달랑 한 상이었다.

그걸 보면서 쥐뿔도 잘하는게 없으면서 우스웠다.

겨우 차례상 하나쯤이야......

집집마다 다른 상차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내가 20년 넘게 보아온 것이 정석이라고 믿어서 조금만 달라도 이상하고 틀렸다고 생각했다.

상차림은 쉽고 별거아니라고 여기면서도 우리 집이 아닌 곳에 오래 있는 건 불편했다.

그렇게 일이 많지도 않고 누군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은근히 내맘대로 해도 별 말 없는 분위기지만 시집이라는 게 그런 거였다. 나혼자 맞지 않은 퍼즐판에 끼어있는것 마냥 어색하고 불편하고 엎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맞춰야 할 부분조차 내게 맞추길 바랬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음식을 차리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자취를 했고 요리에 관심도 많았고 잘하지는 않아도 겁내는 경우가 없어서 망치든 잘하든 일단 하고 보는 스타일이라 음식을 한다는 것이 힘들지는 않았다

맛없으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하다보면 대충 꼴은 갖추었으니까 그냥 자만했다.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거야 그래서 안하는 거지 못하는 건 아니야...

이게 30년동안 나를 지배한 요리에 대한 자만심이었다.

그런데 올해 긴 연휴를 겪으면서  이제 겨우 50도 되지 않아서 이제 안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처음으로 우리 서행자 여사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40년 넘게 종가집 종부로 제사상과 차례상을 차려낸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본가가 중요하고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고 장남으로 장손으로 책임감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아버지였기에 명절이나 제사가 대충 허투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수술하던 딱 한 해를 제외하고 (제주가 아프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실때 까지 제사는 엄마의 가슴에 얹힌 돌이었을 것이다.

동서들이 와서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그건 전날 와서 이미 그 주 내내 계획하고 장보고 몇번을 날라다 놓았던 재료를 다듬고 손질해서 차곡차곡 마련해놓은 걸 와서 지지거나 무치거나 하는게 전부였다. 그래도 어른들(이라 쓰고 남자들) 눈에는 내 눈앞에서 쭈그려 앉아서 하루 종일 전을 뒤집고  손 마를 새 없이 나물을 무치고 탕국을 끓이는 사람이 더 일하는 것 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들이 돌아갈때  모두에게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고 뒷 마무리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버리는 사람은 볼 수 없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다.

나 역시 결혼해서 일이 쉬워보이고 우스워보였던 건 미리 준비하고 다듬어 놓은 시어머니를 보지 않아서이고 내가 일을 했다고 하나 그때 역시 모든게 갖추어진 상황에서 자리잡고 앉아서 전을 뒤집은게 전부였기때문이었다.

해보지 않고 보기만 하는 건 대개는 쉽다.

누군가의 노래도 들을 때는 쉽고 단순한 노래였고 남이 하는 게임도 가만히 보기만 하면 나는 저것보다 적어도 배는 더 잘할 거 같고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자고 빈둥거리는 아이들도 그 시간에 왜 공부하지 않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법이다.  내가 딱 그랬다.

어느 순간 나이 먹고 모든 준비가 내 차지가 된 순간  밥상을 차리는 일은 (제상이든 차레상이든) 요리하고 차려내는 일은 그냥 껌이라는 거다.

선택하고 다듬고 준비하는 일이 태반이고 그 뒷처리가 남은 태반이다.

그 모든 보이지 않은 일을 40년간 한 서여사님께 세상 모든 존경을 다 바쳐도 모자란다는 걸 한참 나이 먹어 알았다.

그렇게 지긋지긋한 제사를 절대 내 아들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것이 서여사의 생각이셨다

4대 봉제사를 지내는 집안 장손은 절대 결혼할 수 없다, 그런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여자는 세상에 한명도 없다는 반 협박과 반 애원으로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제사를 줄였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우리 올케는 주문식단으로 제사상을 차린다.

맞벌이고 일이 바쁜 입장에서 제사때마다 명절때마다 일찍 와서 상을 차릴 수 없는 입장이다.

시대도 바뀌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서여사도 받아들였다.

한편으로 이해는 가지만 한편으로 서운한 것이 그녀 마음이었다.

- 니 아버지가 어떤 정성으로 조상을 모시고 어른들을 대접했는데 니 아버지는 그 반도 받을 수가 없는거냐며  한탄하시지만 어쩌시겠는가?

내가 한만큼 나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고 계속 그렇게 자격이 이어지면 이놈의 제사는 끝이 없는 법이다. 누군가는 내가  획득한 내 자격을 그냥 자격으로 남겨두겠다고 선언하지 않으면 네버엔딩스토리가 된다.  물론 본인이 스스로 내 제사는 간소하게 하라고 하신건 아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삶이 바뀌면서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된다.

한편으로 그렇게 자격있게 아버지의 권위를 세운건 결국 서여사다.

우리 아버지지만 명절이나 제사때 한 건 새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거나 그 전 주에 세탁소에서 잘 손질해온 한복을 입고  잘 차려놓은 제사상 앞에서 술을 따르고 축문을 읽고 절을 한 것 뿐이다. 만약 내가 한 정성을 내가 대접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면 그건 죄송하지만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이 아니고 할머니나 우리 엄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서여사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종부니까 당연히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시어머니라 부엌에 들어가는 사위는 그르려니 하지만 부엌에 들어가는 아들은 안타깝고 애틋하다.

우리 올케는 사실 내 남동생보다 바쁘다.

자라면서 공부밖에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공부를 썩 잘했고 좋은 학교를 갔고 또 공부를 잘하고 공부밖에 잘 하는게 없어서 좋은 직장엘 갔고 좋은 직장이란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고 돈을 많이 주는 직장이란 일을 많이 시키는 직장이다. 그 모든 조건에 맞게 올캐는 늘 바쁘다 뭐 물론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려면 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낸 시간을 시가 제사에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서여사 입장에서는 며느리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운한 거고 같은 여자로서 내가 보기엔 그래도 날짜 잊지 않고  챙기고 주문한 음식이라도 자기집에서 공간을 내고 손님을 맞는(물론 그 옛날 양복입는 남자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고 조폭?을 떠올린 내 친구의 착각을 가능케한 그런 규모는 아니지만)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하든 적게 하든 주문을 하든 뒷처리는 남는 법이니까.

엄마 입장에서 그리고 시누 입장에서 그래도 며느리인데 조금이라도 정성을 보이면 좋지 않나 싶어 얄밉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지만 또 여자입장에서 보면 내가 주관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하겠다고 결정했는데 거기 제 3자가 토를 달 수도 없는 것이라고 수긍한다.

40년을 한결같이 종부로 살아온 우리 서여사님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그녀의 은근한 질투와 아쉬움도 이해할 수 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다.

 

# 정말 이번 연휴는 드럽게 길었다.

쉬어도 쉬어도 끝이 없었고 아침에 눈뜨면 다들 나가서 보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하루 내내 집안을 뒹굴거리고 있었고 이 인간들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아귀들이나 다름 없었고(미안하다. 내가 인격이 덜 되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하루 세끼 차리는 일은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쉬울 수 있다.

따끈한 밥과 두어가지 찬이어도 정성껏 차리는 것이 가능하고

십첩 반상을 아무런  영혼없이 사온 찬이나 미리 해둔 밑반찬으로도 차려낼 수 있다.

게다가 우리에겐 햇반도 있지 않은가!!!!!

 

 

 

 

 

 

 

 

 

 

 

 

 

 

 

 

 

연휴가 시작될 무렵 다시 읽었다.

한편 한편 여기저기 헤집어가면서도 다 읽었다.

늘 그렇듯 술이 당겼고 늘 그렇듯 집에 먹을만한 알콜은 없었다.

왜 모든 일들은 지나간 후에야 그 상황이 더 선명해지는 걸까?

시간이 지날 수로 선명하고 단순해지는 기억이고 상황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어쩌면 그 순간 몰랐고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을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화려한 시간이었다는 것

내가 내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어설프고 한순간의 헤프닝같은 일이지만 그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꼭 한템포 뒤에 알아지는 것이다.

내가 밥상을 차리는 일이 이러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좀 더 달라졌을까?

 

 

연휴 마지막날 오후 봄에 담근 매실을 걸렸다.

얼마가 나올지 몰라 2리터 생수병을 네개를 깨끗하게 씻고 말려뒀는데 겨우 두병 나왔다.

남은 매실로 담은 매실주는 ..... 예전 약초주를 담그고 남은 담금주로 해서인지 내겐 독했다.

그래도 그 매실주를 찔끔 찔끔 마시면서 연경을 생각하고 이모를 생각한다.

내 삶도 이렇게 취하거 깨거나  그렇게 반복하는동안 아하. 하고 무릎을 칠 일들이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늦게라도 알게 되는게 다행 아닐까  스스로 위안한다.

스스로 위안하고 만족하는 건 내 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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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여자들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 / 사이행성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더 이상 파고 들 곳없는 바닥으로 떨어진 여자들이 비상하는 방법.
잊지않는것 기억하는것 그리고 마주 보는것
바닥에서 모든 혐오를 뒤집어 쓴 것도 나이고,지금 떠오르는것도 나다.
다만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반복된다.
그게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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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한 번 넘어진 모퉁이에서 다시 넘어지는 일이 빈번하다.

한 번 경험했다면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은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의 행동이겠지만

한 번 이상 모퉁이에서 넘어졌다면 이제 모퉁이만 보면 넘어질지 모른다고 긴장하고

그 긴장감이 다시 넘어지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가 매번 같은 모퉁이에서 넘어지고 있다.

다만 이젠 그 모퉁이를 주의해야 한다는 걸 안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다만 살아가면서 그 모퉁이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니까....

왜 그 모퉁이를 지나가냐고 다른 길은 생각하지 않냐고 아이를 탓하기도 했고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거나 그 모퉁이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다른이들과 비교하며 윽박질렀지만 그건 정말 소용없는 짓이다.

그저 그 모퉁이를 돌때 마다 긴장하지 말라고 하고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미리 무릎 보호대라도 준비해주는 것밖에...

살면서 몇번의 모퉁이를 돌아야 할테고 늘 혼자 그 곳을 돌아야 할테고

그 모퉁이를 없앨 수도 없다.

아이가 크면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켜보는 것 뿐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예쁜 표정을 유지하면서...

괜찮다고 하면 괜찮다고 같이 말해주고

괜찮지 않다고.. 괜찮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래도 된다고 하고

모퉁이를 미워 어쩔 줄 몰라하면  함께 미워하고 욕하지만.. 그래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책을 읽을 뿐이다...

 

 

 

 

 

 

 

 

 

 

 

 

 

 

 

저자가 제각각 관심분야를 독립영화로 찍는 다른 동료들을 인터뷰해서 책을 엮었다

여성 장애인 성 소수자 이주노동자 군대문제 동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했던 나름 분야에 대해 전문가이고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나는 그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책의 구성은 저자가 자기 생각을 풀어나가면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처럼 들어간다.

저자의 생각도 건강하고 좋지만  인터뷰를  했다면 그들의 생각들을 조금 더 깊이 듣고 싶었다.

                                                                                 

우리가 혐오를 반대하는 잉는 자명하다. 혐오는 인간의 존엄성을 사산조각내고 그 사람을 하찮게 여기도록 한다. 차별과 혐오는 바늘과 실이다. 누군가를 차별하면 그 대상을 혐오하는 것이 당연해진다. 차별당하는 사람을 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긴다.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악순환이다.

우리가 혐오에 짐식되지 않고 혐오와 싸워 이길 유일한 방법은 타자에 대한 공감뿐이다. 고감이란 내 주변에 항상 있지만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가 혐오하는 사람들이 낯선 타자나 이방인이 아니라 실은 나의 다른 얼굴이라는 사실을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개우치는 것이다. 공감할 수 있다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하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더는 혐오할 수 없다. 그런데 고감 없는 이해는 오만한 해석이 되기 쉽고 이해없는 공감은 극단으로 치우치기 쉽다. 그러므로 공감하려면 알려는 의지가 즉 상대방을 이해햐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머릿말에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과 누군가를 혐오하는 일은 다르다.

사람이 세상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없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모두를 사랑하고 이해할 수 없다. 내 감정에서 내 정서에서 내 상식에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도 하지만 절대 변하지 않기도 한다.

그건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다만 내가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공공연하게 떠들면서 누구든 그 대상을 미워하도록 만든다면 그건 혐오가 된다.

사실 나는 아직 불법 이주노동자가 두렵고 개인적 양심때무에 병역을 거부한다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다.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은 안다

여자가 다 성녀이거나 창녀가 아니듯이 이 땅의 모든 남자들이 한남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사람이 아니듯 외노자라고 다 흉악범죄자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알고 인식하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은 다르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청년경찰"에서의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문제라고 머리는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대림동을 가거나 외노자와 어울리고 싶지는 않다. 그럴 기회도 많지 않겠지만 나는 마음 한 구석에서 그들이 무섭다

책에는 중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시끄러워지고  다툼이 일어나고 그 다툼이 그냥 주먹다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칼부림으로 이어진다면서 그렇게 사건이 일어나도 순식간에 피해자도 가해자고 그리고 뿌려진 핏자국도 사라진다고 했다. 그만큼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불법 체류자이기때문에 집혀가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이 차별받아서 내면에 두려움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왜 하필 소소하다는 다툼조차 칼부림이 나야하는가에 방점을 찍는다

외노자에게 쉽게 "니네 나라로 가라"고 하거나 외국인 신부들의 주민증 발급을 거부하는 남편들의 이기심등을 들으면 참 인간으로 할짓이 아니다 라고 분노한다. 외국인이라고 피가 붉지 않은게 아니라는 말처럼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반응은 오원춘 사건이나 떠도는 장기밀매 이야기들이 더 가깝다. 그들로 인해 거리가 더러워지고 다니기 두려워지는 일이 우선이다. 이것조차 혐오라고 생각을 하면서 쉽게 그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군대문화는 이미 군대만의 문화가 아니다. 그건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모두 통용된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군대 경험 혹은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가 가장 지루하고 거부감드는 주제라는 것에 동의하고 세상의 질서가 군대처럼 억압적이고 상명하달이라는 것에도 거부감을 느낀다. 군대가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고 폭력적인 문화가 어쩔 수 없이 강하다것도 안다.그럼에도 나는 개인적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누구도 자진해서 가고 싶지 않은 곳이 군대다. 연예인 누구누구가 해병대를 가고 어린 나이에 군대를 자원했다는 이야기가 미담처럼 나올 수 있는 것도 그만큼 가고 싶어하지 않은 것이 더 크다는 반증이 아닐까 .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거부하고 싶지만 병역의 의무라는 것때문에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거라는 것때문에 누구나 참고 기왕이면 좋게 가고자 할 뿐이다.

누군가의 종교상의 이유가 그리고 폭력과 군대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양심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가고 싶지 않아도 갈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음도 존중받아야 한다. 나도 가서 2년을 뺑이 돌았으니 너도 가야한다. 너만 빠지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는 마음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폭력에 무감해서 그 문화애 대한 예민함이 없어서 갈 수 밖에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양심이 나의 의무와 충돌할 때 결국 병역대신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가는 것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나은지 ,,, 사실 여자라서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 군인아저씨가 아니라 군대간 아들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운 나이가 되면서 누군가는 가장 빝나는 시기에 혹은 내가 가장이 되어야 하는 그 사간에 그냥 오롷히 흘렬 버리도록 감내하는데 누군가는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게 조금 이해가 가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

 

나는 혐오가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나보다 약한 대상에게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혐오다.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이나 제도는 다른 것인데 그 적확한 대상에게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가장 만만하고 쉬운 상대에게 그 화풀이를 한다. 죽어라 한놈만 패는 것처럼 그렇게 나보다 약하고 만만한 대상을 미워하고 증오한다.

내가 취업을 못하거나 모든 욕망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건 잘못된 경제의 흐름이거나 제도의 부재때문일텐데 그건 너무 어렵다. 다만 내 옆에 그저 남자 말이나 듣고 고분고분해야할 여자들이 직업을 가지고 나와 경쟁하려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희 나라에서 살지 왜 이 한국까지 기어와서 일하려는 외노자들이 나의 경쟁상대가 된다.  내가 가진건 신체 건강한 군필자라는 것  사내라는 것인데 이제 세상은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들을 원한다. 남자라는 존재가 더 이상 한가지로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이 역겹고 성소수자의 취향은 변탵스럽고 병적인 것이 된다. 장애인은 그저 돌봐주어야 하고 복지예산을 가져가는 짐스러운 존재다.

그들이 내 앞길을 막는다.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나를 화나게 한다. 그래서 밉다

그래서 싫고 사라졌으면 내 앞에 납작 엎드렸으면 한다. 그런 마음이 나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좀 더 과격하게 드러내고 공격한다.

그 모든 약한 존재가 사라지면 나는 편할까?

외노자가 사라지고 모든 아들들이 군대를 가고 나면 내 마음은 조금 더 편해질까?

모르겠다.

 

혐오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금의 교양과 상식만 있다면 세상에 많은 혐오를 알 수 있거 거부감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교양있는 사람이니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조금 더 진보적이고 조금 더 꺠어있는 주장을 할 수 있지만 내 마음은 조금 불안하다. 그들이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다는 욕심과 알고 이해하지만 그건 나와 그들이 다른 바운더리에 있을때 이야기이지 나와 함께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나누어야 하는 순간이랴면  비겁하게도 나도 자신은 없다.

그래서 자꾸 이런 책을 읽는다.

모두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진부해져버렸지만./ 그래도 읽어서 자꾸 내 마음을 다시 다독일 필요가 있다.

내 속의 미움이라는 감정이 언제 불쑥 혐오가 되어 튀어나올지 나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사회를 인간 이상으로 확장해서 동물권에 대해 이야기해 준 6장은 새로운 세상을 내게 보여주었다. 

 

 

 

 

 

 

 

 

 

 

 

 

 

 

 

 

 

누구나 다 아는 유괴사건이 있었다.

아이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집을 나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의 비명소리 아이의 겁에 질린 표정이 찍힌 사진이 집으로 오지만 아이의 행방은 오리무중이고 범인도 알 수 없었다. 친구 아버지가 용의자로 몰렸지만 정황이 충분하지 않다.

49일 후 아이는 돌아왔다.

아이는 49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모두가 아이에게 그때의 일을 묻지만 아이는 그저 집을 나가기 전 토요일에 본 주말의 명화가 기억의 끝이고 중간의 49일은 통째로 사라졌다.

아이는 자기가 기억못하는 그 49일을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주위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이 더 두렵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해야할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다그치는 사람들이 무섭다. 아이네는 이민을 갔고 성인이 되어  모두가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아이가 유괴된 49일간 사라진 또 한명의 아이가 있었다.

 

이야기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아는 사건안에 아무도 모르는 기억이 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내가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기억을 지워버린다. 단지 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기억을 지운다. 없던 일처럼 만들어버린다.

어른이 된 두 소녀는 가장 아픈 그때의 기억이 없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예고도 없이 돌아온다.

그것도 완전한 형태가 아닌 퍼즐조각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조각난채로 내게 두서 없이 돌아온다.

소녀들은 용기를 내어 기억을 직면한다.

아파서 잊었던 기억을 아프지 않게 위해 다시 꺼집낸다.

살기 위해 잊었던 것을 이제 살려고 기억해내려고 한다.

직면하는 일은 언제나 두렵다.

그 깊은 망각속에 어떤 괴물이 어떤 모습으로 숨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망각이 내 것이지만 내 속에 숨은 깊은 우물이지만 나는 나의 우물을 들여다 보는것이 제일 무섭다. 그러나 봐야 한다. 내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걸어가고  빛을 향해가기 위해서 봐야 하는 것이 그 우물이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우물속에는 괴물도 있지만 그 괴물은 생각만큼 흉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젠 작은 개구리가 되어 내가 충분히 마주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지 않은 나는 내가 아니다

군데군데 지워져 버린 모습은 나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다.

나를 구성하는 건 뼈와 살과 피와 함께 나의 기억들이다.

누구도 이젠 나를 알아보지 못해도 나만은 나를 알고 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른다면 나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힘든 고통은 잊고 싶다.

사라져서 아무도 아니 적어도 나만 몰랐으면 좋겠다.

너무 힘들다면 깊이 쑤셔 놓아도 괜찮다

다만 너무 늦지 않게 그렇게 방치하고 감춰둔 것을 다시 꺼내야 한다.

그건 괴롭고 무서운 것만 있는게 아니라 가장 여리고 보드라운 내가 함께 견디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일이 기억하는 일이다.

단순하지만 몰입감있게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청춘시대2>의 등장인물 중, 데이트 폭력 피해자 예은이 있다.

전편에서 폭력을 경험하고 생존했고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학교를 휴학했다가 다시 복학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밤길 남자. 혼자 다니는 것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것 모든게 두렵지만 무엇보다 그런 피해를 당한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빴기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다.그건 타인이 쉽게 내뱉는 말일 때도 있고 나 스스로 끊임없이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피해자인데 내가 가장 상처입고 폭력을 당했고 살아남았는데 그는 멀쩡하게 죄값을 치르고 캐나다로 가버렸고 나는 여기서  두려움을 눌러가며 타인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한다. 게다가 험한 뒷담화도 내몫이고 남들의 편견이나 의심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한다

폭력자체도 두려운데 그 폭력에 젠더가 개입하고 남녀 관계가 얽히면서 문제는 이상하게 꼬여간다. 때린놈은 나쁜 놈 맞은 놈은 당한 놈이라는 칼로 딱 잘라버릴 정리가 되지 않는다.

도데체 어떻게 행실을 했길래..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의심부터 이제 남사스러워 어떻게 살래? 이제 걸레잖아. 하는 혐오까지 모조리 피해자의 몫이다.

폭력을 당해서 살아남아도 또다시 잔펀치들이 훅훅 들어온다. 그땐  배려라거나 관심이라거나 충고라는 이름을 달고 들어오지만 그것도 폭력이다.

드라마 흐름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은이 언제나 겁에 질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메들과 웃고 똑 소리나고 얄미운 조언을 하기도 하고 괜찮아 보일 때도 많다. 이제 시간도 제법 흘렀고 잊을 만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다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참 많이 애쓰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닌척 괜찮은 척...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남들에게 폐끼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강화길의 소설들을 읽으면 모든 인물들이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한다.

모두가 아프다. 과거 폭력의 경험이 있고 버림받은 기억이 있고 남들에게 뒤쳐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더이상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고 내 자식에게 그런 낭패감을 물려주고 싶지 않고 관계에서  소외받고 싶지 않다. 모두가 힘들고 아픈데 관찮은 척 한다.

아무렇지 않은 말간 얼굴고 남의 일인것처럼 그림자를 못 몬척 하고 애를 쓴다.

모두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프다고 악! 하고 소리지르며 주저앉는 순간 나는 더 이상 괜찮지 않고 남들보다 뒤떨어지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릴테니까 절박하게 괜찮은 사람인양 미소짓는다.

그 미소가 슬프다.

사실 단편들을 모두 읽지 못했다.

처음 나온 <호수 - 다른 사람> 을 읽고 너무 힘들어서 그만 읽고 싶었다.

이후 몇편을 더 읽었지만 모두가 너무 힘든 인물들이었다.

괜찮다고 위로하기엔 그 위로가 어줍잖아질 것같이 모두가 제 고통속에서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웃고 있었다. 위로를 거부하는 얼굴들이다.

<호수- 다른 사람>의 주인공이 마지막에 해야할 일을 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순응이 아니라 차라리 폭력일지언정 세상을 향한 저항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들이 아프다고 말하고 나를 치료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세상이 정말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이건 강화길보다 더 강하다.

첫 단편부터 읽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럴거야.... 이럴지도 몰라.... 이러지 말았으면..... 그것만 아니었으면..

하는 사건들이 쉴 틈도 주지 않고 훅훅 치고 들어왔다.

여자가 당할 수 있는 모든 폭력이 종합셋트처럼 펼쳐진다.

감금 강간 폭력  비하. 혐오. .....

그러나 록산 게이의 여자들은 그 모든 상처를 직면하고  다시 일어선다.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고 그대로 주저 앉아도 그만일 상황에서 모두가 다시 일어서고 현실을 마주한다. 모두가 약한 여자들이었지만 동시에 강한 여자들이다.

어려운 여자란... 어려운 일을 경험한 여자들이지만 어떤 폭력에도 쓰러뜨리기 어려운 여자들 강한 여자들이란 의미였을까?

마지막 단편은 저자의 경험이 아니었을까? <나쁜 페미니스트>에서도 봤던 에피였다.

그럼에도 다시 일어나 멋진 책을 써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약하고 쉽게 부서질수 있는 존재지만... 무언가 부서줬다고 그대로 주저 앉아 버리는 존재는 아니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기억이 아름답든 추하든  그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을 직면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구를 미워할 수는 있지만 누군가를 따돌리는 혐오는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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